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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마르틴(Martin): 성 마르땅(Saint Martin de Tours, Martin le Miséricordieux, saint Martin des Champs, 316-397)은 프랑스 투르의 주교를 지냈고, 투르에 있는 그의 이름을 딴 마르땅 성당은 프랑스 카톨릭의 4대 성지 중의 하나이다. 가난한 거지에게 자기의 망토를 반으로 잘라서 주었다는 일화가 있으며, 자비로운 자(miséricordieux)라는 별명을 얻었다.]
1889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1889년 9월 26일에 메스키르히(Meßkirch)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은 주민 전체가 카톨릭이었다.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도 같은 해 태어났고, 프랑스에서는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 1889-1973)도 있다.
1903(열넷) 메스키르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903년 김나지움(인문계 중등학교)에 입학한다. 이 카톨릭 학교의 장학금을 받았다.
1907(열여덟) 당시 신부였고 나중에 대주교가 될 그뢰베르(Conrad Gröber, 1872-1948)의 세미나 지도로, 브렌타노(Franz Brentano)의 「De la diversité des acceptions de l'être d'après Aristote (1862)」를 읽었다. 하이데거는 나중에 이 책이 “그리스 철학으로 통하는 첫 안내서”라고 여러 번 말했다.
1909(스물)년 김나지움을 졸업한 하이데거는 9월에 예수회(la Compagnie de Jésus)에 들어가지만, 건강을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예수회 신부가 되기에는 몸이 약하다는 이유였다(10월).
하이데거는 대신 일반 신부가 되기 위해 1909년 겨울 학기에 바덴 주 프라이부르크대학 신학부에 입학했다.
1909년부터(Dès 1909)그는 후설의 논리 탐구(Logische Untersuchungen)(1900-1901)를 읽었다.
1911(스물둘) 그는 새로이 심장 질환으로 고통을 겪는다.
- 여름에 회복하여 그는 기존 학업을 중단하고 철학으로 진로를 바꾼다.
- 겨울학기(1911-1912) 프라이부르크 대학 자연과학부에 수학, 물리학, 화학에 등록하였다. 교수의 길로 가기 위해 철학 연구를 하기로 한다.
1913(스물넷) 철학 박사학위 논문 「심리학주의에서 판단의 학설(Doctrine du jugement dans le psychologisme(1913)」을 슈나이더(Artur Schneider, 1876–1945)교수 지도로 제출하였다.
1914(스물다섯) 건강상 이유로 [군 입대]에서 중도 제대되었다.
1915(스물여섯) 강연을 하다. 「현대철학에서 진리의 개념(Le concept de vérité dans la philosophie moderne, 1915)」.
7월 15일 교수자격논문 「둔스 스코투스의 범주들과 기호화작용에 대하여(Traité des catégories et de la signification chez Duns Scot)」를 제출하고 사강사(전임강사)가 되었고, 취임강의는 「역사적 과학에서 시간 개념(Le concept de temps dans la science historique)」이다.
1916(스물일곱) 가을 후설(Husserl, 1859-1938)의 조교가 되고, 현상학을 배웠다.
후설의 강의 수강 이외에, 후설의 논리 탐구(Logische Untersuchungen: fr. Recherches logiques를 계속해서 깊이 읽었다. - 1923에서 1927 사이에는 후설을 비난하기도 한다. 후설이 초월적 주관성의 철학을, 더욱이 또한 데카르트주의로 향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 책을 계속 찬미하였다.
1917(스물여덟) 군대에 징집 되었다. 베르당 부대에서 기상정보의 임무를 맡았다.
1919(서른) [1차 세계 대전에 종군한 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다시 강의를 맡았다. - 후설의 조수를 겸하면서 현상학을 강의하였다.
1922(서른셋) 나트롭(Paul Natorp, 1854-1924)에게 보낸 그에 대한 연구로 「나트롭 보고서(Rapport Natorp)」를 썼다.
1923(서른넷) 마르부르크 대학(네오 칸트주의의 본산)에서 강의 하였다.
이 대학의 교수인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과 신약 성경을 재해석하였다.
그 대학에는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나트롭(Paul Natorp), 코헨(Hermann Cohen)이 있었고
그의 수강자로는: 가다머(Hans-Georg Gadamer), 아렌트(Hannah Arendt), 뢰비트(Karl Löwith), 크뤼거(Gerhard Krüger), 스트라우스(Leo Strauss), 클라인(Jacob Klein), 안데르스(Günther Anders), 요나스(Hans Jonas). 등이 있다.
1926(서른일곱) ‘Sein und Zeit (Être et Temps)’의 초고를 후설에게 보여주었다.
1927(서른여덟) 현상학의 기관지에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을 발표하여, 독일 철학의 제1선에 등장하였다.
Apports à la philosophie: De l'Avenance (Beiträge zur Philosophie : Vom Ereignis), (1989 독일어판 2013 프랑스어판)
-《존재와 시간》은 후설의 현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딜타이의 생의 철학 등의 영향 하에 독자적인 철학을 개척하여 현존재의 존재의미를 탐구하는 실존론적 철학을 수립하였다.
1928(서른아홉)에는 후설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1929(마흔) 3월 다보스 논쟁(La controverse de Davos)에서 신칸트학파의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와 논쟁을 벌이다. 하이데거는 “다자인(Dasein)의 현존재 분석의 입장에 있었다.”
7월 24일 취임 연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Was ist Metaphysik?)”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진에게 처음 발표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강연이다.
1930(마흔하나) 나찌즘에 공감을 가졌다.
1931(마흔둘)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 자리 제안이 있었으나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남았다. 수강자들로, 아렌트(Hannah Arendt), 안데르스(Günther Anders), 요나스(Hans Jonas), 뢰비트(Karl Löwith), 말리크(Charles Malik), 마르쿠제(Herbert Marcuse), 놀테(Ernst Nolte),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1932(마흔셋) 히틀러의 ‘독일 노동자 국가 사회주의당’(NSDAP: Parti national-socialiste des travailleurs allemands, en allemand :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NSDAP)에 투표하였다.
1933(마흔넷) 1월 30일 히틀러가 제국의 총통(chancelier du Reich)이 되었다.
역사가들 Hugo Ott, Bernd Martin, Guillaume Payen 등은 하이데거가 히틀러의 “지도자 원리(Führerprinzip (« principe du chef »)” 도입에 [함께] 작업했다고 한다.
4월 21 총장에 선출되었다. <한.위.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총장에 취임할 때 학생들에게 나치에 참여하라고 연설을 했고, 1945년까지 나치 당적을 유지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한 강의와 연설, 나치 고위층과의 관계, 부인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2014년 출간한 하이데거의 비밀일기 검은 노트(Schwarze Hefte)를 통해서도 친나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1934(마흔다섯) 4월 21월에 사임하였다.
<하이데거가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그가 1931년부터 1941년 사이 개인적으로 남긴 일종의 '철학 일기'인 검은 노트의 출간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그는 유대인들이 '뿌리 없음'을 육화한 존재라고 보고, 이들의 '공허한 합리성과 예측가능성'의 정신을 맹렬히 비난했다. 또 세계유대주의(Weltjudentum)를 인간성을 말살하는 서구 근대성의 주요 추동요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논했다.>
1935(마흔여섯) 형이상학 입문(Introduction à la métaphysique, 1935)(1935 강의원문, 1953출판) - 이 책이 발표되는 시기에 그가 사유의 전회« tournant »)라 불렀던 순간이 일어났다고 한다.
1935 9월 프라이부르크 대학 강연에서 「예술 작품의 기원(Der Ursprung des Kunstwerkes: L'origine de l'œuvre d'art」 발표
- [1943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1943]
1936-38년의 논고 『철학에의 기여(Beiträgen zur Philosophie, 1936-38)』
1941 하이데거는 자신의 저서 존재와 시간(1927)에서 후설에게 헌정한다는 문구를 삭제하였다.
1944(쉰다섯)까지 강의를 계속했다.
독일의 히틀러 집권 시기 나치 독일을 지지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자주해 한나 아렌트 등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하였다.[1] 그러나 나치 독일 패전후 독일 비(非)나치스화 청문회에서 그의 정부였던 유태인 한나 아렌트의 증언 등으로 처벌을 피했고, 이후 5년 동안 학문 활동을 금지 당했다.
1945(쉰여섯)년 휴직. 전후 연합국 당국에 의해 강의가 금지되었다.
- 이해부터 장 보프레(Jean Beaufret)와 대화가 시작되어, 그의 생애 끝까지 이어졌다.
<피에르 펜느 군정 사령관은 하이데거의 나치 부역 전력에 대한 평가 임무를 장교이며 독일문학 교수였던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에게 맡겼다. 라캉은 하이데거가 자신은 ‘수동적 방관자’였다는 관례적인 이유로 자신의 행적을 합리화하려 했다고 적고 있다. “내가 하이데거를 오게 해서 면담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을 하더니 대학을 새롭게 바꾸고 싶었고, 나치의 힘을 빌린다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라캉은 하이데거의 변명을 믿지 않았다. 후고 오트, 빅토르 파리아스, 엠마뉘엘 파이에 같은 학자들은 철저한 연구조사를 통해 하이데거가 나치당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비롯해 얼마나 깊게 나치와 관계를 맺었는지, 특히 동료교수들과 스승인 에드문트 후설에게 보여준 태도를 통해 그가 얼마나 심각한 반유대주의자였는지 밝혀냈다. 그리고 하이데거의 아들이 철저하게 아버지의 개인 기록물을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가 인종과 독일 민족, ‘총통’의 최후의 해결책(final solution, 대량학살) 등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이상화한 글도 찾아냈다. 프랑스 철학자들 덕분에 감옥에 가지 않았지만, 하이데거는 이들에게 특별히 감사의 표시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후에 발표된 슈피겔과의 인터뷰(1976년)에서 “프랑스 철학자들은 생각하기 시작하면 독일어로 말한다”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1946 2월에서 5월 일종의 우울증으로 바덴베일러의 정신과 임상병원에 머물렀다.
1947 인문주의에 관한 편지(Brief über den humanismus, Lettre sur l'humanisme, ,Écrite en 1946, remaniée et publiée en 1947,
1950(예순하나)에 복직하여 명예 교수가 되었다.
「사물(Das Ding (1950): La chose (1950)」
1951(예순둘) 강의 금지가 해제되었고, 강의를 다시 할 수 있었다.
1951 「생각하다는 무엇을 말하는가? Was heißt Denken? (1952) Que veut dire penser ? (1952)」 (1951-1952)
「집짓고, 거주하고 사유하다(Bauen Wohnen Denken, 1951) Bâtir, habiter, penser (1951)」
「인간은 시적으로 산다("... dichterisch wohnet der Mensch ..." (1951) L'homme habite en poète… (1951)」,
1953 「기술에 관한 질문(Die Frage nach der Technik (1953), La question de la technique」
1954 강연들과 시론들(Vorträge und Aufsätze, Essais et conférences 1954)(1936-1953 소품들)(trad. André Préau, préf. Jean Beaufret), Paris, Gallimard, coll. « Tel » (no 52) (1re éd. 1958) - 전집 7권에 포함되어 있다.
I. (4편)
「Die Frage nach der Technik (1953), La question de la technique」
「Wissenschaft und Besinnung (1953), Science et méditation」
「Überwindung der Metaphysik(1936-1946), Dépassement de la métaphysique」
「Wer ist Nietzsches Zarathustra(1953), Qui est le Zarathoustra de Nietzsche?」
II. (4편)
Was heißt Denken? (1952) Que veut dire penser ? (1952)
Bauen Wohnen Denken (1951) Bâtir, habiter, penser (1951)
Das Ding (1950) La chose (1950)
"... dichterisch wohnet der Mensch ..." (1951) L'homme habite en poète… (1951)
III. (3편)
Logos (Heraklit, Fragment 50) (1951) Logos (1951)
Moira (Parmenides, Fragment VIII, 34-41) (1952) Moira (1951-52)
Aletheia (Heraklit, Fragment 16) (1954) Alèthéia (1943)
1955(예순여섯) 강의 Le Principe de raison (1955-1956)
1955, 프랑스에 초대 받다. 강디약(Maurice de Gandillac)과 보프레(Jean Beaufret)에 의해 프랑스에 초대 받았다. 라깡(Jacques Lacan)집에 머물렀다.
1958(예순아홉) 대학에서 은퇴. Il est ensuite régulièrement invité en Provence par le poète René Char pour tenir des séminaires, retranscrits dans Questions IV. En 1958, Heidegger prend sa retraite de l'Université
1959(일흔) 파롤의 노정(Acheminement vers la parole, 1950-59) (1976년, 보프레 번역). [p9 : Note préliminaire du traducteur, p11 : La parole [die Sprache], p39 : La parole dans l'élément du poème, p85 : D'un entretien de la parole, p141 : Le déploiement de la parole, p203 : Le mot, p225 : Le chemin vers la parole [der Weg sur Sprache] ]
1963(일흔넷) Mon chemin de pensée et la phénoménologie (1963)
1968 Questions I, Paris, Gallimard, 1968.
Qu'est-ce que la métaphysique ?, 1931
1968 1947-63, Questions II, Paris, Gallimard, 1968.
Comprend : Qu'est-ce que la philosophie ? (1956, (trad. Kostas Axelos et Jean Beaufret); Hegel et les Grecs (1960), (trad. Dominique Janicaud); La thèse de Kant sur l'être (1963), (trad. Lucien Braun et Michel Haar); La doctrine de Platon sur la vérité (1947) (trad. André Préau); Ce qu'est et comment se détermine la phusis (1958), (trad. François Fédier).
1976(여든일곱) 1976년 5월 26일 고향 메스키르히(Messkirch, Fribourg-en-Brisgau)에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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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Martin Heidegger, cahier de L'Herne – January 1, 1983
Geschlecht: “Différence sexuelle différence ontologique”
Jacques Derrida, Publié dans le Cahier de l’Herne consacré à Heidegger et dirigé par Michel Haar, Paris, 1983.
1989 Beiträge zur Philosophie (Vom Ereignis), traduit en français chez Gallimard par François Fédier sous le titre Apports à la philosophie : De l'avenance.
1990
-Questions I et II(합본), Martin Heidegger (trad. Kōstas Axelos, Jean Beaufret, Walter Biemel et al.), Identité et différence(Questions I et II), Paris, Gallimard, coll. « Tel » (no 156), 1990, 582 p.
- QUESTIONS I
p7 : Remarque préliminaire
p9 : Prologue de l'auteur
p13 Avant-Propos d'Henry Corbin
p21 : Qu'est-ce que la métaphysique? - Einführung in die Metaphysik
p85 : Ce qui fait l'être-essentiel d'un fondement ou "raison"
p159 : De l'essence de la vérité
p195 : Contribution à la question de l'être
p253 : Identité et différence – 1955-1957: Identität und Differenz
- QUESTIONS II
p315 : Qu'est-ce que la philosophie?
p347 : Hegel et les Grecs
p375 : La thèse de Kant sur l'Être
p423 : La doctrine de Platon sur la vérité
p471 : Ce qu'est et comment se détermine la physis
Questions III et IV(합본) – November 22, 1990.
1990 Questions III, IV, 1966-1976) [Q34]
- QUESTIONS III.
p9 : Le Chemin de campagne
p17 : L'Expérience de la pensée
p43 : Hebel
p65 : Lettre sur l'humanisme
p129 : Lettre à Jean Beaufret
p131 : Sérénité
p149 : Pour servir de commentaire à Sérénité
-QUESTIONS IV.
1. TEMPS ET ÊTRE
p189 : Temps et être (1962년 강연),
p228 : Protocole d'un séminaire sur la conférence "Temps et être"
p269 : L'Art et l'Espace
2. LA FIN DE LA PHILOSOPHIE ET LE TOURNANT
p279 : La fin de la philosophie et la tâche de la pensée
p307 : Le tournant
3. PHÉNOMÉNOLOGIE ET PENSÉE DE L'ÊTRE
p321 : Mon chemin de pensée et la phénoménologie
p338 : Lettre à Richardson
p352 : De la compréhension du temps dans la phénoménologie et dans la pensée de la question de l'être.
4. LES SÉMINAIRES
p356 : les séminaires du Thor
p357 : 1966
p372 : 1968
p415 : 1969
p459 : Le séminaire de Zähringen
2014 하이데거의 내밀한 철학일기 검은 노트(Cahiers noirs)(2014) - 여기에는 반유태주의에 관한 내용이 있다.
** 연관 철학자들
544 헤라클레이토스(Héraclite, Ἠράκλειτος, 기원전 544-480) 이오니아 에페소스 출신, 불(le feu), 투쟁의 변증법. fr.Wiki, 전544경/541 Éphèse -전480경 Éphèse.
540-450 파르메니데스(Parménide, Παρμενίδης/ Parmenídês, 기원전 540-450) 존재가 있다(L'Etre est) / fr.Wiki 520/510 - vers 450-448[2]. [소크라테스 20살에 파르메니데스가 죽었다]
O
1770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 1770-1843) 독일 시인. 작품으로는 소설 《히페리온》, 미완성 비극 《엠페도클레스》, 시 <하이델베르크>, <라인강>, <다도해>, <빵과 포도주> 등이 있다.
1844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독일 문헌학자, 철학자. 존재물음에서 가치물음으로의 전환에 내재하는 자연주의(권능의 의지)를 주목하였다.
1854 나토릅(Paul Gerhard Natorp, 1854-1924) 독일의 신칸트학파 철학자. 데카르트의 인식이론(Descartes' Erkenntnistheorie. Eine Studie zur Vorgeschichte des Kriticismus. 1882., Logik in Leitsätzen, 1904
1859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 유대계 독일인, 독일 현상학자. [한.위키: 그는 심리주의와 역사주의에 대한 비평을 통해 실증주의와 결별하였다. 그는 유대교를 믿는다.
1874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스웨덴 국적 독일 철학자. 신칸트학파(마르부르크 학파)의 대표자(나트롭, 코헨).
1884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 독일 루터파 전통의 신학자. 바울로 박사학위. 1921년부터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가르치고 명예교수이다.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 (1921, 1931) Neues Testament und Mythologie (1941)
1889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 철학자. 실존주의 창시자.
비트겐슈타인(1889-1951), 히틀러(1889-1945)가 같은 해 출생이다.
1906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유대-독일계 미국인 작가, 정치 이론가. 하이데거의 제자였다.
1906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리투아니아 유대계 출신, 프랑스 철학자, 탈무드 주석가. 1928∼1929년 후설과 하이데거 강의를 듣고 프랑스로 현상학을 소개했다.
1907 보프레(Jean Beaufret, 1907-1982) 프랑스 철학자. 하이데거 전문가
1927 켈켈(Arion Lothar Kelkel, 1927-2015) 프랑스 철학자. 현상학, 후설, 하이데거 전문가, 존재의 전설(La légende de l'être : langage et poésie chez Heidegger, 1980)
1930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 유태인출신의 프랑스 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한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존재의 계시가 어떤 것으로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이미 지워진 어떤 것으로 바꾸어서 설명한다.
2009 리끼에(Camille Riquier, 1974-) « 순수 지속, 즉 무아경의 시간성의 묘사: 벩송의 독자로서 하이데거(La durée pure comme esquisse de la temporalité ekstatique : Heidegger, lecteur de Bergson », dans Claude Romano et Servanne Jollivet (dir.), Heidegger en dialogue 1912-1930 : Rencontres affinités et confrontations, Paris, Vrin, coll. « Problèmes et Controverses », 2009, 304 p., p. 3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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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최동희(崔東熙? 1925-2013) 고려대 교수, ‘도이치고전철학’, ‘현대독불철학’, ‘실존철학’을 강의 했다.
1932 이정복(李貞馥, 1932-), 한양대 철학과 교수, 후기 하이데거와 자유현상학: 玄菴 이정복 교수 정년퇴임 기념 논문 특집(1997)
1934 소광희(蘇光熙, 1934-) 서울대 교수, <시간과 시간의식: Augustinus와 Husserl을 중심으로, 서울대, 1977, 최재희.> 하이데거『존재와 시간』강의(2003)
1936 백승균(白承均, 1936-) 외대, 고려대, 독일 박사학위, 하이덱거의 哲學理論(Martin Heidegger)(1980, 博英社).
1937 황문수(黃文秀, 1937-) 고려대 학위 석박사, 경희대 명예 교수, 실존과 이성, 실존철학을 넘어서.
1946 박휘근(1946-) 서울, 프랑스 앙제 카톨릭대학 철학과 졸,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연구 네델란드 레이든 대학 철학과 대학원 소속(1979) 「불교에서 변신론 문제(Question de théodicée dans le bouddhisme)」(Angers, 1970), 「하이데거 철학에 나타나는 동일성의 의미(Sin von Identität bei M. Heidegger)」(Hamburg, 1972), 「한글의 기원으로(Zum Ursprung der Koreanischen Buchstabenschrift ‘Hangul’」(Leiden, 1976), 「르네 데카르트에 있어서 무한성이란 무엇을 말하는가?(Was heißt das Unendliche bei Rene Descartes)」(Leiden, 1978).
번역 형이상학 입문(1935)(1935 프라이부르크 대학 강의 원문, 1953출판), 1995, 문예출판사.
1947 이기상(李基相, 1947-), 외대 교수,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존재와 시간”. 현상학을 통해 학문적 철학을 새롭게 정초하려는 하이데거의 시도, 독일: Hochschule fuer Philosophie, 1985, Gerd Haeffner.>
1954 윤병렬(尹炳熱, 1954-) 홍익대 초빙교수, <Der Wandel des Wahrheitsverstaendnisses im Denken Heideggers, 1996, Rheinischen Friedrich - Wilhelms - University Bonn, Gerhart Schmidt.>
1955 이부현(1955-) 부산카톨릭대학 교수, <[미기재], 1986, 부산대, 김기곤.>
1956 오희천(吳凞天, 1956-) 서울 신학대학 교수 <M. Heidegger: Ontologische Differenz und der Anfang des Wissens, 2001, Univ. zu Koeln, Lothar Eley.> “‘아낙시만드로스의 금언’에 나타난 하이데거의 존재이해(Heideggers Seinsverständnis in seiner Abhandlung der Spruch des Anaximander), 2011”
1956 이수정(李洙正, 1956-) 건국대 학사, 동경대학 석사박사, 창원대 교수, <ハイデガーにおける「存在」と「時間」, 1990, 東京大學, 渡邊二郞.>. “하이데거의 ‘발현’(Ereignis)론: 『철학에의 기여』를 중심으로, 2009”
1958 최상욱(1958-) 강남대 교수, <비공개>. 「Ereignis의 존재사적 의미」(2011)
[1958 노희직(1958-) 외대 독문학과 강사, 독일 시 전공 <Expressionismus als Durchbruch zur aesthetischen Moderne. Dichtung und Wirklichkeit in der expressionistischen Grossstadtlyrik Georg Heyms und Georg Trakls(미적 근대로의 발현으로서의 표현주의. 게오르크 하임과 게오르크 트라클의 대도시에서의 시와 현실), 2001, Eberhard - Karls - Univ. Tuebingen. Juergen Schroeder.> “하이데거의 횔덜린 해석, 2005, 외국문학연구 제19호.>]
1960 박찬국(朴贊國, 1960-) 서울대 교수. <Die seinsgeschichtliche Ubersindung des Nihilismus im Denken Heideggers, 1993, Bayerische - Julius - Maximilian Univ. Wuerzburg Heinrich Rombach>. 하이데거의 철학사적 위치와 의의에 대한 고찰, 2008
1960 신상희(申尙憙, 1960-) 건국대 학사, 독일 박사. 하이데거 전공 <Wahrheitsfrage und Kehre bei M.Heidegger(하이데거의 진리물음과 전회) 1992, Albert - Ludwigs Univ. Freiburg, 프리드리히폰헤르만.>
1960 황경선(1960-) 한국외국어대 강사, 하이데거 존재론 전공 <비공개> 「존재 맞이: 기억과 감사」(2013, Das Denken des Seins Von Heidegger -Gedächtnis und Dank-)
1961 정은해(鄭恩海, 1961-) 성대학사, 서울대석사, <Die Geschichtlichkeit des Menschen und die Geschichte des Seins(인간의 역사성과 존재의 역사), 1997, Ludwigs Univ. Freiburg, 폰헤르만.>
[1961 신선경(申宣京, 1961), 서울대학석박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 <'있다'의 어휘 의미와 통사구조 연구, 1998, 서울대, 고영근.>]
1964 서동은(1964-) 경희대교수, “M. 하이데거의 있음(존재) 이해: <형이상학 입문>을 중심으로”,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50호, 2010, 185-212 (28 pages): “und”를 다룬다. / 서동은 “존재 이해의 비교 연구 -하이데거와 신선경의 “있다” 분류 비교의 관점에서-, 현대유럽철학연구, 2010, vol., no.22, pp. 169-200 (32 pages): 형이상학 입문에서 “Sein”과 우리말 “있다” 사이의 비교 연구이다.
1966 이서규(1966-) 제주대 교수, <Existenz und Ereignis. Eine Untersuchung zur Entwicklung der Philosophie Heideggers(하이데거의 실존과 생기사상), 1999, Bayerische - Julius - Maximilian Univ. Wuerzburg, K.-H. Lembeck.>
1966 홍순희(洪順姬, 1966-) 계명대 교수, <김수영 시에 나타난 하이데거의 `시적 진리`에 관한 연구, 2015, 서울대, 임홍배.> “하이데거의 횔덜린 시 분석에 나타난 시적 진리로서의 ‘신’-존재(Das ‘Gott’-Sein als dichterische Wahrheit in der Auslegung der Hölderlins Gedichte von Heidegger), 2015”
1967 김종엽(金鍾燁, 1967-) 성균관대 학사, 보쿰대학 석박사, <『스패만, 하이데거에 있어서 인격의 존재론(Ontologie der Personalität bei Spaemann und Heidegger)』2009, W. Schweidler, 보쿰대학(Ruhr Universität Bochum)>
1967 배상식(裵相植, 1967-) 대구 교육대학교 윤리학 교수, <하이데거의 언어개념, 2001, 경북대, 신오현.>
1967 전경진(田璟鎭, 1967-) 전남대 강사 <니체 도덕철학의 자연주의적 해석, 2015, 전남대, 노양진>,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적 니체 해석 비판, 2018(A Critique of Heidegger’s Metaphysical Interpretation of Nietzsche)”[니체를 자연주의로 해석]
1970 박인정(1970-) 경상대, <하이데거의 불안 개념, 2019, 경상대, 신지영.>
1972 김상록(1972-) 충북대 교수, 서울대 학석, 프랑스박사. 레비나스와 하이데거, <Le mouvement ethique chez Levinas(레비나스에서의 윤리적 운동), Rennes 1대학, 2010, Alain Juranville.>
1975 조홍준(趙洪浚, 1975-) 동아대 교수. <Zwiespalt der zeit und Zweiheit der Zeitlichkeit: Betrachtung von Aristoteles' und Heideggers Beantwortungen der Frage nach dem Sein der Zeit(시간의 분열과 시간성의 이원: 시간 존재 물음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하이데거의 응답에 대한 고찰), 2017, Albert-Ludwigs Freiburg Univ. Wilhelm Metz.>
1976 박현정(朴賢貞, 1976-) 서울대 강사 <하이데거 존재 사유에서 유한성의 문제, 2012, 서울대, 박찬국.>
1979 한충수(韓忠洙, 1979-) 이화여대 교수. <Erfahrung und Atmung bei Heidegger, 2015, Albert-Ludwigs Univ. Freiburg, Hans-Helmuth Gander.> 「하이데거의 모방미학(Heidegger's Aesthetics of Mimesi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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