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요 강의를 마치면서...
내가 처음 선요를 보게 된 것은 19세 때였다.
강원에서 선요를 배우게 되었으나 그때는 강원에서 경 공부 중이었으므로
선원에 들어가서 불철주야 정진해야하겠다는 절절한 가슴으로 뜨거워지지 못 했던 것 같다.
다만 강원을 졸업하자마자 선원에 들어가서 고봉화상처럼 한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해인사 선원에 들어갔었다. 그 후 묘관음사 선원 동화사 선원 등을 전전하였다.
그리고 외국 등 대중포교에 열의를 갖고 시중교당에 나섰으나 그것도 신통치 않았는데
모두가 자신의 덕과 능력 부족이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한 10여 년 전 어느 날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아주 옛날에 찍어낸
활자본 선요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을 손에 쥐고 절에 돌아와 밤새 읽었다.
읽으면서 아참! 왜 내가 선요를 눈여겨보지 못했지 하고 스스로도 놀랐다.
고봉화상의 간절한 가르침이 그저 가슴에 와 닿을 뿐만 아니라
바로 이거다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이것을 후학들이 참되게 배워야 한다. 어떻게 하면 후학들이 선요에 눈을 다시 돌리고
중요성을 깨닫고 모두가 부처님처럼 깨달음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금부터 4년 전에 세존사를 설립하고 참선방에서 여러 거사님들과 함께 참선 하던 중
선요를 가르쳐야할 필요가 생겨서 선요를 1주일에 한번 씩 목요일 밤마다 강의하게 되었다.
대불대학 에서도 강의를 하였고, 그리고 인터넷에서도 강의를 하였고
이곳 참선도량인 대각사에서도 강의를 한번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선요를 네 번째 강의를 한 셈이다.
그래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고봉화상의 높은 안목을 내가 제대로 전달하였는지
늘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보다는 아무런 장애 없이 강의를 마쳤다는 것이
불보살님의 가피로 생각한다. 내 강의나 또 고봉 화상님의 가르침도 “깨달음”의 길을 가는
길목에 하나의 이정표 역할일 뿐 어떤 것도 없다. 공덕이라는 것도 금강경의 부처님 말씀을 빌리면
공덕이 될 것도 없? 원래 모든 사람 사람마다 공덕을 갖추고 있고 다 본래면목이 밝아 있는데
따로 가르침을 준다거나 길을 안내한다는 것도 사실은 도(道)에 있어서는 맞지 않는다.
나도 없고[無我] 너도 없는데[無法] 어디서 가르치고 배우고 할 것인가.
그러나 “길” 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면
다행 이라고 생각한다.
천년 가까이 지난 후 우리 후학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여준 고봉 화상께 분향하옵고,
법문을 낱낱이 적어 두었다가 유포에 큰 힘을 쓰신 시자(侍者) 지정(持正)과 거사(居士)
홍교조(洪喬祖)와 영중상인(永中上人)과 禪要를 편찬하는데 도움을 준
당시의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대각사에서는 더 많은 선지식을
만날 수 있는 기회와우리 불자님들 스스로가 여러 선지식들과 함께 더욱 진지하게
인생사를 논할 수 있는 그런 대각도량으로 만들어갈 것을 다짐하면서 선요 강의를 마칩니다.
대각사 선불교대학 2기에 오셔서 각화사 주시 혜담스님의 금강경 강의와
선요를 들어주신 여러 불자님들께 감사드리며 대각사 선불교대학 3기에서는
벽암록을 통해서 불과환오선사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고자하오니 꼭! 단짝 하나씩 잡고 오셔서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장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