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1장
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례
(찬송 46장, 구찬송가 58장)
2020-2-12, 수
맥락과 의미
레위기 전체를 보면 1-10장까지는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에 대해서 11-15장은 정결하게 사는 삶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정결하고 정결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16장에서는 대속죄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제 17장부터 마지막 27장까지는 거룩한 삶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17장은 음식에서의 거룩을 말했고 21, 22장도 음식에서의 거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 20장은 음행하지 말고 우상숭배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바로 섬기고 음행하지 말고 가정을 바로 세우라고 했습니다. 가운데 19장은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고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말했습니다. 오늘 21장은 제사장과 대제사장들이 시체로 자신을 더럽히는 것, 결혼 대상자, 신체적 장애와 음식 등에 대해 다룹니다. 21장을 자세히 보면 앞쪽 부분에서 9절까지 보통 제사장에 대해서 말합니다. 10절부터 15절까지는 대제사장에 대해서 말하고 16절부터 끝 24절까지는 다시 제사장에 대해서 말합니다.
1. 제사장의 금지사항(1-9절)
1) 제사장과 시체(1-6절)
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합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사람의 시체를 만져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합니다. 일반 사람들도 짐승의 시체에 접근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못하게 했습니다(레 11:24-40). 사람의 시체를 만지면 7일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면 정결하게 하는 특별한 물을 뿌리고 정결례를 해야 했습니다(민수기 19:11-22). 일반인들은 다른 사람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든지 할 때 사람의 시체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 3절을 보면 제사장은 자기 가족의 시체만을 만질 수 있습니다. 가족의 장례를 지내야 할 때 더럽힐 수 있지만 다른 사람 시체를 만져서 더럽히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체를 만지는 것 자체가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더럽다 하셔서 만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정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체를 만진 다는 것은 더럽다고 정해서 하나님 백성들이 생명 가운데 산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일반 사람보다 제사장이 시체를 만지는 것에 대해 더 엄격하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6절 뒤에 보면 여호와의 화제, 즉 하나님께 제사를 바쳐드리는 자이기 때문에 거룩해야 하고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합니다.
4, 5절에는 가족의 죽음 때문에 머리를 깎아 대머리를 하지 말고 수염을 깎지 말고 살을 베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하던 방식입니다. 제사장들은 자기 가족을 잃어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2) 제사장 집안의 여인(7-9절)
7절, 또 제사장은 결혼할 때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 바쳐진 거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7, 8절에서 모든 사람이 거룩하게 살아야 하지만 제사장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따로 구별된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보통 사람도 거룩해야 하지만 제사장은 더 거룩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9절, 제사장의 딸이 음행을 하면 불살라 죽입니다. 보통 이스라엘 여자들이 음행하면 어떻게 죽입니까? 돌로 때려 죽입니다. 그렇지만 제사장의 딸 같은 경우 불로 태워서 더 심한 저주를 내립니다. 돌 맞아 죽으면 아프긴 하지만 시체는 그대로 남습니다. 그렇지만 불 태워 죽이면 더 흉하고 시체가 심하게 훼손됩니다.
2. 대제사장의 금지사항(10-15절)
1) 모든 시체에 접근 금지(10-12절)
10절부터는 대제사장에 대해서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가족 중에 누가 죽었을 때도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됩니다. 머리도 풀지 말고 옷도 찢지 말라고 합니다. 머리를 풀고 옷을 찢는 일은 보통 사람들이 죽었을 때 하는 행동입니다. 가족을 위해서도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12절 가족이 죽어 장례가 있어도 하나님을 지키는 성소에 계속해서 있으라고 합니다. 그대로 나오면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힙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특별히 구별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2) 대제사장의 결혼대상(13-15절)
대제사장은 결혼할 때 처녀와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이혼한 여자와 더러운 여자, 기생을 아내로 삼지 말라고 했습니다. 15절, 자손으로 백성중에 더럽히지 말라고 합니다. 이혼한 여자나 기생이었던 사람과 함께 결혼하면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신이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3. 제사장과 신체적인 흠(16-24절)
1) 신체의 흠이 있는 자의 집례 금지(16-21절)
다시 16절에서는 일반 제사장을 위한 규례를 말합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성막에서 제사장 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원래 제물을 바칠 때도 하나님께 바칠 때는 흠이 없는 짐승을 바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사장도 몸에 흠이 없어야 합니다. 장애는 죄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죄가 아닙니다. 죄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성막(성전)에서 섬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바쳐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의 가문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장애인들은 성전에서 제사드리고 나온 음식은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성전에서 제사 드린 그 음식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2) 흠있는 자도 집에서 제물을 먹음(22-24절)
22-23절을 보면 제사장 가문 사람 중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식의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라 합니다. 제사장 가족은 제물이나 십일조 사람들이 바치는 속전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제사장 가족이 제단에나 성막 안에 들어가는 것은 금합니다. 그러면 성소를 더럽힌다고 합니다. 그들이 더러운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더럽다고 정하셔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을 맡은 자들, 성직자들은 더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4. 제사장과 그리스도
1) 구약 제사장의 온전함과 제사와 하나님의 온전함
구약 제사장들은 시체를 통한 부정함, 결혼, 몸에서 흠이 없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온전한 인간, 이상적인 인간을 상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장애가 있다고 인격적으로 가치가 적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때에는 제물도 온전하고, 제사장도 온전하고, 또 성막의 제도로 온전히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도들이 온전히 자신을 바치도록 가르쳤습니다. 제사장은 또한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야 했습니다.
2) 온전하신 그리스도, 우리를 온전케 하심
그러나 구약 제사장들은 실제적으로는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각자 장차 오실 이상적이며 완전한 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나타내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실제로 흠이 없으시며 불완전함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행하시는 흠이 없는 대제사장이셨습니다. 완전한 그 분 자신을 제물도 바치는 대제사장이 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그 분은 자신의 몸과 피를 통해 거룩하게 만드신 성도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습니다”(히브리서 10:14).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믿은 우리들은 “에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베드로전서 2:5)이 되었고 되어 가야 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하게 되어 가야 합니다. 우리가 흠없는 온전한 제사장이 되어가도록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십니다.
신체에 장애가 있거나, 남들에 비해서 세상적 관점으로 부족한 것이 있어도 염려하지 맙시다.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연약함 그것으로 우리는 더욱더 우리를 온전하게 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합시다. 그 어떤 인간일지라도 자신이 가진 것이나 자기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사람으로 온전히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과 고통을 사용하시고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머뭅니다.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9-10)
외부적인 부족함, 어려움이 있을 수록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2). 그 분은 “아들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서 5:8,9).
고난을 통해 순종하면서 우리도 되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된 우리 모두는 항상 하나님께 거룩한 사람,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온전하게 되어 갑시다. 우리는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흠 없는 제물로 삽시다. 우리의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서 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