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 미국에 사는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시봉 콘서트를 보며 울고 웃으며 느낀 감동을 전해왔다. 평소 TV를 안보니 당연히 못 봤지만, 언니가 강하게 느낀 노스탤지어 곁들인 감동이 마음에 와 닿았다. 영화광 이전에 음악광인 내게 한국이 낳은 천재 뮤지션은 신중현과 송창식이다. 그러니 의무감처럼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지난 추석에 방영되었던 세시봉 토크쇼를 보았다.
화제가 된 세시봉 콘서트
40여년 지기만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통기타를 뜯으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하모니는 혀를 차게 만든다. 개량 한복 차림의 송창식이 여전히 우수담긴 환상적 미성으로 들려주는 과거의 노래들, 번안 포크송으로부터 전통 가락에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낸 곡들, <한번쯤>, <맨처음 고백>, 그리고 <담배가게 아가씨> …. 성형하고 춤을 가르쳐 만들어낸 돈벌이용 기획가수를 아이돌스타라고 떠받드는 대중음악 상업화 시대, 그야말로 음악의 본질을 죽여 버린 이 시대에 노래인생에 자신을 바치며 밥만 먹여주면 노래하던 이들을 집단으로 만나는 것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이었다.
30여년 우정을 나눠온 선배언니와 콘서트를 뒤늦게 따라 잡으며 보노라니, 많은 이들이 느낀 감동의 핵심은 오래된 음악 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와인 맛의 정수가 세월이 발효시킨 그윽함에서 나오기에 ‘오래된 우정이란 오래된 와인과 같다’라고 표현한 것이리라. 세시봉 콘서트를 보며 우리도 저렇게 늙자, 라고 친구들과 다짐한 것은 새해의 축원이었다. 새로운 것에 도취하여 젊음 중독증에 걸린 한국사회에 ‘올디스 밧 구디스 (Oldis but Goodis)’, 오래된 것이지만 좋은 것이라는 가치를 일깨어 준 사건이다.
세시봉 친구들이 서로 험담을 하더라도 신뢰와 사랑이 배어나오는 유머로 작동하는 것도 40여년 우정의 힘 덕분이다. 그 사람 자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열창한 <렛잇비미 Let it be me> 그 자체이다. 여자들 중엔 결혼 후 친구를 잃기도 한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자 역시 우정의 힘으로 산다. 우정의 진실을 노래 속에 보여준 <맘마미야>가 뮤지컬로 또 영화로 대성공을 거둔 이유가 그 증명이다. 그런 면에서 세시봉 친구들은 ‘남성판 맘마미야’이기도 하다. 특히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삶을 고무시키는 음악을 매개로 유희하는 인간의 본질에 정초한 ‘호모루덴스 우정’이야말로 우리를 고단한 삶으로부터 구원한다.
음악을 매개로 삶을 구원하는 우정의 힘을 보여준 영화들이 떠오른다. <즐거운 인생>(이준익, 2007), <브라보 마이 라이프>(박영훈, 2007)에선 돈벌이와 가장 역할에 지쳐 떨어져 나간 중년 남자들이 우정의 힘에 기댄 밴드구성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제2의 인생을 정겹게 드러내준다.
우정, 그건 너무 좋은 거야!
오래된 친구는 삶의 보물이다. 그건 너무 좋은 거야, 라는 뜻의 불어 세시봉(C'est si bon!) 이다. 이브 몽땅이 부른 이 샹송은 “서로 팔을 낀 채 이 노래 저 노래를 부르며 아무데로나 떠나는 건 세시봉!”이라고 노래한다. 이 노래에 반한 루이 암스트롱이 미국에서 영어판 리메이크를 만들기도 한 전설적인 곡이다. 아마도 이 샹송을 좋아하는 분이 고달픈 전후 음악다방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리라. 그리고 40여년이 흐른 후 세시봉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샹송 제목이 아니라 음악 우정의 상징어로 작동하기에 이르렀다. 당신의 우정에 우리의 우정에 ‘세시봉!’이란 축하인사를 보내드린다.
팁: 아쉬운 점은 이들과 우정을 쌓아온 이들, 그중에서도 군사독재시절 억압과 얼토당토 않은 금지곡을 당했던 음악 시인 김민기의 부재이다. 표현의 자유 문제가 이야기거리가 되지 못한 것, 그것 또한 이 시대를 보여주는 것일까?
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 저서 :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