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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2장
물질에 대한 가르침
잠언 제3부: 부에 대한 10계명 (찬송 3장)
2020-9-10, 목
맥락과 의미
22장은 먼저 부유함과 윤리에 대한 여러 말씀을 전해줍니다(1-16절).
22:17-24:22는 잠언의 제3부입니다. 30개의 교훈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제2부(10장-22:16)는 한 절을 대구로 표현했습니다. 22:17부터 잠언의 제3부가 시작됩니다. 제3부는 제1부(1-9장)과 형식이 비슷합니다. 2-3개 절이 한 주제를 이룹니다.
1. 여호와께서 부에 대한 주권을 가지심(1-9절)
1) 여호와께서 부에 대한 주권을 가짐(1-9절)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은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의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명예와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는 것이 물질보다 더 귀합니다.
“택한다”는 21:3에서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신다”와 같은 말입니다. 더 좋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형식적 제사보다 공의를 하나님께서는 선택할 만한 일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명예와 인정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2) 여호와께서 부에 대한 주권을 가지심과 인간의 책임(2-4절)
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가난한 자, 부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지으신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가난한 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은 그들을 만든 분을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17:15).
가난한 사람도 부자를 무시하거나, 시기하거나, 반역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잠언 3:31).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위험을 보면 피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여기서 재앙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악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악한 일을 피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복수입니다. 그들은 함께 무리를 지어 있으면서 악행을 합니다. 그들은 잠언의 교훈을 듣는 이 아들에게 “우리가 숨어서 사람의 피를 흘리자. 그리고 재산을 빼앗자”라고 유혹하는 무리입니다(1:10-18). 어리석은 자는 그런 무리들과 어울리며 악을 행합니다. “해를 받는다”는 여기서는 벌금을 낸다는 뜻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물질을 모으려는 자들은 오히려 재산의 손해를 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여호와를 놀랍고 은혜로운 분으로 아는 성도는 여호와를 경외합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감을 알기 때문에 겸손합니다. 낮아지는 사람에게 재물, 영광, 생명을 주십니다.
3) 청년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침(5-6절)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5-6절은 부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도덕적으로 마음이 굽은 자는 가시와 올무가 있는 위험한 길을 갑니다. 성, 돈, 명예 등의 함정에 걸리는 길로 갑니다. 도덕적 파탄은 그 자체가 영혼의 죽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을 바로 지키는 사람은 그런 길로 가지 않습니다.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앞에서는 자녀와 성도에게 말했습니다. 이 구절을 가르치는 자에게 말합니다.
4) 주님께서 부자를 징벌하고 후히 주는 자를 상 주심(7-9절)
7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아마도 어떤 부자는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준 듯합니다. 빚을 값지 못하니까 그를 종으로 삼은 듯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에는 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는 것을 금했습니다(출애굽기 22:25). 그러나 그렇게 행하는 자가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심은 대로 거둡니다. 악행을 하는 자는 재앙을 거둡니다. 혹은 아무것도 거두지 못합니다. 약한 자를 억압하며 많이 거두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거두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약한 자에게 하는 분노의 기세를 하나님께서 좌절되게 하실 것입니다. “분노”는 21:24에서 “넘치는”이라고 나옵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8절에 나오는 악한 자와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는 가난한 사람이 필요한 것을 함께 나눕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받을 그 복을 주십니다. 자손, 물질,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복을 주십니다.
이렇게 나누는 사람은 많은 경우에 자기가 가진 것이 쓰고 남아서가 아닙니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처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린도후서 8:2). 그런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축복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19)
2. 부와 윤리에 대한 가르침(10-16절)
1) 왕의 친구(10-11절)
10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다툼, 싸움, 사람을 모욕하고 상처를 주는 일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만한 자”(=지혜와 의로운 삶을 조롱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들을 정당하게 벌해야 합니다. 계속 듣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권징이 있습니다. 가장 큰 권징은 교회로부터 쫓아 내는 출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엄하게 권징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툼의 원인이 되는 사람을 잘 분별하여 지혜롭게 가르치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잘 다스리면 타락이전의 에덴 동산의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거만하고 지혜를 모욕하는 자와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의 정결함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은혜를 끼치는 말이 나옵니다. 왕은 국가 공동체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 그런 사람을 가까이합니다. 쓰임을 받습니다.
성도도 전에는 다툼과 싸움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를 용서받고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정결한 마음과 덕을 끼치는 말을 하기를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를 세웁니다. 그렇게 해서 가정도 세워집니다. 교회에서 잘 배운 사람이 직장과 국가 공동체를 맑게 만듭니다.
2) 여호와는 진리를 붙드시고 악한 말들을 부숨(12-14절)
12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지식 있는 사람은 직역하면 “지식(혹은 진리)”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진리를 보존하십니다. 그래서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 진리를 간직하는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신실하지 않은 사악한 사람은 던져 버리십니다. 거짓을 던져 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진리의 복음 말씀을 보존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이 일을 하셨습니다. 바른 제사와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할 성전이 제사장들의 돈벌이 시장판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장사하는 자들의 탁자를 뒤엎으셨습니다. 진리를 가르쳤고,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진리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중세 교회의 어두움이 짙었을 때 종교개혁의 선배를 통해 다시 지식을 지켰습니다. 지금도 복음 진리가 빛을 잃은 것 같지만, 성령님께서는 계속 신실한 복음 전파자를 세우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을 보존하십니다.
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거짓된 말을 하는 두 경우를 13, 14절에서 말합니다. 일하기 싫으니까 있지도 사자의 위협이 있는 것처럼 말하며 핑계를 댑니다. 우리는 혹시 땀 흘려 일하기 싫으니까 괜히 두려운 생각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까? “일이 잘 안 될 것 같아.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불안과 두려움 밑에 게으름이라는 죄악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 지 돌아봅시다. 내 느낌을 가지고 핑계대지 맙시다. 감정이 어떻든지 내가 해야 할 직분을 순간순간 성실히 합시다.
14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하나님이 주신 참 지식을 해치는 또 다른 것이 쾌락의 유혹입니다. “몰래 먹는 떡이 맛있다”(잠언 9:17) 음녀가 하는 달콤한 말은 거짓입니다. 그 입의 말은 함정입니다. 그녀의 몸에 빠져 들게 하는 함정입니다. 그녀의 몸도 함정입니다. 그 곳은 즐겁게 죽어가는 무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분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런 음녀의 말과 몸에 빠지게 하십니다.
3) 도덕적 교훈과 부(15-16절)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은 청년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돈과 게으름(7-8, 13절)과 성(14절)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15절은 6절과 마찬가지로 청년에게 잘 가르치라고 합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악합니다. 자녀를 그냥 편하게 해 주면 편하게 악을 행하게 합니다. 죄를 향한 어리석음을 교정하기 위해 계속 가르쳐야 합니다. 책망도 필요합니다. “징계하는 채찍”은 비유입니다. 계속 매로 때리며 책망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징계”는 “훈계”라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말로 설득하고 또 따끔하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스며든 훈계가 죄인인 자녀를 변화시킵니다.
16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16절은 부자(1,2절), 가난한 자(9절)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1-16절에서 물질에 대한 교훈을 맺습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일이 있습니다. 또 돈이 필요하지도 않은 부자에게 돈을 주는 자는 뭔가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서 합니다. 둘 다 오히려 더 가난하여 질 것입니다. “더 부족해질 것입니다.”
16절은 잠언 제2부의 마지막입니다. 제1부의 시작에서 사회 정의(1:8-19)를 말한 것과 연결됩니다.
제3부의 서론(22:17-21에도 같은 주제가 이어집니다. “약한 자(가난한 자)를 약하다고(가난하다고) 탈취하지 말라”(22:22).
잠언 제 3부: 지혜자의 30개의 잠언(22:17-24:22)
잠언 3부는 이집트의 “아메네오페의 교훈”(주전 12-11세기)을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경의 한 부분으로 수정하여 만든 것입니다.
또 가르치는 스타일이 1-9장과 비슷합니다.
“하지 말라”로 시작합니다. 10계명이 “하지 말라”로 시작하는 것과 비합니다.지혜로운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지 말하야 할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하여야 할 지를 가르칩니다.
먼저 경제적 부에 대해 교훈합니다.
<A. 부에 대한 교훈(22:17-23:11)>
교훈 1. 배우고 가르침(17-21절)
17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버지의의 지혜와 지식 귀로는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8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직역: “왜냐하면,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것을 네 가슴에 간직하고 네 입술 위에 견고하게(준비되게 한다면” 지혜는 가슴에 간직할 때 참 아름답습니다. 지혜의 말을 계속 말하고 자기 개인의 것으로 할 때 아름답습니다.
19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네 신뢰함이 여호와께 있게 하도록, 내가 오늘 너에게 알게 한다, 정말 너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이유는 하나님이나 그 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으로 끝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매일 가르칩니다. 또 자녀는 매일 계속 배워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어릴 때뿐 아닙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부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20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21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모략”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전략, 조언”을 말합니다. 지식은 지혜를 말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30”이라는 뜻도 됩니다. 잠언의 제3부에 30개의 가르침들을 아버지는 기록해 두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는 집에서 아들에게 30개의 교훈들을 가르칩니다. 앞으로 아버지가 이 아들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아버지에게 배운 그 진리의 말씀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르칩니다.
교훈 2. 가난한 자를 탈취하지 말라.
앞으로 나올 4개의 교훈은 불의로 재물을 모으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22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가난한 자에게는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가난하기에 약하므로 그로부터 빼앗으면 안 됩니다. “곤고한 자”는 “낮은 자, 가난한 자, 고난 받는 자”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들을 성문에서 재판할 때 부수듯이 압제하지 말라야 합니다.
23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의 소송건에서 소송자의 입장에 서시고, 그들을 약탈하는 자의 생명을 약탈하시리라” 악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교훈 3: 분노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
24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분노를 품는 자”는 “분노의 주인이 된 자”입니다. 분노를 마음에 품고 있는 자의 친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미친듯이 화내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아야 합니다.
25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그의 길을 배우고 네 영혼을 올무에 두도록 배우게 하지 않도록”
그런 사람의 집에 들어가 함께 있으면 그들의 분노에 감염됩니다. 그 죄에 감염되어 불행을 초라합니다.
교훈 4: 빛 보증을 서지 말라
26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는 것”은 보증서는 것을 말합니다. 보증을 서지 말라야 합니다.
27 만일 갚을 것이 네게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
보증을 서 준 사람은 대신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 때문에 집까지 빼앗길 위험이 있습니다.
교훈 5: 가문의 땅을 지켜라
28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교훈을 한 줄로만 말합니다. 흐름이 끊김을 표시합니다. 다시 22-23절의 재산의 문제로 돌아 갑니다. 가문의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돌을 세워 두었습니다. 그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선조가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가문의 소유입니다.
구약 백성에게 선조에게 주신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옮기는 일은 그 땅의 소유자도 하지 말아야 할 일뿐 아니라, 남의 땅을 뺏아서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야 합니다. 아합 왕이 나봇에게 조상이 물려준 땅을 팔라고 했습니다. 나봇은 거절했습니다. 아합 왕은 그를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빼앗은 아합 왕은 얼마 후 하나님의 심판을 바당 죽습니다.
교훈 6: 실력있는 자는 중요한 일에 쓰임받는다.
29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실력있는 사람은 왕이 하는 중요한 일에 참여합니다. 전쟁이나 여러가지 일에 참여합니다. 어떤 일을 다 한 다음에 보상을 받기 위해 서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직분을 다하기 위해 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대로 힘껏 일하는 자는 주님께서 주요한 일에 쓰십니다.
믿고 복종할
오늘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지키도록 지혜의 말씀을 주십니다.
1. 우리는 이 말씀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죄책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다시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게 합니다. 죄용서의 기쁨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새롭게 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잠언 말씀은 삶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이 잠언의 말씀대로 살아갑시다.
2. 특별히 가난한 사람을 존중합시다. 가난한 자와 부자를 다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2절). 그들을 약하다고 탈취하지 맙시다. 존중합시다(22절).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보호자이십니다(23절). 물질뿐 아니라, 재능, 교육수준 등 여러 가지에서 부족한 사람을 존중합시다.
약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 은혜 감사하면서 더 약한 사람을 존중합시다. 약한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비를 베푸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0절, 쫓아내다, 쉬다, 그치다: 타락한 아담과 가인을 쫓아 내심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롱하는 자를 추방하면 다툼이 나가고, 싸움과 모욕이 그친다” 밑줄 친 세 단어는 창세기 2-4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으로부터 추방했습니다. 가인을 토지로부터 추방하셨습니다.
쫓아낸다(가라셔)=”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창세기 4:14),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내심(창세기 3:24).
쉰다(야차아, 나간다)=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남(창세기 4:16).
그친다(샤바트)= (모든 일을) 그치시고 쉬심, 마치시고 쉬심(창세기 2:2.3)
타락한 아담을 추방한 후에 에덴에는 싸움과 수욕이 그치고 평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살인자 카인을 토지로부터 추방한 후에 그 곳에는 싸움과 수치가 그치고 평화를 회복했을 것입니다.
<참고> 패역(5절), 학대(16절)
패역(아카셔)과 16절의 학대(오세크)는 자음이 같은데, 다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자음의 순서만 다릅니다. 마음이 패역한 자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과 관계됨을 암시합니다.
<참고> 8절, 분노
8절의 “분노(아브라)”와 같은 단어는 21:24에서 “넘치는”이라고 나옵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참고> 이집트와 아람의 세속 나라의 지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환
성경의 한 부분인 잠언은 고대의 다른 나라의 지혜의 말들과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잠언 제 3부(22:17-24:22)는 다른 나라의 지혜 모음짐을 잘 수용하여 적용했습니다.
잠언 3부 30개의 잠언입니다.
1) 앞부분 (22:16-23:11): 잠언이 쓰여 질 때 보다 최소한 100년 전에 만들어 진 이집트의 “아메네오페의 교훈”(주전 1186-1069)을 창조적으로 수용한 내용입니다.
23:12는 “훈계에 착심하여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표시합니다.
2) 뒷부분(23:12-24:22): 아람과 아카디아의 지혜에 관한 내용들을 수용한 것입니다.
뒷 부분 중에서 술취함을 경계한 내용(23:29-35)는 이집트에 전래하던 지혜입니다. ‘아메네모페의 교훈’ 다른 이집트의 지혜를 수용했습니다.
성경은 우상 숭배하는 나라의 문화에 있는 좋은 것을 정결하게 하여 사용
성경이 다른 나라의 지혜의 책에 있는 내용을 사용했기 때문에 성경은 인간의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오면서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금은과 보석들을 받아서 나온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출애굽기 12:35-36). 그런 것들을 모아서 성막을 만드는 데 사용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도 두로의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그 곳의 백향목을 사 왔습니다. 그 나무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집트의 금은 보물, 레바논의 나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에 더럽혀 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잘못 사용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집트와 아람, 아카디아의 지혜는 조금 복잡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문화의 한 부분이고, 그들은 우상을 숭배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상을 숭배한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바른 지혜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지혜의 목적이 인간을 높이고 또 우상 숭배를 향해 잘못 사용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죄악된 그들 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선한 것을 남겨 두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사용하게 하십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 오나니”(야고보서 1:17). 불신자에게 주신 그 창조적 지혜도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세상의 지혜와 학문을 그대로 다 사용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세상의 지혜에 있는 독소를 빼내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상 숭배, 인간을 높이는 것, 하나님의 뜻과 배치된 것, 그런 것들을 분별하여 골라 내야 합니다.
불신자들의 문화에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섞여 있습니다. 마치 용광로에 금광석을 제련하듯이 성령님의 지혜로 단련하여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정제해 냅니다.
이렇게 세상의 지혜와 지식을 교회가 사용하는 것은 선교를 위해 좋은 일입니다. 세상의 용어를 하나님의 진리를 담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그들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문화와 사상을 성경의 한 부분으로 정화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땅이라는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문화와 사상 등 정신적인 일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권에 참여하는 정복자입니다.
우리도 불신자 선생님과 교수님, 직장상관으로부터 배웁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무조건 다 배우고 그대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교회에서 배운 말씀을 세상 속에서 불신자가 이해하지 쉬운 말로 말하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사명을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