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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새계경 제6권
23. 시라바라밀품(尸羅婆羅密品)
선생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보리심을 얻고자 하는 보살이 그의 마음을 어떻게 견고하게 하나이까?”
“보살은 네 가지 법을 갖춤으로써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하니,
첫 번째는 큰 괴로움을 받을 때, 법에 합치하는 실천을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며,
두 번째로는 대자재를 얻고 항상 인욕을 닦으며,
세 번째로는 비록 가난하고 궁핍하더라도 항상 즐겁게 보시하며,
네 번째로는 인생의 황금기에 기꺼이 출가하는 것이니라.
만약 보살이 이 네 가지 법을 온전하게 갖추면, 보리로 나아가며 그 마음이 견고해 지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네 가지 법을 갖추고 나서 다시 생각하기를,
이 깨달음의 최초의 근본적인 토대가 되는 것이 계율임을 알고,
이와 같이 계율은 또한 최초의 토대이며 또한 인도하는 토대라고 하고,
또한 평평한 토대라고 하며 또한 평등한 토대라고 하며,
또한 자애로움의 토대라고 하며 같이 슬퍼하는 것의 토대라고 하며,
또한 붓다의 자취라고 하고, 모든 공덕의 근본이라고 하고, 또한 복전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수지한 계율을 위반하지 않으며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계율에는 두 가지 과보가 있으니,
첫 번째는 모든 천상의 즐거움이요,
두 번째는 깨달음의 즐거움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깨달음의 즐거움을 구하고 천상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다.
만약 계를 받고 나서 마땅히 짓지 않을 것을 짐짓 짓거나, 마땅히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을 짐짓 생각하며, 해태하고 나태하여 수면을 좋아하며, 나쁜 생각과 잘못된 생계수단, 악한 바람을 생각하면 이는 계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계를 받고 나서 마음으로 후회하고 한스러워하며,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을 구하며, 모든 것에 방일(放逸)하고 가엷어 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는 계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가난하고 궁핍한 것을 꺼려하거나,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재산을 잃거나 잡일을 하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혹은 몸과 목숨을 위하거나, 혹은 이익과 봉양받기 위하여 혹은 애욕의 마음을 위하여서 금계를 받고, 이미 계를 받고 나서 의혹하는 마음을 낸다면 이는 계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생사계에 오래 처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깊이 허물을 보며,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과 아비지옥의 괴로움을 평등하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고, 중생을 연민하며, 정념(正念)을 갖추고, 무량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자 도를 이루어서, 위없는 보리를 갖추게 하기 위하여, 법답게 행하기 위하여 이 계를 받아서 지키고, 마음에 방일하지 않느니라.
능히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몸ㆍ입ㆍ뜻의 업을 관찰하여 가볍고 무거운 것을 알며, 대체로 행하는 일에 먼저 마땅히 마음을 두어 방일하지 않으며, 짓고 났거나 지을 때도 역시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느니라.
만약 먼저 모르고 한 것도 죄가 되고 실념(失念)한 마음도 죄가 되며 객번뇌(客煩惱)가 때로 잠깐 일어나도 범죄가 되고, 조금만 방일해도 죄가 되는지라, 이 사람이 항상 범한 것이 가벼워도 중한 것 같이 관찰하고, 관찰하고 나서 뉘우침과 부끄러운 마음을 내며, 무서워하고 근심하는 마음으로 즐거워하지 않고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며, 참회하고 나서 마음에 환희를 내면서 삼가 지키어서 다시는 감히 범하지 않는다면 이는 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지혜가 있는 사람은 계를 받고나면 마땅히 세 가지 일을 관찰하고 악한 짓을 하지 않나니,
첫 번째는 자신을 위한 것이요,
두 번째는 세상을 위한 것이며,
세 번째는 법을 위한 것이니라.
자신을 위한 것은 어떠한 것인가?
내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은 악한 일이다, 악한 업을 지으면 이와 같은 과보를 얻는다는 것을 알고, 선한 업을 지으면 이와 같은 과보를 얻는다는 것을 아느니라.
악업을 지으면 이 악업이 그냥 사라지지 않아 결정코 다시 모든 나쁜 과보를 얻으며, 선업을 지으면 이 또한 그냥 사라지지 않아, 결정코 다시 모든 좋은 과보를 얻는 것이니라.
만약 이 두 업에 허망함 없을진대 내가 이제 어떻게 스스로 속이랴? 그러므로 내가 계를 받고 나서는 마땅히 위반하지 지극한 마음으로 이를 지키리라고 하는 것이니, 이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세상을 위하는 것인가?
지혜가 있는 사람은 세간의 사람을 관찰하여 보되, 어떤 이는 청정한 천이(天耳)와 천안(天眼)과 타심지(他心智)를 얻었으니 내가 만약 악을 지으면 이 사람이 반드시 보고 들어서 나를 알 것이며, 만약 보고 들어서 나를 안다면 어떻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악을 짓겠는가?
또 보니 모든 하늘이 한량없는 복덕과 신족(神足)ㆍ천이ㆍ천안과 타심지를 갖추었으니, 멀리서도 능히 보고 들으며, 비록 사람에게 가까이 하여도 사람이 능히 보지 못하니 만약 내가 악을 지으면 이러한 천신들이 응당 보고 들어서 알 것이라,
만약 이 하늘들이 분명히 나를 본다면, 내가 어떻게 부끄러움을 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으랴, 하나니, 이것이 세상을 위한 것이니라.
어떠한 것이 법을 위하는 것인가?
지혜가 있는 사람은 여래의 법을 관하되, 청정하여 물들음이 없어서 현재의 이익을 얻고, 능히 고요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게 하며, 능히 해탈하게 하되 시간을 가리지 않나니, 내가 이 법을 위하기 때문에 계를 받아서 지키는 것이다.
내가 만약 능히 먼저 소소한 계율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능히 중대한 계율들을 받으랴?
소소한 계율을 파하면 5유(有)의 괴로움이 더하고,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지키면 위없는 즐거움을 더한다.
내가 몸을 받고서도 해탈을 증득하지 못한 까닭은 실로 과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따라서 금계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계를 받으니 미래에 틀림없이 항하사와 같은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리라.
깊이 이렇게 관하고는 큰 연민을 내고 지극한 마음으로 계를 받으며, 받고 나서 굳게 지키나니,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한 것이며, 한량없는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혹 재가거나, 혹 출가거나, 삼귀의거나 8재거나, 5계거나, 구족한 것이거나, 구족한 것이 아니거나, 1일 1야거나, 일시 일념이거나, 목숨이 다하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지키면 이 사람은 큰 복덕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계를 받고 나서 3선업(善業)을 닦고, 많이 듣고, 보시하며, 정(定)을 닦고, 선(善)을 닦으면 삼보께 공양하면 이것이 곧 보리를 장엄하는 것이니라.
만약 계를 받고 나서 능히 여래의 12부경을 읽으면 이것이 위없는 큰 법의 창고이니라.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고 온전한 시라바라밀을 얻고자 하면,
이와 같은 계는 금세에 받고는 뒤에 비록 계를 받지 않더라도 무작계(無作戒)를 이루느니라.
선남자여, 계는 있어도 바라밀이 아니기도 하고,
바라밀은 있어도 계가 아니기도 하며,
계도 있고 바라밀도 있으며,
금계도 아니고 바라밀도 아닌 것이 있느니라.
계이면서 바라밀이 아닌 것은 이른바 성문ㆍ벽지불의 계이고,
바라밀이면서 계가 아닌 것은 이른바 단바라밀이며,
계이면서 바라밀인 것은 예전에 보살이 구타(瞿陀)의 몸을 받았을 때 모든 벌레와 짐승과 개미들에게 먹히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악한 마음을 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니라.
또 선인(仙人)이 중생을 위하여 정수리에 앉은 참새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12년 동안 움직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니라.
계도 아니고 바라밀도 아닌 것은 세속의 보시와 같은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물 때 받은 숱한 고통을 누가 능히 말하랴?
어떤 사람이 만약 소소한 계를 받고는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알더라도 능히 모든 괴로운 중생을 가엾어 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능히 시라바라밀을 갖추지 못하느니라.
만약 능히 인욕과 삼매와 지혜를 닦고 부지런히 정진하며 많이 듣기를 좋아하면 이 사람은 능히 시라바라밀을 더 키우고, 보리를 장엄하며, 보리과를 증득하나니, 이와 같은 계율은 한량없는 선(善)이기 때문에, 한량없는 과보이기 때문에, 한량없는 금계이기 때문에, 이 인연으로 보리를 장엄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미 계를 받고나면, 입으로 악을 말하지 않고, 귀로 그것을 잘 듣지 않으며, 세속에 대해 말하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또 그것을 듣기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끝까지 방심하지 않으며 나쁜 각관(覺觀)에 있지 않고, 나쁜 벗과 친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적정정계(寂靜淨戒)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만약 파계한 악인을 보면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갖가지 착하고 교묘한 방편을 베풀어서 이를 조복(調伏)할 것이며, 만약 조복되니 않으면 마땅히 연민함을 낼지니라.
몸과 목숨을 위하여 계를 파하거나 계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먹고 나면 먼저 참괴심과 방일하지 않는 마음을 닦고, 몸과 이 목숨을 다스리되 악창(惡瘡)을 고치듯 할지니라.
만약 촌락에 들어가면, 칼과 가시의 숲과 같이 여기고 모든 根을 잘 단속하며, 바른 생각을 닦고, 가히 행할 것과 행하지 않을 것을 관찰하여 방일하지 않을지니라.
만약 사람이 복을 짓는다 해도 역시 나로 인한 것이요, 만약 사람이 죄를 짓는다 해도 역시 나로 인한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큰 공양을 얻을 때 마땅히 기뻐하지도 않을 것이요, 쇠하고 괴로울 때 마땅히 성내지도 않을지니라.
적은 공양을 얻으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내가 이제 믿음과 계와 보시와 들음과 지혜에 법답게 머물지 못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족한 공양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마땅히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리라고 하라.
내가 두 가지 일을 위하여 남의 신시(信施)를 받는 것이니,
첫 번째는 타인의 복을 증장시키기 위함이요,
두 번째는 자신의 선(善)을 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작은 것과 나쁜 것을 얻더라도 마땅히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며, 오래 머물다가 늦게야 얻거나 가볍게 욕설을 먹고 나서야 얻게 되더라도, 그때 또 마땅히 제 몸을 자책하기를 이는 나의 묵은 업이요 중생의 허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마땅히 괴로워하지 않으리라. 라고 하라.
만약 계를 받고 나서 남을 위하여 죄를 지었더라도 또 마땅히 말하기를, 이렇게 하는 것은 실로 옳은 길이 아니다. 왜냐 하면 십이부경에, 모든 악이 보리의 길이 된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잡보(雜報)를 얻는다고 하라.
만약 능히 이와 같이 깊이 관찰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능히 시라바라밀을 갖추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능히 모든 근을 잘 단속하고, 몸에 사위의를 갖추어 모든 악을 짓지 않으며, 능히 모든 고통을 참고, 잘못된 직업을 갖지 않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능히 시라바라밀을 갖추느니라.
만약 경계(輕戒)나 중계(重戒)에 대하여 평등하게 두려움을 내어서 비록 악을 만날 때에도 작은 계도 범하지 않고, 번뇌로 하여금 그 마음을 더럽히지 않게 하며, 인욕을 닦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능히 시라바라밀을 갖추느니라.
만약 나쁜 벗을 여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멀리 사견을 여의게 하며,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게 하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능히 시라바라밀을 갖추느니라.
만약 착한 일을 하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제일을 폐하고 남의 일을 하며, 욕하고 꾸짖는 자를 보아도 악한 마음을 내지 않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능히 시라바라밀을 갖추느니라.
만약 여래가 여신 것을 보면 근본과 같이 지키고 재물을 목숨도 아끼지 않으며 내지 목숨이 다하도록 작은 계도 범하지 않느니라.
비록 미묘한 일곱 가지 진귀한 물건을 얻더라도 마음으로 탐내고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은혜 갚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연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금계를 받아 지니고는 선하고 큰 원을 발하여 모든 중생이 모두 청정한 계를 얻도록 원하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능히 시라바라밀을 갖추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재가보살이요,
두 번째는 출가보살인데,
출가보살은 시라바라밀을 갖추는 것이 어렵지 않으나,
재가보살이 갖추기는 어렵나니,
왜냐하면 재가보살은 많은 악한 인연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