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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7권[3]
[설봉 화상] 雪峰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에서 살았다. 휘는 의존義存이며, 천주泉州 남안현南安縣 사람이요, 성은 증曾씨이다.
선사는 태어날 적부터 훈식薰食을 피하였고, 놀아도 무리에 섞여 놀지 않았다. 돌[識環] 무렵에는 의젓하여 세속의 일반 아이와 달랐으며, 동년童年의 나이가 되자 어버이를 하직하고 포전현蒲田縣의 옥윤사玉潤寺에 가서 경현慶玄 율사에게 의탁하여 공부를 하였다.
무종武宗의 사태를 만나서는 변복을 하고 부용사芙蓉寺에서 머물렀는데, 전생의 인연이 있었던 듯이 원조圓照 대사가 위로하고 거두어 주었다.
대중大中이 즉위하자 불법이 다시 일어났다. 대중 4년 경오년에 유주幽州의 보찰사寶刹寺로 가서 구족계를 받고는 강원을 찾지 않고 종사만을 찾아 여러 회상을 두루 돌았다.
마침 무릉武陵에 가서 덕산을 보자 전생에 인연 있는 이를 만난 것 같아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예로부터 전하는 종승宗乘의 일에 학인의 몫도 있습니까?”
덕산이 일어나서 때리면서 말했다.
“무슨 말인가?”
선사가 이 말에 현오한 법을 활짝 깨닫고 말했다.
“학인이 잘못했습니다.”
이에 덕산이 말했다.
“자기 몸을 짊어지고 남에게 그 무게를 묻는구나.”
선사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물러났다.
이는 진경秦鏡 앞에 서면 눈으로 친히 자신을 볼 수 있어 자신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니, 무슨 말을 더 덧붙이랴?
이윽고 마니摩尼가 손바닥 위에서 나타나니, 푸른 바다를 더듬는 짓을 그만두었다.
몸은 시봉으로 고되나 마음은 한가롭게 몇 해를 지내다가 나중에는 다시 민閩으로 들어가 설봉에 머무르니, 무리가 천여 인이나 모였다.
선사는 마음이 호탕하면서도 엄격했고, 표정은 평온하나 위엄이 서려 있었다. 길을 나서면 사람들은 멀고 가까움을 불문하고 뒤따랐고, 앉으면 빽빽이 옹위하여 둘러쌌다.
어느 때 상당하여 말했다.
“그대들은 여기에 와서 무엇을 찾는가? 서로 괴롭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는 문득 일어나서 가 버렸다.
어느 때 상당해서는 대중이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도 말이 없다가 할을 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깨달음의 가장 좋은 요체이니, 내 입으로 중언하지 않게 하라.
이는 3세의 부처님들도 말하지 못했으며 12분교에도 실려 있지 않은 것이니, 오늘날 고인의 말만 음미하고 있는 자들이 어찌 알까?
내가 평소에 여러분에게 이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였으니, 앞으로 나와 대답을 해 보아라. 나귀의 해가 되어야 알겠는가?
부득이 하여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만 벌써 그대들을 속였느니라.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하나니, 문턱을 넘어서기 전에 벌써 그대들과 함께 헤아렸나니, 알겠는가? 이것도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힘을 덜 수 있는 곳에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그저 앞을 향해 발을 내딛어 말만 찾으려 하는구나.
그대들에게 온 천지가 온통 해탈의 문이라 했거늘 도무지 들어가려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어지러이 설치다가 사람을 만나면 문득 ‘어느 것이 나인가?’ 하고 묻는 것만 알아서야 되겠는가?
이는 다만 스스로 욕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물 마른 강가에서 목말라 죽은 이가 수두룩하고 밥 바구니 속에서 굶어 죽은 이가 항하의 모래 같다’ 했으니, 등한히 하지 말라.
스님들이여, 만약 진실로 깨닫지 못했다면 곧장 깨달아 들어야 하나니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또 방가傍家에서 구한 허황된 설을 취하지 말라. 깨닫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역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보리달마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니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하셨는데, 어떤 것이 그대들의 마음인가?
어지러움을 다스려 그치게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자기의 일이 밝지 못한 데다, 이 많은 망상들은 또한 어디서 왔을꼬?
그 속에 범부ㆍ성인ㆍ남자ㆍ여자ㆍ스님ㆍ속인ㆍ높음ㆍ낮음ㆍ훌륭함ㆍ열등함의 분별이 대지 위에 어지러이 깔린 모래와도 같도다.
잠시도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생사의 길을 헤매나니, 겁이 다하더라도 멈춤이 없겠구나. 부끄러운 일이니 무척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지극히 고요해서 의지할 곳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 또한 병이니라.”
“그런 뒤에는 어떠합니까?”
“나룻배는 양주로 내려가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에 갑자기 선사가 벌렁 누웠다가 한참 만에 다시 일어나서 말했다.
“무엇을 물었는가, 무엇을 물었는가?”
스님이 다시 물으니, 선사가 말했다.
“헛되이 태어났다 헛되이 죽는 놈이로구나.”
또 어떤 이가 물었다.
“화살이 과녁을 뚫을 때는 어떠합니까?”
“좋은 솜씨는 과녁을 적중시키지 않느니라.”
“온 눈에 기준을 전혀 두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나름의 좋은 솜씨를 놓치지 않는다.”
보복保福이 이 일을 들어서 장경에게 물었다.
“온 눈에 기준을 전혀 두지 않았는데, 어째서 완전히 능숙한 솜씨라 인정하지 않습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아직도 그러한가?”
보복保福이 다시 물었다.
“좋은 솜씨란 어떤 것입니까?”
“곧바로 말할 수 없느니라.”
보복이 말했다.
“화상께서 말을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절을 하여라.”
어떤 이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길에서 도 아는 이를 만나거든 말이나 침묵으로 대답하지 말라.’ 하였는데, 그럼 무엇으로 대꾸하여야 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차나 마시게.”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 수고우水牯牛는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말했다.
“77세니라.”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무엇 때문에 수고우가 되려 하십니까?”
“그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어떤 이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일을 알아야 말을 할 자격이 있다’ 했는데, 어떤 것이 이 말입니까?”
선사가 그를 움켜쥐고 물었다.
“무슨 말인가?”
이에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그를 밟았다.
그러자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대답하지 못한 것을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는 법을 위해서 사람을 아끼느니라.”
선사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 어떤 노숙老宿이 속가의 관원을 인솔하여 승당을 돌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에 있는 2백, 3백 명의 대중은 모두가 불법을 배우고 있는 승려들입니다.’
관원이 말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금 부스러기가 비록 귀하나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 하였으니 어찌하리오?’ 하니, 노숙이 대답하지 못했다.”
선사가 이 일을 들어 경청鏡淸에게 묻자,
경청이 대신 대답했다.
“‘요즈음은 벽돌을 던져서 옥을 얻습니다’ 했어야 합니다.”
선사가 장경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전삼삼前三三이요, 후삼삼後三三이다’ 한 뜻이 무엇인가?”
장경이 바로 나가 버렸다. 아호鵝湖가 말하였다.
“예!”
선사가 불자를 들어 어떤 스님에게 보이니, 그 스님이 나가 버렸다. 장경이 이 일을 천주의 태부太傅에게 이야기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스님을 다시 불러다 한 차례 몽둥이질을 했어야 한다.”
이에 태부가 말했다.
“화상은 그 무슨 심보이시오?”
이에 장경이 말했다.
“자칫했으면 놓칠 뻔했다.”
위산이 앙산에게 물었다.
“과거의 여러 성인들은 어디로 갔겠는가?”
앙산이 대답했다.
“혹은 천상에 있고, 혹은 인간에 있습니다.”
선사가 이 일을 들어 장경에게 물었다.
“앙산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인가?”
장경이 대답했다.
“성인들의 들고 나심을 묻는다면 그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
“그대는 전혀 긍정하지 않는구나. 갑자기 누군가가 그대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단지 그에게 ‘틀렸다’고만 하겠습니다.”
“노승이 틀렸다면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이에 장경이 대답했다.
“틀린 것에 무슨 다름[異]이 있겠습니까?”
선사가 편지를 띄울 때, 그 첫머리에 이런 게송을 썼다.
고생스런 세상에 마음을 잘못 써서
고개 숙이고 허리 굽혀 문장만 좇는다.
망정에 이끌림이 어느 세월에 끝나려나?
마음자리의 한 가닥 광채를 저버리누나.
어떤 속사俗士가 선사에게 와서 출가하기를 청하니, 선사가 게송으로 만류하였다.
만 리에 한 포기 풀도 없고
아득히 경치 끊어지네.
여러 겁에 항상 이러하거늘
무엇하러 번거롭게 다시 출가하려는가?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강서에서 옵니다.”
“여기서 강서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이에 선사가 주장자를 들어 세우고 말했다.
“이 정도 거리인가?”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긍정하였다.
선사가 또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강서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강서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선사가 주장자를 들어 세우고 물었다.
“요 정도 거리인가?”
“만약 이 정도 거리라면 먼 것입니다.”
이에 선사가 때렸다. 그 스님이 돌아가서 운거雲居에게 이야기하니, 운거가 말했다.
“세상 이치로도 되었고, 불법으로도 허물이 없다.”
그 스님이 다시 설봉으로 와서 선사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니, 선사가 말했다.
“망할 늙은이! 내 팔이 좀 길었더라면 스무 방망이를 갈겼을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하나 노승이 거기의 열 사람은 남겨 두리라.”
쌍봉雙峰이 선사를 하직할 때, 게송을 지어 선사에게 주었다.
잠시 설봉을 떠나 구름 따라 가려니
동구에는 관문도 없고 길도 평탄하네.
선사는 헤어짐을 근심하지 마오.
마치 가을밤에 달이 항상 밝은 것 같으리라.
이에 선사도 게송을 지어 화답했다.
스님만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구름 걸친 봉우리까지도 상관하지 않는구나.
허공에는 걸림이 없으니
마음껏 자유로이 종횡하여라.
신령한 광채는 물건 밖에 뛰어나니
그 어찌 가을달의 광명이 아니랴.
납자가 몸을 벗어나는 곳에
우레는 멈췄으나 소리는 멎지 않네.
선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의 너비가 한 길이면 옛 거울의 너비도 한 길이요, 세계의 너비가 한 자이면 옛 거울의 너비도 한 자니라.”
이에 어떤 학인이 화로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건 얼마나 넓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옛 거울의 너비와 꼭 같으니라.”
천룡天龍이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화로를 옛 거울에 견주어 그렇게 큰가, 아니면 옛 거울을 화로에 견주어 그렇게 큰가?”
이에 장경이 대신 말하였다.
“‘반드시 그렇게 가려야만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느니라.’ 하여야 한다.”
선사가 쌍봉雙峰과 함께 행각하면서 천태산을 유람하다가 석교石橋를 지나게 되었다. 이에 쌍봉이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었다.
도를 배우고 행을 닦기에 힘이 충분하지 못하거든
이 몸을 끌고서 험한 길을 걷지 말라.
석교를 지나고 난 뒤부터
덧없는 이 몸이 다시 태어난 듯하여라.
이에 선사가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도를 배우고 행을 닦기에 힘이 충분하지 못하거든
부디 이 몸을 끌고 험한 길을 걸으라.
석교를 지나고 난 다음부터
덧없는 이 몸 다시 나지 않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은 갓 총림叢林에 들어왔습니다. 부디 스님께서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차라리 이 몸을 먼지가 되도록 부술지언정 한 스님의 눈을 멀게 할 수는 없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49년 뒤의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 49년 전의 일이 어떠합니까?”
선사가 불자로 그의 입을 쥐어박았다.
선사가 상당하여 한참 양구良久했다가 문득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대들 때문에 무척 피곤하구나.”
부孚 상좌가 말했다.
“화상께서 실수하셨습니다.”
이에 어떤 스님이 청淸 좌주에게 물었다.
“설봉의 허물이 어디에 있기에 부 상좌가 긍정하지 않았을까요?”
좌주가 대답했다.
“만일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어찌 긍정하지 않는 말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스님이 다시 부 상좌에게 가서 이 일을 이야기하니, 부 상좌가 말했다.
“가죽도 알아보지 못하고서 뼈라 말하지 말라.”
어떤 이가 물었다.
“모든 활동은 모두가 곁으로 뚫린 귀신의 눈이라 하니, 어떤 것이 바른 눈입니까?”
선사가 양구하니,
다시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의 눈은 본래 바른데 스승으로 인해 삿되게 되었다’ 하니, 어떤 것이 본래의 바른 나의 눈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달마를 만나기 전의 것이니라.”
“나의 눈이 어디에 있습니까?”
“스승에게서 얻는 것은 아니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옛사람(덕산)은 어떤 일에 의하여 42권의 경과 논을 버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절을 해야 한다.”
선사가 스님에게 무엇을 보이면서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스님이 대답했다.
“한 물건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때렸다.
어떤 스님이 소주蘇州의 서선西禪에게 물었다.
“3승 12분교는 묻지 않겠습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분명한 뜻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서선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니, 그 스님이 긍정하지 않았다.
후에 그 스님이 설봉에 오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서선西禪에게서 옵니다.”
“어떤 불법의 인연이 있었는가?”
스님이 앞의 인연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긍정하였는가?”
“어떻게 긍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긍정하지 않는 도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스님이 대답하였다.
“어떻게 물어야 선사께서 경계를 보이시겠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서선西禪에서 여기에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숲을 지났든지 간에 모두가 경계인데, 그대는 어째서 그것들은 부정하지 않고 불자만을 부정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이 일로 인하여 선사가 말했다.
“온 천지가 하나의 눈인데 그대들은 어디에다 똥오줌을 싸려는가?”
이에 장경이 대답했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겹겹으로 사람을 속이십니까?”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조주趙州에게 말하니, 조주가 말했다.
“상좌가 만약 민閔으로 간다면 내 그대 편에 삽을 한 자루 보내리라.”
취암翠巖이 선사의 말을 소산에게 전하자, 소산이 말했다.
“설봉을 스무 방망이를 때려서 변소에다 처넣어야 한다.”
취암이 물었다.
“화상이 그리 말씀하시는 것은 설봉의 허물을 때리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눈은 어찌하시렵니까?”
소산이 말했다.
“듣지 못했는가?
『심경心經』에서 말하기를,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없다’ 하였느니라.”
취암이 긍정하지 않고 말했다.
“옳지 않습니다, 화상이시여.”
이에 소산이 말이 없었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사람인가?”
“자주磁州 사람입니다.”
“들으니, 자주에는 금이 난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얻어 갖고 왔는가?”
“갖고 왔습니다.”
“가지고 왔거든 노승에게 보여다오.”
스님이 손을 펴 보이니, 선사가 침을 뱉었다.
또 다른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사람인가?”
“자주磁州 사람입니다.”
“들으니, 자주에는 금이 난다는데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선사가 손을 벌리고 말했다.
“금을 갖고 오너라.”
스님이 침을 뱉자, 선사가 네다섯 대를 갈겨 주었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혜전惠全입니다.”
“그대가 얻어 들어간 곳은 어떠한가?”
“벌써 화상과 함께 헤아려 보았습니다.”
“어느 곳이 헤아린 곳인가?”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얻어 들어간 곳은 또 어떤가?”
스님이 대답을 못하여서 선사에게 방망이로 얻어맞았다.
선사가 이 일을 장경에게 이야기하니, 장경이 말했다.
“앞의 두 인연은 그런대로 도리에 맞지만 나중의 것은 알맹이가 없습니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전藍田에서 옵니다.”
“어째서 풀숲에 들어가지 않는가?”
나중에 장경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험해서 그랬습니다’ 했어야 한다.”
어떤 스님이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절중浙中으로 경산을 뵈러 갑니다.”
“갑자기 경산이 그대에게 무언가 물어 오면 그대는 어찌 대답하겠는가?”
“물으면 대답하겠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그를 때리고는 경청鏡淸에게 물었다.
“저 스님의 잘못은 어디에 있는가?”
경청이 대답했다.
“경산이 무척 피곤하게도 묻는군요.”
선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경산은 절중에 있는데, 어떻게 피곤하게 묻는다 하는가?”
경청이 대답했다.
“‘멀리서 물어도 가까이서 대답한다’ 하는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게송을 지었다.
그대는 길가의 화표주花表柱를 보라.
천하가 바삐 서둘기는 일반이어라.
비파 줄은 손놀림에 따라서 느슨해지고 조여지나
광릉廣陵의 묘한 곡조 퉁기는 이 아무도 없네.
한 번에 퉁길 줄 아는 사람 있다면
천하 곡조를 모두 다 퉁기리.
상경常敬 장로가 처음 참문하러 와서 말했다.
“경론 읽기를 그만둔 상경 등이 참문하러 왔습니다.”
그때에는 선사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와서 인사를 드리니, 선사가 말했다.
“경론 읽기를 그만둔 상경은 여기에 있는가?”
상경이 얼른 나서니, 선사가 말했다.
“나는 경론 읽기를 그만둔 중, 상경을 불렀는데,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어진 임금이 칙서로 부르시면 나타나지 않는 신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일은 칙서로 부른 것인가, 부르지 않은 것인가?”
“칙서로 부른 것입니다.”
이에 선사가 할을 하여 내쫓았다.
선사가 게송을 읊으시니 다음과 같다.
세상에 한 가지 큰 일이 있는데
학자들 갖기를 삼가 권하노라.
비록 반 푼의 돈도 없지만
여러 겁을 지내도록 풍부하도다.
하늘에 올라도 사닥다리 필요하지 않고
온 천지를 두루 하여도 다닌 길 없다.
하늘도 땅도 몽땅 포함한 곳에서
납자들은 불 끄듯 급히 깨치라.
이른 아침에도 일어나려 하지 않고
늦은 저녁까지 자리에 앉아 있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면
고기잡이의 배는 불러서 뱃가죽이 터진다.
낭朗 상좌가 물었다.
“눈앞에 가득한 것이 모두 생사입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눈앞에 가득한 것이 무엇이라고?”
이에 낭 상좌가 활짝 깨달았다.
상경 장로가 물었다.
“설날 아침 만물이 새로워지는데, 진왕眞王도 봄을 맞이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4상相은 나이에 따라 늙어가지만 진왕眞王은 봄을 맞지 않느니라.”
“하루 종일 무엇으로 그를 시봉해야 됩니까?”
“촉식觸食은 받지 않으시니라.”
“갑자기 진수성찬이 생기면 어찌합니까?”
“무척 신선하구나.”
선사가 법당에 들어가 경전을 보고 현사玄沙에게 물었다.
“무슨 경인가?”
“『화엄경』입니다.”
이에 선사가 물었다.
“내가 앙산仰山에 있을 때, 앙산이 경에 있는 말을 들어서 대중에게 묻기를,
‘국토가 말하고 중생이 말하고 3세의 모든 것이 말한다 하는데, 누구를 위해 말하는가?’ 하니,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앙산이 말하기를,
‘자식을 길러 노후를 대비한다’ 했다.
이 문답을 빌려 그대들에게 묻는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현사가 머뭇거리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나에게 물어라.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에 현사가 묻자, 선사가 그의 앞에 몸을 굽히면서 말했다.
“갈겨라, 갈겨라.”
보자報慈가 이 말을 들어 와룡臥龍에게 물었다.
“이야기는 앙산의 이야기요, 들기는 설봉이 들었는데, 어째서 설봉이 매를 맞아야 하는가?”
와룡이 대답했다.
“자식을 길러 노후를 대비합니다.”
이에 보자가 말했다.
“풀숲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하였구나.”
선사가 어떤 스님을 보고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내가 아직 나서지 않았는데 어째서 모르는가?”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에게도 부모가 있는가?”
“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구역질이 나는구나.”
다른 스님은 “없다”고 대답하였는데, 선사가 또다시 말했다.
“구역질이 나는구나.”
또 다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무엇을 물으셨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구역질이 나는구나.”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마치 밝은 거울과 같아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한인漢人이 오면 한인이 나타나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현사玄沙에게 물으니, 현사가 말했다.
“밝은 거울이 아닐 때는 어찌할 것인가?”
그 스님이 설봉으로 돌아와서 현사의 말을 전하니, 선사가 말했다.
“오랑캐도, 한인漢人도 모두 숨느니라.”
그 스님이 다시 현사에게 와서 이 일을 이야기하니, 현사가 말했다.
“산중에 사는 화상의 발꿈치가 땅을 밟지 않는구나.”
또 언젠가 현사가 설봉에 오니, 선사가 한 다리를 거두고 한 발로만 다니니,
현사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뭐하십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발꿈치가 땅을 밟지 않는 모양이라네.”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평소에 내가 ‘둔한 놈’이란 말을 했는데, 이 말의 뜻을 아는 이가 있는가? 아는 이가 있거든 나와서 내 앞에서 이야기하라. 내가 증명해 주리라.”
이때 장생長生이라는 이가 나서서 말했다.
“면전에서 보면 높고 크고 계제에 임해서는 뛰어납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늙은이가 되어야 비로소 산승의 뜻을 알겠구나.”
순덕順德이라는 이가 말했다.
“물을 치면 물고기 머리가 아픕니다.”
선사가 말했다.
“옳으니라.”
선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내가 암두巖頭와 흠산欽山과 함께 행각을 할 때, 여관에서 묵은 일이 있는데, 세 사람이 각각 원하는 바가 있었느니라. 이때 암두巖頭는 ‘여기서 헤어진 뒤에는조그마한 나룻배 하나를 구해 낚시꾼과 함께 한평생을 보내고 싶다’고 하였고, 흠산은 ‘나는 그렇지 않다. 큰 도시에서 살면서 절도사에게 스승의 예우를 받아 비단옷을 입고, 금ㆍ은의 평상에 앉으며, 밥 먹을 때에는 금꽃 모양, 은꽃 모양의 큰 소반에 법식대로 차려 놓고 밥을 먹으면서 한평생 지내고 싶다’ 하였느니라.
이때 나는 ‘네거리에 선원을 차리고, 대중을 법식대로 공양하리라. 만일 어떤 납자가 길을 떠나면 내가 바랑을 메고 주장자를 들어주어 문 밖까지 잘 전송하고서 그가 몇 걸음 가면 갑자기 ≺아무 스님≻ 하고 불러서 그가 고개를 돌리거든 ≺먼 길에 조심하시오≻ 하리라.’ 했는데,
그 뒤에 암두와 흠산은 본래의 소원을 다 이루었으나, 나만은 본래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겨우 여기서 살면서 지옥의 찌꺼기 때를 만들고 있느니라.”
또 말했다.
“강서와 호남湖南과 동촉東蜀과 서촉西蜀이 모두 이 속에 있느니라.”
이때 아무도 나서서 묻는 이가 없으니, 선사가 어떤 스님으로 하여금 물으라 하니,
그 스님이 나서서 절을 하고는 물었다.
“이 속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지옥으로 꺼져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서 보자에게 물었다.
“선사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보자가 대답했다.
“염라 노인이 희망을 버렸느니라.”
누군가 선사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무간지옥에 갈 업을 짓지 않으려면 여래의 바른 법을 비방하지 말라.’ 하였는데, 어찌하여야 비방을 하지 않게 됩니까?”
“지옥에나 가거라.”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지옥에나 가거라.”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예를 들면, 세상에 두 군자가 있는데,
한 군자는 남쪽에서 왔고, 한 군자는 북쪽에서 왔다고 하자.
두 군자가 넓은 들에서 만났는데, 남쪽에서 온 군자가 북쪽에서 온 군자에,게
‘성이 무엇이며, 몇째인가?’ 하고 물었더니,
북쪽에서 온 군자가 갑자기 남쪽에서 온 군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에 남쪽에서 온 군자가 말하기를,
‘내가 5상常의 예를 행함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하였다.
이에 북쪽에서 온 군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편을 두지 않았다’고 하였다.
여러 화상들이 만일 이 비유의 뜻을 이해하면 산에서 살아도 되고, 성의 해자에서 살아도 된다.”
선사가 서원을 돌아보고 산으로 돌아가려다가 민泯 전좌典座에게 물었다.
“3세의 부처님들은 다 어디에 계시는가?”
전좌가 대답이 없자, 다시 장주藏周에게 똑같이 물었다.
그러자 장주가 대답했다.
“제자리를 여의지 않고 항상 담연湛然합니다.”
이에 선사가 침을 뱉어 주고 말했다.
“그대가 물어보라. 내가 대답하리라.”
“3세의 부처님들은 다 어디에 계십니까?”
이때 갑자기 돼지 어미와 새끼가 산에서 내려와 마침 선사 앞에 이르니, 선사가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미 돼지의 등 위에 있도다.”
선사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승당 안에 천여 사람이 있는데, 누가 용이고 누가 뱀인 줄을 어떻게 가리겠는가? 더구나 기별조차 없었는데…….”
이에 장경이 대답했다.
“물속을 더듬는 지팡이가 있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이곳에서 어찌해야 하는지 그대가 말해 보아라.”
이에 장경이 벌렁 누우며 쓰러지는 시늉을 하니, 선사가 말했다.
“저 중이 풍병을 앓는구나.”
위산과 앙산이 어느 날 저녁에 이야기를 하던 끝에 위산이 앙산에게 물었다.
“그대가 밤새도록 헤아리고 궁리하여서 이룩한 것이 무엇인가?”
앙산이 선뜻 한 획을 그어 보이니, 위산이 말했다.
“만일 내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대에게 속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장경長慶에게 물었다.
“앙산이 한 획을 그은 뜻이 무엇입니까?”
장경이 손가락을 일으켜 세웠다. 또 순덕順德에게 물으니, 순덕도 손가락을 일으켜 세웠다.
이에 그 스님이 말했다.
“불법은 부사의하여서 천 성인이 같은 궤도를 달리는구나.”
그 스님이 다시 이 일을 선사에게 알리니, 선사가 말했다.
“둘 다 옛사람의 참뜻을 잘못 알았도다.”
그 스님이 선사에게 물으니, 선사가 말했다.
“그저 까닭 없는 짓일 뿐이다.”
선사가 처음 출가하였을 때 유가儒假 대덕이 시詩 세 수를 보내 주었다.
세월이 바뀌고 흘러 또 봄을 만나니
못가의 버들 언덕의 매화가 몇 차례나 새로워졌던가?
그대 고향을 떠났으니 반드시 노력하여
장부의 일을 저버리지 말라.
사슴 떼를 주고받은들 어찌 이루리오.
난새와 봉이라야 만 리를 난다.
하물며 고향 동네 가난하고 천함에랴.
소진蘇秦의 금의환향 분명하도다.
원헌原憲은 가난을 참으면서도 뜻을 바꾸지 않았고
안회顔回)가 천명을 따를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좋은 벼이삭은 이른 봄에 익지 않나니
군자는 원래부터 움직임에 때가 있느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길을 지나오지 않았습니다.”
선사가 소리 높여 꾸짖었다.
“예끼, 이 두꺼비 같은 놈아.”
또 다른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강서에서 왔습니다.”
“어디서 달마達磨를 만났는가?”
“달마뿐이 아니라, 달마보다 더한 이가 있더라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달마가 있는데도 만나지 않는가, 달마가 없어서 만나지 않는가?”
“만나지 않겠다는데, 무슨 있다 없다를 말씀하십니까?”
“있다 없다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어째서 만나지 않겠다 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남산에 별비사鼈鼻蛇가 있으니, 그대들은 잘 보고 다녀라.”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장경長慶이 대신 말했다.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승당 안에 있는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습니다.”
현사玄沙는 다음과 같이 대신 말했다.
“그 남산더러 어찌하라 하십니까?”
휘暉 화상이 이에 대해 게송을 읊었다.
설봉이 뱀을 한 마리 길러
남산에 숨겨 둔 뜻이 무엇이던가?
이것은 예사롭게 독하고 악한 것 아니니
참선하는 이 무엇보다 선타바先陀婆를 알아야 한다.
보자報慈가 이 게송에 화답했다.
그대들에게 권하나니, 험악한 곳에선 뱀을 조심하여라.
달려들면 즉석에서 어찌할 수 없으리.
이 몸을 편히 길러 사물에 등지지 않으려면
남쪽으로 서서 북쪽을 보는 것이 바로 선타바先陀婆라네.
선사가 나무말뚝을 가리키며 장경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색을 보면 곧 마음을 본다. 마음 밖에 다른 것이 없다’ 하였는데, 그대는 저 나무토막이 보이는가?”
장경長慶이 대답했다.
“무엇을 보라 하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외로운 놈일세.”
“외롭지 않습니다, 화상이시여.”
“그대는 외롭지 않다 하고, 나는 외롭다 한다.”
장경이 세 걸음 물러서 섰으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나에게 물어라. 내가 대답하리라.”
장경이 화상에게 물었다.
“저 나무말뚝이 보이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더 무엇을 보겠는가?”
어떤 이가 물었다.
“눈길이 마주쳐도말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이는 어떠합니까?”
“채워졌기는 하지만 빨리 계합되어야 한다.”
어떤 소경을 만났는데, 선사가 말했다.
“내 눈이 멀었다, 내 눈이 멀었다.”
선사는 평생 동안 두터운 마음으로 중생을 제접하고 앉으나 걸으나 언제나 법을 보였다.
천우天祐 병인丙寅 연간에 대중이 1,700명에 이르렀다. 민왕이 네 가지 공양거리를 극진히 제공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었다. 개평開平 2년 무진戊辰 5월 2일 밤 3경 초에 천화遷化하니, 춘추는 87세요, 법랍은 59세였으며, 39년 동안 출세하셨다. 조칙으로 시호를 진각眞覺 대사라 하였고, 탑호塔號를 난제難提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