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약력
이동견
경북 포항 출생
2008년 5월 월간문학세계 신인문학상 수상
2022년 kbs 경제오디션 수기 공모 장원 수상
창원문협 회원
주소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호계안길 91 서광 2차 1동 902호
모바일 010 3571 1207
목욕
탕에 몸을 담그면 튜브 물감이 되는 액자가 있다
액자에 눌렸던 물감의 의지가 감정을 해체시킨다
수면 캔버스에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그림은 어떨까
물을 가르는 터치는 날랜 지느러미의 방향이 된다
물살은 힘을 만들고 힘은 물을 끌고 간다
물살을 속사한 밑그림이 호흡을 가진다
부레가 자라고 아가미가 커지고 입술이 동그랗게 물에 찍힌다
한 개 두 개 네 개 여덟 개 상상 밖으로
수천 개 입술에 뻐끔거리는 당신의 말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헤엄쳐 나간다
가쁜 숨은 어디로 갔을까
횡경막이 부푸는 느낌은 날개를 가지는 기분
그 기분으로 날개 없이 날아오르는 몸짓을 얻는다
끄리가 잠자리를 낚아채려고 수면 밖으로 뛰어오르는 그림
잠자리 대신 풍선을 물고 나르는 수채화는 어떨까
현란한 몸짓이 곡선을 그려내는 수면에
숨을 참는 법을 배우던 몸피가 너울거린다
그림을 갈아 끼우듯 지느러미를 바꿀 수는 없을까
씻겨 지지 않는 물감의 원적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속 굴절을 켜면 거대한 풍선이 부푸는 꿈
풍선에서 비늘이 돋고 비늘에서 물고기가 산란하고
물 풍선을 물고 일제히 달려오는 빨간 입술들
우아하다 말할 수 있을까
바람 빠진 물고기
뼈가 생각인 물고기
뼈가 드러난 물고기 그림
걸어 둘 수 있을까
원룸
고독한 것은 모여 산다
우리 동네 원룸도 모여 산다
그래도 고독하긴 마찬가지
창을 켜면 고독은 문이 되고 창을 끄면 고독은 벽이 되는 저녁
나는 천변으로 가서 징검다리의 생각을 두드려보다가
건너, 기다림을 켜 둔 캄캄한 창들을 바라본다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 저 고독성
비틀거리는 가로등 불빛을 부축해 돌아오는 길
벽을 마주하고 소찬을 당겨 앉으면
연통 속 같은 하루가 수직으로 낙하한다
달빛에 걸어 둔 빨래를 개키다가 물소리에 젖어
창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면
끊어낼 수 없는 발목들이 우글거리고
연잎 위엔 감겨지지 않는 동공들이 구슬이 된다
귀지를 사르던 불타는 혀들
곰팡이 빛으로 번지는 그림자 파편들
락앤락에 반찬처럼 밖으로 새지 않는
안으로 안으로 숙성되는 고독의 냄새
헐어버린 달의 눈빛이 젖는 수면엔
폭우에 패인 갯버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잠이 들면
몸 안으로 주절대는 입술은 저 홀로 산란한다
침잠에 침착하는 불 꺼진 창들
꽃을 잃어버린 색소경처럼
최초의 몸짓인 듯
동굴 속으로 헤엄쳐 가는 물고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