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화수경 제6권
20. 구법품[4]
[깊은 법의 뜻]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깊은 법을 좋아하므로 깊은 법을 구하여,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 깊은 법을 설하느니라.
무엇을 깊은 법이라 이르는가?
여러 정진하는 이의 능히 행하는 바이니, 그 정진하는 이란 곧 보살마하살들이 위없는 도를 구하여 물러서지 않는 이가 그이니라.
[법에 깊이 통달함의 뜻]
이런 이들이 여러 법에 모두 깊이 통달하였다.
무엇을 깊이 통달함이라 이르는가?
만일 눈의 모양[眼相]을 구하면 곧 이것은 붙인 이름이요, 법의 모양에 깊이 통달한 것은 되지 않는다.
이름하여 안도 아니며, 바깥도 아니고,
아(我)와 아소(我所)도 아니고,
때 묻음도 아니며 깨끗함도 아니고,
남도 아니며 멸함도 아니다.
왜냐하면 성품은 언제나 자연스러워서 이와 같은 법성(法性)은 짓고 짓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눈의 매우 깊은 법에 통달하였다고 이름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모양을 구하는 이도 곧 붙인 이름이요 법의 모양에 깊이 통달한 것은 못되나니,
이름하여 안도 아니며 바깥도 아니고,
아와 아소도 아니고,
때 묻음도 아니며 청정함도 아니고,
남[生]도 아니며 멸함[滅]도 아니라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성품은 언제나 자연스러워서 이와 같은 법성은 짓고 짓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뜻의 매우 깊은 법에 통달하였다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매우 깊이 달하였다는 것은 곧 법의 실상(實相)이다. 만일 법의 공함[法空]을 취하면 곧 이것이 망취(妄取)니라. 만일 상(相) 없음을 취하면 이것은 곧 상이 되고, 원(願) 없음을 취하면 이것도 또한 원이 되느니라.
사리불이여, 법의 성품은 본래부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나니, 이것을 곧 이름하여 여러 법에 깊이 통달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들을 정진하는 이라고 말하느니라.
[보살이라고 하는 뜻]
사리불이여, 무슨 뜻으로써 말하여 보살이라 이름하는가?
중생이 없는 법을 능히 자세히 알아 깨쳤으므로 보살이라 이름하느니라.
또는 이 사람은 행한 지혜를 으뜸으로 삼는 까닭에 보살이라 이름한다.
또 중생으로 하여금 행하는 법이 없는 줄로 알게 하므로 보살이라 이름한다.
또 사리불이여, 있는 것 없는 뜻[義]은 곧 보살의 뜻이다.
나타내 보이는 것 없음은 곧 보살의 뜻이다.
그러므로 보살의 뜻은 둘도 없고 같음도 없느니라.
사리불이여, 지나가지도 않고 꺼지지도 않는 것을 보살이라 이름하느니라.
[공은 보리이다]
사리불이여, 공(空)은 이 보리니 무엇을 공이라 이름하는가?
온갖 법이 없는 까닭에 이름하여 공이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만일 법 가운데서 털끝만한 상이 있으면 곧 이 상에 집착함이니,
아(我)에 집착하고 인(人)에 집착하고 중생상에 집착하고 여러 법의 상에 집착함이니라.
이 공의 법 가운데는 여러 상이 없으므로 이름하여 공이라 한다. 공은 곧 보리이니라.
이 뜻으로써 온갖 여러 법을 이름하여 보리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그대는 여래의 가르침에 꼭 수순하여 어기고 거역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여러 부처님의 보리는 제일 깊어서 온갖 범부는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범부는 차치하고라도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들도 보지 못하고 관하지 못하며, 또한 여러 부처님의 보리를 통달하지 못하느니라.
[다한 지혜의 법]
비록 지혜의 견(見)과 무생지(無生智)의 관을 다하지만, 무슨 법을 다하였기에 이름하여 다한 지혜라 하는가?
법은 다함이 없음이니, 모든 법은 다함을 여의어 모두 마지막 다함[畢竟盡]에 들어가는 까닭에 다한 지혜라 이름한다.
생각 가운데 저의 멸해 다함과 저의 다하지 않음을 알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성문ㆍ벽지불은 여러 부처님의 보리에는 통달할 수 없다고 하느니라.
[남이 없는 지혜]
사리불이여, 남이 없는 지혜[無生智]라는 것은 여러 법 가운데 오히려 조금이라도 나는 것이 없는 이렇게 능히 아는 것을 남이 없는 지혜라 이름한다.
생각생각 가운데서 저의 남이 없는 것과 남이 없지 않는 것을 능히 알 수 없나니, 온갖 성문ㆍ벽지불들은 이런 지혜가 없느니라.
그런 까닭에 부처님의 지혜를 이름하여 같음이 없다고 한다.
나머지 사람은 이것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다시 이 지혜는 삿됨이 없이 평등한 까닭에 평등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여래의 혜]
사리불이여, 여래의 혜(慧)는 바르게 깨쳐 한껏 다하여 그릇됨이 없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부처님의 혜라 한다.
이 부처님의 지혜는 가없고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구하여서 얻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하여 깨쳤다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무슨 까닭에 여래를 이름하여 ‘깨친 이’라 하는가?
온갖 중생은 나고 죽는 데 길게 잠들어서 지나가거나 혹은 꺼져서 통달하지 못하지만, 오직 보살은 혼자 능히 깨달아 알므로 깨친 이라 이름하느니라.
[바르게 깨침]
또 사리불이여, 여래 법을 바르게 깨쳤으므로 깨친 이라 이름한다.
무엇이 바르게 깨침인가?
온갖 법의 법 아닌 것과 법 아님이 아닌 것과, 때 묻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아서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아닌 줄 안다.
이상에 수순하는 까닭에 깨친 이라 이름하느니라.
또한 법으로써 나거나 멸하거나 혹은 오거나 감도 없음을 깨쳤다. 그래서 깨친 이라 이름하느니라.
사리불이여, 이 깨침의 뜻은 한량없고 가없고 생각할 수 없어 밑바닥을 얻기 어려움이 비유하자면, 큰 바다의 물은 한 맛으로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아, 여러 물줄기를 모조리 받아들이되 차서 넘치지 않고, 점차로 깊어져서 깊은 것이 제일가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불이여, 여래의 큰 바다도 그와 같아서,
공하여 생멸 없는 한 해탈의 맛이니 차례로 법을 설하므로 점점 더 깊어진다 이름하고,
일체지를 얻으므로 이름이 깊이가 제일이요, 마침내 다 위없는 보리에 한껏 통달하고, 온갖 법 가운데 그릇됨이 없는 까닭에 늘고 주는 것이 없다고 이름하고,
온갖 문난(問難)을 능히 다할 수 없으므로 감당하기 어렵다 이름하고,
온갖 여러 공덕을 능히 모으므로 받는다 이름하느니라.
사리불이여, 내가 만일 여래의 뜻을 다 말한다면, 누가 능히 감당하여 받으랴?
마치 사가라(娑伽羅)용왕이 큰 비를 내리고자 하면 큰 바다만이 받아들이지 나머지는 능히 받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만일 부처님의 지혜를 모두 열어 연설한다면 온갖 중생, 나아가 성문ㆍ벽지불은 능히 감당하여 받을 수 없고,
여러 보살만이 대승의 마음을 말하여 부처님의 신통의 힘으로 곧 능히 받아 지니느니라.
[세상에 가장 얻기 어려운 네 가지]
사리불이여, 세상에 네 가지 일이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 있으니,
무엇을 넷이라 하는가?
사람 몸 받기가 어렵고,
나라 중앙에 태어나기가 어렵고,
부처님 법 믿기가 어렵고,
부처님 법을 벌써부터 믿었지만 깨닫기가 매우 어려우니라.
이 네 가지 어려운 일을 너희들은 모두 얻었으니, 이제 마땅히 부처님에게 여러 법 가운데 의심나는 것을 물으라.
나는 이제 너희들이 물음을 들어주리라. 온갖 세간의 여러 천인들아, 뜻대로 물으라. 여래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리라. 뒤에 후회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