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5권
14. 생불품(生佛品)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이루는 것]
그때에 자리에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이름이 분별설시(分別說施)로서, 옛적에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에게 뭇 덕의 근본을 지었다.
그 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거룩하시고 거룩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자못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과거ㆍ미래ㆍ현재에서 한 때[一時] 한 날[一日]에 과거의 세 가지 일과 미래와 현재의 세 가지 일을 알면 성불할 수 있겠나이까, 없겠나이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그 변화에 따라 국토를 관하여 보아서 중생에게 알맞게 응하시어 이루는 바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니라.
마치 보살마하살이 국토로써 국토를 삼지 않고 중생으로써 중생을 삼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법계를 분별해서 법의 지혜가 생겨나는 것이니, 여래의 신령스런 지혜는 세속의 지혜와는 같지 않느니라.
세속의 지혜란 욕계ㆍ색계로부터 유상ㆍ무상천(有想無想天)에 이르기까지를 소위 세속의 지혜라고 이르나니,
오늘날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이 지혜를 일찍이 초월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온갖 법을 낳아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이루는 것인가?
이 일은 그렇지 않나니, 왜냐하면 여래는 여여(如如)하기 때문이니라.
여래의 여여는 세계가 여(如)요, 온갖 법의 성품도 여(如)요, 부사의(不思議)도 여(如)요, 미래도 여(如)요, 저 세계의 겁수도 여(如)요, 여래의 겁수도 여(如)요, 하나도 여(如)요, 둘 아님도 여(如)요, 모든 있는 것[諸有]도 여(如)요,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함도 여(如)이니라.
또한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집착의 끊음도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 내놓으신 명호는 저 겁수를 제한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어서 이루다 기재할 수 없느니라.
긴 것이 있음도 보지 않고, 또한 짧은 것도 보지 않으며, 또한 생(生)함도 보지 않고 멸함도 보지 않느니라.
그렇다면 어째서 온갖 법을 낳는가?
형상이 없으면 볼 수가 없으니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무기(無記)는 유기(有記)를 보지 못함이 형상이 없는 법이 갖가지로 다른 것과 같으니라.
이름과 글귀[名句]의 몸도 또한 그러하고, 맛의 몸[味身]도 또한 그러하니라.
각각 명자의 몸[名身]이 없고, 각각 구절의 몸[句身]이 없고, 각각 맛의 몸이 없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은 각각 텅 비어서 선(善)도 있지도 않고, 악(惡)도 있지도 않으며,
또한 복도 있지 아니하고, 복이 있지 않음도 있지 않으며,
혹은 행이 있기도 하고, 혹은 행이 없기도 하느니라.”
[행이 없음과 행이 있음]
그때에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이 무진혜(無盡慧)로서 성품이 공하고 여여하여 법 없음[性空如如無法]을 얻었다. 그 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이제 여래 앞에서 행이 있음[有行]과 행이 없음[無行]이 공한 성품의 여여한 법[空性如如法]과 같음을 말해보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좋다. 그대는 마음대로 설하여라.”
무진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유행(有行)과 무행(無行)을 닦아 익히면, 문득 일체 모든 법을 능히 갖추어서 등정각을 성취하리니,
어떤 것이 유행과 무행인가?
온갖 법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없으니, 이것을 무행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마지막에는 온갖 법을 과거와 미래와 현재라고 분별하니, 이것을 보살의 유행이라고 이릅니다.
한량없는 명자의 몸[名身]이 있지만 본말(本末)을 보지 못하고, 한량없는 구절의 몸[句身]이 있지만 본말을 보지 못하고, 한량없는 맛의 몸[味身]이 있지만 본말을 보지 못하니, 이것을 보살의 무행이라고 이릅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3세법의 생겨남이 있고 멸함이 있음을 알더라도 그 가운데서 있는 바가 없음을 분별하면, 이것을 보살의 유행이라고 이르나이다.”
이때에 무진혜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직 구경(究竟)이 아닌 법을 구경이 되게 하고, 아직 멸진하지 못한 법을 멸진하게 하면, 이것을 보살의 무행이라고 이르며,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서 한량이 있음도 보지 않고 한량이 없음도 보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유행이라고 이릅니다.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으로 도의 마음을 내어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행하되, 칭찬ㆍ꾸지람과 괴로움ㆍ즐거움과 날카로움ㆍ쇠함과 훼방ㆍ기림으로도 그 마음속에 거리낌이 없나니, 이것이 보살의 무행이라고 이릅니다.
가령 삼천대천세계 속의 중생이 한뜻, 한마음으로 3세(世)의 단멸(斷滅)의 법을 분별한다면, 이것을 곧 보살의 유행이라고 합니다.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량없는 겁 동안에 근고의 행[勤苦行]을 행하여 부처님의 언교(言敎)를 들어 지니고자 하면, 이것을 보살의 무행이라고 이르며,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행하되 네 가지 평등한 것으로 스스로 칭찬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유행이라고 합니다.
물들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음에는 과거ㆍ미래ㆍ지금의 현재가 없나니, 이것을 보살의 무행이라고 이릅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의(義)도 아니고, 의 없음[無義]도 아니며, 이루어짐이 있음도 아니고, 이루어짐이 없음도 아니며, 대(對)가 있음도 아니고, 대(對)가 없음도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을 보살의 유행이라고 합니다.
혹은 국토가 청정하여 물든 바 없기 때문에 국토에서 성취된 바가 있음을 스스로 보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의 무행이라고 이른다.
만일 다시 여러 가지 법에서 망령된 소견을 내지 않아서 일어난 바가 없고, 다함없는 법으로 능히 스스로를 꾸미면, 이것을 유행이라고 합니다.
또한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없는 것도 아니면, 이것을 보살의 무행이라고 이릅니다.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 세계의 국토를 관하기를 허공과 다름없이 관하고, 다른 국토를 한 국토에 매여 있게 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유행이라고 이릅니다.
다시 본래 3세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마하살이 있음을 스스로 관하여 보아서 과거와 미래와 지금의 현재가 있다고 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무행이라고 이릅니다.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낱낱이 분별하는데, 계(界)가 나의 계가 아니고, 세(世)도 나의 세가 아니며, 있음[有]도 나의 있음이 아니라 하면, 이것을 보살의 유행이라고 이릅니다.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삼계를 분별하여 행하는 바 없이 행하면서 짓는 것도 보지 않고 또한 짓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의 무행이라고 이르나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진혜보살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어떠한 법에 머물러서 이것을 설하는 것인가?
무행은 유행에서 일어나고, 유행은 무행에서 일어나는데,
무엇을 말미암아 여래를 좇아서 유행ㆍ무행을 스스로 말하는가?”
무진혜보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본래 자각(自覺)으로부터 지금과 같은 첫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 부연하시어 널리 밝혀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한 바대로 하리니 잘 생각하고 기억하여라. 오늘은 여래께서 반드시 그대를 위하여 그 가르침을 부연하리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그대가 본래 뜻을 발하여 위없는 등정각을 이룬 것은 유행으로부터인가, 무행으로부터인가?”
대답하였다.
“유행으로부터도 아니고 무행으로부터도 아니옵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인가 족성자여, 만일 유행으로부터도 아니고 무행으로부터도 아니라면, 어떻게 등정각을 이룰 수 있겠는가?”
대답하였다.
“있음[有]도 여여(如如)하고, 없음도 여여하니, 이 때문에 유행으로부터도 아니고 무행으로부터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본래 어찌하여 이 물음을 발설하지 않았는가?
나는 먼저 유행과 무행을 이미 말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