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순 란
3월의 몸살
아침 햇빛이 벌어진 커튼 사이를
느근하게 파고들면
터무니없이 낮게 맞추어놓은
실내온도 때문인지
몸이 오슬오슬 떨려오는데
관자놀이가 지끈 거리면서
목덜미부터 등허리까지 찌뿌드드
몸과 마음이 다 방전되어
힘없이 늘어진다
우뚝 선 나무의 수피처럼
나도 주름이 늘어나
문득 늙고
봄만 되면 비실비실
봄 타는 나
병명은 없어도 녹아내리는 몸
한 겨울처럼 한랭하다
나의 맛친구
-냉면
통나무처럼 길게 반죽된 그놈
분창기 기계 속으로 밀쳐 넣으면
낮은 터널 지나
빼빼로 모양으로
서로를 에워싸며
팔팔 끓는 열탕에서
사우나를 즐긴다
그물망에 건져낸 그놈은
영하의 얼음 물 속으로 풍덩!
경련을 일으키며
싸리 빗자루로 변모해
예술적인 스포츠 댄스로 차차차
쇠그릇에 잠시 휴식을 즐기면서
서너 가지 고명을 뽐내며
가격도 착하고 맛도 착한 그놈은
나의 입맛을 기분 좋게 돋구어준다
바람이 거센 날은
장마철 강풍이
숨을 헐떡이며 반나절이나
베란다 창문에 매달려서 두들겨댄다
발버둥 치는 바람은
위치를 알려주는 빠른 속도로
농작물 사이로 무너져 간다
빨랫줄에 걸어둔
수건도 양말도 장갑도
희망을 잃고 산허리를 돌아
처마 끝에 닿는다
우리 부부가 부대끼면서
살아온 날들과 비교되면서...
바람은 산의 등허리 짊어진 채
가늠할 수 없는 형체로
오후 한 시에
대문 앞에서 멈추어 서 있었다
발자국
한파가 찾아온 날
안목 카페거리 끝자락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겨울바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의자로 건네지고
가늘게 슬퍼지고 있는
사람들의 설움은 바다에 적셔지는데
파도 썰기는 큰 물결로 넘실거린다
때 묻은 이야기는
하얀 세상으로 떠나고
잠시 머무는 이곳에서
작은 희망 하나 품는다
스쳐가는 인연들과
시간의 흐름을 잊고
쉬어가도 괜찮을 세월의 발자국
오늘 만난 겨울바다와
내가 하나가 된다
추모 특집
정 순 란
탄광촌의 광부시인
시골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시인은
고된 노동으로 힘들어 하던 날
한줄기 단비로 찾아와준 글은
선생님을 글쟁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가난의 힘은 질기다”, 라고
시로 위로받고 사셨던 선생님
자신의 분열된 정신을 순수한
본능과 체험을 통해
석탄을 캐던 열정과
갱이 무너지던 그날의 아우성을
온몸으로 재구성하면서 쓰신 시편들은
폐광촌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같은 보폭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선생님의 삶의 흔적은
후배들에게 뜨거운 행로를 보여준다.
한국문단에서 최초의 광부시인이셨던 선생님
이승을 떠나기 직전까지 펜을 놓지 않으셨던
정신은 내게 큰 가르침이다.
광부시인은 상한 폐를 안고
지금은 금빛 훈장*을 달고
저승에서 편히 쉬고 계실 것이다.
카페 게시글
47집(2024)
제47집 작품 / 정순란
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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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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