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고갈된 시스템 2
자기통제와 인지적 노력 모두 정신노동이라는 것은 이제 확실한 명제로 자리 잡았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일과 유혹을 동시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유혹에 굴복하기 쉽다는사실이 여러 심리 연구에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일곱 자릿수 여러 개를 1~2분 동안 기억하라고 했다 치자,
다른 일보다도 그 수를 기억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라는 지시도 받았다.
그리고 그 수에 집중하는 동안 두 가지 디저트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하나는 악마의 초콜릿 케이크였고, 하나는 착한 과일 샐러드였다.
실험 결과를 보면, 머리가 숫자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유혹적인 초콜릿 케이크를 고를 확률이 놓다.
시스템 2가 바쁠 때는 시스템 1의 영향력이 커지는데,
스스템 1은 단것을 좋아한다.
머릿속이 바쁘면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 언어를 쓰고,
사회적 상황에서 피상적인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다.
숫자를 기억했다가 말해야 할 때면 시스템 2가 행동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지적 부담이 자기통제 약화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술을 한두 잔 마셔도 같은 효과가 나고, 밤에 잠을 못 자도 마찬가지다.
아침형 인간의 자기통제는 밤에 약화되고, 저녁형 인간의 자기통제는 아침에 약화된다.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써도
단기기억이 무의미한 걱정으로 채워져서 업무 수행을 방해한다.
결론은 간단명료하다. 자기통제에는 집중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다르게 표헌하면, 사고와 행동 통제는 시스템2가 수행하는 작업 중 하나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ay Baumeister)가 동료들과 함께 실시한 일련의 놀라운 실험에 따르면,
인지적이든 감정적이든 육체적이든 모든 형태의 자발적 노력에는
서로 공유하는 정신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들은 여러 일을 동시가 아니라 연속적으로 수행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바우마이스터 팀은 의지를 발휘하거나 자기를 통제하는 것은 파곤한 일이라는 사실을 거듭 발견했다.
무언가를 억지로 해야 했다면 다음 작업에서는 자기통제력을 발휘할 의지나 능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 부른다.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전형적인 실험을 보면,
감정이 고조되는 영화를 보면서 감정 반응을 억누르라는 지시를 받은 실험 참가자들은
이후에 약력계를 손으로 얼마나 오래 쥐고 있는가를 알아본 체력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
앞에서 애써 감정을 억누르다 보니, 지속되는 근육 수축이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떨어지고,
따라서 자아가 고갈된 사람은 체력 시험을 포기하고픈 마음에 더 쉽게 굴복한다.
또 다른 실험에서 사람들은 처음에 무와 샐러리 같은 착한 음식을 먹으면서
악마의 초콜릿과 과자를 마음껏 먹고 싶은 유혹에 저항하느라 자아가 고갈된다.
그 뒤 어려운 인지 문제를 만나면 평소보다 일찍 문제를 포기한다.
자기통제력을 고갈시킨다고 알려진 상황이나 사건은 많고도 다양하다.
모두 갈등이 내재하고 자연스러운 성향을 억눌러야 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힌곰 생각하지 않기
자극적인 영화를보며 감정 반응 억누르기
갈이 내재된 선택 연달아 하기
타인을 감동시키기
배우자의 잘못된 행동에 자상하게 반응하기
인종이 다른 사람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랆들을 주제로) 의견 주고 받기
자아가 고갈되었음을 암시하는 행위 또한 매우 다양하다.
평소 식습관에서 벗어남
충동구매에 따른 과소비
심기를 건드리는 행위에 대한 과도한 반응
약력 테스트를 버티는 시간 삼소
인지 작업 결과와 논리적 결정이 신통치 않음
그도 그럴 것이 시스템 2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행위는 자기통제가 필요하고,
자기통제는 힘들고 귀찮다.
인지적 부담과 달리 자아 고갈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동기 상실로 이어진다.
어느 한 가지 일에서 자기를 통제한 뒤에는 다른 일에서 힘을 쏟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물론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할 수는 있다.
여러 실험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동기가 주어지면 자아 고갈 효과에 저항하는 능력을 보였다.
반면에 어떤 일을 하면서 단기기억에 여섯 자릿수를 저장해두어야 할 때는
정신력을 더 쏟아붓기가 불가능하다.
자아 고갈은 머릿속이 바쁜 것과는 다른 정신 상태다,
바우마이스터 팀이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바우마이스터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정신 에너지라는 말은 단순히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경계는 신체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포도당을 많이 소모하고,
노력이 들어가는 정신활동은 포도당이라는 화폐가치로 따져 가장 비싸다.
어려운 인지적 추론에 몰두하거나 자기통제가 필요한 일을 할때면 혈당치가 떨어진다.
달리기 선수가 전력 질주할 때 근육에 저장된 포도당이 줄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 논리를 과감하게 확대하면 자아 고갈은 포도당 섭취로 만회할 수 있다는 뜻도 되는데,
바우마이스터는 동료들과 더불어 여러 실험에서 이 가설을 확인했다.
한번은 실험에 자원한 사람들에게 어느 여성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담은 짧은 무성 영상을 보여주고,
그 여성의 몸짓을 해석하라고 했다.
이들이 영상을 보는 사이에 단어 몇 개가 연속적으로 천천히 화면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참가자에게는 그 단어를 무시하라고 지시했고.
참가자는 어쩌다 주의를 빼앗기면 다시 그 여성의 행동에 집중해야 했다.
이런 자기통제 행위는 자아고갈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자원자들은 두 번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이때 참가자 절반에게는 포도당을 넣어 단맛을 낸 레모네이드를,
절반에게는 인공감미료 스플랜다를 넣어 단맛을 낸 레모네이드를 주었다.
그런 다음 모든 참가자에게 직관적 반응을 무시해야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를 냈다.
직관적 오류는 자아가 고갈된 사람에게서 훨씨 자주 나타나는데,
스플렌다를 넣은 음료를 마신 사람은 예상된 고갈 효과를 나타냈다.
반면에 포도당을 넣은 음료를 마신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뇌에서 당 수치를 회복해 업무의 질 저하를 막은 것이다.
포도당을 소모하는 작업이 동공이 커지고 심장박동 수가 증가하는
순간적인 흥분도 유발하는지 알아보려면 시간을 두고 더 많은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판단에 나타나는 고갈 효과를 직접 보여준 당혹스러운 사례가
최근〈미국 국립과학원 회보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되었다.
이스라엘의 가석방 심사원 여덟 명이 얼떨결에 이 연구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들은 며칠동안 꼬박 여러 건의 가석방 신청서를 검토했다. 신청서는 무작위 순으로 제시되었고,
심사원들은 신청서 한 건당 평균6분을 소비했다.
(가석당 결정은 거부가 기본이고 35퍼센트만 승인된다.
각 건마다 결정을 내린 정확한 시간이 기록되고,
심사원에게 제공되는 하루 세 번의 식사 또는 간식 시간인 하침 휴식, 점심, 오후 휴식 시간도 기록되었다.)
연구를 진행한 사람들은 식사 직후 가석방 승인 비율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싶었다.
승인 비율은 식사 후가 가장 높아서, 신청 건의 65퍼센트가 승인된다.
그리고 다음 식사 시간의 약 두 시간 전부터 천천히 떨어지다가 식사 시간 직전에는 거의 제로가 된다.
다들 예상하겠지만,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어서 연구 진행자들은 이런저런 해명을 조심스레 찾아보았다.
그러나 실험 결과를 설명할 최선의 답은 부정적이다.
피곤하고 배고픈 심사원은 좀 더 쉬운 기본 결정인 가석방 거부 결정을 내리기 쉽다.
아마도 피로와 허기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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