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여우 The Thought-Fox / 테드 휴즈
-달에 있는 여우장갑은 어두운 동굴 속에 산다. (테드 휴즈,「여우장갑」)
나는 상상한다, 이 순간 깊은 밤의 숲:
무엇인가가 살아있다
시계의 고독 옆에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는 텅 빈 페이지 옆에,
창밖에 별이 없는 것을 봄:
어둠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가
조금씩 더 가까이
고독 속으로 들어오고 있음:
차갑게, 어둠 속의 눈발처럼 우아하게,
여우의 코가 닿는다, 잔가지에, 잎사귀에;
두 개의 눈이 한동작에 바쳐진다. 지금
지금, 지금, 지금
나무 사이 눈속에 아기자기한
무늬를 남기며, 그루터기 옆
움푹 들어간 곳에서 머뭇거리는
신중한 절름발이 그림자
대담하게 숲속 빈터를 가로질러 온,
그의 육체, 녀석의 눈동자,
넓어지고 깊어지는 푸르스름함,
골똘히, 훌륭하게,
자신의 볼일을 완수한다
마침내, 뜨거운 여우의 악취가 느닷없이
머리의 어두운 구멍 속으로 들어오고,
창에는 여전히 별이 없다; 시계가 째깍인다,
백지는 채워졌다. (김승일 옮김)
[단상] 시는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Ted Hughes, 1930~1998)에게 그것은 꿈속 여우처럼 온다. 여우는 시의 영감(inspiration)이나 살아있는 영혼, 마음 속 생각을 상징한다. 테드 휴즈는 생명의 의지를 표방하는 시인으로서 그 생명력을 동물들에게서 찾는다. 여우는 일종의 주술적 토템으로 위기마다 꿈에 나타나 계시하는 심볼이다. 이 꿈속 여우와 잠재적인 내면의 목소리가 시라면, 여우는 여우이자 여우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영혼에 관하여』에서 동물을 감각적 존재로 이해하는 철학적 개념을 제시한다. 플라톤은『이온』에서 마그네시아(magnesia)에 빗대어 시의 근원을 말한다. 즉 시인이 시를 짓거나 낭송하는 능력은 인간의 합리적 지식으로서 테크네가 아니다. 이는 마치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듯 가장 근원적인 자석, 무사(Mousa, 뮤즈)의 신으로부터 오는 강력한 힘에 압도되어 나오는 신성한 광기를 말한다. 그 신성의 힘과 광기, 영감은 예술적 감동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호메로스는 무사 신의 말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석)한 탁월한 능력의 자석이다. 이후 자력의 사슬은 음유시인 이온(Ion)과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에게로 이어져 연주되고 향유된다.
텍스트에서‘나’는 지금 텅 빈 페이지-원고지 앞에서 새로운 시작(詩作)을 꿈꾼다. 탁상시계의 고독한 초침 소리, 백지 위를 오가는 무수한, 밤의 손가락. 그것은 시상의 부재와 무의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살아있는 그 무엇으로서 존재와 유를 내포한다. 시의 맹아, 즉 상상의 씨앗과 시적 영감은 한밤 숲속의 어둠과 함께 찾아온다. 창밖엔 별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고독한 시간이 흐른다. 순간, 생각 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조금씩 더 가까이 느껴지는 게 있다. 한 마리 여우가 어둠을 헤치고 눈(雪)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차가운 어둠의 빛. 시의 에스프리는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여우의 감각과 지성을 닮아 있다. 여우 코가 나뭇가지와 잎사귀에 닿는다. 두 눈은 하나(The One)로 모아진다. 견자의 시는 바로 이 나누고 잇는 사이존재를 말한다.
여우가 아름다운 것은? 눈 위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자국 무늬 때문이다. 흰에 흰을 더하면 무가 아닌 무늬가 된다. 나무 그루터기 옆, 깊고 우묵한 곳에서 머뭇거리는 여우의 그림자는 여전히 주의깊고 세심하며 조심스러운 데가 있다. 이러한 여우의 태도는 창작 과정에 있어 시인의 눈과 마음에 비견된다. 숲속 빈터를 힘차게 가로질러 온 여우의 눈은 살아있는 마음과 영혼. 이는 시상이 더욱 명료해지는 순간으로 상상적 우주와 세계를 드러낸다. 순간, 여우는 훅, 하고 역한 냄새를 풍기며 나의 생각 속으로 들어온다. 그 구멍은 시의 닫힌 열림이다. 혼돈의 자궁으로서 코라(χώρα)에 속한다.“달에 있는 여우장갑(이) 어두운 동굴 속에”(「여우장갑」) 살듯이. 창밖은 여전히 별 하나 보이지 않고, 시계의 고독한 초침소리만 들릴 뿐이다. 마침내 한 편의 시가 쓰여진다.
일종의 메타시(Meta-poetry)로서 이 시는 휴즈 자신이 시 창작을 위해 고투하는 과정을 여우의 움직임에 빗대어 섬세하고 유니크하게 보여준다. 상상 속의 여우를 통해 생생한 언어의 광맥을 채굴한 시인에게‘생각여우’야말로 여우의 실재다. 시는 이 상상의 현실과 차이를 지향한다. 여우이면서 여우가 아닌 그것은 즉비(卽非). 차이와 사이, 역치성(易置性, liminality)의 시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데도 없다. 오로지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귀 기울여 살아있는 생각을 쓰는 일이 휴즈가 생각하는 여우의 시작법이다. 참고로 그가 제시하는 창작의 비법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동물의 이름을 머리와 가슴속에 넣고 다녀라.
② 바람과 쉼 없이 마주하라.
③ 기후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라.
④ 사람들의 이름을 항상 불러 보라.
⑤ 무엇이든지 뒤집어서 생각하라.
⑥ 타인의 경험도 내 경험으로 이끌어 들여라.
⑦ 문제의식을 늘 가져라.
⑧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안 보이는 것까지 손으로 만지면서 살아라.
⑨ 문체와 문장에 겁을 먹지 말이라.
⑩ 고독을 줄기차게 벗 삼아라.
첫댓글 시가 어디서 오는지, 무엇이 시를 데려오는지, 시는 어떻게 오는지···, 멋진 시에 곁들여진 산문도 참 아름답습니다.
한 마리 은빛 여우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시가 되는지, 고요히 숨어 웅크려 꿈꾸는 여우가 시가 되는지, 그 무엇이 시가 되는지 알 수 없어도 높은 산, 깊은 골을 거쳐온 맑은 물과 같은 산문을 읽으며 시와 더 가까워지는 느낌입니다.
A. 시가 앎과 느낌의 한 방법이라면, 예의 질문은 양질의 시 읽기와 쓰기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랄까. 지적 정서적 호기심으로 자주, 깊이, 클로우즈 리딩(close reading)을 하다 보면 실감할 듯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시가 되는가’는 유위-작위의 문제로 은빛 여우의 눈빛도, 꿈꾸는 여우도 시의 라이트모티브가 되겠지요. 하지만 ‘시는, 시상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는 무위와 우연(성)에 기반한 유위의 문제가 되겠지요. 이와 관련하여 be와 become, is와 is not의 문제. 즉 시-이다 vs 시가-되다, 또는 시-이다, 시가-아니다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되기(becoming)’는 결국 시의 아이디어나 인스피레이션이 어떻게 한 편의 시가 되는가와 호응하는 변화와 변용의 과정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변화무쌍한 세계를 드러내는 최상의 방식이 포이에시스(Poiesis, 창작 일반)라면 과정(Process)이야말로 시의 실재(Reality)가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여우는 여우인 동시에 여우가 아니다’의 경우, 시는 ‘이다is’와 ‘아니다is not’의 사이에서 비롯되는 반유(半有)의 존재 사건입니다.
침묵의 세계와 언어, 상상적 세계와 우주의 현전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가? 더욱이 중요한 것은, 참된 현실성(Wirklichkeit)으로서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것’이자, 미학과 윤리의 ‘궁극적 관심사’(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참된 현실성을 깊이 알고 느끼며 드러내는 게 시와 예술의 아름다움이랄까..
휴즈 자신이 시 창작을 위해 고투하는 과정을 여우의 움직임에 빗대어 섬세하고 유니크하게 제시하고 있다. 상상 속의 여우를 통해 생생한 언어의 광맥을 채굴한 시인에게 ‘생각여우’야말로 진짜 여우, 다른 여우인 것이다. 시는 이 다름과 차이를 지향한다. 여우이면서 여우가 아닌 그것은 다른 감정-언어, 다른 리듬-이미지, 다른 자연-현실, 다른 경험-사물을 말한다ㅡ 그렇다. 시인은 제몸에서 시가 떠나면 또 시를 기다린다 ㅡ 그 고독과 적막이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