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가(歌)
12.1. 오도가(悟道歌)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으니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구나
◇
봄 산에 꽃은 웃고 새는 노래하며
가을밤에 달은 밝고 바람은 시원해라
바로 이러한 때에
몇 번이나 무생無生의 한 곡조 노래를 불렀던가
한 곡조 노래를 아는 사람 없으니
시절인가 운명인가 어이하리오
산 빛은 문수의 눈이요
물소리는 관음의 귀로다
소를 몰고 말을 모는 이가 보현이요
장삼이사가 본래 비로자나불일세
부처와 조사의 말씀이라 하지만
참선과 교학이 어찌 다르리오
단지 분별을 일으켰을 뿐이네
돌사람은 젓대를 불고
나무말은 졸고 있구나
사람들은 자성을 알지 못하고서
성인의 경계이지 나의 분수 아니라 하니
가련하구나 이런 사람들은 지옥의 잔재로다
이내 전생의 일을 돌이켜 생각하니
사생과 육취 온갖 험한 곳에서
오랜 겁 동안 윤회하며 신고를 겪었네
오늘 눈앞에서 자성을 분명히 보니
이내 마음 견딜 수 없구나
다행히 숙세의 인연이 있어
사람이요 장부로 태어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으니
사난四難338) 중에서 하나도 부족함이 없어라
어떤 사람이 소가 되면 콧구멍 없다 장난으로 말하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나의 본래 마음을 깨달으니
명상名相이 모두 공하여
공하여 텅 비고 고요한 곳에 늘 광명이 나오네
이 말을 한 번 듣고부터 모든 것을 깨달으니
눈앞에는 홀로 밝은 적광토寂光土요
정수리 뒤에는 신령한 금강계로다
사대와 오음이 청정한 법신이라
극락세계는 화탕지옥과 한빙지옥이요
화장찰해華藏刹海는 검수지옥과 도산지옥이로다
법성토法性土는 썩은 흙이요 똥무더기이며
대천사계大千沙界는 개미굴이요 모기 눈썹이라
삼신三身과 사지四智는 허공과 만상萬象이니
눈길이 닿는 곳마다 본래 천진하도다
매우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솔바람이 서늘하니
사방은 푸른 산이요
가을달이 밝으니
하늘은 물처럼 맑구나
노란 국화와 푸른 대나무
꾀꼬리 소리와 제비 소리에
늘 진여眞如의 큰 작용이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천자 자리를 준들 어찌 받으랴
평지에 파도를 일으키는 격이요
대궐의 옥새는 참으로 괴이하니
해골 속의 눈동자로다
한량없는 부처가 늘 눈앞에 나타나니
초목과 깨진 기왓장이 그것이요
『화엄경』과 『법화경』을 내가 늘 설하니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동작이 그것이라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니
이는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지옥을 바꾸어 천당을 만드는 것이
모두 나의 손에 달려 있고
백천 가지 법문 한량없는 이치가
흡사 꿈을 깨고 연꽃이 핀 것 같아라
이변二邊과 삼제三際를 어디서 찾으랴
가없는 시방세계가 큰 광명인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대법왕이라
모든 법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시비와 호오好惡에 어찌 걸림이 있으랴
어리석은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여겨서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겠지만
귀가 뚫린 사람이 있다면
바로 믿고 의심하지 않아서
곧 안신입명 하는 곳을 얻으리라
속세의 사람들에게 이르노니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에 다시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 덧없는 목숨은
아침에 저녁을 보장하기 어려우니
눈먼 나귀가 발길 닿는 대로 가서
편안한지 위태한지 전혀 모르는 꼴이라
저 사람도 이러하고 이 사람도 이러하구나
어이하여 나에게 와 무생無生을 배워서
인간과 천상의 대장부가 되지 않는가
내가 이처럼 입이 아프게 재삼 당부하는 것은
예전에 나그네이었기에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는 것일세
아아! 그만이로다
대저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는 것을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으니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홀연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자
문득 삼천세계가 나임을 깨달았노라
유월이라 연암산 아랫길에
농부들이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