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스포츠 유틸리티 비히클). 레저 활동을 위한 다목적 차를 뜻한다. RV, MPV와 의미가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김새와 쓰임새가 다르다. RV, MPV는 넓은 실내 공간과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SUV는 뛰어난 험로 주파 능력을 기본으로 갖춘다. 따라서 바닥을 껑충 띄운 차체에 사륜구동 시스템을 어울린다. 몸집도 풍성해 넉넉한 실내와 짐 공간, 쾌적한 시야 등도 품는다.
BMW도 이런 SUV를 여럿 만든다. X1, X3, X5, X6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BMW는 SUV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유틸리티(유용성) 대신 액티비티(활발함)를 붙여 SAV(스포츠 액티비티 비히클)라고 부른다. 이는 흔한 마케팅 용어가 아니다. BMW의 SUV 모델 전부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이다. 의미는 바꿔 쓴 단어 그대로다. 조작과 반응 사이의 간극을 바짝 조여 움직임에 활기를 불어 넣은 SUV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실용성을 버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SUV의 장점에 빠듯한 몸놀림을 더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운전 재미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BMW식 SUV인 셈이다. SAV라는 말은 1999년 생겨났다. BMW의 첫 SUV인 X5가 등장하면서다. 1세대 X5는 SAV라는 BMW의 주장을 증명해 낸 장본인이었다. SUV에게 기대 할 수 없었던 민첩한 핸들링과 탄탄한 주행감각을 자랑했다.
덕분에 1세대 X5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6년간 약 62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최초의 프리미엄 SUV’ 타이틀은 1997년 벤츠 M-클래스에게 빼앗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5가 일으킨 파장은 거셌다. 이전까진 다소 헐렁하고 느긋한 반응이 SUV의 미덕이었다. 하지만 X5 이후 사람들은 세단처럼 빠릿빠릿한 움직임을 가진 SUV를 원했다.
경쟁자들 발등엔 별안간 불똥이 튀었다. X5 덕분에 SUV 거동에 날을 세우느라 분주해졌다. 산만한 덩치만 내세우며 뒤뚱거리는 거동을 자랑삼던 모델은 시장에서 도태되기 시작했다. 물론 고유가 현상도 한 몫 했다. SUV의 탈을 쓴 스포츠카, 포르쉐 카이엔 등장 역시 X5의 성공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X5는 2세대로 진화했다. 이전에 비해 차체 길이를 무려 187㎜나 키워 한층 더 당당한 체구를 갖게 되었다. 차체 구석구석을 단단히 여민 까닭에 강성도 무려 15%나 늘었다. 반면 무게 증가는 최소한의 한도 안에서 그쳤다. 크기를 확 키운 두 개의 그릴과 뾰족하게 오린 헤드램프 덕분에 박력의 수위도 한층 더 높아졌다. 그렇다고 크기나 형태가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차체 구석구석에 너울진 곡선이 세련된 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2세대에 거는 기대는 높았다. 1세대의 외모는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변화는 없었다. 고유의 단단한 느낌만 한층 더 강조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스타일은 X6를 위해 아껴둔 까닭이다. 1세대에 담겨있던 X5의 고유 디자인 요소는 여전하다. 터프한 느낌 내는 네모진 휠 하우스 아치와 뒤 범퍼를 뚫고 나온 머플러, 편의성을 위해 위 아래로 나눠 열리는 테일 게이트 등이 그대로다.
늘어난 길이 중 114㎜는 실내 공간 크기를 결정짓는 차축 안에 담겼다. 덕분에 실내도 이전보다 더욱 넉넉해졌다. 무릎공간과 머리 위 공간 모두 여유롭다. 성인 다섯 명이 타고 먼 길 떠나기에 무리 없을 정도다. 짐 공간은 1세대에 비해 약 13% 커졌다. 짐 공간의 평소 크기는 620L. 뒷좌석 등받이를 접을 경우 1750L로 늘어난다. 과장 좀 보태 대형 냉장고도 꿀꺽 삼킬 기세다.
앞좌석 풍경은 좌우 대칭 대시보드에 운전석으로 고개를 튼 센터페시아를 더해 완성했다. 코드네임 E60, 5세대 5시리즈에서 눈에 익은 구성이다. 앞창에 각종 정보를 띄우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각종 멀티미디어 기능과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품은 BMW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iDrive’ 등도 익숙한 장비들이다.
시승차는 X5 30d. 최고 245마력, 55.1㎏․m의 힘을 내는 직렬 6기통 3.0L 디젤 터보 엔진을 단다. 변속기는 2010년의 부분변경을 통해 자동 6단에서 8단으로 변경됐다. 이 때 출력도 늘어나고 무게도 줄었다. 이전보다 10마력, 2.1㎏․m의 힘을 더 낸다. 무게는 약 125㎏을 덜어냈다.
이런 변화는 연비도 개선했다. X5 30d는 부분변경 전보다 2.1㎞/L가 높은 12.6㎞/L(구 연비 기준)의 연비를 낸다. 실제 연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상 밖의 결과다. X5 30d는 영하 5도를 밑도는 상황에서 가혹한 주행을 반복해도 10㎞/L의 연비를 기록했다. 예전에 시승했던 X5 35i의 연비는 이보다 한참 낮았다. 휘발유와 디젤의 가격 차이를 생각하면 격차는 더욱 커진다.
엔진은 조용하다. 320d, 520d 등에 얹은 직렬 4기통 디젤 엔진과는 다르다. 아이들링 때도 숨소리가 고르다. 달리면 한층 더 조용해진다. 그러나 초반에 뜸 들이다 힘을 와장창 쏟아내는 터보 엔진 특성은 생각보다 크다. 때문에 가속감이 매우 터프하고 뾰족하다. 회전수를 적당히 띄우고 가속페달을 다독여야 힘을 원하는 만큼 꺼내 쓸 수 있다.
스티어링 휠 반응은 짐작보다 빠르다. 손끝을 따라 앞머리를 잽싸게 비튼다. SAV라는 BMW의 주장은 이 같은 민첩함에서 비롯된다. 댐핑 스트로크 역시 동급 경쟁자보다 빠듯하다. 고유 리듬을 파악하면 무게 중심을 옮겨가며 손쉽게 휘두를 수 있다. 커다란 덩치가 의식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세단보다 한층 부드럽다. 노면 충격을 묵직하게 걸러낸다. 높직한 차체와 시야, 사륜구동 시스템 덕분에 도로의 경계도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다.
2세대 X5는 이제 소위 ‘끝물’이다. 세대교체를 앞뒀다는 뜻이다. 3세대 X5는 빠르면 올해 말 데뷔할 예정이다. 국내 도입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3세대 X5가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세대 X5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안팎과 주행감각에 녹아든 든든한 느낌은 아직도 유효했다.
X5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면 주저 할 것 없다. 오히려 지금쯤이 차의 완성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조립공정도 성숙되고 자잘한 오류나 잔고장의 원인 등도 바로 잡혔을 가능성이 높다. 딜러가 주는 가격 혜택도 큰 매력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소비자가 더 잘 안다. 2세대 X5 부분변경 모델이 출시 된 후 국내 판매량은 매해 늘어갔다. 그리고 X5는 세대교체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던 작년에 가장 많이 팔려 나갔다.
첫댓글 이제는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