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IT)기기와 자동차 분야에서 ‘파워(Power)’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결선에 오른 두 선수는 2차 전지인 리튬전지와 마이크로 연료전지.
리튬전지가 현재 우세를 지키며 미래로 가져가는 것이라면, 후자는 미래를 현재로 끌어 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파워’는 단연 재 충전이 가능한 2차 전지인 리튬전지이다.
노트북PC · 휴대폰의 고성능화와 컬러화, 카메라 모듈 탑재 등으로 전력 소모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리튬전지 없는 IT제품은 기대할 수도 없게 됐다. IMT―2000 및 휴대용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서비스 등 첨단 멀티미디어 모바일 서비스가 본격화될수록, 좀더 강하고 오래가는 리튬이온 전지, 리튬폴리머전지 등의 리튬전지의 ‘파워’는 점점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휴대폰과 노트북PC용 시장에서 팔린 리튬전지는 10억 개 규모.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연평균 13% 이상의 성장세가 이어갈 경우, 2008년 이면 연간 19억 개 이상의 신규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소형 IT제품은 원가 구성을 들여다 보면 리튬전지의 비중이 더 두드러진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기능을 갖춘 휴대폰이지만, 이들 단말기 원가의 10% 정도는 언제나 리튬 전지 몫이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 역시 ‘파워’의 해결사로 리튬전지를 꼽고 있다.
이 분야는 각국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일본은 정부가 개발비 전액을 부담하는 ‘뉴선샤인(New-Sunshine)’ 프로젝트의 하나로 전기자동차용 및 전력저장용 리튬전지 기술을 개발했고, 미국은 ‘USABC(United State Advanced Battery Consortium)’ 주도로 전기자동차용 전지의 제조 및 평가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유럽이나 중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 · 프랑스 · 덴마크 컨소시엄이 주도하는 ‘줄(Joule)’ 프로그램을 통해 차세대 2차 전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중국 역시 과학기술부의 스우(十五)계획에 전기자동차를 포함시켜 차세대 전지 개발과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각축장에 끼어든 우리의 형편은 어떨까? 다행히 국내 업체들은 2차 전지 산업을 선도할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소재기술은 뒤떨어지지만 제조 기술과 평가기술은 일본과 대등한 정도다. 실제로 삼성 SDI · LG화학이 2년 전부터 연구개발과 지속적인 설비투자를 병행, 올해 약 25% 점유할 것으로 예측되는 등 단기간 내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특히 LG화학은 지난 2001년 미국 현지에 연구법인인 CPI 회사를 설립한 후 꾸준한 연구를 했고, 그 결과 자체 개발한 리튬폴리머전지를 탑재한 전기자동차가 세계적 자동차경주에서 2년 연속 대회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우승하도록 하기도 했다.
미래의 파워 연료전지
리튬전지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마이크로 연료전지(fuel cell)이다.
1839년 영국의 W. Grove가 발견한 원리를 응용한 연료전지는 원래 미국의 제미니 우주선에서 처음으로 사용되면서, 각광 받기 시작했고 잠수함 등으로 사용처가 꾸준히 확산됐다. 최근에는 노트북 PC 및 휴대전화의 배터리용으로 마이크로 연료전지가 등장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덕분에 연내에 연료전지를 탑재한 노트북PC · 디지털 캠코더 · 휴대전화기 등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형 전지이기 때문에 재충전이 필요 없다. 단지 카트리지 형태로 용기를 교환해주기만 하면 거의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물 이외의 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환경오염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는 장점까지 갖고 있어, 기술 및 가격의 안정화만 이룬다면 현재의 2차 전지를 급속히 대체할 전망이다. 국내외 업체들이 연료전지의 상용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바 · NEC · 히다찌 · 소니 등은 지난 2002년부터 일찌감치 마이크로 연료전지가 탑재된 노트북 · PDA 등의 시제품을 잇따라 개발했고 미국의 경우에도 맨해튼 사이언티픽스, 모토로라, 미케니컬 테크놀로지(MTI)사를 중심으로 휴대용 연료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맨해튼 사이언티픽스사는 휴대전화 케이스 자체에 연료전지를 장착했고, 모토로라는 잉크 카트리지형의 연료를 이용한 메탄올 연료전지를 개발했다.
국내에서도 연료전지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삼성SDI와 공동으로 메탄올 용액 100cc로 노트북PC를 10시간 가량 구동할 수 있는 노트북용 DMFC 방식의 연료전지를 개발한데 이어 DMFC보다 효율이 높고 순간 출력이 강해 가전 제품과 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는 고분자전해질연료전지(PEMFC)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밖에도 LG화학이 내년까지 상용화를 목표로 연료전지를 개발하고 있는 것을 비롯,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SK · LG칼텍스정유 등 유화업계가 2005년 상용화를 목표로 앞다퉈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격화되고 있는 ‘파워’ 전쟁의 최후 승자는 누구일까?
당분간 리튬 전지가 우세를 지키다가, 서서히 연료전지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양 분야에서 기업이나 국가별로 선두그룹은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우승자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처럼,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본 미국 기업을 따돌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리튬이온전지[Lithium-ion batt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