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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월 23일 목요일. 흐림, 바람, 비
매일 계속해서 외곽으로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오늘은 베이루트 시내를 돌아보며 좀 여유를 갖기로 했다. 숙소에서 소고기를 버터에 익혀서 토마토와 함께 아침을 해결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새로 예약한 숙소로 기대심을 갖고 간다. City Suite Hotel은 친절했지만 숙소는 어둡고 오래되 보였다. 손님이 거의 없는 개점 휴업상태인 것 같다. 베이루트 아니 레바논 전체가 그런 분위기다. 반정부 시위 때문인지 아니면 겨울이라서인지 관광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배낭을 던져 놓고 시내로 나왔다. 함라 거리로 왔다. 아침이라 사람들도 많지 않고 이제 가게들이 문을 연다. 함라 지역이 여행객들의 중심이고 또 베이루트의 최고 번화가이다. 호텔과 먹거리, 볼거리, 쇼핑 거리로 붐비는 곳이다. 미국 LA의 스타의 거리를 연상케 하는 표식이 보도에 별 모양으로 표시되어 있다. LA의 알려진 콘크리트 바닥에는 약 170여 명의 영화계 명사들의 상징물들이 자유분방하게 표현 되어 있다. 영화, 텔레비전 스타, 유명 뮤지션의 이름이 새겨진 별 모양의 브론즈 2,500여 개가 거의 5km에 걸쳐 보도에 깔려 있는데 여기 함라 거리에도 별 모양의 브론즈가 바닥에 있다.
미국은 영화 ,TV, 라디오 스타들의 이름들인데 여기는 더 폭넓게 방송국, 남성복 메이커, 의류 브랜드 등 아주 다양했다. 비둘기 바위를 볼 수 있는 바다로 갔다.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언제 봐도 좋다. 사람들도 보인다. 길 건너편에는 베이루트에서 알려진 식당 BARBAR 식당이 보인다. 거리를 걷다보면 가끔 만나는 체인점 같은 식당이다. 15번 버스를 타기로 했다. 15번 버스도 두 종류가 있다. 도라에서 출발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콜라 터미널을 거쳐서 한 바퀴 도는 버스는 흰색 바탕의 글씨이고, 반 시계 방향으로 도는 버스는 붉은색 바탕의 글씨다.
우리는 길을 건너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15번 버스를 기다렸다가 탔다. 샤를 헬루 전 정류장에서 내렸다. 순교자 광장으로 간다. 순교자 광장은 승용차들로 가득 찬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고 기념 조형물은 작아보였다. Mohammad Al Amin Mosque를 찾아갔다. 내부를 들어가 보려한다. 베이루트의 상징물처럼 버티고 있는 모스크는 2008년에 지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받은 48m 길이의 푸른색 돔이 있다. 입구 앞에는 올리브 나무들이 몇 그루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여자들은 검은 복장을 입어야 했다. 모자까지 달린 커다란 차도르를 빌려준다. 이슬람 사회에서의 여자들은 차도르와 히잡을 입고 다닌다. 차도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가리는 까만 옷이고, 히잡은 엉덩이 쯤 까지 가리는 조금 긴 옷이나 머리카락을 가리는 스카프를 가리킨다. 통통한 여자들은 히잡을 좋아한단다. 부르카는 눈에 그물망이 있는 온몸을 가리는 복장이다. 니캅은 눈을 제외한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복장이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좀 다르지만 여기 레바논은 많이 개방적인 복장이다.
아내도 차도르를 걸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스크의 내부는 거의 비슷한 것 같다. 둥근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샹들리에 그리고 바닥에 깔린 넓은 카펫이 기본이다. 규모는 크고 깔끔하고 넓다. 샹들리에 3개가 매달려있는데 중앙이 가장 크다. 둥근 천장의 문양이 아름답다. 카펫 기도자리는 질서 있게 잘 구분되어 있다. 남여가 구분되어있다. 신발장도 잘 만들어져있다. 둘러보고 나왔다. 순교자의 광장 앞에는 시위대가 사용했던 천막이나 설치물들은 제거하는 트럭과 군인들로 어수선하다.
모스크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Le Grand Théatre des Milles et Une Nuits, 외형은 멀쩡한데 내부는 내전으로 파괴된 건물이다. 레바논의 예술과 문화 그리고 엔터테인먼트를 이끌었던 중요 공연장이었다. 지금은 낡고 버려진 상태로 있다. 내부의 화려하고 우아한 아름다운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되는 파괴된 건물이다. 들어가지 못하도록 펜스가 쳐져있다. 최근 반정부 시위로 부서진 상가들의 건물이 보인다. 깨진 유리창과 검게 그을린 모습, 그리고 낙서들이 보인다.
그 옆에는 지대가 낮은 빈 공터가 있는데 유적과 풀이 자라고 있다. 우리는 정면에 견고하게 세워진 건물을 향해 섰다. 그랜드 세 레일(Grand Serail (Government Palace)) 은 레바논 정부 궁전, 총리 청사이다. 레바논 국회에서 몇 블록 떨어져 있다. 베이루트 시내 언덕, 세레일 언덕에 세워진 오스만 스타일의 유서 깊은, 견고하게 세워진 모습이다. 레바논(Lebanon)은 지형이 좁은 띠 모양이고, 세계의 작은 독립국가들 중의 하나이다. 남북 길이 215km, 동서 최대 길이 약 90km이다.
북쪽과 동쪽은 시리아, 남쪽은 이스라엘, 서쪽은 지중해와 경계를 이룬다. 수도는 베이루트이다. 레바논, 특히 해안 지역에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지가 몇 군데 있다. 페니키아의 항구도시였던 티레(지금의 수르), 시돈(지금의 사이다), 비블로스(지금의 주바일)는 BC 3000년경 무역과 문화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1920년이 되어서야 현대 국가의 모습이 갖춰졌다. 그 해에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위임을 받아 레바논을 통치했던 프랑스는 그레이터 레바논이라는 국가를 설립했다.
레바논은 그 후 1926년에 공화국이 되었고 1943년 독립을 이룩했다. 레바논은 아랍 세계와 많은 문화적 특징들을 공유한다. 하지만 많은 아랍 인접국들과 구별되는 특징도 갖고 있다. 레바논의 울퉁불퉁한 산악지형은 레바논 역사 내내 다양한 종교와 인종 집단들, 그리고 정치적 반체제 인물들을 위한 피난처 역할을 해왔다. 레바논은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 중의 하나다. 그리 풍요롭지 못 한 자연자원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은 오랫동안 중동의 활발한 상업적·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활기와 성장이라는 외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잠재되어 있었다. 레바논은 종교적, 사회적·경제적 조직들 간의 내부 문제와 싸워야 했고, 또한 이스라엘과 이웃 아랍 국가들, 레바논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과의 관계에서 국가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싸워야 했다. 이런 상황은 1975년에 내전으로 비화되어 극심한 피해를 가져왔다. 1990년에 내전이 종료된 뒤 레바논은 사회경제적·정치적으로 안정을 회복했다.
하지만 외부의 개입과 안배주의에 따른 관계에서 발생하는 잡음들이 계속 생겨났기 때문에 레바논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21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자연환경은 서에서 동으로 4개 지형구로 뚜렷이 나누어진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좁은 해안평지, 남북으로 뻗어 있는 해발 2,000∼3,000m의 레바논 산맥(자발 루브난), 이 산맥과 나란히 뻗어 있는 길이 175km의 기름진 알비카(베카) 계곡, 약 2,000m 높이로 동쪽 국경을 이루며 남쪽으로 뻗어 더 높은 헤르몬 산까지 이어지는 안티레바논 산맥(알자발앗샤르키)이 그것이다.
레바논에는 다양한 기후 인자가 존재한다. 강우량은 중동지방의 기준으로서는 높은 편으로, 대부분 겨울에 눈과 비로 내린다. 원래 빽빽한 삼림지대가 많았으나 지금은 국토의 약 8%만이 숲으로 덮여 있다. 수세기에 걸친 개발로 얼마 남지 않은 유명한 백향목은 법으로 보호하는데, 산비탈 숲에서만 볼 수 있다. 광물자원은 거의 없다. 레바논인 들은 인종적으로 페니키아인·그리스인·아르메니아인·아랍인의 피가 섞인 혼혈종이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알아듣는 식자층의 폭이 넓으며, 상당수의 레바논 인이 3개 국어를 구사한다. 주민 대부분이 아랍어 상용자이며 터키어와 아르메니아어의 상용자가 소수 있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도(수니파와 시아파)가 가장 많아 50%가 조금 넘는 것으로 추산되며, 다음이 그리스도교도(마론파, 그리스정교, 기타 파들)로 약 40%이다. 레바논은 우리나라 경기도만하다. 한 국가의 영토로 볼 때 작다면 작은 크기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작은 나라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 무려 다섯 군데나 된다는 사실이다.
그뿐인가.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이 있어 가을부터 봄까지 스키를 탈 수 있다. 산악지역은 여름에도 서늘해서 베이루트에 사는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러 온다고 한다. 산악지역에서 차로 한 시간만 달리면 푸른 지중해가 펼쳐진다. 스키를 타고나서 한 시간 후 바다에서 수영이 가능한 곳이 레바논이다. 총리 관저 앞에는 동상이 서 있다. President Riyad El Soloh Statue, 아마도 레바논의 전 대통령인 것 같다. 칼릴 지브란 공원도 있다. 칼릴 지브란의 흉상을 중심으로 작은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Downtown Tree라는 커다란 나무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뒤에는 핑크빛 예쁜 건물도 보인다. 작고 예쁜 교회도 있다. 피카소가 연상되는 그래피티(낙서 그림)가 보인다. 소의 얼굴들이 한곳으로 집중되어있다. 커다란 성당(Saint Georges Maronite Cathedral)이 보인다. 이 성당은 로마에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모방해서 만들었다. 1884년에 세워졌는데 1975년 내전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1997년에 다시 재건했다고 한다. 그 옆에 로마 유적(Roman Cardo Maximus)이 보인다.
여러 개의 기둥이 있다.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방어벽이 군인과 함께 보인다. 모스크가 있는 큰 길로 나왔다. 커다란 폐허 건물 The Egg가 있다. 시네마 건물로 짓다가 중단되었는데 저항의 상징으로 방치되고 있단다. 모양이 커다란 달걀 모양이라서 그렇게 이름지어진 것 같다. 페인트 낙서로 The Egg라는 글씨가 보인다. 시위대용 국기를 팔고 있는 노점상이 보인다. 파는 건지 나눠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 크고 작은 국기가 가득하다.
레바논의 국기는 위로부터 빨강·하양·빨강의 2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기의 가운데에는 레바논 시다(백향목)가 있다. 1943년 12월 7일에 국기로써 제정하였다. 나무를 제외하면 오스트리아의 국기와 거의 비슷하다. 빨강은 희생을 상징하고, 하양은 평화와 레바논의 산들을 덮고 있는 흰 눈을 상징한다. 레바논 시다는 불변·불멸을 상징한다고 한다. 베이루트 중심부의 순교자 광장(Martyr's Square)의 남북을 지나는 거리의 이름은 각각 Gouraud 거리와 Weygand 거리이다.
이 둘이 누구냐고? 레바논이 프랑스 위임통치령이던 시절 제 1, 2대 총독이다! Gouraud 장군은 1920년 대 레바논을 주州에서 하나의 국가로 선언함으로서 현대 레바논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좀 올드 한 골목길을 들어섰다. 거리 이름이 Gouraud이다. 오래된 거리에는 카페와 식당이 많이 보인다. 한국 식당도 보이고 일식집과 태국식당도 보인다. 유명 커피집도 있다. 내전이 있기 전 여기가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이었다고 한다. 학자와 학생들, 작가와 예술가들이 모여서 아랍 커피를 마시며 토론을 했다고 한다.
천주교 신학교(Collège du Sacré Coeur)가 보인다. 그 건너편에 천주교 성당(Saint Joseph Church)이 보이는데 거의 800년이 되었단다. 문이 열려 들어가 보았다. 규모는 작았지만 아주 견고해 보이는 요새 같은 성당이다.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는 레바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지중해에 면하며 레바논 산맥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베이루트는 오랫동안 중동 아랍권에서 경제·사회·지식·문화생활의 중심지였지만 사회적·정치적 혼란으로 특히 1970년대 이후 모습이 극적으로 달라졌다.
동(東)베이루트와 서(西)베이루트는 대략 3각형의 반도를 이루면서 바다까지 펼쳐져 있는 알아슈라피야 산과 알무사이티바 산에 각각 자리 잡고 있다. 가까운 배후지에는 폭이 좁은 해안평야 앗사힐이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다. 기후는 지중해성으로 여름에는 덥고 습하며 짧은 겨울 동안에는 비가 많이 온다. 베이루트대학교와 베이루트아랍대학교를 비롯해서 전통적으로 훌륭한 명성을 누려온 여러 개의 대학교가 있다.
베이루트에는 2개의 주요간선도로가 지나가는데 하나는 해안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또 하나는 동쪽으로 알비카(베카) 계곡을 지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까지 연결된다. 항구와 칼다 남쪽 교외에 위치하는 베이루트 국제공항을 통해 여객 및 화물운송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제 세계에서 이름난 아름다운 계단을 찾았다. 계단 입구에는 Rue Saint Nicolas라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이 계단 길 이름인 것 같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잘 모르겠다. 일단 올라가기로 했다. 작은 미술관도 있다.
공연이 끝나고 청소를 하지 않은 분위기다. 썰렁하다. 열쇠들이 걸려있는 것도 보인다. 폐허로 방치된 작은 집도 있다. 낙서도 있고 왕관을 쓴 동상도 비스듬히 서 있다. 작고 예쁜 가게들도 보인다. 겨울이라 사람들이 없어서 더 삭막해 보인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아름답게 보이겠지. 사진에서 본 낯익은 모습이라 좀 정이 가는 계단이다. 계단을 다 오르니 Sursock Museum이 나타난다. 길 건너편에 있다. 현대미술 박물관이란다. 하얀색 대리석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건물이 맘에 든다.
입구를 들어서니 마당에 여러 개의 조각 작품들이 보인다. 입장료는 없다. 기부금을 맘대로 내면 된다. 우리는 그냥 들어가 구경을 했다. 레바논과 국제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현대 미술관으로 개조된 개인 대저택이다. 건물 자체가 아름답다. 레바논 건축양식의 훌륭한 예이다. 컬렉션은 자주 바뀐다고 한다. 현대 미술, 일본 판화, 오래된 사진들이 있다. 흑백 사진이 여자들의 의상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아랍 풍의 아름다운 거실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초상화도 많다.
그림들이 있다. 레바논 베이루트 출신의 화가 Georges Daoud Corm(1896~1971)의 초상화가 인상적이다. 대머리 아저씨가 좀 날카로워 보인다. 커다란 민속화가 재미있다. 옛날의 레바논 삶의 모습이 코믹하고 화려하게 잘 그려져 있다. 풍경과 숨겨진 사람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이 건물의 주인인 Nicolas Ibrahim Sursock(1875~1952)의 흉상도 보인다. 둘러보고 나왔다. 건너편에는 경찰이 지키고 있다.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교회와 왕궁같은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중심에는 Sursock Palace이 보인다.
19세기 정원이 있는 대저택이란다. 늦은 오후다. 이제 숙소 방향으로 돌아가야겠다. 버스를 타고 가려고 다시 계단을 내려와 샤를 헬루 터미널 방향으로 간다. 사람들이 줄지어 사먹는 캐밥 집이 나타났다. 우리도 하나 샀다. 진하게 들어간 마요네즈의 맛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정말 값도 저렴하고 맛있다. 서민들이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한 개를 사서 둘이 나눠 먹었는데도 배가 부르다. 15번 버스를 타고 다시 해변가에서 내렸다. 해가 기울어가는 서쪽 지중해를 본다.
길 건너편에 있는 KFC 매장이 우리를 당긴다. 들어가서 치킨을 주문하고 창가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 주변이 좀 썰렁하다. 차분해도 너무 차분해 곳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다. 새로 잡은 숙소 주변에는 슈퍼가 없었다. 여기 저기로 다녀 봐도 슈퍼가 없었다. 그냥 들어왔다. 샤워를 하려고 물을 틀어보니 호수가 망가져 물이 줄줄 샌다. 카운터에 가서 사정이야기를 하니 기사가 와서 고쳐 보려고 했지만 금방 고쳐지지 않았다. 방을 바꿔준다.
208호에서 304호로 옮겼다. 손님이 없어 관리가 좀 허술한 것 같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숙소다. 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탄수화물, 맛이 좋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레바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숙소를 찾아보았다. 내일 하루 만 더 자면 우리는 이제 레바논을 떠난다. 내일은 숙소를 옮기고 제타 동굴을 다녀와야겠다. 방법을 알아보다가 잠이 들었다.
1월 23일 경비- 버스비 4,000, 캐밥 2000, KFC치킨 15,750(12,508원),
숙박비 51,251원
계 6,000*0.6=3,600원
누계2,89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