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병아리, 서리까마귀는 들어 본 말일 겁니다.
사실 그 뜻을 제대로 알고 말을 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겠지만 예전 문학작품에 가끔 나왔던 말입니다.
서리병아리는 사전에 ‘이른 가을 서리가 내릴 무렵에 깬 병아리’로 나와 있습니다. 날이 추워질 때에 태어나 제대로 크지 못하기 때문에 서리병아리는 ‘힘없이 추레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양계장에서 온도를 맞춰 수천 개의 달걀이 부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미닭이 알을 품어서 부화시켰습니다. 병아리는 보통 20정도가 되면 알에서 깨어납니다. 닭은 주인이 알을 주어 부화시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알아서 알을 모아 부화를 시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보통 일곱 여덟 개의 달을 모았다가 둥지 한 쪽에서 알을 품는데 이것을 발견하면 알을 두세 개 더 넣어주기고 했을 겁니다.
지금은 어미닭이 알을 품어서 부화시키는 것은 봄에 민속촌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고 대부분 사람이 기계를 이용하여 부화시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리병아리는 제가 어려서도 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날이 추워질 때에 부화가 되면 제대로 크기가 어렵고 다 자란다고 해도 덩치가 작아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는 못했던 기억입니다.
서리까마귀는 정지용 님의 시 「향수」에 나오는 말인데 사전에도 이에 대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에 나는 까마귀’정도로 얘기가 되는데 거기에 서리병아리는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오늘 병아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오리 새끼 때문입니다. 오리 새끼를 따로 부르는 이름은 없는 것 같고 굳이 하자면 ‘오리병아리’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없이 ‘오리 새끼’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제 출근하다가 서리오리를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서리오리새끼’입니다. 이미 서울에 서리가 내렸고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데 홍제천에 어미오리 한 마리가 부화된 지 1주일 정도 되어 보이는 오리 새끼 다섯 마리를 거느리고 아침에 나와 모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서리병아리야 사람들이 키우는 것이니까 어떻게든 그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를 하겠지만 오리는 사람이 키우는 것이 아닌데 이 가을에 새끼가 부화했으니 그게 과연 어떻게 자랄 것인지 궁금하다기 보다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홍제천에서 오리가 아닌 물속에 사는 새 종류 중의 새끼 한 마리가 헤엄치며 물고기를 잡는 것이 보여서 볼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했고 그 얘기를 여기에 올린 적도 있지만 오리 새끼를 늦가을에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가 어제 그 오리 사진을 찍느라하고 10분이나 지각을 했는데 아침 빛이 부족해서 사진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혹 오늘 아침에도 볼 수 있을까 하고 어제 보았던 곳에서 잠시 머물렀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즘 홍제천에 들고양이가 많아져서 오리 새끼를 잡아먹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솔직히는 지금 저 어린 오리 새끼들이 과연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때를 알고 일을 해야 될 것인데 그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검찰총장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사람에게 ‘사퇴하고 정치하라’고 소리치는 것은 북한 사람들 말로 ‘가을 뻐꾸기 소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작년인가 북한 방송이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을 뻐꾸기 우는 소리 한다’ 했는데 ‘가을뻐꾸기소리’는 예쁜 어감과는 다른 반전의 의미가 담겨있는 어휘라고 합니다. 뻐꾸기는 봄에 울지 가을에 울지 않는다는 데서 봄이 아닌 때에 우는 뻐꾸기소리 같다는 뜻으로 믿을 수 없는 헛소문을 형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북한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터무니없는 말이나 주장이라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서리 오리새끼, 가을 뻐꾸기 다 걱정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