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도는 고군산열도 24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그렇지만 인근 선유도의 위세와 인기에 눌려 덩칫값을 못하고 처져 있었다. 최근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신시도가 긴 다리를 통해 뭍과 연결되면서 묻혀 있던 보석이 빛을 발하게 됐다. 선유도는 배를 타야 들어가지만 신시도는 자동차로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뽕나무 밭이 바다로 바뀐다’는 상전벽해란 말은 신시도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이 섬은 선유도나 무녀도보다 육지에서 더 가까웠지만 찾는 이들이 없어 옛날부터 지풍금, 짚은금 또는 심리(深里)로 불렸다. 이 명칭은 깊게 숨어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새만금이란 방조제가 연결되고부터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이 섬을 찾아오는 등산객과 낚시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요즘은 민박과 펜션이 문을 열면서 낚싯배까지 끼워 팔기 상품을 개발하여 호객하고 있다. 1박 3식에 배낚시를 곁들여 1인당 10만원이다. 그리고 세끼 식사에 생선회는 무한 리필이 될 정도라고 한다.
이곳 신시도는 다른 바다보다 어자원이 풍부하여 배낚시를 하든 갯바위낚시를 하든 공치는 일은 별로 없단다. 그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고기들이 그만큼 순진하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잡히는 고기는 계절별로 다르겠지만 우럭, 감성돔, 참돔, 놀래미, 광어, 숭어, 학꽁치, 농어, 삼치, 붕장어, 갑오징어 등 품종이 다양하다.
낚시꾼은 그렇다 치고 등산객들도 능선에 올라서기만 하면 일망무제로 탁 트인 바다와 섬 풍경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신시도 배수갑문~임도~철계단~199봉~월령재~월영봉~미니해수욕장~대각산~월령재~새만금주차장으로 돌아오는 4시간 정도 걸리는 9.2㎞의 등산로는 매우 아름답다. 힘에 부치는 이들은 코스를 단축할 수 있어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신시도에는 하늘이 내려준 아름다운 자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연을 더욱 맛있게 포장해 주는 전설과 이야기가 있다. 고군산(古群山)의 유래는 전설의 정형인 홀아비 노인과 과부 며느리란 등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 날 도사가 찾아와 곽씨 성을 가진 노인에게 “뒷산 장군석의 코에서 코피가 터지면 지체 없이 타관으로 피란을 가야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다”고 알려준다.
노인은 손자를 등에 업고 매일 장군석이 피를 흘리는지를 살핀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그러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거니와 쓸데없는 행동을 그만두게 할 요량으로 몰래 장군석의 코에 붉은 물감을 칠하고는 노인의 동태를 살폈다. 노인은 “바로 그때가 왔다”며 함께 떠나기를 채근하며 보따리를 챙겼다. 며느리는 자기가 장난삼아 한 일이라며 웃기만 할 뿐 함께 떠나기를 거절했다. 노인은 손자만 데리고 마을을 벗어났다. 그러자 인근 3개 마을이 물속에 잠기고 고군산열도의 섬들이 바다 속에서 솟아올랐다고 한다. 피란 간 노인은 이곳 곽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노인의 전설에 필적할 만한 임씨 할머니 이야기도 재미있다. 임씨 할머니가 양손 손가락을 펴지 못하는 딸을 낳았다. 그 아이가 스무 살이 되어 정혼하려고 하자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관이 시키는 대로 대각산 자락 용머리 옆에 묘 쓸 곳을 파기 시작하자 학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다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집안사람들이 “이 무슨 변괴냐”며 걱정하고 있는 사이에 딸아이가 죽은 학의 모습을 보더니 자신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죽고 나서 펴진 손바닥엔 임금 왕(王)자가 쓰여 있었다. 동네 전체가 야단이 났다. 그러자 시집갈 때 잡으려던 돼지 여덟 마리도 한꺼번에 또 죽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은 학이 나온 자리에 처녀를 묻고 애비를 그 옆에 무덤을 마련해 주었다. 죽은 딸아이는 비록 처녀였지만 지금까지 임씨 할머니로 불리고 있다. 이 전설은 왕 자의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 알려주지 않고 재미없게 끝났지만 스토리텔링이란 형식으로 간추려 재미있는 이야기로 거듭나게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도반들은 서해 쪽으로 가을 나들이를 간 김에 신시도 산행길에 올라 119봉과 월령봉을 둘러보았다. 월영 단풍으로 유명한 월영봉은 추색이 완연했고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가을바다는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섬 산행이 주는 축복에 온몸이 젖어들어 아침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 허기져 있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어느 도반이 “이제 슬슬 내려가서 잘 숙성된 생선회로 점심이나 먹지”라는 한마디에 그때야 배고픔이 느껴졌다. “그래그래, 배고프다 밥 먹자.”
수필가 9hwal@hanmail.net |
첫댓글 구활 샘 대구에만 계시기엔 쪼까 아쉬운 분분
중앙으로 올라오셔서 대들보를 울리셔도 좋으련마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