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팝니다 / 우종율
자, 어서 들어오십시오. 여기는 인터넷 쇼핑몰 ‘들어와, 방’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상품은 바로 ‘수필’입니다. 중수필인 에세이도 아니고 중수필도 아닌 경수필 미셀러니입니다. 여러분은 여태껏 수필을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어중간한 장르 정도로 혹시 생각하진 않았나요. 천만에요, 만약 그랬다면 이 방을 나가셔도 좋습니다. 이젠 수필은 그런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품목이 아닙니다. 이젠 기성작가도 수천 명 육박할 정도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기존의 '붓 가는 데로' '여기의 문학' '서른여섯 살 이상, 중년들의 글쓰기'가 이젠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시에서 뭔가 아쉬운 점, 소설에서 조금 긴 듯한 것을 불식시키고 그 중간쯤의 형태랄까요. 그래요, 분명 수필은 손에 들기가 쉬워졌습니다. 여러분도 고정적인 음식을 먹는데 이젠 싫증이 나지 않으세요. 음식으로 따진다면 맛있는 것을 여러 가지 섞은 '비빔밥'이요, 간식으로 따진다면 라면도 아닌 떡볶이도 아닌 '라볶이' 정도랄까요. 때론 매콤하면서 때론 달짝지근하며 중독성이 있는 맛이 바로 오늘의 수필이랍니다.
어디 그뿐인 줄 아세요. 수필도 사회 속으로 들어가 있답니다. 기존의 신변잡기라는 말은 점차 찾아보기 어렵다고요. 요즘 신춘작가들의 글을 보세요. 그리고 그 심사평을 보세요. 사회성이 있는 글들을 수필가들도 그 깊숙하게 들어가, 그 면면에 고민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답니다. 수필 본래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랍니다. 내가 겪는 일을 사회 일각에서 독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잖아요.
이젠 전국에서 수필 전문지도 수십 여권이 있답니다. 그건 수필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말입니다.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 왜 그리 사람들이 몰릴까요. 각박한 이 물질문명의 뒤란에는 늘 인간성 회복을 꿈꾸는 본성들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뭔가 부족한 그 무엇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그건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어요. 드디어 그걸 찾아내곤 밤새 그와 사랑을 하고 고민을 하고 환희를 하게 되죠. 어때요, 이젠 호감이 가나요.
주저하지 마시고 들어오세요. 아직도 낯설다고요. 처음엔 모두가 서먹서먹 하답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는 모두가 주인입니다. 들어와서 읽다 보면 알게 되고, 글을 쓰다 보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는걸요. 나이 제한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즐기는 동수필 童隨筆도 있답니다.
가격은 최저로 정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바겐세일 하는 건 아닙니다. 차분히 생각했다가 다음에 사셔도 됩니다. 일반화되기 전에 경험하는 것 또한 짜릿한 매력이 아닐까요. 마음에도 없는 물건을 사서 골방에다 처박아 놓는 만큼 부질없는 일은 없잖아요.
자, 오늘 쇼핑몰 '들어와, 방'에서 수필을 팔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황혼기의 어르신이나, 중년의 버거운 짐을 걸머쥐고 있는 이 시대의 가장들도 좋습니다. 열혈남아로 사회에 정면 도전하고 싶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온다면 더욱 환영합니다.
우리 모두 수필집 하나 사서 긴긴 겨울밤, 밤도 새워보고, 꽃 피는 봄날 뭔가 토해내고 싶은 말과 글들이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어올 때 친구도 되어봅시다. 내 가슴속에 꼭 간직해 두었다가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꿈과 희망을 펼쳐내십시오. 수필은 매진이 없습니다. 마감도 없습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동할 때 들어오십시오.
당신의 삶의 윤택함을 위해 여기 수필이 있습니다. 많이 사가세요. (2010, 1, 13)
첫댓글 소진 회장님의 글을 보니 10년 전에 쓴 글이 떠올라 옮겨봅니다.
재미있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