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지저고리 세대>
김영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으로 ‘의, 식, 주’ 세 가지를 꼽습니다.
입는 옷, 먹는 음식, 살아가는 집을 한자로 이르는 말이지요.
앞의 이야기에서 살아가는 집으로 ‘초가집 세대’ 먹는 음식 문제로는 ‘보리고개 세대’라는 주제로 추억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오늘은 ‘바지저고리 세대’라는 주제로 입고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 추억나들이를 함께 떠나 보도록 하지요.
내가 어릴 적, 그르니까 1945년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은 해로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고, 6.25 사변이 일어 난 1950년에는 중학교에 입학 한 해였으니까 일본의 식민지 시대, 2차 세계대전, 광복과 미군 군사정권, 대한민국 정부수립, 6.25 남북전쟁 등등 우리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고, 변화가 심한 때 이었답니다.
또한 가난에 쪼들려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든 시기 이었습니다. 하루 세끼 끼니를 이어가면 다행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때 엇어요. 따라서 입는 옷도 오늘 날처럼 모양이나 색깔 따위는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었고 그저 몸만 감싸면 되는 정도 이었습니다.
여름 옷 한 벌 겨울 옷 한 벌이 고작 이였고, 봄과 가을 옷이 따로 없었으며 팬티나 속옷 따위는 아예 없었습니다.
남자 아이들 여름옷은 짤막한 삼배바지를 허리띠로 졸라매어 입고 삼베저고리를 옷고름으로 여미고 입었습니다.
여자 아이들도 짧은 치마와 저고리를 허리띠와 옷고름으로 여미어 입었지만 학교에 다니기 전에는 속옷도 없이 치마만 입고 지냈습니다.
봄과 가을 옷이 없고 추위가 올 때까지 여름옷을 입다가 날씨가 추우면 남자 아이들은 겨울옷으로 솜을 넣어 지은 핫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여자 아이들은 치마에 솜을 넣을 수 없어서 솜 넣은 바지 위에 치마를 입었지요.
요즈음 생각해보면 그 시절 입던 바지저고리가 참으로 불편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자 집 아이들은 옷이 몇 벌씩 있기도 하지만 가난 한 집 아이들은 단 한 벌씩 밖에 없기에 빨래를 자주 하지도 못하고, 한 철을 계속 입고 살았어요. 옷이 찢어지거나 때가 많이 묻으면 꿰매고 빨아야 하는데 그 때 아이들은 벗은 채 방안에서 기다려야 했답니다.
추운 겨울에도 속옷, 양말이나 장갑, 모자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에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놀이를 좋아하는 본성이 있어서 얼음이 얼면 냇가 연못이나 무논으로 쏘다니며 스케이트 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젖은 옷으로 집에 오면 옷을 씻어 말릴 때까지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지내야 했답니다.
옷을 만드는 옷감에 대해 알아 볼까요?
옷감으로 삼배, 무명, 명주 등 세 가지가 있었는데 삼배와 무명베는 삼과 목화를 논과 밭에 심어서, 명주는 뽕잎으로 누에를 키워서 만들었는데 모든 과정을 집에서 직접 하였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삼베는 논에 삼 씨앗을 뿌려 삼이 자라면 2m 정도 되는데 이 때 삼을 베어 열을 가해 삶은 후 껍질을 벗겨 가늘게 쪼개고 하나하나 이어서 씨줄과 날줄을 만들어 베틀에 올려 삼베를 짰습니다.
무명베는 밭에 목화씨를 뿌려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 목화가 되고, 이 목화에서 실을 뽑고 뽑은 실로 씨줄과 날줄을 만든 후 베틀에 올려 무명베를 짰습니다.
명주는 뽕나무 잎을 따서 누에를 키워 누에 번데기 집인 고치에서 실을 뽑아 씨줄과 날줄을 만든 후 베틀에 올려 명주를 짰습니다.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은 할머니와 어머니 등 여자들의 몫이었지요. 이 과정을 ‘길쌈솜씨’라고 하는데 ‘음식솜씨’ ‘바느질솜씨’와 함께 여자들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답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 한 해가 1950년 이였고, 6.25 전쟁이 일어 난 해였어요. 까만 물을 들인 무명베로 만든 교복을 입었는데 이 교복을 ‘양복’이라 하였고, 바지저고리를 ‘한복’이라고 했습니다.
양복은 한복에 비해 편안했고, 옷고름 대신 단추가 달려 입고 벗기에 편했으며 특히 소변을 보기에 편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갔어요. 집에서 손으로 만들던 옷감을 기계로 만드는 방직공장이 생기고, 광목, 인조견 등이 아름다운 무늬와 고운 색으로 염색된 옷감을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옷을 만드는 재봉틀이 생겨서 손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불편함이 사라지고, 빠른 시간에 많은 옷을 만들어 파는 옷가게가 생겨 어른, 아이, 남녀 등 필요한 옷을 언제라도 살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삼과 목화를 심고 누에를 길러 옷을 만드는 힘든 일보다 옷을 살 수 있는 돈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으니 삼과 목화를 심던 논과 밭에 곡식과 채소를 심어 시장에 팔아 돈을 벌고, 옷감을 만드는 시간에 돈을 버는 것이 유익한 세상이 된 것이지요. 옷감을 만드는데 쓰든 기구들도 불필요한 물건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바지저고리 등도 불편한 옷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복 입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진 사람, 촌스러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면서 한복이 점점 사라져 가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나이롱이라는 화학섬유가 많이 생산되면서 가볍고, 질기고, 따뜻하고, 가격도 싼 실용적인 옷감이 되면서 삼베, 무명, 명주 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옷감이 되었으며 한복 또한 추석, 설빔 등 명절이나 생일, 제사, 결혼 등 예복으로 남고 일상 실용복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바지저고리 세대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들로 활동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섬유산업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에서 앞서가는 섬유산업 수출국이 되었지요. 또한 한국의 의복도 K-패션이란 이름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촌스럽고 시대에 뒤진다던 바지저고리 세대 주역들이 세계에서 앞서가는 음악, 영화, 음식 등등 문화강국을 만든 자랑스러운 주역들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