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성이씨 문중 청년 교육 자료집 제2편
제2편 문중의 역사
제9장 문중의 유적
"유적은 돌과 건물이 아니라 선조들의 삶과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역사 교실이다."
학성이씨 문중은 충숙공 이예와 매헌공 이겸익을 비롯한 선조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서원, 정사, 재실, 정자 등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유적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후손을 교육하고 향사를 봉행하며 문중의 화합을 이루는 중심 공간이었다.
오늘날 일부 유적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는 사라졌지만 문헌과 후손들의 기억 속에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1절 석계서원(石溪書院)
석계서원은 학성이씨 문중을 대표하는 교육 공간이자 향사의 중심지이다.
충숙공 이예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건되었으며, 수백 년 동안 문중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석계서원에서는
추향사(음 9월 9일)
문중 회의
유교 교육
청소년 뿌리교육
역사 강좌
등이 이루어져 왔다.
근래에는 문중과 지역 유림의 노력으로 복원과 정비가 이루어져 충숙공 정신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2절 충숙공 이예 유허비
충숙공 유허비는 충숙공 이예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비문에는 충숙공의 대일 외교와 피로인 송환, 나라를 위한 충성과 애민 정신이 기록되어 있다.
유허비는 후손들에게 선조의 삶을 되새기게 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며, 많은 방문객이 충숙공의 정신을 배우는 장소가 되고 있다.
제3절 고산정사(孤山精舍)
고산정사는 학성이씨 문중의 대표적인 강학 공간이다.
선조들의 학문과 도덕을 계승하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유생들이 경전을 공부하고 문중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던 장소였다.
오늘날에도 문중의 역사와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4절 매헌정사(梅軒精舍)
매헌정사는 매헌공 이겸익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정사이다.
후손들은 이곳에서 향사를 봉행하며 매헌공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있다.
또한 문중 교육과 후손들의 친목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다.
제5절 재천정(在川亭)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 385번지 석계서원 내 석계천이 흐르는 언덕에 자좌오향(坐午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자 뒤로는 노방산(老房山, 281.4m)이 병풍처럼 둘러 처져있고 앞으로는 회야 강물이 서에 서 동으로 흐르는 등 주변 경치가 뛰어나다. 12세 죽오(竹) 근오(覲吾, 1760~1834)께서 벼슬에서 물러난 후 회갑(回甲)을 맞아 정자 건립에 착수하여 순조 21년(1821)에 맞배지붕의 와가 3칸을 소축(所 築)하였는데, 초기에는 석천정이라 제호(題號)하였다가 나중에 재천정이라 개제(改題)하였다.
제6절 활천정(活川亭)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활천내화로 34-7에 있다.
활천정은 매헌공의 9세손 이규헌(李奎憲1855-1934))공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동쪽 방은 역열재(亦悅齋)-학이시습불역열호(學以時習不亦悅乎)-서쪽 방은 이회암(以會庵)-이문회우(以文會友)라 하여 공부하는 방, 친구와 담소하는 방으로, 이름을 구별하여 놓았다.
활천정은 오늘날에도 문중의 중요한 유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제7절 초산재(草山齋)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초천길 84-22
초산재는 매헌공의 넷째 아들 이정지(李廷址)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오랜 세월 동안 후손들의 제향과 문중 모임이 이어져 왔으며, 서면파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중요한 유적이다.
제8절 안화암(安花庵)
안화암은 현재는 남아 있지 않지만 학성이씨 문중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이곳은 이의찬(李宜贊)을 추모하기 위한 제실로 사용되었으며, 오랫동안 후손들이 제향을 올리던 장소였다.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문헌과 족보, 후손들의 기억 속에 그 역사적 의미가 전해지고 있으며, 복원과 선양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제9절 내광재(內光齋)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내리 604
내광재는 이장찬(李章贊)의 묘소를 수호하고 제향을 올리기 위한 재실이다.
후손들은 이곳에서 선조의 덕을 기리고 문중의 화합을 다져 왔다.
제10절 체화당(棣華堂)
체화당은 과거 울산 주남리에 있었던 재실이다.
이곳은 매헌공 이겸익과 그의 배위인 강성문씨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체화(棣華)'는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말로, 후손들이 화목과 효친을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문중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제11절 육석정(六石亭)
육석정은 석계서원 동쪽에 있었던 정자로, 이후락(李厚洛)선고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문중에서는 이곳에서 선조를 기리고 종친들이 모여 학문과 친목을 나누었다.
현재는 원형이 남아 있지 않지만 문헌을 통해 그 존재와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제12절 중리회관
중리회관은 현대에 들어 문중의 회의와 교육, 종친 행사 등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향사 준비와 총회, 뿌리교육 등 다양한 문중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새로운 공동체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13절 반구재(盤龜齋)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명곡리
반구재는 매헌공의 막내아들 이정신(李廷臣)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후손들은 이곳에서 제향을 이어 오며 선조의 충효와 학문을 기리고 있다.
반구재는 명곡리 지역 학성이씨 후손들의 중요한 정신적 중심지이다.
제14절 학성이씨 근제공고택
학성 이씨 파종가집으로 시조인 이예(李藝)의 11손 이의창(李宜昌)이 지었다. 고종 때 이의창의 증손인 이장찬이 고쳐 지었고 1934년경 다시 전체적으로 고쳐 지었는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15절 문중 유적의 가치
문중 유적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전하는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이다.
이들 유적에는 다음과 같은 가치가 담겨 있다.
충숙공 이예의 충의와 평화외교 정신
매헌공 이겸익의 학문과 덕행
효와 예를 중시한 유교 문화
후손들의 화합과 공동체 정신
지역 역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앞으로 이러한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조사하여 후손 교육과 지역 문화 발전에 적극 활용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학습 정리
핵심 내용
석계서원은 학성이씨 문중의 대표적인 교육·향사 공간이다.
충숙공 유허비는 충숙공 이예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고산정사, 매헌정사, 재천정은 선조들의 학문과 덕행을 계승하는 공간이다.
활천정, 초산재, 내광재, 반구재는 각 선조를 추모하는 재실로서 오늘날까지 문중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안화암, 체화당, 육석정은 현재는 남아 있지 않지만 문중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유산이다.
중리회관은 현대 문중 활동과 교육의 중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생각해 봅시다.
문중 유적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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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유적도 왜 역사적으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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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문화유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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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다짐
"나는 선조들이 남긴 문중 유적을 소중히 보존하고, 그 속에 담긴 충효와 학문, 화합의 정신을 배우며 다음 세대에 올바르게 전하는 책임 있는 후손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