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의 회상
박 완 규
한 달에 한번 씩은 꼭 찾아가야하는 곳이 있다. 삼색 네온사인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이다. 이발소와는 우리가족사의 가슴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곳이라 이발 하러 가는 날은 늘 씁쓸한 기분이 된다. 오늘도 나의단골 부부이발사에 머리를 맡기고 과거로의 회상에 잠긴다.
유년시절 아버지께서는 이발소를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이발 기계와 면도기를 갖추고 농번기를 피해 동네사람들의 이발을 도맡아 해주셨다. 우리 형제들은 자연스레 이발소에 가는 법이 없이 아버지께서 직접 머리를 깎아 주셨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매주 용의검사를 했다. 주로 머리와 손톱검사 등이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머리와 손톱을 자주 깎아 용의검사에 지적되는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아이들은 이발소에 가지 않고 가위로 듬성듬성 잘라 가위 줄 자욱이 선명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매끈하게 이발한 내 머리가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했다.
아버지께서는 머리 깎기를 제대로 배우진 않았지만 동네사람들로부터 이발을 잘한다는 평을 받았다. 틈이 나면 중학교에 다니는 형에게까지 이발 기술을 가르쳤다. 나를 실습대상으로 연습 하곤 했다. 그래서 형은 중학교를 졸업하자말자 도회지로 나가 이발사로 취직했다. 몇 군데의 이발소를 전전하면서 종업원 이발사로 근무하다 결혼을 하고 대구 범어동에서 이발소를 개업하게 되었다. 종업원 생활에서 이제는 종업원을 거느리는 이발소 사장이 되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일정한 직업 없이 놀고 있었던 나는 형이 개업한 이발소에 자주 들락거렸다. 나의 이발도 형이 도맡아 해주었다. 그런 형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삼색 네온사인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 간판도 참 멋있게 보였다. 어느 날 형에게 네온사인 간판에 새겨진 삼색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어보았다.
형은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 중세유럽에서는 당시 이발소와 외과병원을 겸했다고 한다. 응급환자에게 위치를 잘 알리기 위해 이 표식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삼색의 적색은 사람의 동맥을, 청색은 정맥을, 흰색은 붕대를 의미한다고 했다. 1540년 프랑스 파리의 ‘메야나킬“이란 이발사 겸 외과의사가 고안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또한 이발사가 외과의사와 서로 각기 다른 전문직으로 분류된 것은 18세기 중엽 영국에서였다고 한다. 설명을 다 듣고 보니 형이 이발사로서 자기 직업과 관련된 상식을 너무나 소상히 알고 있음에 감탄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가위질을 하는 형이 더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
형은 직업이발사로서 몸에 베인 사교술과 이발하는 손놀림이 섬세하면서도 꼼꼼해 단골손님이 금방 늘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이발업소로 자리 잡았다. 금방 부자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 형이 이발소 사장으로서 무리를 한 탓인지 차츰 차츰 몸이 야위어가더니 언제부터인가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모두 걱정을 하게 되자, 어느 날 가족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실토 했다. 오래전부터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는 것. 지금까지 혼자서 몰래 치료를 하는 둥 마는 둥 등한시 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치료시기가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형수님에게도 별도로 고백했다. 결혼 전 부터 병을 앓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고 결혼해서 미안하다고, 그날 우리 온 가족은 가슴이 철렁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가족들은 아직 늦지 않았다며 치료 방법을 찾기를 호소했다. 아무 말 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듣기만 하던 형은 그 후 며칠이 지난 후 스스로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덩그러니 남은 텅 빈 이발소, 가슴이 찢어질듯 한 형수님의 애끓는 울음소리, 세상을 다 잃은 듯 정신 줄 놓으신 어머니, 아직도 그날, 그 이발소에서 벌어진 참경들이 내 가슴에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면도를 끝낸 주인아주머니가 고개를 받쳐주는 손길을 느끼는 순간 가운 입은 형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단골이발소의 주인부부 얼굴이 교차되어 다가온다.
나의 단골업소인 이 이발소는 50대 후반의 부부이발사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남편은 조발을 하고 부인은 면도를 담당한다. 그러니 부부가 주인이면서 종업원인 셈이다. 이 이발소에 다니기 시작한지가 30년이 넘은 것 같다. 몇 차례에 걸쳐 이사를 했지만 이발할 때는 꼭 이업소를 찾는다. 그러다보니 의자에 앉으면 주인이 알아서 일사천리로 이발을 해준다. 머리형은 어떻게 하고, 머리는 어느 정도 잘라 달라든가 시시콜콜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단골출입을 하다 보니 내 취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손님이 밀리고 바쁘다 해도 대충대충 넘어 가는 일이 없다. 이래서 이발을 하고나면 마음이 편하고 깨운 하다. 단골손님이 많아 늘 기다려야 하는데 오늘은 비교적 기다리는 손님이 없다. 모처럼 부부가 여유로워 보여, 슬며시 남편 사장에게 네온사인의 삼색의 의미를 알고 있냐고 물어봤다. 형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삼색의 의미를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더욱 믿음이 갔다.
이발을 마치고나니 내 얼굴이 딴사람처럼 달라져 있다. 미남(?)이 된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는데 가운 입은 형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다. 이젠 이발소가 내 가족사의 아픈 상처를 떠올리는 장소가 아닌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회상의 장소로 만들어가야겠다. 내 모습을 말끔하게 만들어준 부부이발사의 고마움을 뒤로하고 문을 나선다. 오늘따라 발걸음도 가볍다.
첫댓글 이발소에 얽힌 그런 아픈 사연이 있군요. 그래요. 이제는 아픈 상처를 떠올리는 장소가 아닌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되십시오. 잘 읽었습니다.
그런 아픈 사연이 있었나 봅니다^^휼륭하신 아버지와 형님, 그리고 선생님 모두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