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삼국지 [7]
유리는 고구려를 찾아오고 ②
고구려의 행인국 정벌 소식이 온 천하에 퍼졌다. 이웃의 약소국들은 평화가 찾아온 걸 기뻐했다.
우환을 제거하고 나라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신하들은 한시름을 놓았다.
그러나 주몽에겐 아직 이루어야 할 일이 많았다.
그중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북옥저를 복속시키는 일이었다. 어느 청명한 날, 주몽은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짐이 이 땅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를 건국한 지도 십여 년이 넘었소. 그동안 동서로, 남북으로 천여 리나 영토를 넓혔소. 이제 전쟁을 멈추고 백성을 쉬게 해야겠으나 저 동쪽 끝 바닷가에 있는 옥저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소. 장차 우리가 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병합해야 할 곳이오. 경들의 생각은 어떻소?”
재사가 옷깃을 여미며 반열에서 나와 아뢴다. “북옥저가 명태 등 해산물을 지나치게 비싸게 파는 통에 우리 백성이 막대한 손해를 보는 것은 사실입니다.
폭리를 취하는 것은 도적이나 다를 바가 없지요. 그러나 그 일대는 말갈족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들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재사는 한결같이 신중했다. 주몽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말갈은 우리와 같은 단군의 자손이오. 그들이 위협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소나 양 떼를 몰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 때문이오. 말갈족에게 정착할 땅을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다면 고구려의 선량한 백성이 될 것이오.”
말갈족과 교류가 있었던 묵거가 의견을 피력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우리 고구려인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생활방식을 쉽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입니다.”“그건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봅시다. 일단은 북옥저에 사신을 보내 그들의 속내를 떠봅시다.” 주몽은 부분노를 북옥저에 보내기로 했다. 그가 행인국에서 보여 주었던 지략을 높이 평가한 인사였다.
북옥저(北沃沮)는 두만강 유역에 자리한 여러 산간 부족이 모여 이룬 나라였다.
동남쪽으로는 동해에 맞닿았고, 동북쪽으로는 광활한 시베리아까지 뻗어 있었다.
사방 천 리가 넘는 땅인 데다 워낙 험준한 산이 많아 마을과 마을 사이의 연락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나라의 기틀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말갈족의 침입이 잦았다.
그들이 시시때때로 마을로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는 바람에 북옥저 왕 치구루(馳仇樓)는 하루도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치구루는 고구려의 주몽에 관한 소문을 듣고 호감을 느꼈다.
지금처럼 말갈족에게 괴롭힘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주몽에게 나라를 의탁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족들의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을 때 고구려에서 부분노가 사신으로 왔다.
북옥저 왕은 부분노를 불러들였다. 팔척장신에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왕 앞으로 걸어 나왔다.
좌중을 압도하는 당당함이 있었다. “장군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어인 일로 왕림하셨소?”
부분노는 공손하게 말했다. “고구려 국왕 폐하의 뜻을 전하러 왔습니다.”
부분노는 말을 마치고 품에서 서신을 꺼내 읽어 나갔다. 북옥저와 고구려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
기쁜 일이 있으면 나누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요즘 북옥저가 말갈족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들었다.
동포의 어려움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대가 원한다면 군사를 보내 외적을 몰아내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서신의 내용을 듣고 나니 치구루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고구려 왕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자칫하면 늑대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맞닥뜨리는 격이 될 수도 있었다.
치구루는 가타부타 말이 없더니 신하들을 물리고 부분노와 독대했다.
“솔직히 말씀해 주시오. 사실 북옥저와 고구려 사이가 그리 편치만은 않았소. 그런데 갑자기 군대를 보내 돕겠다는 건 분명 바라는 게 있단 얘기요. 고구려 왕께서 원하는 게 뭐요?”
상대가 그리 나오니 부분노도 속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귀국의 귀부(歸附)를 원하십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힘이 센 나라가 이웃 나라를 아우르는 것은 상고시대부터 무수히 있어 온 일이었다.
힘이 약한 나라로서는 무릎을 꿇더라도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우리가 따르지 않는다면?”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쉬운 상대란 인상을 남겨서는 안 된다. 필요에 의해서건, 힘에 눌려서건 고구려에 복속되게 된다면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만 했다.
“일전(一戰) 이외에 달리 방법이 있겠습니까!” 부분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대꾸했다.
치구루는 등줄기가 오싹했다. “귀부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고 백성의 삶은 오히려 더 나아질 겁니다. 말갈족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부분노의 말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대신들과 의논해 보도록 하겠소.”
왕이라 하여 마음대로 결정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부분노 역시 이런 사정을 알기에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러셔야지요. 서두를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객관에 가서 쉬고 계시면 결론이 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부분노가 물러나자 치구루는 긴급히 대책 회의를 소집했다.
원로대신 몇몇이 반대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복속을 받아들였다. 그중에서도 참모 격인 영충(映沖)은 적극적이었다.
“지금 우리 형편을 볼 때 고구려로의 귀부가 최선책입니다. 북쪽의 말갈족은 시도 때도 없이 승냥이 떼처럼 쳐들어와 약탈과 방화를 일삼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과 결탁한 족장 타하루(打何樓)가 언제 야욕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말갈족의 노예로 전락할 겁니다. 고구려는 우리와 한 뿌리에서 나왔고, 주몽 왕은 어질고 덕망이 높은 인물이니 믿고 의탁하심이 좋을 줄 압니다.
” 고민 끝에 치구루는 귀부를 결심했다. 그는 부분노를 불러 항복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사신 편에 영충을 딸려 보냈다. 영충의 품속에는 호구(戶口)가 적힌 북옥저의 지도가 들어 있었다.
졸본성에 당도한 영충은 고구려 왕을 찾아뵙고 귀부 의사를 밝힌 후, 북옥저의 지도를 바쳤다.
이를 살펴보던 주몽이 영충에게 물었다. “북옥저는 사방 천 리가 넘은 큰 나라인데 어찌 호구 수가 2만밖에 안되는가?”
“북쪽의 말갈족이 걸핏하면 쳐내려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통에 양민들이 집과 농토를 버리고 전부 산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원래는 6만 호가 넘었습니다.”
“대체 말갈족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말갈인들은 두만강 북쪽의 동해 연안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릿수를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다 합치면 수천이라 말하는 자도 있고, 수만이라 말하는 자도 있습니다.”
“북옥저의 군사는 얼마나 되는가? “3천 정도 됩니다. 대부분이 농사를 겸하고 있는 병사이다 보니 말갈 기병의 적수가 되기 어렵습니다.” 듣고 보니 북옥저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였다.
주몽은 장군 부위염(扶尉厭)에게 중책을 맡겼다.
“군사 3천을 줄 테니 북옥저로 가거라. 그곳에서 장정을 모아 훈련해서 말갈군의 침입에 대비토록 하여라.”“우리가 먼저 그들의 근거지를 치는 것은 어떻습니까?”
부위염은 패배를 모르는 용맹한 장수였다. “말갈족은 초원의 늑대처럼 사납고 잔인하다.
꾀로써 잡아야 아군에게도 피해가 적다. 섣부른 행동은 삼가야 한다.” 부위염은 왕명에 따라 북옥저로 떠났다. 북옥저에 도착한 부위염은 치구루에게 주몽 왕의 교지를 전했다.
그에게 많은 식읍을 내리고, 후(侯)로 봉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5천의 장정을 차출하여 고구려군에 편입시켰다. 고구려군의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북옥저의 장정들은 용감무쌍한 군사로 변모했다.
이 소문을 들은 말갈족은 겁을 먹고 북옥저로 쳐내려오지 못했다. 약탈을 못 하게 되니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말갈족 일부가 고구려군에 투항했다.
부위염은 이들에게 농토를 내주고, 배우자가 없는 자들은 혼인까지 시켜 주었다. 그렇게 말갈인들도 고구려 백성으로 동화되어 갔다. 말갈족의 침략이 끊기니, 북옥저의 백성도 마음 놓고 생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태평성대가 찾아오니 산속 깊숙이 숨었던 사람들도 속속 돌아왔다. 이로써 북옥저의 호구 수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