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 부모의 스님들에 대한 지극한 마음, 지극한 마음이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우리 또한 참된 불자의 삶을 바라고 지정한 행복을 바란다면 지극한 미음으로 살아야 한다. 아니, 마음을 지극히 모아야 한다. 이밖에는 특별한 비결이 없다.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예불을 하든 경전을 보든, 모름지기 마음을 지극히 모아서 하면 된다. 그리하여 생명의 원천인 일심으로 돌아갈 때 큰 깨달음을은 곧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 우리의 ‘지심귀명례’가 누구에게 올리는 절인가를 …….
어떤이는 말할 것이다. 부처님을 비롯한 삼보에 올리는 절이 라고 그렇다. 부처님께 올리는 절이다. 그리고 그 부처님은 ‘깨달은 분’, ‘일심을 회복해 가진 분’, ‘불성을 발현시킨 분’이다. 이것이 보통명사 붓다(Buddha)에 대한 정의이다.
이에 대해 법당에 계신 부처님, 그 부처님은 철로도 만들고 나무로도 조성한다. 그러나 철로 된 부처님은 용광로의 불길을 이길 수 없고, 흙으로 빚은 부처님은 물속에 들어가면 부수져버리며, 나무로 된 부처는 도끼를 견디지 못한다.
이와 같은 불완전 상태의 불상을 참된 부처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불상이 우리의 절을 참되이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 불상들은 갖가지 영험을 나타낸다. 왜? 그 부처님들이 비록 돌이나 철,나무 등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불상에 생명의 원천적인 힘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목불이나 철불의 힘이 나니다. 바로 불성을 갖추고 있는 이가 신심을 다하여 절을 할 때 발현되는 일심이 나투어낸 힘이다. 곧 지심귀명례의 힘인 것이다.
지심귀명례는 조송(造成)된 부처님께 올리는 예배가 아니다. 맑고 밝고 신령스러운 스스로의 일심으로 나아가는 절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일심을 회복해 가지도록 하는 절, 지심귀명례! 마침내는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 부처를 이루게 하는 절, 지심귀명례! 그와 같은 절을 불자들은 예불의식 때마다 올리고 있는 덧이다.
부디 이를 깊이 명심하여 지심으로 한배 한배 절을 올리는 불자가 되어보라. 정녕 그 절과 함께 알삼에서 우러나오는 자비와 지혜와 행복이 충만하게 되리니….
부처님이시여 크나큰 진리여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至心歸名禮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삼계의 도사요 사생의 자부이신 우리의 근본스승
석가모니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명례하옵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至心鬼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시방삼세와 제망찰해에 항상 머물러 계시는
모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명례하옵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摩耶象
시방감세와 제방찰해에 언제나 가득한
모든진리에 지극한 마음으로 귀명례하옵니다.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예불사, 머리를 땅에 대고 올리는 일곱번의 절(七項禮)중 첫번째는 석가모니불께 올리는 절이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至心歸命禮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삼계의 도사요 사생의 지부이신 우리의 근본스승
석가모니무처님께 지극한 미음으로 귀명예하옵니다.
석거모니,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자들이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예불문에 나타나 있는 석가모니불에 대한 정의, 곧 ‘삼계도사·사생지부·시아본사’의 세 낱말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첫댓글 지심귀명례 일곱번을 하여 칠정례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