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옥상에서 본 왕궁터.
우리를 안내해 주신 "이문형"교수님의 특별 배려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왕궁터를 볼 수 있었다.
나무들이 가려서 자세한 모양은 볼 수 없었지만 구릉위에 자리한 왕궁터임을 알수 있었다.
백제 무왕(武王)의 추상도.
"와적기단"(瓦積基檀)이란 사진에서처럼 기와를 세우거나 겹쳐 올려놓고 그 안에 흙을 채운것이다.
요즘 음식점이나 커피전문점 외부에 장식용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발견된 화장실이란다.
이곳에서 참외씨, 여러가지 기생충 알,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위쪽으로부터 곡수로(曲水路)를 통해 내려 온 물이 배설물을 아래쪽으로 흘러내리게 하는 구조라고 한다.
이 돌들은 정원(庭苑)에 있던 돌로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돌이라고 한다.
각종 글자들이 새겨진 기와 파편들.
부엌터에서 발굴된 각종 그릇들.
화장실 뒤쪽 공방터에서 발굴된 도가니.
여러가지 도가니와 같이 출토된 작은 유리들.
공방터에서 출토된 아주 작은 금으로 만든 못과 장식.
도가니와 그 안에 녹이던 잔해들.
출토된 금으로 만든 작은 조각들.
마지막 돌아나오는 곳에 왕궁리 오층석탑의 커다란 사진이 있다.
"사리장엄구"가 있던 위치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리장엄구"는 이곳에 없고 백제박물관에 있다.
백제박물관에 있는 "사리장엄구"
왕궁리 박물관을 떠나며 광장에서 보는 "왕궁리 오층석탑"
원래 부여를 먼저 견학해야 하는데 이곳을 먼저 보게 되었다.
풍납동 - 웅진 - 부여에서 왜 무왕(武王)이 또 다시 이곳으로 천도했는지,,,,
그리고 무왕(武王)에 아들인 의자왕(義慈王)은 왜 또 다시 부여로 천도를 했는지,,,,
무왕(武王)은 정말 이곳에서 출생했는지,,,,
그렇다면 무왕(武王)은 백제의 왕가(王家)와는 다른 사람인지,,,
이 모든것이 다 의문이다.
원래 무엇을 알게되면 속이 시원한게 아니라 또다른 의문을 가지게 되어 그 의문을 찾아 다시 돌아다니게 된다.
이번 봄과 가을에 백제의 큰 교육을 시켜주신 "한국 전통 문화 교육원"에 감사를 드린다.
특히 서울을 오다니며 뒷바라지를 해주신 교육운영과의 "박보미"선생께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