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여름휴가
교육전국대장정
평등교육서울 학부모회 사무장 박은경아들 박성현
우리가족은 이번 여름방학때 고생을 하기로 했다.
이모가 속한 단체에서 교육에 대한 새로운 개혁을 요구하는 전국대장정을 한다는 것이다.
7월 25일부터 제주도와 부산에서 두 팀이 출발해서 동해, 서해안 주변의 주요 도시를 돌면서 우리의 주장을 홍보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 속에는 대학생 등록금폐지운동, 경쟁교육 폐지운동(지난번 내가 참석했던 일제고사 반대운동도 포함된다), 잘 이해는 안되지만 입시제도 폐지운동, 또 학교안의 비정규직 직원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요구등 4가지 주장을 사람들에게 홍보한다고 했다.
아직 초등학생이라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지만 우리 엄마와 이모가 열심히 하시는 운동이라서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때 어른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8월9일부터 12일까지 2박 3일동안의 일정에 엄마, 이모, 형, 그리고 내가 함께 국토대장정에 참가를 했다.
가기 전까지는 않가겠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가족 모두 땀 흘리며 휴가를 보내는 건 중학생이 되기 전에 의미있는 일이라는 설득에 오산일정부터 합류를 했다.
이번 전국대장정은 학교선생님, 학부모, 대학생, 회사원등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하였다.
이중 초등 혹은 중등생이 참여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서 나는 이 팀에 귀여운 막내가 되었다.
우리 팀의 계획은 오산-수원-안산-과천-일산-부천-인천-서울의 코스였다.
처음 이모의 차를 타고 오산에 도착했을때는 엄청 더운날 이었는데, 오산역에서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설명을 하는 아저씨, 누나들은 시커멓게 타서 보기가 미안할 정도 였는대도 반갑게 반겨주셨다.
첫 번째 방문한곳은 오산 중증장애인자립센터였다.
장애인들이 사무실에 많았고, 어른들은 저상버스에 대한 간담회를 하는 동안 나와 형은 사무실에서 컴퓨터 게임을 약간했다. 어른들이 나오시고 엄마에게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여쭤보니, 저상버스에 대해 간담회였다고 했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리프트 추락으로 인한 장애인의 사망으로 인해 장애인의 이동권이 생명권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이 단체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예산을 너무 많이 써서 장애인의 저상버스 도입예산이 대폭 감소되었다고 했다.
나는 버스를 타면서 장애인도 그렇지만 다리에 기부스를 한다거나 노약자, 노인분들을 전혀 배려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분들은 버스가 생명과도 같은 중요수단이었나 보다.
이모차를 타며 편하게 오산까지 오면서 장애인들의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 너무 미안해졌다.
점심을 먹을때는 나랑 형이랑 개그를 좀 했더니 누나, 형 팬들이 생겼다.
난 이분들을 이모와 삼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간담회를 마치고 버스 두 대가 수원으로 향했다.
수원역에 가니 날이 엄청 더웠는데 우리가 수고한다고 수원촛불이라는 형들이 시원한 레몬티를 준비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원역을 지나가던 어떤 할아버지는 우리 팀에게 대학등록금 없애야 한다며 힘내라고 말씀하시고 갔다. 또 어떤 아저씨는 우리보고 되지도 않을 일들을 땀흘려 한다고 한심하다고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엄마를 포함한 어른들은 그분들에게 유인물과 함께 열심히 설명했다,.
교육이 바뀌어야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진다고.. 그 말은 맞는 거 같다.
일정을 마치고 나니 수원에 계신 선생님들께서 더운데 힘내라고 사주신 삼계탕을 맛나게 먹고 첫날밤의 숙소로 왔다.
숙소는 다산인권센터라는 사무실이었는데, 가정집이어서인지 방이 많았고 에어컨이 시원해서 나는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드디어 하루밤을 잤다.
대장 선생님이 새벽6시부터 깨워 눈에 물만 묻히고 어른들을 따라 차에 올랐다.
어떤 산 입구에서 우리는 모였는데 토요일이어서 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산장에서 맛있는 묵밥으로 아침을 먹고 안산시로 향했다.
다음에 우리가 갈 곳은 안산시청앞 SJM천막농성장이라고 했다.
컨택터스 용역폭력!!
어제와 오늘 시사프로그램에서 이상한 용역업체라고 나오는 걸 봤는데 천막을 친 농성장 앞의 사진을 보니 정말 끔찍했다.
맞아서 피가 흐르고, 입이 찢어지고 사람들이 40명도 넘게 경찰이 아닌 용역업체 사람들한테 맞았다고 했다. 이상하기도 해서 난 옆에 계신 대장 선생님께 왜 그런지 여쭈어 보았다.
SJM이라는 회사는 돈을 많이 벌었는데, 이익금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도둑질을 했단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문제제기를 하니깐 회사를 없애버리고 항의하는 직원들에게 용역업체를 시켜 사람들을 때리고 살인적인 폭력을 휘둘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회사 아저씨들이 모여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하니 100명도 넘는 분들이 모여 있었다. 억울한 아저씨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니 소름이 끼쳤다.
언론에서도 모르고 증거도 없어서 우리팀의 어른들은 안타까워 했는데, 우리가 서울에 도착한 후로 정식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고, 나도 오늘 TV에서 그 회사 이야기를 보며 잘 해결될 거라는 소식에 반가웠다.
안산에 있는 상록수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채와 홍보물을 열심히 나누어 주었다.
날씨가 엄청 더워서 사람들은 부채를 잘 받았고 나는 형이나 누나들보다 더 많이 나누어 준거 같다. 어른들은 지나가면서 나보고 기특한 어린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깨가 우쭐해지기도 했지만 정말 더웠다.
대장 선생님께 여쭤보니깐 오늘 저녁은 과천에서 잔다고 했다.
과천에 도착하니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고, 코오롱이라는 큰 회사 앞에서도 농성하는 천막이 있었다. 이분들은 코오롱 회사를 다니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정리해고를 당했는데, 8년동안 회사와 싸우고 있다고 했다.
진짜로 대단한 분들이시다.
오늘밤 자기로 한 맑은내 지역아동센터에서 원장님이 차려주신 맛난 저녁을 일찍 먹고 우리는 과천공원으로 향했다.
과천에 계신 단체분들이 우리를 위하여 환영파티를 해주신다고 해서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공원에서 열린 문화제는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 중에 초대가수로 나온 박준 아저씨는 '일어나'라는 노래를 부르며 같이 하자고 해서 '일어나' 노래 가사가 나올때 나 혼자 두 손 들고 일어섰더니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며, 나를 위한 노래를 불러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람들이 재미나게 웃기도 했다. 내가 너무 까불었나보다!
과천에 있는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아 저소득층아이들을 위해 만든 맑은내 예쁜 방에서 기분 좋은 두 번째 잠을 잤다.
피곤해서 골아 떨어져도 대장 선생님은 새벽에 또 우리를 깨웠다.
호랑이 할아버지 같기도 하다. 정말 더 자고 싶은데... 절대로 허락 하실리 없지만...
세쨋날 아침 일찍 우리는 일산 호수공원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우리를 반기는 선생님들이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의 호수공원은 너무 넓어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지나가던 어떤 노인네(지금도 할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지팡이를 휘저으며 이런 빨갱이들이라고 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너무나 심한 욕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는 빨갱이는 정말 나쁜 표현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소리들 듣고 화가 났을때 어른들도 흥분을 하신 거 같다. 열심히 일하는 우리들한테 그 노인네는 너무 심한 표현을 써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다.
나도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다시 차를 타고 우리는 부천역으로 왔다.
여기에도 우리를 반기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홍보를 하고 선생님들은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이모가 마이크를 잡고 부천역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우리 이모는 멋있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른 다음 어른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모는 우리보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집에 너무 가고 싶었다.
드디어 2박3일 동안의 고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같이 있던 아저씨, 누나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분들은 이틀을 더 해야 한다고 한다.
집에 오니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대장정도 좋았다.
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아저씨, 누나들을 만나 즐거웠다.
우리 이모를 포함한 모든 분들의 고생이 헛되지 않게 정말로 교육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고생하신 어른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