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한 일이 있었다. 사정은 이러하다.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장에서 식사를 하는 중인데, 유니폼에 검은색 앞치마를 두른 직원들이 식당의 한쪽 모퉁이로 모여들었다. 우리 식탁 위에 있던 그릇과 휴지 등 을 치워 준 직원도 보였다.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무언가 불안한 예감이 들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잠시 후 직원들 앞에 예식장의 관리자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성 이 왔고, 직원들을 호되게 야단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장소임에도 관리자로 보이는 남성의 질타는 큰 목소리로 한참을 이어갔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오전 11시 식에 이어 12시 식까지 끝나면서 피로연장이 손님들로 붐비는데, 식탁이 제때 치워지지 않아서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 손님들이 많았다는 내용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혼나고 있는 직원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들끓어서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직원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함께 한 지인들 모두 그 직원들을 아르바이트하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았다. 그들은 ‘일하는 청소년’ 이었다. 식사도 거의 끝이 난 즈음이고, 함께 한 지인을 바로 기차역에 바래다줘야 하는 사정이 있어 그 상황에 ‘1도’ 개입하지 못하고 예식장에서 나왔다.
집에 와서 식장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분한 마음이 더욱 들끓었다. 넓은 피로 연장이지만 꽉 들어찬 식탁과 의자들로 통로는 좁았다. 손님들조차 교차 통행하기 어려웠다. 일하는 청소년들은 그 통로를 따라 이동식 선반을 끌고 다니면서 식탁 위 그릇들과 종이컵, 맥주병, 음료수병 등을 치웠다. 수저나 병따개를 찾는 손님들의 심부름도 했다. 식사하는 동안 지켜본 일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적어도 한 사람이 두 사 람 몫을 해내야 하는 분주한 모습이었다.
어떠한 곳이든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모이면 혼잡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이 식장에서의 혼잡함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것은 일하는 청소년 1인당 담당할 손님 수가 너무 많다는 것과, 이동식 선반이 이동하기에 통로의 넓이가 충분하지 않은 탓 이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일하는 청소년들만 다그치는 것은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려는 기업 논리가 그 식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이 많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을 질타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음을 말해 준다. 비단 위와 같은 상황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노동 환경은 근로계약서의 미작성과 미교부, 계약 내용 불이행, 부당 노동 행위 등으로 인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청소년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청소년의 노동에 대해 노동으로서 그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점에 기인한다. 청소년들의 노동을 단순히 성장 과정에서 겪는 이벤트성 경험으로 치부하고, 청소년의 노동에 대해서 지급하는 돈은 ‘임금’이 아닌 청소년의 노동을 칭찬하는 차원에서 주는 ‘용돈’이라 생각해 왔다.
이 처럼 청소년의 노동을 평가절하 하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 상태에서는 <근로기준법> 과 <최저임금법> 등 관련 법령이 존재해도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하기 어렵다. 우선적으로 청소년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과 노동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고, 관련 법령이 정하는 강제적 규정의 내용들이 정확 히 준수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