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수(鬼宿)
28수(宿) 중 스물세 번째 별자리인 귀수(鬼宿)는 정수ㆍ류수ㆍ성수ㆍ장수ㆍ익수ㆍ진수와
함께 화기운(火氣運)을 맡아 다스리는 남방 주작(朱雀) 7수(宿)에 속한다.
『천문류초(天文類抄)』01와 『사기(史記)』의 「천관서(天官書)」에 의하면 주작의 눈에
해당한다.
귀수는 7개의 별자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귀수의 수거성(宿距星)02인 귀성(鬼星)은 4개의
주홍색 별로 구성되어 귀수를 대표하므로 귀수와 그 설명이 동일하다. 귀성은 말 그대로 귀신 별자리이다. 또 다른 말로 여귀(輿鬼)라고도 하는데, ‘귀신이 탄 가마’라는 뜻이므로 상여(喪輿)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귀성이 사망과 질병, 제사를 주관한다고 생각하였다.
★ 사각형 모양의 귀성에 적시(積尸)라는 하나의 별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마치 눈과 같다고 하여 귀성을 하늘의 눈으로 보기도 하였다. 또한 간사한 음모를 관찰하는 일과 함께 곡식과 재물을 모으는 일도 주관한다.
별이 밝고 크면 곡식이 잘되고, 별이 움직이면 사람들에게 근심이 생기고, 급히 정치상의 법도와 규칙에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귀수는 28수 신명 중에서 요기(銚期)03 신명이 관장한다.
귀성은 24절후 중 동지(冬至: 양력 12월 22, 23일경) 때에 동쪽에서 떠오른다. 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시기로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때를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여 설로 삼았다. 우리나라는
충렬왕(고려 제26대 왕, 재위 1308~1313) 이전까지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짐작되고 있으며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작은설’이라 하였다.
동지 부적(冬至符籍)이라 하여 뱀 ‘사(蛇)’ 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속신(俗信)이 있으며, 팥죽을 쑤어 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고 믿었다. 지금도 날이 온화하면 이듬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게 되고 눈이 많이 오며, 추우면 풍년이 든다고 여기고 있다.
★ 귀성을 이루는 4개의 별 가운데에 1개의 흰색 별로 이루어진 적시(積尸)는 시체가 쌓여 있는 기운이라는
의미로 적시기(積尸氣)라고도 한다. 죽고 다치는 일과 제사 지내는 일, 주살하고 목 베는 일을 주관한다. 이 별
만큼은 밝지 않은 것이 길하다. 그러나 별이 심하게 움직이고 흔들리며 흰빛을 잃으면 질병이 돌고, 귀신이 곡을 하여 사람이 황폐해진다고 전한다.
★ 귀성의 위에 4개의 별로 이루어진 관(爟)은 봉화를 뜻하므로 위급한 일을 알리고 방비하는 일을 주관한다.
봉화는 옛날에 높은 산꼭대기마다 설치하여 국경에서 비상사태가 일어날 경우 불꽃이나 연기로 알리는 통신 방법이었다. 적시와 마찬가지로 이 별도 어두워야 길하다. 밝고 크면 변방의 고을에 급박히 경계해야 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
★ 귀성의 아래에 7개의 별로 이루어진 천구(天狗)는 도적을 지키는 일을 맡는다. 옛날 사람은 하늘 개가 땅에
떨어졌다고 생각하여 땅에 떨어진 운석을 천구성이라고 하였다. 별이 움직여 자리를 옮기면 병란이 일어나고,
기근(飢饉)이 돌며 도적이 난무한다고 한다.
★ 천구의 옆에 6개의 별로 이루어진 외주(外廚)는 천자의 궁궐 밖 주방을 의미한다. 주로 음식을 삶는 것을 맡아 종묘에 제사음식을 공급하는 일을 주관하는데, 외주가 보여야 길하고 보이지 않으면 기근이 든다고 한다. 이러한 점괘는 자미원(紫微垣)에 속한 별로 성대한 음식을 주관하는 천주(天廚)와 동일하다.
★ 외주 아래에 6개의 별로 이루어진 천사(天社)는 백성의 운을 주관하는 별로 종묘사직의 안위를 맡아 행한다고 한다. 전설에 천사는 요임금 때에 치수를 맡았던 벼슬아치의 아들 구룡(勾龍)이 물과 흙을 잘 다스렸으므로
사직에 배향하여 제사를 올렸는데, 그때의 정화(精華: 생명을 존속시켜주는 가장 근원적인 氣)가 하늘로 올라가 이루어진 별이 천사라고 한다. 천사가 밝아야 길하다. 별이 어둡고 움직이면 신하가 반역을 일으킨다고 한다.
★ 마지막 천사의 위에 1개의 별로 자리한 천기(天紀)는 주로 날짐승이나 길짐승의 수명을 맡아 행한다고 한다. 금성 또는 화성이 머무르거나 범하면 날짐승이나 길짐승이 많이 죽게 되고, 백성이 불안해진다고 한다.
천기에 대한 내용이 『천문류초』에 설명은 있으나 그림이 빠져 있다. 이 글에 실린 그림은 천기의 위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그린 것이다.
『홍연진결(洪煙眞訣)』04에 따르면 하늘의 현상이 인세에 영향을 준다고 믿어 땅에 별자리를 대응해 놓았다. 우리나라에서 귀수는 황해도 지역인 백령도, 금천군 연안군(현 연백군 연안읍) 백천군(현 배천군)에 해당한다.
서양의 황도 12궁과 비교해 볼 때 귀수는 게자리(Cnc)에 해당한다. 귀수의 수거성인 귀성 중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1개의 별과 게자리 θ(Theta)를 비교할 수 있으며, 이 별은 게자리의 몸 부분에 해당한다. 게자리는 겉보기 밝기가 3.5등급보다 밝은 별이 없을 정도로 어두운 별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게자리는 어찌 보면 긴 의자처럼
보이지만 다리가 하나 빠진 게의 형상에 더 가깝다.
게자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 헤라클레스(Heracles)의 발에 밟혀 죽은 불쌍한 게가 별자리가
되었다고 전한다. 옛날 헤라클레스가 에우리테우스(Eurystheus) 왕의 속박에서 풀려나기 위하여 열두 가지의
고역을 겪었다. 그 중 두 번째 난관이 물뱀 히드라(Hydra)를 퇴치하는 것이었다.
히드라를 잡기 위해 네메아(Nemea) 계곡에서 물뱀과 30일 동안 혈전을 벌이는 것을 안 제우스(Zeus)의 부인
헤라(Hera)는 남편이 바람피워 낳은 헤라클레스를 괴롭히고 싶어서 히드라를 돕기 위해 게 한 마리를 보냈다.
게가 물뱀과 싸우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발가락을 물자 헤라클레스는 힘껏 게를 밟아 죽여 버리고 말았다.
헤라는 자신을 위해 싸우다 죽은 게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는데, 고대 사람들은 헤라클레스에게
밟혔을 때 한쪽 발이 부러진 채로 별자리가 되었으므로 하늘에서도 어두운 별들로 꾸며져 정말 한쪽 발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였다.
게자리 중심에는 프레세페(Praesepe)라고 불리는 유명한 산개성단(散開星團)05이 있다. 지구로부터 약 520광년 떨어져 있고, 6억 5천만 년이 된 것으로 추정되며 500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프레세페라는 말은 라틴어로 ‘여물통’이나 ‘벌통’을 의미한다. 산개성단을 감싸고 있는 사각형의 γ(Gamma)별과 δ(Delta)별이 ‘당나귀 별’이라 불리므로 생긴 이름이라 전한다. 마치 두 마리 당나귀가 여물을 먹는 모습과도 같다.
이 프레세페 산개성단은 동양의 적시와 그 위치를 비교할 수 있다. 적시는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시체가 쌓여
있는 기운’이란 뜻으로 사망과 상례와 제사를 주관하므로 옛 사람들이 불길하게 여겼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
속에 별자리 그림을 그릴 때도 적시별은 빼고 그렸다고 한다.
서양의 프레세페 산개성단 또한 심상치 않은 의미를 지닌다. 옛 사람들에 의하면 영혼들이 천상에서 생활하다가 인간으로 탄생하기 위해 통과하는 관문이라고 전한다. 서양에서는 이 성단을 관찰하기 위해 그리스 천문학자
히파르코스(Hipparchos)가 기록을 남길 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도 세종대왕 때의 천문학자인 이순지가 이 성단에 대해 기록하여 세간에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