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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第六會
修因契果生解分
差別因果周
他化自在天宮
如來放眉間光․相光 金剛藏菩薩 入菩薩大智光三昧 十地法門
金剛藏菩薩 說十地法門. 自三十四卷 至三十九卷. 共一品經
二十六, 十地品
♧ 제목 차례
序分
1. 說法因緣
(1) 설법할 곳과 장소
(2) 함께 한 대중들
① 대중들의 덕을 찬탄한다
② 대중들의 이름을 열거하다
2. 삼매에 들다
3. 명훈가피력을 내리다
(1) 부처님의 출현
(2) 가피의 내용
① 자리
② 이타(利他)
(3) 가피의 모습
① 말씀으로 가피하다
② 마음으로 가피하다
③ 몸으로 가피하다
4. 삼매에서 일어나다
5. 십지(十地)의 강요(綱要)를 말하다
6. 자세히 설(說)해줄 것을 청하다
(1) 해탈월(解脫月)보살이 법을 청하다
① 회중(會衆)의 생각을 받들어 법을 청하다
②법이 깊고 어려우므로 설하지 아니한다.
③ 회중(會衆)의 덕(德)을 찬탄하고 다시 청하다
④ 감당할 수 없는 이를 염려하여 설하지 아니하다
⑤ 사람과 법을 함께 찬탄하고 또다시 청하다
(2) 법회의 대중들이 법을 청하다
(3) 여래가 광명을 통해서 법을 청하다
(4) 금강장보살이 설법할 것을 허락하다
① 의미의 광대함
② 설법(說法)의 광대함
正 宗 分
7. 제1환희지(歡喜地)를 설하다
(1) 중생이 선근(善根)을 깊이 심다
(2) 범부를 초월해서 보살이 되기 위함
(3) 환희지에 머무는 열 가지 법
(4) 환희지에 머물고 성취하는 열 가지 일
(5) 환희하는 20가지 이유
(6) 환희지에서 멀리 떠나는 열 가지 두려움
(7) 열 가지의 두려움을 떠나는 방법
(8) 일체 선근(善根)을 성취하는 길의 31가지 법
(9) 환희지에 머물고 발(發)하는 십대서원(十大誓願) (住地 十大誓願)
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발원(發願)하다 (諸佛供養願)
② 일체 불법(佛法)을 수지할 것을 발원하다 (佛法受持願)
③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第子)가 되기를 발원하다 (轉法輪願)
④ 교화가 중생의 마음을 증장시키기를 발원하다 (修行二利願)
⑤ 일체중생을 성숙시키기를 발원하다 (成熟衆生願)
⑥ 일체 세계를 받들어 섬길 것을 발원하다 (世界承事願)
⑦ 일체 국토가 청정하기를 발원하다 (淸淨國土願)
⑧ 일체 보살들과 늘 함께 하기를 발원하다 (菩薩不離願)
⑨ 작은 수행(修行)이라도 큰 이익 있기를 발원하다 (利益成就願)
⑩ 정각(正覺) 이루기를 발원하다 (成正覺願)
⑪ 십대서원(十大誓願)은 십진구(十盡句)로 성취한다
⑫ 서원(誓願)을 발(發)한 후 얻는 열 가지 마음
(10) 믿음을 성취한 사람이 믿는 것
(11) 보살이 염려하는 일
(12)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보시행(布施行)을 닦다
(13) 십지를 청정케 하는 열 가지 법을 성취하다
(14) 환희지에 오른 공과(功果)를 밝히다
(15) 게송으로 그 뜻을 거듭 설하다
七, 第一歡喜地
(15) 重頌
① 住歡喜地의 意義
無礙智現前에
自焐不由他라
具足同如來하야
發此最勝心이로다
佛子始發生
如是妙寶心하면
則超凡夫位하야
入佛所行處로다
生在如來家에
種族無瑕玷하며
與佛共平等하야
決成無上覺이로다
纔生如是心에
卽得入初地하야
志樂不可動이
譬如大山王이로다
(15) 게송으로 그 뜻을 거듭 설하다
① 환희지에 머무는 길
걸림 없는 지혜 생겨
제 힘으로 깨달았고
여래처럼 구족하려
가장 수승한 마음을 내었어라
불자들이 처음으로
묘한 마음 내올 적에
범부 지위 초월하여
부처의 행에 들어가고
여래 가문 태어나서
종족에는 허물없고
부처님과 평등하게
무상각(74)을 이루리라
이런 마음 겨우 내곤
초지 중에 들어가서
기쁜 마음 부동(不動)하니
수미산과 같느니라
그러니까 지금 이거 환희지 정도는 아주 조그마한 거다. 그죠?
그런데 우리가 들기에는 너무 벅차요.
이 환희지라고 여러분들은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습니만
제가 들 때에는 콘테이너만한 거라.
지게차도 안 되고
컨테이너 들려면 뭘로 해야 돼요?
크레인으로. 그죠?
그러니까 빈 컨테이너도 못 들어올리는 거라.
역량이 없는 사람은.
컨테이너 텅텅 빈 것도 못 들어올리는데
뭐 그 안에 짐 들어 버리면 어떻게 들어 올리나?
그리고 우리가 업장이 어느 만큼 쌓여 있느냐고 하면
부산 부두가에 컨테이너 보다 더 많다고 보면 돼요.
부산 감만동 제 5 부두에 컨테이너 쌓여 있는 것 보셨죠. 네?
신항이 더 많아요? ㅎㅎㅎ
그래 업장이 많은가 보네...
그리고 앞으로 인물 안 되시는 분들은
제 말 맞장구 치지 마세요.ㅎㅎㅎ
이거 웃자고 하는 건데 또 기분 나빠하시면 안 되죠?ㅎㅎㅎ
얼굴까지 벌개져 버려.
그게 지금 얼굴 벌~개진 게 어디서 동하고
안에서 我愛가 동해가지고 我慢이 확! 솟아 올라온 거야.
얼굴 벌~개졌거든. 지금
조금 있으면 욕 한 마디 나오는 거라.
'스님 그래 잘 났는교!'
가버린다. ㅎㅎㅎ 저 번에
'보살님 제명 됐습니다.'
하니까, 어떻게 했죠?
'알았어요!!!' ㅎㅎㅎ
그게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그게 어마무시한 안쪽에 있는 보이지도 않아.~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반드시 지나고 난 뒤 한참 뒤에 보이는 거라.
빨리 볼수록 튀어 나오는 놈을 빨리 볼수록 수행자라.
관찰할 힘이 예리하니까
계~속 주시하고 있으면 보이고
如鷄抱卵여계포란이요 如猫捕鼠여묘포서라.
쥐 잡듯이 계란 품고 있는 닭처럼 닭이 알 품듯이
계~속 노리고 있는 거야.
그렇게 했을 때야 겨우
'아~ 이게 나...나...나올라 하네. 들어가 임마!'
탁! 눌러 버리고 이렇게 되지만
그전에는 한참 욕 다 하고 엉겨 붙어서 남 다 찔러 죽이고 난 뒤에
'응~ 아까 내 아만이었는가 봐...' ㅎㅎㅎ
욕 실컷 하고 난 뒤에
막~ 엉망진창으로 업을 저질러 버리고 난 뒤에 뭐죠?
'아만이었는가 봐...'
그리고 음식 있으면 막~ 식탐 내서 먹고 난 뒤에
'아취였는가 보네... 그게.' ㅎㅎㅎ
그 다음에
無礙智가 現前에,
거기서부터인가요?
信解淸淨心과 如來의 한량없는 힘과
無礙智現前에
自焐不由他라
具足同如來하야
發此最勝心이로다
걸림 없는 지혜가 생겨서
제 힘으로 깨닫고,
自焐, 스스로 깨닫고 不由他라.
자~ 이런 대목에서 제가 한 번씩 이렇게 했는 대목이 있죠.
자~ 팔을 들어 보세요.~
팔을 들고 쫙~ 이 만큼 드세요.
두 팔 다~ 두 팔 다~ 스님들 왜 안 들어요?
팔 들어야지.
이거 이제 이래야 기억이 오래 가는 거야.
시청각 교육으로
오도화! 팔을 쫙~ 펴세요.
자! 내리시고 그만 하시고...
壯士展臂장사전비에 不備他力불비타력이라.
힘 좋은 장사가 팔을 들 때
남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는 거는 不問可知고,
壯士까지 갈 것 없고 우리도 그죠?
힘 없는 우리도 그렇고
세 살 먹은 삼척동자라도 손가락 뽑고 발가락 딛고
이제 걸어 다니고 손가락 하나 들고
손가락 하나 드는 이 힘이 누구한테 빌릴 거냐?
하나도 남에게 빌릴 것 없다.
대충 이해 가시죠.
스스로 깨닫는 마음의 세계도 부처님도 필요 없다.
오직 自度自修라.
스스로 제도하고 스스로 수행할 뿐이라고
육조 스님이 금강경에 自度自修라고 많~이 해놨죠.
금강경 해설하시면서
오직 나를 제도할 수 있는 이는 나뿐이다.
그렇다고 아만 덩어리 지가 아니고
마음을 환희지처럼 내려놓은 내 자신.
自焐不由他라.
전에 由他한 번 배워놓으니까 좀 편하지요.
유타할 때는 어떨 때 유타 써야 됩니까?
의견이 충돌될 때
'아이고~ 니 하자는 대로 하자.'
이게 되는 거야. 그죠?
不由他, 남을,
불유타 나왔는데
'유타 안 할랍니다.'
이렇게 하지 마세요.
유타하세요.ㅎㅎ
유타할 거 유타하고 불유타 할 거 불유타 하고,
깨달아야 될 때는 남을 의지하지 않고,
의견 충돌 일어날 때는 남을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렇게 한다는 거죠.
具足同如來라.
여래처럼 구족하려
가장 수승한 마음을 내었다.
( 發此最勝心이로다 )
佛子始發生
如是妙寶心하면
則超凡夫位하야
入佛所行處로다
불자들이 처음으로
이 묘한 환희지 마음을 낼 적에
진정한 범부의 지위를 초월해가지고
부처의 행에 들어간다,
일단 외범을 초월할 때는 신심을 일으키는 거고
내범, 불교를 믿지만 제대로 실천할 수 없을 때 그것 역시 범부야.
십지 환희지까지 들어오기 전까지는 전부 다 까막눈이라. 까막눈.
그런 대목을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해 놨죠.
눈을 환희지에 들어와서 눈을 딱! 뜨는 대목을
如日光明照하면 見種種色이다.
해가 비치면 온갖 사물을 낱낱이 구분하듯이
사사건건 이치 이치마다 모든 도리에 대해서
理와 事에 대해서 현실과 진리에 대해서 막히는 것이 없다.
이렇게 얘기해놨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지금 쓰시는 그 마음 그대로
정말 저 햇빛이 이렇게 내리 쬘 때
저는 항상 그렇게 생각합니다.
햇빛이 무슨 다른 빛깔과 색깔을 더 하지 않더라도
햇빛으로 충분히 밝고 아름답고 찬란하구나.
지나가는 바람이 무슨 향기를 품고 뿜어가지고
어떤 꽃나무나 다른 풀 위를 지나가지 않더라도
그냥 바람 한 줄기 스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꽃은 꽃대로 향기롭고 풀은 풀대로 향기롭다.
지금 일어나는 생각과
그 본심에서 나오는 그것은
향기도 없고 빛깔도 없고 맛도 없지만
모든 것이 저절로 향기롭고 저절로 거룩하고
너무너무 아름답다는 거죠.
이런 대목도 제가 해석하면서 이렇게 했습니다.
세수하지 않아도 깨끗한 얼굴이 있다.
우리가 닦지 않아도 완전무결하게 빛나고 찬란한 마음이 있다.
단지 雲散에 月自明이라.
구름만 흩어지면 달빛은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
어제 밤에 오늘 새벽 예불 가다 보니
보름달이 둥그런 게 서산에 떨어지던데
그게 15일 밤에 떠가지고 16일 날 새벽에 지대요.
그게 15일 달이요? 16일 달이요?
분명코 달이로구나!
보름달이요? 16일 달이요?
아~이고 그런 거 생각할 게 뭐 있어.
달이지 뭐 그냥... ㅎㅎㅎ
자꾸 달을 달리 생각하시네...
자~ 여래의 묘한 보배 마음을 얻으면
환희지 같은 이 마음입니다. 그죠?
잡념이 다 떨어진 깨끗한 마음을 얻게 되면
아주 잡되게 사는 더덕더덕 누덕누덕 이렇게 붙어 사는
그런 지저분한 범부를 초월해가지고
入佛, 부처님의 所行處, 행한 바에 들어간다.
제대로 깨닫는다.
이 말이죠.
生在如來家에
種族無瑕玷하며
與佛共平等하야
決成無上覺이로다
여래 가문에 태어나서
종족에는 허물이 없고
부처님과 평등하게
무상각을 이루리라.
여래 가문에 태어나는 순간에 아~무 것도 없어져 버리죠.
여래 가문에 태어나면 뭐 잡된 번뇌가 있을 리가 없지.
纔生如是心에
卽得入初地하야
志樂不可動이
譬如大山王이로다
겨우 纔재, 겨우 재자죠.
겨우 이와 같은 마음이 들면
卽得入初地라, 바로 환희지에 들어가서 환희지를 깨달아서,
그 뜻과 즐거워 하는 것이
不可動이 志樂이 不可動이,
기쁜 마음 움직이지 않으니 가히 움직일 수 없나니,
법에 대한 환희심을 일으켰을 때는
세속적인 마약 먹고 뿅~ 가는 것 하고는 비유가 안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法喜禪悅이야.
여기에 법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이 없고 매일 괴롭고 이러면
학식만 쌓는다.
학식만 쌓는다.
지난 강의 때는 제가 어떻게 말씀드렸습니까?
제 강의는 밀가루를 가지고
수제비 만들고 빵 만들고 찌짐(전) 만들고 국수 만들고 칼국수 만들고,
그와 같은 음식 만드는 강의 아니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아 들으셔야 되고
인인의 심장마다 각자의 곡식인 밀을 심어야 됩니다.
심고 또 올해 베어 먹고 내일 베어 먹고
항상 심장에서 곡식이 자라도록
양심에서 이 부처님의 종자가 자라도록
태가 자라도록 그렇게 자꾸 하셔야지
뭐 몇 개 조르르 외워가지고
저번에 다른 선생님 지적해서 좀 죄송합니다만
이름은 거명을 안 하겠습니다.
조르르 몇 개 알아가지고
얄궂게 그거 지식적으로 색다르게
어디 가서 설명한다 해서 그거 좋아질 것 아무 것도 없어요.
여기 굉장한 겁니다.
기쁜 마음 부동(不動)하니
수미산과 같느니라.
원래는 太山王이라 이렇게 해야 될텐데
옛날 목판본에는 太태 자나 大대 자나 똑같이 돼 있거든요.
점 하나 그렇게 꼭 찍혀 있는데
뒤에 옮긴 사람이 조금 잘못 옮긴 것 같은 느낌이 좀 있어요.
뭐 大山王이라도 뜻은 똑같으니까...
② 釋名
多喜多愛樂하며
亦復多淨信과
極大勇猛心과
及以慶躍心이로다
遠離於鬪諍과
惱害及瞋恚하고
慚敬而質直하야
善守護諸根이로다
救世無等者의
所有衆智慧를
此處我當得일새
憶念生歡喜로다
始得入初地에
卽超五怖畏하나니
不活死惡名과
惡趣衆威德이로다
以不貪着我와
及以於我所일새
是諸佛子等이
遠離諸怖畏로다
② 환희라는 이름의 해석
환희하고 즐거우며
깨끗한 신심 많고
엄청난 용맹심과
경사롭게 뛰는 마음이라
다루거나 해치거나
성내는 일 여의었고
참회하고 질직(質直)하게
여러 근(根)을 수호하며
세상 구해 짝 없는 이
여러 가지 가진 지혜
이 곳에서 내가 얻어
생각하고 기뻐하고
초지(初地) 중에 처음 들어
다섯 공포 초월하니
살 수 없고, 죽는 일과
나쁜 누명과 나쁜 갈래와
대중 위덕(威德)의 공포들을
'나'와 '내 것' 안 탐하며
이와 같은 불자들이
그런 공포 여의었네
② 釋名
② 환희라는 이름의 해석
환희라는 이름을 해석하다.
그러면 도대체 환희 환희 이거는
최진실 아들이 환희잖아... ㅎㅎㅎ
왜 또 그게 거기까지 튀어 버리나...ㅎㅎㅎ
죄송합니다.
마음대로 개구리 하고 저 하고는 어디로 튈지 몰라.
환희라는 이름 해석이라.
뭐가 환희냐?
多喜多愛樂하며
亦復多淨信과
極大勇猛心과
及以慶躍心이로다
환희하고 즐거우며
깨끗한 신심이 많고
엄청난 용맹심과
경사롭게 뛰는 마음이라.
그러니까 이리저리 눈치 보는 거 하면
여기서 끝나 버렸다는 거죠.
그 다음에
遠離於鬪諍과
惱害及瞋恚하고
慚敬而質直하야
善守護諸根이로다
아까 뭐라고 말씀 드렸죠?
다투는 게 없어져 버려요.
由他, 수순한다고 말씀드렸죠. 그죠?
다투거나 남 또 해꼬지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를 않아.
제가 한 번 실험해 봤는데
하루만 안 일어나면 일주일이 안 일어나고
일주일이 안 일어나면 한 달이 안 일어나고
한 달이 안 일어나면 일 년이 안 일어나고
일 년만 안 일어나면 평생이 안 일어난다.
오직 중요한 거는 현전에 지금 안 일으킨다는 거죠.
지금 안 일으킨다는 거
일어나 버리면 금방 또 어떻게?
털어 버리고 지금 또 안 일으킨다.
아까 생각은 아까고
百劫積集罪는 아까 것이고
一念에 頓蕩盡이라.
지금은 또 지금이다. 즉시에
그러면 행복 안 해지고 싶어도 안 해질 수가 없어요.
제가 또 잘 쓰는 말로
요것도 사실 제가 아래(그저께) 알았어요. 어제 아래(그저께)
확실히 알았어요.
환희지에 들어가면
남하고 다투거나 엉겨 붙거나
해치거나 성내는 일이 여의었고
우리는 골(화)을 얼~마나 잘 내는지
성철 스님보다 더 잘 낸 것 같아.
그런데 이게 조금 없어져 버린 것 같아.
그렇다고 뭐 깨친 거 하고 이런 거 상관 없고
글을 읽다 보니까 좀 양심에 찔린다 이 말이죠.
慚이라고 하는 거는 부끄러워하고
敬, 아주 공손하고 質直이라.
법화경에는 이런 대목을 우리 柔和質直이라고 배웠죠.
質直柔和다.
환희지에 들어간 사람들은
아주 근본적으로 정직하고 질박하고 남에게 부드럽다.
아주 달콤한 과일과 같다, 꿀맛 같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네요.
쓰디쓴 성 내는 일이 없고
참회하고 질직하게
여러 근(根)을 수호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거슬리는 게 없고
귀에 들리는 대로 거부감도 없다.
모든 느끼는 것과 보고 듣는 것이 편안하다.
왜?
탐욕심이 다 잡념이 안쪽에서 제압됐고
그러나 이 환희지에서 제압된 거는
바깥으로 뻗어져 나오는 힘만 제압되어 있지
안에는 여전히 뭐가 도사리고 있어요?
안에는 잠자고 있는 독사가 몇 덩어리인지 몰라.
금세 사람이 조금 변했다 하더라도
안쪽에는 여전히 뭐가 있어요?
거대한 잠재 독사가 몇 덩어리가 있다고...
그게 진짜 무서운 거거든요.
그거를 이제 俱生煩惱라고 하죠. 구생번뇌.
그게 모든 것을 야기시키는 末那識이라고 하죠.
근본 제 7 말나식.
아!~ 잔인한 놈이죠. 그놈은
거기에 끄달려 다니는 줄도 모르고
그 도둑놈 밑에서 하수인 노릇 하면서도
보고 듣는 것 다 그놈이 시키는 대로 다 따라 가면서도
자기 잘 났다고 이렇게 웃기는 소리 하고
딱 보면 일본 앞잡이,
그런 사람들은 별명 지어줘야겠죠.
7식이 하자는 대로 아집이 하자는 대로 다 따라 가는 사람은
호리몬도, 일본 순사 앞잡이, 호리몬도 앞잡이,
走狗라 그래요. 주구
주구 노릇 일생 동안 하다 가는 거야. 잘못 하면
이제는 알았으니까
아군인지 적군인지 스파이를 보내가지고
잘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뭐 오래전부터 알으셨겠지만
여기서 여러 근을 수호한다는 말도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잘~ 수호하는 거죠.
수호하는 것 보통 잘 지키는 정도가 아니죠.
救世無等者의
所有衆智慧를
此處我當得일새
憶念生歡喜로다
세상에 구해서, 救世에
그러니까 구세라는 게 뭐죠?
구세주로서 아무리 세상에 구해도 짝이 없는 사람
견줄 사람이 없는 이의 여러 가지 가진 지혜
이 곳에서 내가 얻어
생각하고 기뻐하고
始得入初地에
卽超五怖畏하나니
不活死惡名과
惡趣衆威德이로다
以不貪着我와
及以於我所일새
是諸佛子等이
遠離諸怖畏로다
이 환희지에 처음 들어가면
다섯 가지 공포가 초월하니
저 앞에 있었죠?
나온 게 있었죠.
살 수 없고, 죽는 일과 나쁜 누명과
나쁜 갈래와 또 대중 위덕(威德)의 공포들을
'나'와 '내 것'을 탐하지 아니 하며
이와 같은 불자들이
그런 공포를 여읜다.
③ 安住
常行大慈愍하고
恒有信恭敬하며
慚愧功德備하야
日夜增善法이라
樂法眞實利하고
不愛受諸欲이로다
思惟所聞法하야
遠離取着行하며
不貪於利養하고
唯樂佛菩提하야
一心求佛智하야
專精無異念이로다
修行波羅蜜하며
遠離諂虛誑하고
如說而修行하야
安住實語中이로다
不汚諸佛家하며
不捨菩薩戒하며
不樂於世事하고
常利益世間이로다
修善無厭足하야
轉求增勝道하니
如是好樂法이
功德義相應이로다
③ 환희지에 안주함
큰 자비를 늘 행하며
신심 있고 공경하고
부끄러운 줄 아는 공덕 갖춰
밤낮으로 선심(善心) 늘며
참된 법을 좋아하고
모든 욕락(欲樂) 안 받으며
들은 법을 생각하여
온갖 고집 떠났으니
이양(利養)일랑 탐하지 않고
부처의 보리를 좋아하며
일심으로 지혜 구해
한결같이 딴 맘 없고
바라밀다 수행하여
아첨과 허황 떠났으며
말한 대로 행을 닦아
참말 속에 머무르며
부처 가문 더럽잖게
보살 계행(戒行) 버리지 않고
세상일을 좋아 않고
항상 세간 이익케 하며
선(善)한 일에 만족 없고
더 좋은 길 구하면서
이런 법을 즐겨하여
공덕과 이치가 서로 응하도다
③ 安住
③ 환희지에 안주함
자~ 환희지에 안주한다.
安住, 제대로 안주할 자리에 안주하네요.
어디에 안주하느냐 한 번 봅시다.
常行大慈愍하고
恒有信恭敬하며
慚愧功德備하야
日夜增善法이라
큰 자비를 늘 행하고
신심 있고 공경하고
부끄러운 줄 아는 공덕을 갖춰
밤낮으로 신심(信心) 늘며,
이런 얘기를 임제록에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어디에 가더라도 자비를 행하고 신심있게 사는 사람은
隨處作主라고 합니다.
자기의 본심을 쓰니까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은 자비와 신심으로
부끄러운 줄 아는 공덕을 갖춘 사람이 하는 일들은 다 진실되기 때문에
임제록에서는 또 立處皆眞이라.
있는 그 자리가 전부 다 진실이다.
이렇게도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임제 스님도 참 고맙지요.
그런 말씀을 간략하게 우리한테 전해놓은 것,
야!~ 옛날 분들은 아무 피 한방울 안 섞였는데도
말 한 마디도 인정도 하나 안 통하는데도
그렇게 대자대비를
부처님으로부터 이 화엄경을 편집했는 사람까지
눈물 나도록 고마운 분들의 은덕이
우리에게 지금도 이렇게 위신력이 전해지는 겁니다.
이런 걸 막~
'그냥 책일세...'
그런 사람은 이 책 속에 흐르는 진짜 법을 못 보는 거라.
책 속에 법이 있다는 걸 알면 감지덕지 하거든.
청암 거사 이제 빠져 버렸지?
어릴 때부터 애 먹이더니만 끝까지 애 먹이는 거야.
안 오는 거야.
어째 내가 사자 모임에 어떻게 늑대가 한 마리 왔다 싶더라고...ㅎ
獅子屈中에는 盡成獅子고
사자굴 중에는 전부 사자뿐이고
栴檀林下에는 純是栴檀이다.
전단나무 숲에는 전부 전단나무 뿐이다.
자! 그 다음에
樂法眞實利요법진실리하고,
樂法락법이라 안 하고 제가 뭐라고 읽었죠?
樂法眞實利하고
不愛受諸欲이로다
思惟所聞法하야
遠離取着行하며
참된 법을 좋아하고
모든 욕락(欲樂)을 안 받으며
들은 법을 곰곰이 잘 기억하고 생각해가지고,
무엇을 떠나야 돼요?
온갖 고집을 떠나라.
고집스러운 사람은 아까 뭐라 했습니까?
옷에 페인트 칠해가지고
나 '고집' 써놓은 거 하고 똑같다고 했죠?
노란 뼁끼 빨간 뼁끼가 아니고, 뭐죠?
페인트.
뼁끼는 일본말인가요?
뼁끼, 일본말?
자~ 그 다음에
不貪於利養하고
唯樂佛菩提하야
一心求佛智 하야
거기도 樂요자로 읽어야 돼요.
唯樂佛菩提유요불보리하야
一心求佛智하야
專精無異念이로다
不貪於利養하고
唯樂佛菩提하야
一心求佛智하야
專精無異念이로다
자기의 이득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양(利養)이라고 하는 것은
喫甘愛養끽감애양하야도
此身차신은 定塊정괴요.
着柔守護착유수호 하야도
命必有終명필유종 하리라.
라고 하는 원효스님 발심수행장에 나오는 얘기처럼
아무리 맛있는 걸 먹더라도
이 몸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돼가지고 죽게 되어 있고
着柔守護하야도
비단결 같고 명품 아무리 옷에 걸친다 하더라도
着柔守護하야도
命必有終하리라.
우리 역시 죽을 것이다.
여기서 利養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 세속 적인 것 탐내는 것 안 좋아하고,
아까 다 말씀드렸죠. 서두에 그죠?
부처님의 깨달음에 정각을 좋아하며
일심으로 지혜를 구한다.
다른 게 없다, 이거야.
荀子순자라고 하는 책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죠.
莫神一好라.
한 가지를 一好, 좋아하는 것보다
莫神, 더 신명나는 것은 없다.
이런 얘기죠.
이거는 우리 불자들한테 해당하는 일이라고 보면 돼요.
한결같이 딴 마음이 없고
修行波羅蜜하며
遠離諂虛誑하고
如說而修行하야
安住實語中이로다
바라밀다 수행하여
아첨과 왜곡된 것 허황하고 그런 걸 다 떠나 버리고
말한 대로 행을 닦아
참말 속에 머무른다.
아까 뭐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확하게 안다고 하는 거는
실천할 의지가 있을 때 정확하게 안다고 하는 것이죠.
不汚諸佛家하며
不捨菩薩戒하며
不樂於世事하고
常利益世間이로다
부처님 가문을 더럽히지 않고
보살 계행(戒行)을 버리지 않고
세상 일을 좋아하지 않고
항상 세간을 어리석은 사람들을 다 이익하게 한다.
자기 사는 환경 주변을
修善無厭足하야
轉求增勝道하니
如是好樂法이
功德義相應이로다
선(善)한 일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좋은 선한 길을 구하고
이런 법을 즐겨하며
공덕과 이치가 서로 응하도다.
아! 이제 10분 남았는데...
그러면 이거 빨리 끝내는 방법이 있죠. 자~ ㅎㅎ
④ 誓願
恒起大願心하야
願見於諸佛하며
護持諸佛法하야
攝取大仙道로다
常生如是願하야
修行最勝行하야
成熟諸群生하며
嚴淨佛國土로다
一切諸佛刹에
佛子悉充滿하야
平等共一心이라
所作皆不空이로다
一切毛端處에
一時成正覺하니
如是等大願이
無量無邊際로다
虛空與衆生과
法界及涅槃과
世間佛出興과
佛智心境界와
如來智所入과
及以三轉盡이여
彼諸若有盡이면
我願方始盡이어니와
如彼無盡期일새
我願亦復然이로다
④ 서원(誓願)을 발하다
큰 서원을 항상 내어
부처님을 뵈옵고자
부처님 법 보호하고
보리도(菩提道)를 거두어지이다
이런 서원 늘 세우고
좋은 행(行)을 수행하며
모든 중생 성숙하고
부처 국토 청정하리라
모든 부처 세계 중에
불자들이 가득한데
평등하게 한 맘으로
짓는 일이 헛되지 않고
한량없는 털끝마다
한꺼번에 성불(成佛)하리
이와 같은 큰 원력이
한량없고 끝이 없네
허공계(虛空界)나 중생계나
법계(法界)거나 열반계(涅槃界)나
세간계(世間界)나 부처님의 출현과
여래 지혜와 마음 경계와
부처님의 지혜로 들어갈 때
삼계윤회(三界輪廻)가 끝나는 일
저런 것이 다 끝나면
내 소원도 끝나련만
저런 것이 끝 안 나니
내 소원도 끝이 없네
④ 誓願
④ 서원(誓願)을 발하다
큰 서원을 항상 내어
부처님을 뵈옵고자
부처님 법 보호하고
보리도(菩提道)를 항상 거두어지기를 원한다.
( 恒起大願心하야
願見於諸佛하며
護持諸佛法하야
攝取大仙道로다 )
늘 이런 서원을 세우고
좋은 행(行)을 수행하며
모든 중생을 잘~ 다둑거리고 챙기고 가꾸어서 성숙시켜서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할 것이다.
( 常生如是願하야
修行最勝行하야
成熟諸群生하며
嚴淨佛國土로다 )
모든 부처님 세계 중에
불자들이 가득한데 평등하게
한 맘으로 짓는 일이 헛되지 않고
한량없이 털끝마다 한꺼번에 성불(成佛)하리라.
( 一切諸佛刹에
佛子悉充滿하야
平等共一心이라
所作皆不空이로다
一切毛端處에 一時成正覺하니)
이와 같이 큰 원력이
한량없고 끝이 없다.
허공계(虛空界)나 중생계나
법계(法界)나 열반계(涅槃界)나
세간계(世間界)나 부처님의 출현과
여래 지혜와 마음 경계와
부처님의 지혜로 들어갈 때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의 윤회(三界輪廻)가 끝나는 일
저런 것이 다 끝나면
내 소원도 끝나련만
저런 것이 끝나지 않으니
내 소원도 끝이 없다.
(如是等大願이
無量無邊際로다
虛空與衆生과
法界及涅槃과
世間佛出興과
佛智心境界와
如來智所入과
及以三轉盡이여
彼諸若有盡이면
我願方始盡이어니와
如彼無盡期일새
我願亦復然이로다)
無有休息이라고 해서 우리 저 앞에 배운 대목이 있었죠.
나도 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대목을 배웠고,
우리가 능엄경 배우신 분들은
이런 대목을 기억해볼만 합니다.
3권 말미에 게송이 하나 아름다운 게 있었습니다.
舜若多性순야다성은 可銷亡가소무(무로 읽음)언정
爍迦羅心사가라심은 無動轉무동전이라.
저 허공이 녹을지언정
철석같은 내 신심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舜若多性순야다성, 허공성은
可銷亡가소무라, 오히려 녹을지 모르겠지만
사가라심 삭갈라심 사가라심, 철석같은 이 마음은
無動轉이라,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야!~ 옛날 분들은 글도 어마무시하게 썼어요.
전투사처럼 썼어요.
싸우는 게 누구하고 싸우느냐 하면
자기의 번뇌하고 마장하고 싸우는 거라.
엉뚱하게 엉겨 붙어서 형제 간에 싸우고 그러잖아요. 맨날
여기도 저런 것이 끝 안 나니 내 소원도 끝이 없다.
보현행원에도 나오지요.
허공끝이 있사온들 이내 소원 다 하리까.
하는 怡山喬然禪師이산교연선사발원문도 있지.
요새는 혜연선사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대요.
⑤ 波羅密行
如是發大願하야
心柔軟調順하며
能信佛功德하야
觀察於衆生호대
知從因緣起하고
則興慈念心하야
如是苦衆生을
我今應救脫이로다
爲是衆生故로
而行種種施호대
王位及珍寶와
乃至象馬車와
頭目與手足과
乃至身血肉을
一切皆能捨하고
心得無憂悔로다
求種種經書호대
其心無厭倦하고
善解其義趣하야
能隨世所行로다
慚愧自莊嚴하고
修行轉堅固하며
供養無量佛하야
恭敬而尊重이로다
⑤ 바라밀을 행하다
이와 같이 원(願)을 내니
순한 마음 부드럽고
부처 공덕 능히 믿고
중생들을 관찰하여
인연으로 난 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며
이런 고통 받는 중생을
내가 이제 제도하되
이런 중생 위하여서
가지가지 보시하고
왕의 지위와 보물이나
코끼리와 말[馬]과 수레와
머리와 눈, 손과 발과
이내 몸과 피와 살을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이 마음에 걱정이 없고
온갖 경전 구하여도
싫증나는 마음 없고
그 이치를 잘 알아서
세상 행을 따라가며
부끄러운 장엄으로
닦는 행이 견고하고
무량불께 공양하되
공경하고 존중하네
⑤ 바라밀을 행하다
이와 같이 원(願)을 내니
순한 마음 부드럽고
부처 공덕 능히 믿고
중생들을 잘 관찰해서
인연으로 난 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고,
(如是發大願하야
心柔軟調順하며
能信佛功德하야
觀察於衆生호대
知從因緣起하고
則興慈念心하야 )
인연, 화를 많이 내고 이런 사람들은
인연관을 하면 자비심이 돋아나게 돼 있어요.
자비심을 일으키고
이런 고통 받는 중생을
내가 이제 제도하되
이런 중생 위하여서
가지가지로 보시하고
왕의 지위와 보물이나
( 則興慈念心하야
如是苦衆生을
我今應救脫이로다
爲是衆生故로
而行種種施호대
王位及珍寶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조건 모든 것,
제1 조건 제2 조건 제3 조건 할 것 없이 전부 모든 조건을
코끼리 말[馬] 수레와
( 乃至象馬車와 )
요즘 책 바꿔야 되겠죠.
에쿠스와 그랜져와 이런 것 BMW 같은 것들을ㅎㅎㅎ
머리와 눈, 손과 발,
이내 몸과 피와 살을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이 마음에 걱정이 없다.
(頭目與手足과
乃至身血肉을
一切皆能捨하고
心得無憂悔로다)
그러면 이제 환희지라 이거죠.
온갖 경전 구하여도
싫증나는 마음이 없고
( 求種種經書호대
其心無厭倦하고)
온갖 경전 공부를 많~이 해도 결석하는 마음이 없고ㅎㅎㅎ
이 이치를 잘 알아서
세상 행을 따라간다.
(善解其義趣하야
能隨世所行로다)
아니 청암 거사는 벌써 요로 결석 걸리더니
오늘은 또 신장 결석, 신장이 아니지 뭐 담석까지 걸렸는가 봐.
완전 결석이라는 결석은 다 걸려버려서... ㅎㅎ
부끄러운 장엄으로
닦는 행이 견고하고
무량불께 공양하되
공경하고 존중하네
( 慚愧自莊嚴하고
修行轉堅固하며
供養無量佛하야
恭敬而尊重이로다.)
⑥ 歡喜地의 功果
如是常修習하야
日夜無懈倦하니
善根轉明淨이
如火鍊眞金이로다
菩薩住於此하야
淨修於十地하니
所作無障礙하야
具足不斷絶이로다
譬如大商主가
爲利諸商衆하야
問知道險易하고
安隱至大城인달하야
菩薩住初地도
應知亦如是라
勇猛無障礙하야
到於第十地로다
住此初地中에
作大功德王하야
以法化衆生하야
慈心無損害로다
統領閻浮地에
化行靡不及이다
皆令住大捨하야
成就佛智慧로다
欲求最勝道하야
捨已國王位하고
能於佛敎中에
勇猛勤修習하야
則得百三昧하고
及見百諸佛하며
震動百世界하고
光照行亦爾하며
化百土衆生하고
入於百法門하며
能知百劫事하고
示現於百身하며
及現百菩薩로
以爲其眷屬이어니와
若自在願力인댄
過是數無量이니라
⑥ 환희지에 오른 공과(功果)
이와 같이 항상 닦아
밤과 낮에 게으름이 없어
선근(善根) 더욱 깨끗하기가
불로 진금(眞金)을 연단하듯
보살들이 이 곳에서
십지행(十地行)을 잘 닦으며
짓는 일이 장애 없고
구족하여 안 그치니
마치 어떤 장사 물주(物主)가
장사치를 이익케 하려고
험한 길을 자세히 물어
큰 성중에 잘 가듯이
초지(初地) 중에 머문 보살이
하는 일도 그와 같아서
용맹하고 장애 없어
제 십지에 이르도다
초지 중에 머문 보살이
큰 공덕의 왕이 되어
법문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자비한 마음이 손해 없고
남섬부주 통치하며
왕의 덕화가 멀리 미쳐
큰 보시에 머물러서
부처 지혜 성취하네
최승도(最勝道)를 구하려고
국왕자리 다 버리고
부처님 교법(敎法) 중에 들어가서
용맹하게 수행하며
일백 삼매 얻은 후에
백 부처님을 뵈오면서
백 세계를 진동하고
광명 비춘 행(行)도 그러해서
백 세계의 중생을 교화하고
백 법문에 들어가서
백 겁(劫) 일을 능히 알고
백 가지 몸을 나타내며
백 보살을 나타내어
나의 권속 삼거니와
자재하온 원력으론
더 지내기 한량없네
⑥ 환희지에 오른 공과(功果)
환희지에 오르게 되면 어떠한 공능과 결과물이 갖춰지게 되는가.
이와 같이 항상 닦아
밤과 낮에 게으름이 없어
선근(善根) 더욱 깨끗하기가
불로 진짜 금(眞金)을 단련하듯이
( 如是常修習하야
日夜無懈倦하니
善根轉明淨이
如火鍊眞金이로다)
번뇌를 털어내고 털어내고 한다는 거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늘 송구스럽습니다만
실제적으로 경험을 해 보면
밤낮없이 공부가 돌아간다는 것,
너무 환희롭고 너무 재밌다는 것,
요즘 저는 가만히 있으면
제가 책을 읽다가 이제 읽고 쉬고 있으면
'홀딱벗고새'라고 있습니다. '홀딱벗고'
여러분 아시죠?
'검은등 뻐꾸기'라고 합니다.
검은등 뻐꾹새가 학명으로는 검은등 뻐꾹새가
그게 울 때 이렇습니다.
용학스님 홀딱벗고~ 호호호호 호호호호~~(새가 노래하는 어조로)
이렇게 웁니다.
제가 글 읽다가 조금 눈도 침침하고 하면
그 새가 옆에 와가지고 이렇게 합니다.
보살들이 이곳에서
십지행을 잘닦으며
짓는일이 장애없고
구족하여 안거치니
호호호호 호호호호~~~ㅎㅎㅎ
이렇게~ 그런 거 안 느껴지세요?
여기 있으면 홀딱벗고새에
또 딱따구리가 와서 또르르르르 목탁 쳐주지.
장단 맞춰주죠.
또 밤 되면 지금쯤은 뭐가 웁니까?
소쩍다 우는 진달래 필 때마다 한 움큼씩 피를 토해냈다는
두견새, 소쩍새, 귀촉도, 접동새, 불여귀, 또 뭐가 있노?
그런 소쩍새가 이제 또 와서
마치 어떤 장사 물주가 소쩍다,
이렇게 읽어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새도 울고
새도 하고 바람도 한 번씩 촥 ~ 들어와서 글을 읽고 가고,
옛날 분들은 다 그렇게 살았어요.
범어사 보제루를 뜯고 난 뒤에
한 180년 전인가 이렇게 상량문을 보니까
어떤 글귀가 있었느냐 하면
범어사는 이제 글을 해석할 분들이
여러분들이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강주라고 거기 와서 글 좀 봐 달라고 이러니까...
글이 내려가야 말이지.
그런데 하!~ 혼자 싱긋이 웃고 있으니
학예관이
'뭔데 혼자 웃습니까?'
그거 가르쳐주면 동급되니까 안되잖아.
글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하면
이 절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우리 인간들만의 절간이겠느냐.
지나가는 저 구름도 신발을 벗어놓고 반쯤
여기서 신발을 벗어놓고 이 보제루에 머물다 쉬었다 가라고
옛날 사람들 자비심은 그 정도야.
지나가는 바람한테도 우리 도량의 한 공간을 내주는 거야.
도량이라고 하는 건
여기 바로 환희지가 도량입니다.
그 사람의 도량이 넓다 좁다, 이런 얘기 하잖아요.
그거 불교 얘기거든요.
보통 사람은 도량이 없습니다.
도량이라고 하는 거는
정심지요, 환희지요.
신심 있는 사람한테는 도량이 있고
신심 없는 사람은 무자비해서 도량이 없는 거예요.
도량이 없다니까.
도 닦는 장소가 없어요.
바늘끝 만큼도 없어요.
이런 강의는 저밖에 못 하니까...
옛날 분들은ㅎㅎㅎ
자랑 안 하면 양념 빠진 것 같잖아.
야!~ 그 멋지지 않아요. 그죠?
누각을 하나 지어놓고
우리만 즐길 게 아니고 아취 아만에 즐기게
우리 것 사리사욕에 눈 뜬 게 아니고
아무 까닭도 없는 누구도 쉬었다 가라고?
하!~ 바람도 구름도 여기 와서 신발 벗어놓고 쉬었다 가.
신발 벗어놓고
잠시 쉬었다 가도록
이 부처님의 이 도량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두두물물이 일체만물 것이 아니더냐.
이 도량을 보제루를 건립했을 때는
모든 것 하고 더불어서 즐기고 싶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저를 만난 것이 가문의 영광이요.
세상에 그 글귀를 보고 난 뒤에
이렇게 전해주는 사람도 있어야 되잖아요. 그죠?
저는 아마 어째 죽으면 잘난 척 하다가 죽었네.ㅎㅎㅎ
간단해요. 그냥
잘난 척 하다가 죽었네.
보살들이 이 곳에서
십지행(十地行)을 잘 닦으며
짓는 일이 장애 없고
구족하여 그치니 않으니
마치 어떤 길을 잘 아는 장사 물주(物主)가
여러 장사하시는 분들을 이익케 하려고
험한 길을 자세히 물어서
큰 성중에 들어 가듯이
( 菩薩住於此하야
淨修於十地하니
所作無障礙하야
具足不斷絶이로다
譬如大商主가
爲利諸商衆하야
問知道險易하고
安隱至大城인달하야)
그 큰 성중은 어디겠습니까?
열반 성중이라 해야 되겠죠?
환희지 초지(初地) 중에 머문 보살이
하는 일도 그와 같아서
용맹하고 장애 없어
제 십지에 이르도다.
초지 중에 머문 보살이
큰 공덕의 왕이 되어
법문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자비한 마음이 손해 없고
남섬부주 통치하며
왕의 덕화가 멀리 미쳐
큰 보시에 머물러서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한다.
( 菩薩住初地도
應知亦如是라
勇猛無障礙하야
到於第十地로다
住此初地中에
作大功德王하야
以法化衆生하야
慈心無損害로다
統領閻浮地에
化行靡不及이다
皆令住大捨하야
成就佛智慧로다)
62 P 입니다.
따라 가고 있습니까? 네~
최승도(最勝道) 가장 수승한 도를 구하려고
국왕의 자리도 다 버리고
(欲求最勝道하야
捨已國王位하고),
그 위에는 남섬부주 통치한다는 거는
재가에 있는 사람의 십지 공덕이고
그 밑에는 출가한 스님의 십지 공덕이죠.
부처님 교법(敎法) 중에 들어가서
용맹하게 수행하며
일백 삼매를 얻은 후에
백 부처님을 뵈온다.
( 能於佛敎中에
勇猛勤修習하야
則得百三昧하고
及見百諸佛하며 )
일백 삼매를 얻은 후에
법경 거사님은 어떻게 했어요?
於一念頃에 失百三昧하고,
이렇게 말씀 드렸죠.
백삼매를 잃어 버린다.
잡념을 일으키니까.
삼매 공덕은 어떻다 했습니까?
부처님을 볼 수도 있고
부처님의 세계도 다 진동시키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광명 비춘 행(行)도 그러해서
백 세계의 중생을 교화하고
( 及見百諸佛하며
震動百世界하고
光照行亦爾하며
化百土衆生하고)
온~갖 법문에 다 들어가서
온갖 세월 속에서 그 일들을 능히 다 알고
온갖 여러 가지 몸을 나타내서,
(入於百法門하며
能知百劫事하고
示現於百身하며 )
수많은 중생들을
근기와 욕망과 성품이 다 다르니까
갖가지 중생을 다 제도하겠다는 자비심으로,
나의 권속 삼거니와
자재하온 원력으론
더 지내기 한량없네.
(及現百菩薩로
以爲其眷屬이어니와
若自在願力인댄
過是數無量이니라 )
⑦ 結說
我於地義中에
略述其少分이어니와
若欲廣分別인댄
億劫不能盡이니라
菩薩最勝道로
利益諸群生하나니
如是初地法을
我今已說竟이로다
⑦ 맺는 말
내가 지금 초지(初地)의 뜻을
조금만 말했지만
광대하게 말하려면
억 겁에도 못 다하리
보살들의 수승한 도(道)
중생들을 이익케 하니
이와 같은 초지법을
내가 지금 다 말하네
⑦ 맺는 말
맺는 말이라.
⑦ 結說
我於地義中에
略述其少分이어니와
若欲廣分別인댄
億劫토록 不能盡이니라
菩薩最勝道로
利益諸群生하나니
如是初地法을
我今已說竟이로다
내가 지금 초지(初地)의 뜻을
조금만 말했지만 광
대하게 말하려면
억 겁토록 한 세상 다 하도록 해도 다 못할 것이다.
보살의 수승한 도(道)를
중생들을 이익케 하니
이와 같이 초지법을
내가 지금 다 말하네.
이래서 오늘 여기까지 강의 하도록 하겠습니다.
莊子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庖丁포정이라는 사람이 소를 잡습니다.
손을 갖다대고 소에다가 어깨를 기대고 무릎을 구부리고
칼을 촥~ 백정이 소 잡듯이 갖다대면
소가 죽는 줄도 모르고 그냥 쉽게 죽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솜씨 없는 사람은
한 달에 한 번씩 칼을 갈든지
좀 솜씨 좀 있다 해도 소를 잘 잡는다 해도
석 달에 한 번씩 칼을 갈고 이러는데
이 포정은 19년 동안 칼날을 갈아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칼을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갈아야 되는 그런 사람들은
소 뼈를 칼 하고 부딪히기 때문에 그렇고
또 솜씨 좀 좋은 사람들도 소 살 있잖아요. 살
살을 자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이 사람은 그냥 뼈와 뼈 사이에
틈도 없는 그 사이에 칼날을 노려서
遊刃之妙유인지묘라.
놀 遊유자 칼날 刃인자,
칼을 그 속에 넣어가지고 솜씨 좋게 놀려가지고 칼날을 다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를 볼 때
3년 동안에는 소가 눈으로 보이더니
나중에는 눈을 감고도 정신으로 보니까 소가 보이더라.
이런 얘기가 있어요.
지금 우리가 보고 듣는데 너무 현혹돼 있으니까
환희지의 얘기가 이해가 안 되고
이런 경지에 들어 오기가 힘든데
무안이비설신의 눈코입귀가 없어지고
무색성향미촉법으로 들어 간다고 하면
또 다른 안목의 세계가 열린다는 거죠.
아나율 존자가 육안을 잃어 버리고 천안통을 얻듯이
포정이가 소를 잡을 때
3년 동안 소만 보여가지고 소를 잡을 수가 없었는데
3년이 지나고 나니까
눈을 감고도 정신으로 소를 볼 수 있어가지고
포정이는 19년 동안 칼을 한 번도 숫돌에 갈지 않고
또 새 칼처럼 늘 사용했다는데
그것은 남 하고 부딪히는,
뼈에 부딪히든지 쓸데 없는데
또 어딥니까?
살을 자르든지 가죽 같은데 잘못 문질러서
똑같은 칼날인데도 잘못 쓰면 그렇게 된다는 거죠.
우리가 일어나는 본심의 생각을
쓸데 없는데 남하고 부딪히는쪽으로
시비분별에 너무 갖다 부딪히니까 칼날이 무뎌집니다.
이빨 빠지고
안 그렇습니까?
이제는 조금 칼날을 遊刃之妙유인지묘라.
아~무리 틈 없는 그 사이에 칼을 넣어가지고도
솜씨 좋게 소를 분해해 버리듯이
인생을 於諸難處無諸難이라.
어려운 곳에서 쉬운 쪽으로
쉬운 답은 없고 오직 누구에게 달려 있어요?
칼날을 잘 놀리느냐 못 놀리느냐,
내 지금 생각을 잘 쓰느냐 못 쓰느냐,
이거에 따라가지고 갈려진다는 겁니다.
항상 현전일념에 정직할 것을 당부 드리면서
오늘 강의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각 주
(74)
무상각(無上覺) : 無上正等正覺之略稱. 覺, 爲梵語 bodhi 之意譯, 音譯菩提, 指證得佛智 涅槃之妙理 ; 佛所證得之菩提, 爲最上而無有過之者, 故稱無上覺. 菩薩本生鬘論卷三(大三 三三八上) : 「自捨己身無所貪惜, 共諸衆生證無上覺.」[無量壽經卷上 七佛經 十住毘婆沙論卷一 仁王經疏卷中(良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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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보살들의 수승한 도(道)
중생들을 이익케 하니
이와 같은 초지법을
내가 지금 다 말하네
-중생들을 이익케 하니- 고맙습니다
좋은 행(行)을 수행하며
모든 중생을 잘~ 다둑거리고 챙기고 가꾸어서 성숙시켜서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할 것이다.
-환희지 총복습 강의를 어제 보았지만 오늘 아침 생각해 보니
다시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빠른 속도로 전체를 다시 훑었습니다
귀절귀절 모두 외우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읽기만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실천할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싶네요
부처님이시여 필히 지켜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므로...
入佛........
지선화 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귀절귀절 아름다워
마치 처음 보는 글처럼
몰입했습니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