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한 지역 상인들의 분노
2009년 7월 27일 역사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중소기업청은 2009.7.20 중소기업중앙회에 접수되어, 2009.7.23 중소기업청에 신청된 인천 부평구 갈산동 SSM 마트 입점철회 요청 건에 대해, 2009.7.27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제 34조의 규정에 의한 사업개시 일시정지 권고를 하였다.”(중소기업청 보도자료)
이는 자영업인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일터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라 하겠다. 인천 옥련동과 갈산동의 상인들이 중소기업청에 ‘기업형수퍼(SSM)’ 입점 중지를 요구하는 사업조정신청을 한 것이 받아들여지자 불과 수 일 만에 전국적으로 사업조정신청을 낸 상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각 지역별로 상인들의 대책위가 만들어지면서 지자체들도 기업형수퍼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일파만파로 상황은 급반전하고 있다.
그 결과, 과거에는 기껏해야 한 해에 4~5건, 그것도 제조업 등에서 신청해오던 ‘중소기업 사업조정신청’ 건수가 7월 31일 현재까지 며칠 만에 14건이 접수되었다.
그 뿐이 아니다. 지역의 수퍼마켓 자영업인들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최근에는 그 동안 대기업의 무차별한 지역경제 잠식으로 고생해오던 서점, 주유소, 자동차 정비소, 제과점, 꽃집, 안경점, 미용실 등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그 동안 대기업의 지역경제 진출에 집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당하기만 하던 이들은 전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시장연합회, 한국음식업중앙회, 한국자동차부분정비사업조합연합회, 한국주유소협회, 안경사협회, 한국화훼협회, 한국화장품판매업협동조합, 한국주유소협회, 한국제과협회, 한국미용사회 등 수십 개 단체의 이름으로 지난 8월 6일 ‘전국소상공인단체협의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다.
대자본에 일격을 가한 정부 서류창고의 녹슨 칼 ‘사업조정제’
그렇다면 ‘중소기업 사업조정제도’라는 것이 어떤 제도이기에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또 이런 제도가 있었음에도 왜 이제서야 문제 해결의 전면에 등장한 것일까.
사실은 이렇다. 원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의 31~37조에 걸쳐 규정된 사업조정제도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시장 잠식을 막기 위해 존재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제도였고, 주로는 제조업 분야에서 적용되던 것이지 수퍼마켓과 같은 유통업을 고려한 것이 아니었다.
그 나마도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이 사업조정을 신청한 사례도 1년에 몇 건 뿐인 데다 사업조정 신청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조정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인들이 대기업의 시장 잠식을 우려해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신청을 내면 중소기업청은 대기업에 대해 영업 일시정지 권고를 내릴 수 있고 그 후에도 3~6년 동안 1, 2차 자율조정이라는 기간을 거치게 된다. 만일 이 시기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를 열어 상황에 따라 사업정지 권고나 행정명령을 내리게 된다. 즉, 일시정지 권고 → 1차 자율조정 → 2차 자율조정 →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 → 사업정지 권고 → 행정명령이라는 지루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실상 사문화 된 제도가 부활한 이유는 이번 경제위기로 이미 한계상황에 몰린 지역 상인들의 끈질긴 생존 노력 때문이다. 처음 사업 조정제를 신청한 인천 상인들이 신청서를 내자마자 중소기업청 등을 찾아가 농성을 하며 집요하게 신청서 처리를 압박했기에 빠르게 접수될 수 있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미디어 악법 처리 강행으로 막다른 상황에 몰린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친 서민행보’라는 이름 아래 사업조정의 권한을 지자체에 이관해 문제의 화살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넘기려는 와중에 이번 결과가 불거진 것이다.
결국 지역 상인들의 치열한 문제해결 노력이 위기에 몰린 정부의 힘의 공백지대를 정확히 파고들어 정부 서류철에 잠자던 사업조정제도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배경1 - 경제위기로 가장 혹독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야말로 허약한 제도인 ‘중소기업 사업조정제도’라는 낡은 무기를 가지고도 지역 상인들이 이렇게 빠르게, 또 이토록 전국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는가. 그것은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로 특히 자영업이 받은 타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역사적 상황과, 또한 이 와중에도 수익추구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지역경제를 파고들어간 유통 대자본에 대한 분노가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경제위기로 자영업이 어느 정도의 타격을 받았는지 다시금 확인해 보자. 자영업인과 정규직(상용근로자), 비정규직(임시, 일용 근로자)의 취업자 수 증가 추이를 보면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외환위기와 현재의 경제위기는 고용변화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는 주로 정규직 고용이 심각하게 추락한 반면, 이번 경제위기는 비정규직과 자영업의 고용에 큰 타격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정규직은 아직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또한 외환위기 당시에는 정규직의 고용감소를 오히려 비정규직과 자영업이 흡수함으로써 1999년부터는 자영업과 비정규직의 고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자영업의 취업자 수 증가는 2002년 카드대란이 발생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상승했다.
반면 이번에는 이미 2005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자영업 취업자 수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최근 경기부양책 덕에 그나마 비정규직은 청년인턴제, 희망근로 등으로 취업자 수가 반등하고 있지만, 자영업인의 고용은 추락을 멈출 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자영업 취업자는 외환위기로 정규직에서 떨어져 나온 상당수 인력을 흡수하여 2000년에는 그 수가 600만 명을 넘어섰고, 카드대란 직전인 2002년에는 무려 630만 명에 근접한 수치까지 올라간다. 이른바 자영업의 ‘초과잉 시대’가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자영업 초과잉 시대는 2005년에 접어들면서 절대적 한계에 봉착했고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로 전환한다. 2008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는 이런 자영업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자영업의 잔인한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경제위기 1년 만에 자영업은 무려 30만이 줄어들면서 이번 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만다.
자영업 가운데서도 이번 기업형수퍼와 직접 관련된 도소매업 그리고 여기에 음식, 숙박업까지를 포함하면 2008년 이후 고용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이들 자영업의 몰락은 단지 취업하고 있는 양적인 숫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미 2000년대부터 자영업 종사자의 소득은 정규직보다도 못한 형편이 되었고, 특히 영세 자영업인의 경우 소득 수준이 실상 비정규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 오늘날 자영업인의 현실이다.
배경2 - 대자본의 지역경제 공습, 기업형수퍼(SSM)
이렇듯 이번 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자영업의 심각한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기업형수퍼 입점 시도였다. 대형 유통업체 4대 메이저라고 불리는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GS리테일은 그 동안 전국에 걸쳐 대형 유통 할인점 망을 확대해왔다. 대형 할인점이 무려 400개에 이를 때까지 팽창을 거듭해온 유통 대자본은 대형 마트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골목 상권까지 침투하기 위해 이른바 ‘기업형수퍼(SSM)’ 확장 정책을 공격적으로 감행한다.
특히 이들 기업형수퍼가 경제위기 이후 빠른 속도로 확장하면서 지역상권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영세 수퍼마켓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된 것이다. 이미 기업형 수퍼는 2009년 6월 500개를 훨씬 넘어 팽창하기 시작했고 올해 하반기에도 홈플러스 100개, 이마트 30개, 롯데수퍼 20개 등 추가적인 입점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공세의 선두에는 ‘골목상권의 제왕’으로 불리며 골목상권을 싹쓸이하고 있는 외국계의 비상장 법인 홈플러스가 서있다.
그 결과 기업형수퍼가 주위에 입점하면 기존 수퍼마켓은 하루 매출액이 평균 30퍼센트 이상씩 감소하는가 하면 10곳 가운데 4곳은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상황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기업형수퍼가 입점하기 전에 하루 매출이 162만 원이던 수퍼마켓이 입점 후에는 112만 원도 안내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이다(중소기업중앙회, 2009.7.1일자 보도자료).
“세금 꼬박꼬박 내고 살 필요가 없다. 정부가 도와주는 것이 뭐가 있나. 영세 상인들도 같이 먹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 문제를 가지고 어디서 데모라도 한다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거다”라는 부산의 한 수퍼마켓 주인의 얘기는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005년 이후 자영업의 지속적인 쇠락이 2008년 이후 경제위기에서 가속화되고, 정부의 고용정책은 자영업을 외면한 채 기껏 임시적인 인턴제나 희망근로에 매달리고 있는 동안, 대형 유통업체들의 무차별적인 지역상권 공습은 지역경제와 자영업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기업형수퍼 입점 중지를 요구하는 사업조정신청이 쇄도하게 된 데는 바로 이런 역사적, 상황적 요인이 깔려있다. 이번 사태를 만만하게 봐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자본은 지역 상권을 과연 포기할 것인가
이번 사안은 단순히 유통 대자본 대(對) 지역 중소상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동안 규모화, 효율화를 내걸고 무제한으로 팽창해온 대자본 대 중소기업, 중소상인의 문제다. 특히 국외 수출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제조업보다는, 국내 기반 위에서 성장해온 유통 분야의 대자본이 경제위기 속에서 수익률을 올리고자 중소 상인들의 시장 영역까지 무차별적으로 잠식해온 결과다.
또한 이는 지역의 중소상인들만의 문제를 넘어 지역경제의 존립과도 관련된 중대한 문제다. 주로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역 상권 구석구석까지 잠식해 들어가며 지역 상인들을 몰락시키는 것은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들이 올린 매출은 서울로 송금될 뿐 지역경제에 재투자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이 흡수하는 고용도 미미한 수준이자 그나마도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지역 상인들의 몰락은 지역의 소득 축소로 이어지고 결국 지역경제의 순환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각 지자체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유통 대기업들의 지역경제 잠식은 이대로 중단될까. 적어도 아직은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다. 수년 동안 치밀한 준비 아래 지역 상권에 진입하려던 계획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해외사업을 빠르게 확대할 가능성도 많지 않다.
다시 말해, 당장은 지역 상인들의 기습적이고 대대적인 공세에 밀려 주춤하고 있지만 이 또한 오래갈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관계자가 “SSM 출점에 대한 사회반대 여론이 심화되어 한 박자 쉴 수밖에 없다”고 말한 데서도 이들이 아직 철수할 뜻이 없음을 알 수 있다(이투데이 2009.7.30).
또한 대형 유통자본을 대표하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가 SSM 대신 가맹점(점주와 본사가 공동투자를 하는 편의점 방식)을 추진하는 방안도 제안하고 있지만, 이는 다급한 상황에서 나온 방안이지 현실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왜냐하면 소규모 자본만 있으면 되는 편의점과는 달리 SSM은 330제곱미터(100평) 안팎의 규모일 경우 “창업비용이 10억 원 이상인데다가 매장 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유통업체나 자영업자 모두 만족스런 방안이 아닌”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일보 2009.7.31).(통상 SSM은 매장규모가 200~1000제곱미터, 준대규모 마트는 1000~3000제곱미터, 그리고 대형마트는 3000제곱미터 이상이다.)
만약 여론에 밀려 대형 유통자본들이 불가피하게 가맹점 방식을 선택한다 해도 그것은 기존의 일반적인 편의점 구조와 달리 자금력을 갖춘 극소수 업자 정도를 포괄하거나 위장된 가맹점 체제(투자비 대부분을 본점에서 지불하는 사실상 직영)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지역 경제를 둘러싼 유통 대자본과 지역상인 간의 싸움은 지역 상인들의 기습적인 공격에 유통 대자본이 당황하여 밀린 1라운드를 막 지났을 뿐이다.
더구나 그토록 허술한 ‘중소기업 사업조정제도’가 앞으로도 계속 지역 상인들을 위한 방패막이 되어주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정식으로 중소기업청이 사업조정신청을 받아들여 법률에 근거 ‘입점 일시정지 권고’를 결정한 것은 8월 3일 현재 인천 갈산동, 청주 개신동, 마산 중앙동 세 곳 뿐이다. 홍석우 중기청장은 “중소기업청이 사업조정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역 상인들을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히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연합뉴스 2009.7.31).
더욱이 정부는 8월 14일부터 중소기업청이 가지고 있는 ‘사업조정 신청에 따른 실태조사와 자율조정권’을 지자체 시도지사에게 위임하게 된다. ‘일시정지 권고 → 1차 자율조정 → 2차 자율조정 →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 → 사업정지 권고 → 행정명령’ 가운데 앞의 세 단계를 지자체에 넘긴다는 뜻이다. 또한, 레미콘과 아스콘 사업에 대해서만 가지고 있던 지자체의 권한을 수퍼마켓 영역까지로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사업조정 처리 주체의 이양과정에서 또 다른 혼선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진정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경쟁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유통 자본들은 무슨 근거로 이토록 무차별한 지역상권 잠식을 감행하고 있고, 정부는 왜 지금까지 이 같은 불공정 영업 관행을 태연하게 덮어왔을까. 그것은 바로 ‘시장 자율’, ‘소비자 선택권’, ‘유통산업 선진화‘라는 낯익은 신자유주의 시장논리 때문이다.
우선 자율적인 시장논리를 검토해보자. 원래 자율적인 시장논리는 아무런 규칙이나 제한도 없는 정글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공정한 시장 경쟁 규칙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지점은 자본이나 시장 지배력 규모에 따라 체급을 나누어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고, 시장 지배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것이며, 지역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헌법 119조 2항에도 엄연히 나와 있는 헌법적 규칙이다.
그러나 그 동안 유통 대자본과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자본과 중소상인, 서울 경제와 지역 경제를 한 울타리 안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마치 공정한 시장경쟁인 것처럼 매도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대기업에 대해 소상공인들을 맨주먹으로 싸우게 하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승패에 냉혹한 프로권투에서도 헤비급과 플라이급은 싸움을 붙이지 않는다”는 어느 상인의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중소기업중앙회 2009.7.1일자 보도자료).
정부와 대자본이 시장 제한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시장 경쟁도 지키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아도 명확하다. 다음은 정부가 나서 대형 할인점과 중소 소매점 사이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몇 가지 외국 사례들이다.
“프랑스의 경우 대형점과 중소소매점의 경쟁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대형점을 허가할 때 도시계획, 토지이용규제와 연동되도록 하고 있다. 연면적 300㎡ 이상 모든 점포가 규제대상이 된다. 독일의 경우 연방 건설법에 규정된 건설기본계획에 따라 연면적 1,200㎡ 이상, 전용면적 800㎡ 이상의 소매점은 이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벨기에에서는 도시지역에서 연면적 1,500㎡ 이상, 전용면적 1,000㎡ 이상 소매시설이 허가시설로 규제돼 있고 비도시지역에서는 연면적 600㎡ 이상, 전용면적 400㎡ 이상 소매시설이 허가시설로 규제돼 있다. 영업시간 제한과 관련 독일에서는 대형유통점의 경우 일요일, 공휴일에 폐점해야 하며 평일, 토요일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만 개점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일요일, 공휴일에 폐점해야하며 평일, 토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개점이 허용되고 프랑스에서도 일요일에 폐점되며 평일, 토요일에는 오후 10시까지만 개점이 허용된다.”(중소기업신문 2009.7.27)
이번에는 이른바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하며 지역상인과 아파트와 같은 지역주민을 대립시키는 발상에 대해 살펴보자.
실제로 인천 갈산지역 입점 중지 사업조정 신청을 했을 때, 부평 갈산 아파트 부녀회가 입점을 요구했던 사례가 있다.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첫 영업 일시 정지 권고를 받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천 갈산점 인근의 D아파트 부녀회는 7월 30일 중기청에 570여 명의 서명이 담긴 진정서를 제출했다.”(국민일보 2009.7.30)
앞으로 유통 대자본은 이 같이 ‘소비자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상인들과 소비자로서의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립시켜 갈등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나 대형 유통 자본은 처음에는 시장 진입을 위해 대대적인 할인공세와 경품 제공 등에 나서겠지만 일단 시장 지배가 완성된 후에는 정반대로 돌아설 개연성이 대단히 높다. 이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1970년대 프랑스에서는 불과 한 달 사이에 생필품 가격이 40퍼센트 폭등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까르푸, 카지노, 오샹 등 유통 대기업이 지역을 나눠 상권을 독점하고, 유통산업을 잠식한 결과다. 이들이 나라 경제를 한 손에 거머쥐고 담합해 상품가격을 임의적으로 올렸다.”(경향신문 2009.7.29)
결국 대형 유통자본의 제한 없는 지역상권 잠식은 공정한 시장경쟁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대자본의 수익률 확대를 위한 불공정한 폭력일 뿐이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 ‘허가제’인 이유
그렇다면 대자본의 무차별적인 지역경제 장악을 막고 중소상인들과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근본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정부와 여당에서는 ‘등록제’를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형수퍼에 대해서는 ‘신고제’로 개점이 가능했는데 기존의 대형 할인마트에 적용되어온 ‘등록제’를 기업형수퍼(대규모 점포와 대규모 직영점)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할인마트 규제와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이 내용을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등록제에 대한 지역 상인들의 반응은 지극히 회의적이다. 이미 지난 6월16일 ’중소상인살리기 전국네트워크(준)’는 등록제 범위확대는 기만이며 합리적인 규제방식은 ’허가제’뿐이라고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정부는 등록제 도입을 검토 중이지만, 현행 등록제하에서 대형마트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된 점을 감안할 때, 그 실효성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부정적으로 전망한 것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김경배 회장 7.30 간담회).
특히 정당별로 대안을 보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당들이 영업시간 제한과 품목 제한은 물론이고 허가제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마땅히 정부 여당은 허가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기존 대형 할인마트에 대해서도 영업시간 제한과 품목 제한 등을 수용해야 한다.
지역상인들, 어떻게 생존을 지켜나갈 것인가
인천 옥련동과 부평 갈산점 사업조정 신청을 도화선으로 그 동안 감히(?) 유통 대자본에게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지역 상인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 찾기 행동을 시작한 것은 우리 국민에게는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행동이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앞으로 지루하고도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업조정신청이 중소기업청에서 신속히 받아들여지도록 확실한 뜻을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부 여당도 예기치 못한 상인들의 집단 움직임에 당황하고 있어 시간을 끌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여당은 기왕에 이 문제에 대해 민심이 심상치 않음을 확인한 이상, 명확한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메이저 4대 유통 대자본을 불러 당분간 추가적인 입점 행위를 중지하도록 엄중히 의사를 밝혀야 한다. 법, 제도 이전에 정부의 의지가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다.
또한 이미 대형할인마트에서 실효성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등록제’ 대신에 ‘허가제’를 전격 검토하고 이를 ‘유통산업발전법’에 명시하도록 지역 상인들이 요구해야 한다. 국회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훨씬 전향적인 방향에서 재논의하고 정기 국회 이전까지 지역 상인들의 여론을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 공청회를 거쳐야 할 것이다. 이 마당에 국회 사무처가 국회 후생관에 기업형수퍼 입점을 추진하는 따위의 황당한 일을 벌일 때가 아니다(연합뉴스 2009.7.30).
중앙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향후에는 특히 지자체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기업형수퍼와 관련된 업무를 지자체로 이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가 결국 기업형수퍼 문제나 지역 상인들의 생존은 지자체가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야 중앙 정부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마산시가 도시계획 조례 개정과 관련해 기존 일반 주거지역과 준주거지역에 들어설 수 있는 판매시설 규모를 1000제곱미터 미만으로 규정했던 과거 안에 대해 규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적절한 행보다. 나아가 마산시는 대규모 점포의 현금매출액을 일정기간 지역은행에 예치하거나 영업시간 제한, 지역상품 매입, 지역 인재 채용 등의 의무조항을 조례에 담을 예정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또한 충청북도가 대형 할인마트에 대해 교통유발 부담금을 대폭 인상하는 ‘교통유발 부담금 조정조례’를 제정하겠다고 밝힌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뒤늦게나마 광주나 전주 등에서도 지자체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다행이다. 지자체들이 이 사안에 일회적으로 대응하거나 무관심하면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지역 상인들의 호응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지역 상인들도 중앙정부에 법 개정을 요구하는 한편, 해당 지자체들에게 분명한 입장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이번 사안이 비록 기업형수퍼를 계기로 터져 나오기는 했으나 이를 계기로 대자본과 지역 경제 사이의 오랜 대립을 정상적인 관계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대형 할인마트 때문에 재래시장 상인들의 어려움 역시 누적되어 왔고, 대형 카드 금융자본이 중소 상인들에게 씌운 턱 없이 높은 카드 가맹점 수수료 문제도 근원적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각종 형태로 지역 경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편의점을 비롯한 여러 체인점의 계약 조건이 대단히 불공정하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부분들이 모두 중소 자영업을 심각한 경영난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위기로 소비가 위축되어 자영업 매출이 극심히 줄어든 상황에서 오히려 대자본의 횡포가 더해감에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취하지 않고 있다. 지역 상인들을 위한 고용과 사회안전망 대책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09년 5월 19일 중소상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준)’을 결성하고 ‘대형마트와 SS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폐업 중소상인 실업 안전망 구축’이라는 3대 요구안을 내걸었던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2009.5.19일 전국네트워크 보도자료).
최근에는 기존의 업종을 뛰어넘어 대형 할인마트가 주유소 설치를 시도하고 있고, 입시학원도 전국적으로 직영, 또는 체인을 확대하는 등 사실상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자본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지역 상권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자본의 지역 경제 잠식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도록 새로운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지역 상인들의 자주적 결사가 근본해결의 열쇠가 될 것
도를 넘는 대자본의 횡포가 오랜 기간 계속돼왔음에도 유독 지역 상인들에 대한 정부의 고용대책이나 사회안전망 대책이 취약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자영업인들이 단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당사자가 먼저 해결에 나서야 일이 풀리기 마련이다. 자영업인들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단결해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누구도 그 문제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아니 대신해 줄 수도 없다.
물론, 중소기업 중앙회 산하에 수퍼마켓협동조합, 상인연합회 같은 전국적인 협동조합이 업종별로 다양하게 있고, 이번 문제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한 바 있지만, 구체적인 지역 단위에서는 상인들의 참여도가 그리 높지 않다. 때문에 구체적인 문제를 두고 끈질긴 행동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최근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갈산동 SSM에 대한 사업개시 일시정지 권고가 중소기업중앙회가 아닌 인천이라는 특정 지역 상인들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아직 이번 권고 결정만으로 기업형수퍼 입점 중단을 확신하기는 어렵다. 과거 카드 수수료 인하 운동의 사례처럼 중간에 동력이 떨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제약을 근원적으로 넘으려해도 지역차원에서 상인들이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자주적인 결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경제살리기 OO지역 상인회’등을 각 지역 상권별로 만들고 해당 상권의 업종을 불문하고 다수의 상인들을 회원으로 참여시키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면, 비로소 상인들은 상인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지역의 문제들을 상설적으로 토론하고 해결하고 조정하는 자신의 결사체를 갖게 될 것이다. 지금은 정당과 시민단체 등과 어울려 ‘대책위원회’ 형태의 임의적인 모임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는 사안이 복잡해지는 등 상황이 바뀌면 유지되기 어렵다. 근원적으로는 상인들 자신이 회원이고 자신이 참여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에서 상인이 스스로 회원이 되는 새로운 유형의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는 한국사에서 자영업인을 위한 제대로 된 최초의 조직이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지금은 전국적인 조직보다는 지역 단위의 전형적인 상인회원조직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조직이 있어야 기존의 전국적인 협동조합이나 대표단체가 어려운 협상국면에서 흔들리는 것도 막을 수 있다.
특히 지역의 상인회원조직은 당장의 대형마트나 기업형수퍼 입점을 막는 것을 넘어 향후에 지역 중소상인들 사이에 공동 상품 구매경로 확대, 저가 공동구매 활성화, 공동 배달 시스템 지원 등 지역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목표점에 도달할 때 비로소 유통 대자본들이 ‘유통산업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지역 자영업의 영세성, 후진성을 비판하며 지역상권 진입의 명분을 내세우는 것을 막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지역 상인들이 얼마든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한편 지역의 정당들이나 시민단체들은 당장이야 지역 상인들의 요구를 ‘대신’해서 들어줄 수밖에 없겠지만 조만간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조직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특히 지역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지역 상인과 지역 주민의 연대’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자본이 ‘소비자 선택권’을 앞세워 지역 상인과 주민의 갈등을 부추겨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정부나 정치권 역시 지역 상인들 스스로의 자주적 결사를 못마땅해 할 필요가 없다. 지역의 자영업자들이 자신들의 대표 조직을 제대로 가질 때 그들과 지역경제 회복은 물론, 자영업 회생 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한 협상과 논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통 대자본들은 본인들이 늘 주장하는 것처럼, ‘글로벌’한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골목길을 싹쓸이 할 생각을 접고 과감히 해외로 나갈 것을 권한다. 적지 않은 제조 대기업들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글로벌’ 기업임을 입증시키기 위한 행동이 절실하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김일영 kiy@saesay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