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라 메 길'
'아라메길'의 유래를 찾아보면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아라메길'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의 '아라메길'
충남 서산시의 명물로 새로이 태어나고 있는 '아라메길'
그 아라메길을 '친환경 트레킹 코스인 아라메길 걷기 투어'로 지난 5월 15일 일부구간이지만 걸어보았다.
서산 '아라메길' 1~2구간의 현황을 살펴보면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서 시작하여 해미읍성을 종점으로하는 구간으로 총 20.1km, 약 6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이다.
코스를 나열해 보면
유기방가옥 - 비자나무 - 선정묘 - 여미리석불입상 - 유상묵가옥 - 전라산 - 역천탄성포장 - 운산교입구 - 삼거리 - 미평교 - 쉰질바위앞 - 고풍터널 - 용현계곡입구 - 미륵불 - 쥐바위,인바위 - 서산마애삼존불상 - 방선암 - 보원사지터 - 용현자연휴양림매표소 - 삼거리 - 전망대입구삼거리 - 용현계곡정상 - 일락사 - 일락사주차장 - 황락저수지 - 해미읍성으로 이루어진 구간이다.
서산시청의 관계자에게 이번 '아라메길'투어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아라메길'의 시작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란 지역으로 이동한다.
아라메길의 첫번째 시점인 서산유기방가옥의 전경
여미리?
많이 들어 본 지명인데, 어디더라?
생각난다.
나의 여행은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으로 주로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다닌다.
그래 생각난다. 서산IC에서 나와 당진의 안국사지를 찾으려면 이 마을 앞길을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되는 '서산여미리석불입상'을 보기 위해 두번이나 방문한 지역이다. 겨울이 끝나는 날의 방문에서 여미리석불입상 근처에서 봄나물인 냉이를 캤던 기억이 난다.
그 지역을 방문하니 설레인다.
그 여미리석불입상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여미리 마을회관이 나타난다.
거기가 시작이다.
그리고 그 아라메길 시점의 서산유기방가옥을 만난다.
서산유기방가옥은
충남시도민속자료 제2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가옥의 뒤에는 송림이 우거져 있으며 송림으로 우거진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북으로ㅡ자형의 안채와 서측의 행랑채, 동측에는 안채와의 사잇담과 근래에 지은 주택이 안마당을 형성하고있다. 안채와 우측으로 ㄴ자형의 사랑채와 행랑채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원래 안채 앞에 중문채가 있었던 것을 1988년에 헐어내고 현재와 같이 누각형 대문채를 건립하였다. 사랑마당과 안마당은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특히 후면담장은 급한 경사지를 따라 둥글게 감싸고 있으며 상부에 연목을 놓고 기와를 얹은 토담이다. 토담을 축조할때 사용했던 귀틀이 현재도 남아있다.
붉게 타오르는 목단, 즉 모란을 볼 수 있어 좋고, 철쭉인지 영산홍인지 활짝 피어 있다.
둥그렇게 만든 담장과 그 뒤의 송림, 그리고 장독대를 보며 자연의 미를 살리려는 선조들의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비자나무로 가는 길목에 내려다 본 유기방가옥
봄의 연한 잎과 소나무로 둘러 쌓인 가옥에서 그저 마음이 느긋해진다.
이렇게 아라메길은 시작한다.
전통 가옥들을 보며 시작하는 아라메길은 아마도 성공적인 '길'이 될 것이다.
아라메길에서 다음으로 만나는 것은 서산여미리비자나무다.
비자나무는 시도기념물 제17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나무로 유기방가옥의 왼쪽 산 끝머리에 있다.
이 비자나무는 이 마을의 예민 이씨와 관련 있는 나무이다.
비자나무는 입향조 이창주의 증손인 이택(1651~1719)이 1675년 현직에 있을 때 제주도의 비자나무를 흙과 같이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이다. 그렇다면 이 비자나무의 수령은 약 330년으로 예민 이씨 가문의 역사와 더불어 궤를 같이 하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나무이다.
비자나무가 지니고 있는 역사성 이외에 산림학적으로 볼 때도 중요한 자료이다. 비자나무는 대체로 전라도의 백양산과 내장산에 자생하고 제주도에 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수종으로 중부지방 이북에서는 자생하고 있는 예가 드문데, 이나무는 수령도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부지방 이북에서 자라고 있는 드문 예에 속한다.
여미리비자나무를 보고 조금 더 산길을 내려가면 한창 조성중인 선정묘가 나타난다.
선정묘는
조선 2대왕인 정종의 4남인 선성군의 사당으로 매년 음력 7월 칠석날에 제향을 올리고있으며, 군의 묘역은 경기도 하남시 덕풍1동 산64에 있다.
휘는 무생이며, 단종2년 선성군에 봉해졌으며 고종 9년에 시호를 '양정'이라 하였다.
선정묘를 나오면 바로 왼쪽에 송림 앞에는 미륵불이 있다.
서산여미리석불입상
이곳이 바로 우리 가족이 두번이나 찾은 곳이다.
미륵불은 시도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미리석불입상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불상으로, 1970년대 지금의 위치에서 1㎞ 떨어진 용장천 정비사업 때 하천에서 발견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냇가에서 5㎞ 쯤 거슬러 올라간 상류에 2구의 불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떠내려온 것이라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화강암으로 얼굴과 손등을 조각했으나 옆과 뒷면에는 거친 못 자국이 남았고 목이 부러져 있던 것을 접착하였다.
사다리꼴의 얼굴에 관을 쓰고 여기에 작은 부처를 새겼는데 심하게 닳아 있다. 얼굴 바로 밑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가 목걸이처럼 늘어져 있고, 옷은 왼쪽 어깨에서 걸쳐 내려와 형식적인 반원모양을 그리고 있다. 왼손은 치켜들고 오른손은 아래로 받쳐 들고 있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형식적이고 입체감이 없어서 고려시대에 지방화된 불상으로 여겨진다.
여미리석불입상을 보고 그 앞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바로 눈 앞에 나타나는 옛날 집이 바로 서산유상목가옥이다.
홍단풍사이로 보이는 유상묵가옥
유상묵가옥은
시도민속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ㅡ자형의 사랑채와 ㄱ자형의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두 공간은 행랑채와 담장으로 명확히 구별되어 있다. 출입문도 구별되어 각각 안대문과 사랑대문으로 출입할수 있으며, ㄴ자형의 행랑채 익랑에 있는 중문으로 사랑마당과 안마당으로 통하게 되어있다.
대지전체가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후면은 급한 경사지로 되어있다. 대지전면 담장과 사잇담은 막돌담장으로 되어있고, 후면담장은 토담위에 서까래를 걸러 한식기와를 얹어놓았다.
유상묵가옥은 서산지역에 남아있는 전통적인 양반가옥이다 .
밭 가득히 심어 놓은 것은 뭘까요.
쪽파라고 하는 분이 있네요. 정답은 달래입니다.
전통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나는
아라메길의 전통가옥구간으로 명명하고 싶다.
그저 길을 걸으며 풍광을 구경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우리 선조들의 삶이 애환이 깃든 고건축들을 보고, 왜 이곳에 비자나무가 있는지, 또 미륵불은 어떤 이유로 저기에 서 있는지를 살펴보며 길을 걸어보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아라메길
전통과 문화재와 함께하는 아라메길을 걸어봅시다.
여기서 잠시 서산 '아라메길' 제1~2구간의 현황도를 보시고 다음에는 어떤길이 우리를 맞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넘 넘 이뻐요.. 글 내용도 넘 알차 주시고 ㅎㅎㅎ 들꽃님 사진보고 글보니 더욱 여기 가고싶어 집니다요 ㅎㅎㅎ
꼭 가시고 좋은 추억 가슴에 담아오세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코스대로 한번 천천히 걸어볼러구요..^^ 넘 좋더라구요..
바람될래님
죽어도 17구간을 전부 걸어보실려구. 튼튼한 다리와 막강한 돈의 화력지원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은디..
꼭 가보시지유, 나름 즐거운 여행이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