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28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by 알쓸수집가
1. 국보 제28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위치 :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
신라시대의 3대 불상 하면,
국보 26, 27호인 불국사의 두 불상(금동비로자나불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을 일컫습니다.
높이 약 1.8m의 규모 있으면서도 세심한 조각이 돋보이는 이 불상.
두 손은 없지만 신라시대의 정교한 조각 솜씨와 특유의 미적 감각을 가진 숭고한 문화재이죠.
'약사불'이란,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입니다.
동방의 정유리세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없애고, 원만행을 닦는
이에게 깨달음을 주는 부처이죠. 이 약사신앙은 신라시대 때부터 민간에 퍼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사신앙의 초기 전파에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있었을 것입니다.
2. 불상의 구조
이 불상은 높이가 1.8m나 되는 불상으로 상당히 크기가 큰 불상입니다.
현재 광배와 대좌, 그리고 양손은 사라졌지만 남은 불상 역시 상당한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죠.
규모가 있음에도 각 인체 비율이 상당히 균형적입니다. 부위별로는 툭 튀어나온 배, 중후해지는
하체와 옷자락, 우람한 체구 등에서 당시 남성적인 신라 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불상은 약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는 신라 불상 역시 조각에 있어서 과도기적
성격을 띠던 시기였습니다. 비교적 작은 어깨나 전체적인 외형에서 당시 기술의 과도기적 묘습을 볼 수 있죠.
양손은 조선시대에 없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후기의 삼국유사에도 백률사의 대비상이라는 이름으로 언급이 되는데 당시에는 양손이
멀쩡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조선시대에 훼손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죠. 하지만 약사불이라는 특징과
손목의 위치로 유추를 할 수는 있습니다.
오른손은 시무외인(중생의 번뇌를 없애고 중생을 구제한다는 상징의 손모양)을,
왼손은 수평으로 들어 약사불의 대표 특징인 '약호나 보주를 들고 있는 모습'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죠.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툭 튀어나온 배가 매우 입체적이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3. 불상이 있던 백률사는?
백률사는 법흥왕 14년, 이차돈이 불교 전파를 위해 순교했을 당시에 잘린 목이 떨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이차돈 설화는 이차돈의 목을 베자 흰 우유가 솟아났다는 이야기인데요, 이 이차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 백률사였던 것이죠. 이 백률사의 대웅전에 불상이 있었고, 1930년에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당시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불상으로서, 불상 변천사의 특징을 자세히 알 수
있으며 약사불이라는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문화재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간다면 신라의 3대 금동불상인 '약사여래입상'을 꼭 보면서, 우리의 질병을 치유해 주길 바라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