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문협 창립 원로회원이신 정혜진 작가님과 현임 이사이신 이용식 작가님의 화순문협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창립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특별회계에 대한 그동안의 경위를 대강 말씀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러한 역사를 알지 못한 회원님께서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공격하기 시작해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 말씀드리니 이 내용을 잘 살펴보시고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의견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1. 창립총회(88년) 당시의 어려운 재정으로 다음과 같이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1) 회원 회비, 정영기 발기회장님과 친분이 있는 화순군내 사업체 선 후배의 후원금, 친분이 없는 호남탄좌, 능주제일병원 원장님, 대주건설 상무님(당시 월곡리에 골프장 건설사), 남양건설 등을 방문하여 극히 일부의 협조를 받음
2) 화순문학회 창립 원년(88년)에 광주Y다실에서 시화전, 회보 발행, 화순문학 창간호 발행 이후 청소년문학강좌, 문학기행, 시화전 사업으로 확장하였습니다.
2. 화순문학 연간집 출판비 군 지원금을 받기 위한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공공기관에서 육성한 사회단체 외에는 일체 지원금이 없었으므로 군수 재량사업으로 책정된 예산을 지원 받기 위해 회장과 임원은 매년 피말리는 심정으로 군수님과 관계 공무원을 상대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화순군청 이병일 총무과장님이 본회에 입회하셨고, 몇 년 후 이인석 주무관님도 회원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문화 공보과장이신 현 군수님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우리 외에도 많은 사회 단체가 많아 여전히 군청의 인맥도 통하지 않아 본예산에 편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병일 회원님이 퇴임 2년을 앞두고 초대 기획조정실장(4급 서기관)에 임명이 되어 비로소 본 예산에 편성되어 500만 원을 지원받게 되므로써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 후 운주축제에는 시화전과 백일장 예산을 지원 받았고, 적벽제에는 백일장 대회에 심사 관리에 협조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현재는 고인돌축제를 공식화하면서 연간집 발간비 외에 행사비로 1,000만 원~2,000만 원 단위의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3. 초창기 임원님들과 회원님들은 자비량으로 활동했고 행사에는 재능기부를 했습니다.
초창기 임원들은 교통비, 식비, 접대비 등 일체를 자비로 썼습니다. 특히 초기 두 차례의 시화전은 화가의 재능기부를 받았고, 운주축제 시화전을 하기 위해 천을 사서 직접 시를 써서 제작했습니다. 시화 전시에 필요한 이젤은 제가 근무중이던 영광중앙초등학교에서 빌렸습니다. 목재라 승용차에 실을 수 없어 당시 회장이신 정영기 고문님의 동생 트럭을 이용해서 왕복을 했습니다. 비용을 지불한 기억이 없으니 회장님이 개인적으로 기름값 이상의 사례를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청소년 문학강좌 강사로 활동하신 작가님들께서는 일체의 강의료를 받지 않고 회자금으로 기부하셨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이신 분이 정혜진 작가님이십니다. 혼자서 강좌의 전 일정을 지도하시고도 모든 강사료를 회에 기부하신 일이 여러 차례입니다.
청소년 문학강좌는 상대가 초등학생으로 간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베이커리 빵집과 아이스크림, 음료수 대리점 등을 직접 방문하여 원가에 구입했고 머리 허연 정회장님의 모습을 보신 사장님은 상품판매를 할 수 없는 것을 덤으로 듬뿍주시면서 격려를 했습니다.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례가 있으나 줄입니다. 그런 모든 일은 직접 참여한 회원님들은 기쁨으로 감당했고 그렇지 못한 회원님들은 미안한 마음으로 동참했기 때문에 회원 모두가 긍지와 보람으로 생각했습니다.
4. 특별회비를 정립한 과정과 이유는 이렇습니다.
1) 특별회비 적립 과정
어려운 중에도 작가 정신과 화순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 해온 회원님들의 노력으로 지부 인준을 받은 후에도 몇 10만 원대에 머무르던 적립금이 이준배 전 회장님이 연임하는 4년 동안 기부금과 회원 수당 기부 등으로 1,000만 원대로 늘어났고 그때부터 특별회계로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강사 수당으로 5만 원을 지급하였습니다.
그렇게 자금이 적립되자 그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하면서 제가 다시 나가게 된 2017년 총회 후에는 회장 선출을 놓고 고소 직전까지 간적도 있었습니다. 현재도 카페에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특별회비는 윤예주 전 회장님께서 1차 재임 시 다시 특별회계로 정리하셨습니다. 그 후 두 차례의 비상총회(회장 1년으로 중도 사퇴)를 거치면서 지켜 왔습니다. 2018년 비상총회에서 구판순 작가님이 회장에 선임되고 저와 이준배 작가님이 감사로 선임되었습니다. 그때 결산서에 특별회계로 다시 지정 하였으며, 그동안 화순문협 운영상황을 분석하여 감사보고 부록으로 보고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지금도 카페에 공지되어 있고 올해 총회 결산서에도 특별회계로 통장 1번, 500, 통장2번 1,200 합계액 1천7백만 원(백만원 단위) 예산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2) 특별회비 적립 이유
우리 고장의 자랑인 문병란 작가님의 시비 건립 자금을 목적으로 시작하였으나 생가 복원 또는 문학관 건립을 하자는 의견이 있어 의견을 모으는 중이었습니다. 1차 모임을 2001년 가을 무렵 홍이사장님 댁에서 문교수님을 비롯 당시 회장이신 이준배 작가님, 정영기 고문과 그 외 뜻이 있는 분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반 회원으로 초대를 받았으나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일로 정고문님께서 얼마나 서운하셨는지 오랫동안 용서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2018년 총회를 앞두고 비상 상황이니 나와서 함께 수습했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고 용서받을 기회로 생각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러한 죄의식에서 2019년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화순군에 문학관 건립에 대한 제안서를 냈으나 기계적인 답변만 들었습니다.
5. 이제 마무리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 말이나 막 합니다. 아니면 일부러 모른척하기도 하지요. 그런 말을 막말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기억을 더듬으면서 정리를 했습니다. 모든 화순문협 작가님들께서 이해가 갈 때까지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메시지에 오류가 있거나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질문과 지적을 해 주십시오,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자꾸 논점을 바꾸려고 메신저로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질문에 답을 하실 수 있는 작가님의 의견은 수용하겠습니다.
1. 작가님께서는 입회 이후 어려웠던 시절에 임원이라도 맡아 보셨습니까?
2. 회비를 마련하기 위해 군청에 동행하신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3. 개인적으로라도 유력한 선후배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습니까?
4. 2000년도 이후 안정적인 예산을 확보하기 전에 화순문협에 회비 외에 기부금(금액 불문)이나 청소년 문학강좌에 간식을 제공하신 일이 있습니까?
5. 청소년문학강좌 할 때 강사로 봉사를 한 번이라도 해 보셨습니까?
6. 아니면 청소년문학강좌에 참석하여 강의실 정리 등 봉사를 하시거나 잠깐이라도 들여다 보신 일이 있습니까?
이 글은 정혜진 창립 회원님께서 단톡에 올리신 글을 보고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와서 함께 하던 일을 마치고 오후 7시에 시작하여 밥상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미안하여 식사 후 마무리했습니다. 작성하는 동안에도 자꾸 카톡이 울려서 보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쓰여서 힘들게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화순문학회의 역사와 걸어오는 길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런 글을 올릴 수 있었다고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