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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괜찮은 일자리 창출 방안
(기본방향)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일은 양극화와 빈곤 문제를 포함 한국경제의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쉬운 정책은 없다. 과거 모든 정부에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했고 쉬운 정책은 거의 다 썼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많이 사용했던 정책은 부동산 등 건설경기 활성화, 금리인하를 통한 투자 확대, 고환율 정책을 통한 수출 확대, 재정지출 확대, 인턴 등 단기고용 확대, 대기업에 대한 채용 확대 부탁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경제의 괜찮은 일자리 부족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괜찮은 일자리을 얻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지금까지 많이 사용했던 쉬운 정책들은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아있는 정책은 거의 다 잘못하면 부작용이 있고, 반대가 많은 정책뿐이다. 즉, 이제는 어렵거나 위험하고 반대가 많은 정책만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노동시장의 비정상적인 불균형을 완화해서 시장 내에서 일자리가 조정되고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업 간 과도하게 큰 보상 수준 격차를 축소해야 한다.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직원 등의 보수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실효성이 낮다. 의사 등 전문직, 교수, 공무원, 공기업 직원, 대기업 정규직 등의 보수도 같이 낮추어야 노동시장이 정상화 된다. 이 정책은 높은 보수를 받는 사람들의 죽기 살기 식 반발에 부닥칠 것이다.
척추치료의사, 스포츠재활의사, 독립금융상담사, 로비스트 등 한국에는 없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내는 일도 이런 직업이 생겨남으로써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반발은 엄청날 것이다. 또한 이런 직업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모든 일이 그렇듯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있다. 은행 신규설립을 허용하면 좋은 일자리가 꽤 많이 생기고 국민의 금융 접근성도 좋아진다. 그러나 은행 간 경쟁 심화로 은행 수익은 줄고 잘못되면 일부 은행은 경영이 부실해질 수 있다. 선진국은 이런 부작용과 위험을 극복하면서 금융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괜찮은 일자리 창출과정에서 생기는 반대를 잘 설득하고 부작용과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은 정책당국의 몫이고, 이러한 능력이 있는 정부가 진짜 국민을 위할 수 있는 정부이다. 지금까지 정책당국이 쉽고 욕먹지 않은 정책만을 추진하는 동안 국민의 고통은 계속 커 왔다. 지금부터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모든 정책을 찾아내어 부작용보다 효과가 크다면 어렵더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괜찮은 일자리를 지키는 정책도 중요하다. 어렵게 만들어진 일자리를 쉽게 없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여기서는 일자리 창출을 경제정책의 제1 순위로 하는 것, 직업 간 격차 축소를 통한 노동시장의 정상화,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 등의 노동조건 개선, 새로운 직업의 출현을 막는 법과 제도의 개선, 일자리 창출이 많은 산업 구조로의 전환 등 다섯 가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괜찮은 일자리 창출을 경제정책의 제1순위로)
말이나 구호뿐이 아니라 실제 정책과 행동으로 괜찮은 일자리 창출을 경제정책의 제 1순위로 해야 한다. 시장경제 하에서는 기업 등 생존을 걱정하는 조직은 생산성 향상, 경쟁력 강화라는 이론으로 항상 일자리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영리조직의 기본적 비용 구성은 인건비, 임대료, 원자재비용, 투자비용이다. 이 중 인건비만이 손쉽게 줄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가 조금만 딴 생각을 하면 경제는 일자리를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고, 때에 따라서는 기업 분위기에 편승해 정부 스스로가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을 쓰거나 지원하는 경우도 꽤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건전 은행 간 합병을 조장하거나 지원하는 정책이다. 부실 은행의 합병은 공적자금 절약, 신용경색 완화 등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건전한 은행 간의 합병은 인건비 절약을 통해 단기간 수익을 높일 수 있어 주주와 경영층에게는 좋겠지만, 나라 전체로는 좋은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재앙이다. 특히 한국은 은행 신규설립이 없고 몇 개 안되는 대형 은행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 간 합병은 대마불사의 도덕적 해이를 증가시켜 금융산업의 안정과 발전에도 방해가 되는 아주 나쁜 정책이다. 정책당국은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건전은행 간의 합병을 어렵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합병을 포함, 부산과 경남은행, 전북과 광주은행 등 건전 은행 간 합병이 계속되고 있다.
다음으로 기업에게 단순히 투자 확대를 요구하거나 공기업 경영효율화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정책, 그리고 일률적으로 비정규직 감축을 요구하는 정책도 일자리 감소로 나타나기 쉽다. 기업은 시장이 불확실할 때에는 고용이 늘 수 있는 공장의 신․증설 투자보다는 공정자동화, 기계화 등 인력을 줄이는 투자를 선택하기 쉽다. 공기업 경영효율화도 명예퇴직 확대나 신입직원 채용 축소와 같은 인력 감축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 감축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보다 자동화를 통해 해당 일자리를 없애거나 분사 등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전이나 도시가스회사 등에서 전기나 가스검침업무 등을 자동화, 무인화 하여 검침원을 없애려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검침원 인건비에 비교해 자동화 등에 비용이 더 들어도 경영효율화, 비정규직 감축 등 명목을 내걸고 실시하게 된다.
이렇게 잘못된 정책 등으로 인해 일자리가 늘지 못하고 줄어드는 사례는 각 분야에 많이 있을 것이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통합된 정부조직이 필요하다. 정부의 여러 부실한 위원회를 합쳐 가칭 “일자리(평가)위원회”를 만들어 각종 정책과 제도에 대한 일자리 영향평가를 실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동 위원회는 기존 제도와 법규제 등 개선을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이 위원회의 일자리 창출 업무와 활동은 1960-70년대 수출지원과 같이 대통령이 직접 정기적으로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효성 없는 보고서만 내는 수많은 위원회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 부문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괜찮은 일자리 창출로 모아져야 한다. 기업의 수출, 투자 등은 기업이 시장 상황을 감안 스스로 결정해나가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이 조세, 금융, 정책자금 등에서 우대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민의 기업에 대한 평가도 만들어 내는 괜찮은 일자리 숫자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의 매출이나 수익 규모가 커도 괜찮은 일자리가 조금이라면 주주와 경영진에게는 좋겠지만 국민에게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 매출과 수익이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이 국민에게는 더 좋다. 기업의 정규직, 비정규직 고용인원, 평균적인 보수 수준 등을 공개해서 어느 기업이 진짜 국민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기업인지 알기 쉽게 할 필요도 있다. 괜찮은 일자리 창출은 정부와 국민이 함께 큰 관심을 가져야 겨우 조금 가능한 아주 어려운 과제이다.
(직업 간 과도한 격차 해소와 일자리 창출)
직업 간의 보상 수준의 과도한 격차는 앞서 살펴본 대로 노동시장을 왜곡시켜 한국 경제의 성장능력을 낮추고 일자리 창출을 방해한다. 의사 등 전문직, 교수,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은 보수, 명예, 권한, 직업 안정성 등이 비정규직, 중소기업 직원, 영세자영업자 등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높다. 이들의 높은 보수는 자신들의 경제적 성과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격증 제한, 업무영역 보호, 정부지원과 결정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는 것이다. 즉 의사는 정부에 의해서 의사 수가 정해져 있고 업무 영역을 엄격히 법으로 보호해주기 때문에 경쟁이 적고 보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이고, 국공립대 교수나 공무원의 보수는 정부가 직접 결정하는 것이다. 사립대 교수도 정부의 사학 지원이 없으면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렵고 공기업 직원도 비슷하다. 결국 경제학적으로는 이들 수입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임대소득과 같은 지대(rent) 성격의 수입이다.
한국경제에서 국민경제 성과에 기여한 것에 비해 과다하게 가져가는 대표적인 집단은 자신의 필요 이상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과 전문직, 교수,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이다. 이들이 국민경제의 성과를 계속 많이 가져가면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 한국경제의 기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몫은 작을 수밖에 없다.
첫째, 전문직은 정원의 점진적인 확대와 과도하게 보호받고 있는 업무영역 조정이 필요하다. 정원을 늘리면 좋은 일자리가 그만큼 늘어나고 업무영역에 대한 보호가 줄면 그 부분에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 일자리가 늘어난다. 의사의 경우 병원 부대사업의 영리화와 의료산업의 수출산업화 등이 추진되고 있는데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수요는 늘어나고 있으나 공급은 부족하다. 의사 수는 한의사 포함 인구 1,000명 당 2명 수준으로 OECD 평균 3명보다 크게 적다. 농촌과 도서 지역, 병원 응급실 등에서 의사 부족 상태가 심각하고 도시 의사들은 업무가 과중하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산업은 수출산업화 하겠다는 것도 국민이 굶어 죽는데도 식량을 수출하자는 것과 비슷하다.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국민 의료서비스 확대, 수출 증대 등을 위해 의사 정원을 늘려야 한다. 대학병원 등에서 의사의 업무 부담은 과중하다. 보수가 조금 줄더라도 저녁이 있는 삶이 가장 필요한 직업이 의사일 것이다. 대학 입시생의 의대․치대 쏠림 현상을 감안할 때 의사 정원을 조금 늘린다 하더라도 의사의 질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의사 정원의 확대를 위한 방안 중 하나는 지방의대 정원의 일정 비율(10-20%)의 특례입학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특례입학생은 졸업 후 일정기간 농어촌 지역이나 특정 분야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고 정부는 6년간 특례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일자리 창출과 의료서비스 확대, 경제력이 없는 우수 학생에 대한 학비지원 등 효과가 있고, 도시지역 의사들의 반발도 상대적으로 적은 방안이다.
둘째, 교수와 공무원은 좋은 연금, 긴 정년 보장, 꽤 좋은 보수와 함께 명예와 권한 등 종합적 보상 수준이 과도하게 높다. 여기에다 일부 교수와 고위 공무원들은 겸직, 부업, 퇴임 후 낙하산 등으로 추가적인 수입이 엄청나다.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분산시키면 손쉽게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교수가 사외이사, 각종 정부위원회 위원 등을 겸직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외이사 등이 거의 거수기 역할만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교수가 아닌 사람이 사외이사를 해도 문제가 전혀 없다. 한편 현직 교수가 사외이사나 정부 ◯◯위원 등을 여러 개 하거나, 장기간 하는 것은 교수직의 업무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수직 연봉도 억대가 넘는 대학이 많다. 교수의 보수가 한국 교수 전체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대학은 재정지원을 축소하고 정규 교수 수를 늘려 보수 수준을 낮추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교수가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등을 할 때 퇴직을 의무화 하여 능력 있는 시간 강사 등이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는 넓혀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수들의 반발은 엄청나겠지만 괜찮은 일자리는 꽤 늘어난다.
관료들은 퇴직 후 낙하산 등으로 여러 자리에 가서 고액 연봉과 함께 공무원연금의 절반을 받는다. 이것은 공무원연금을 받는 헌법재판관들이 내린 위헌결정 결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안은 공무원연금을 받는 사람은 취업을 어렵게 해야 한다. 이것도 일자리를 분산시켜 실질적인 고용확대 효과가 있다. 이와 함께 퇴직 고위공무원이 정부예산 등을 활용하여 대학교수를 자리를 얻는 것도 금지시켜야 한다. 실력이 있는 퇴직 공무원은 대학의 자체 예산으로 채용하면 된다.
그리고 추진 중인 공무원연금 개혁과 함께 공무원 보수를 평가하거나 결정하는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 공무원들은 100인 이상 근무 기업의 사무직 평균 보수와 비교하여 공무원 보수의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신 공무원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직원 포함 전체 노동자의 평균 임금과 비교해 얼마나 더 많이 받고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공무원들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에도 관심을 갖는다.
셋째, 공기업 등과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은 전문직, 교수, 공무원들의 보상 수준이 낮아지면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된다. 공기업 직원의 보수는 설립근거법 등에 의해 거의 다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결정하게 되어 있다. 공기업의 높은 보수는 공기업 노조의 교섭력 보다는 기관장으로 오는 관료 출신의 힘과 로비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관료들은 선배들이 가 있고 미래에 자신들이 갈 자리이기 때문에 공기업의 고임금과 좋은 후생복지를 묵인․방조한 것이다. 관료 출신이 공기업의 기관장 등으로 못가면 공기업 보수는 결정권자인 관료들에 의해 빠르게 정상화 될 것이다. 그리고 과도하게 높은 공기업의 기관장과 고위 간부의 임금을 우선적으로 대폭 삭감하여 여유 재원으로 신입직원 채용을 확대하여야 한다. 괜찮은 일자리를 바로 늘릴 수 있는 방안이다.
대기업 정규직의 보수도 비교 기준이 되는 전문직, 공무원, 공기업 직원 보수가 하향 안정되면 조금씩 낮아질 것이다. 전문직, 공무원 등 보수를 먼저 낮추지 않고 대기업 정규직의 보수를 낮추거나 고용조건을 악화시키면 기업 부문의 인재 유치가 더 어려워져 한국 기업의 경쟁기반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이는 바둑의 수순과 같다. 대기업 정규직의 보수 인하는 필요하지만 전문직과 공무원 등의 보수 인하 다음 이루어져야 정책으로서 의미가 있다. 독일 제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의 하나가 자동차회사나 화학회사 엔지니어가 의사 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종사자 영세자영업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어야 직업 간 격차가 줄고 노동시장의 정상화가 빨라진다. 전문직,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등의 보수 인하와 괜찮은 일자리 확대는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 등의 노동조건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