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위클로웨이 트레킹 21일차(6일차) 5구간
일 자 : 2026년 8월 16일
구 간 : 아이언브러지 ~발리터버그로스 ~ 어퍼망간스~ 발리나코너 ~ 티나헬리
거 리 : 19 .5 km
시 간 : 5시간 34분
맑게 갠 날, 제임스 조이스의 작업실이 있던 식당에서 정통 아일랜드식 아침 식사(Irish Breakfast)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제임스 조이스와 작별하고 글렌멀로(Glenmalure) 계곡을 향해 길을 떠난다. 한낮 더위가 섭씨 25도를 웃돌아 식수를 평소보다 많이 준비해야 했다. 아일랜드에서 25도가 넘는 기온은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극심한 더위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두 달간 지속된 가뭄이다. 이례적인 장기 가뭄으로 감자를 포함한 구황작물의 작황이 급격히 떨어졌다. 겨울에 가축을 먹여야 할 목초 생산량 역시 급감했다. 예년 같으면 들판 대부분이 초록빛이었겠지만, 한여름 가뭄으로 목초지가 누렇게 타들어 간다.
타국에서 온 여행자는 무심하게 더위만 탓하며 제 갈 길을 가기 바쁘다. 산능선을 온통 덮은 헤더 꽃밭을 지나면 가문비나무가 검은 숲을 이룬다. 숲 끝에서 만나는 습지(Bog) 위로 넓적한 나무 두 줄이 기찻길처럼 길게 깔려 있다. 나무 표면은 얇은 철망사로 덮여 있고, 그 위에 큰 쇠못을 구부려 촘촘하게 박아 넣었다. 비가 와도 등산화 바닥이 미끄러지거나 밀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등산화 고무창 너머로 구부러진 둥근 못의 촉감이 전해진다. 어릴 적 교외선 철길 위를 걷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습지의 검은 땅 위로는 양털 덩어리가 길게 깔려있다. 이 양털은 비가 올 때 토양 유실을 막고 습기를 유지해 식물의 자생을 돕는다. 생경한 풍경 속에서 자연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벌목된 가문비나무가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쌓인 비탈길을 내려와 글렌멀로 계곡에 도착했다. 삼거리 요충지에 자리한 유일한 식당은 손님과 종업원으로 활기가 넘친다. 바(Bar) 한쪽에 자리를 잡고 위클로 울프(Wicklow Wolf) 에일 맥주를 주문했다. 바람 부는 들판에서 자란 밀로 만든 청량한 맥주가 잠시나마 갈증을 풀어준다. 다시 6.5km의 포장도로를 걸어 버스데일 (Birthdale) 숙소로 향했다. 좁은 도로에서 차량이 속도를 내며 달려오면 길가에 바짝 붙어 서서 숨을 죽였다. 목장 문짝 너머로 큰 황소가 지나가는 우리를 멀뚱히 바라본다.
무심한 노을이 천천히 번져가고, 어느덧 외딴 시골의 숙소에 도착했다. 수도꼭지를 돌리니 가뭄 때문인지 시뻘건 진흙물이 흘러나온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다.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이 산속 깊은 곳까지 차분히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