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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토론]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과 수행] <22> 보광 스님 “염불삼매 들게되면 깨달음 얻을 수 있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것에 있다.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은 상구보리이며,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하화중생의 일이다. 정토교학에서는 신심과 원력으로 깨달음과 중생제도를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타력적인 힘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서 타력이란 불보살의 본원력과 가피력에 의해 우리가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염불이다. 염불이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입으로 명호를 부르는 칭명염불(稱名念佛)과 부처님의 상호나 공덕을 관하는 관념염불(觀念念佛)로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염불은 불교교단에 대한 신앙의 표명이며, 귀의의 방법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대소승을 막론한 모든 불교의식에는 반드시 삼귀의로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깨달음에 들어가는 첫 번째의 관문이며, 사홍서원은 중생구제와 보살도 실천의 마지막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승불교의 모든 신앙행위는 믿음의 표현인 삼귀의와 대비원력의 발원인 사홍서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보면, “불법에는 무량한 문이 있다. 세간의 도(道)에 난(難)과 이(易)가 있으니 육로로 걸어가는 것은 고행이며, 수로로 배를 타고 가는 것은 편안하고 쉬운 일이다. 이와 같이 보살의 도에도 난행정진(難行精進)하는 사람도 있으며, 또한 신방편(信方便)의 이행(易行)으로 빠르게 아유월치(阿惟越致)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는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어려운 정진방법을 선택하는 난행도(難行道)와 쉬운 방법인 이행도(易行道)로 구분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이행도인 부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도 불퇴전지인 야유월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다겁생래 동안 닦은 무량한 수행력과 한량없는 중생구제의 본원력의 공덕력에 의해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용수보살은 염불로서 현세에 아유월치에 이르러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간절한 신심과 불보살 본원력.가피력에 힘입어 성불
그러므로 왕생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아미타불의 설법을 들어서 성불을 보장받으며, 결국은 모습과 이름이 모두 아미타불과 같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동명동호(同名同好)가 되어 모두가 아미타불이므로 부처와 극락성중이 둘이 아님을 설하고 있다.
즉 중생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으로 바뀌면 부처의 마음은 곧 부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마음이 곧 부처 (是心是佛)’라고 하는 말씀은 〈관무량수경〉과 〈반주삼매경〉에서 나오며, 이러한 말씀이 선종에 영향을 미쳐서 선종에서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은 ‘마음이 부처를 지었을 때 마음이 부처’라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부처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는 그대로 중생임을 명심해야 한다.
“부처님을 형상으로 관할 것”을 설하면서, 관념염불로서 “무량억겁 동안의 생사의 죄를 소멸하고 현재의 몸으로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성취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염불삼매에 들게되면, 견불을 하게 되며, 견불(見佛)은 견성(見性)과 같은 경지인 깨달음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정토교에서는 염불삼매를 성취하면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자신이 의심나는 것을 부처님께 물어보게 되며, 부처님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게 된다.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말법시대의 중생들이 친구의 얼굴을 보기는 쉽지만, 친구의 마음을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부처님의 마음인 불성(佛性)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다.
우리 중생이 눈에 보이지 않은 마음을 보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을 보기는 쉽다. 중생은 모습과 마음이 다를 수 있지만, 부처님은 모습과 마음이 같으므로 불신은 바로 불심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즉 아미타불의 명호를 일심불란하게 칭명한다면, 반드시 임종시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아니하고 바로 왕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심불란한 경지는 생사를 초월한 경계이므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도 볼 수 있다.
반주삼매를 닦는 방법으로 3개월 동안 경행하면서 염불을 지속할 것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을 활용한 것이 천태지자대사의 사종삼매법 중 상행삼매(常行三昧)이다. 90일 간의 상행삼매를 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고 있다.
[출처 : 불교신문 2065호/ 9월2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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