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시선을 아래로 돌릴 때입니다 / 전도서 1:7 / 찬송552
처음 산을 탈 때는 꼭대기를 목표도 등산을 합니다. 정상에 서서 한눈에 아래를 내려다볼 때의 쾌감을 산행의 백미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아름다운 산행은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능선 길을 타는 데 있음을 알게 됩니다. 길게 이어진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꼭 올라서야 할 꼭대기가 없는 산행의 여유를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정상이 아니더라도 오르는 만큼 열리는 아래쪽의 풍경을 감상할 줄도 알고, 주위 풍경들에 매료되어 머물다 그냥 내려오게도 됩니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등산으로 바뀐 것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처녀봉을 오르는 설렘으로 출발했던 연초가 떠오릅니다. 매년 목표를 정하고 올라보지만 이맘때가 되면 정작 내가 오른 곳이 그저 작은 고갯마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기까지 가면 꼭대기겠지. 저기 서면 좀 쉴 수 있을 거야.’ 하는 기대를 비웃듯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봉우리’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한해의 끝, 꼭대기로만 향하는 우리 시선을 돌리기 좋은 자리에 섰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다시 저 높은 곳을 오르기로 작정하기 전에 먼저 나뭇등걸에 앉아 바라볼 일입니다. 높은 곳으로만 오르려는 우리와 달리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말입니다. 거기가 정작 우리가 바라봐야 할 예수님이 계신 곳이 아닐까요? 가장 낮아져 모두를 품은 바다가 되신 분이 우리 예수님입니다.
지난 우리의 산행이 과연 그분이 오르신 언덕을 따라 오르는 산행이었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지금처럼 저 높은 곳만 오르려는 산행으로는 예수님이 오르신 언덕에 가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산행은 위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능선을 따라 온갖 풍경과 교감하며 끝내 모든 것을 품는 바다로 이어지는 산행이었으니까요. 그동안 열심히 올랐건만 왜 갈수록 우리 품에 아무도 깃들려 하지 않는지, 왜 우리는 그분처럼 아래로 흘러 모두를 품은 바다가 되지 못하는지 차분히 헤아려 볼 일입니다.
내 신앙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봉우리인가, 바다인가? 묵상하며 기도합시다.
기도
하나님, 한 해의 끝자리에 서서 지난 날 우리가 오른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주님처럼 바다로 이어진 산행을 하고 싶습니다. 하오니 바다이신 주님, 강물인 우리를 당신 품으로 당겨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