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덕5지구 어느 토박이 주민의 호소*
천지신명이시여!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금정산 쌍계봉 산신님이시여! 부산시 북구 만덕5지구 1,553세대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주십시오. 무릇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문제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며 풀어나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입과 귀를 막은 채 고개 돌리고 있는 저 거대 집단인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횡포 앞에 더 이상 방법이 몰라 이렇게 우주 만물 모든 존재 앞에 눈물로 호소합니다. 지금 만덕5지구 주민들은 생사의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부디 갈 길을 알려 주십시오.
40여년 전, 변두리 중의 변두리였던 이 땅에 정책이주민으로 들어와 살아온 지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그동안 열일곱평 4호 연립 좁은 주택이어도 내 집이어서 만족했습니다. 스무여섯 평 2호 연립 지붕은 초라해도 내 집이기에 다리 뻗고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그 집에서 자식 낳아 키우고 도란도란 행복했습니다. 돌아보면 크게 욕심을 부린 일도, 남을 해꼬지한 일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했고 내것 네것 서로 나누어 먹는 이웃사촌으로 살았습니다. 가끔은 옥신각신 다투다가도 다음날이면 형아, 동생아, 화해하고 우애를 다지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집도 낡고 토박이들의 검은머리는 하얀 파뿌리가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만덕동 주변에는 하나 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 어느 날 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되면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아파트를 한 채씩 지어준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감언이설, 그 달콤한 말에 우리들은 나라가 발전하니까 이런 좋은 사업도 하는구나. 감동하면서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그 말을 믿고 언감생심, 아파트에서 살아보고자 소망했던 죄가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만덕5지구 주민들은 도시 변두리 그 어디에 전셋방 한 칸 마련할 수없는 쥐꼬리만한 보상금을 들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금정산 쌍계봉 산신님이시여, 환경개선지구 지정이 된 뒤 비가 새고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도 공사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말에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 세월이 10년이었습니다. 2007년 5년만에 보상가를 지급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때 빚이라도 얻어 이사간 사람은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조금만 돈을 보태면 인근에 스무 네평 정도의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상이 미루어진 그 몇년 사이에 북구쪽 아파트 가격이 2배 이상 치솟아 버렸습니다. 뚜렷한 해명 한번 없이 보상이 미루어졌지만 만덕5지구 주민들은 항의 한번 하지 않고 또 기다렸습니다. 시공업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 즉 LH 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믿고 기다렸습니다. 결국 방만한 운영으로 빚더미에 올라 앉은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만덕5지구 주민들은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년 9월,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드디어 보상가 통지문을 받았습니다. 평당 300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2007년도 공시지가를 적용한 금액이었습니다. 믿은 도끼에 찍힌 발등은 너무 아프고 가슴은 분노와 절망으로 무너졌습니다. 평당 700만원을 넘는 아파트에 재 입주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믿고 찾아간 부산시, 북구청 담당자들은 계속 무성의한 답변만 늘어놓았습니다. 또한 북구 주민들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과 그 측근들은 오히려 만덕5지구 주민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적반하장의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2007년 빚을 내어 이사 간 사람들은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해 속울음을 울면서 보상금을 수령해 갔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공기업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며 모든 것이 운명이라며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정의감에 불타는 몇몇 주민들은 생업을 포기했고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인 시위를 하며 그 부당함에 대항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동안 만덕5지구 주민들은 부산 시청광장, 북구청정문 앞, 한국토지주택공사부산지사 건물, 만덕 사거리에서 30여 차례 집회를 열었습니다. 찬바람 부는 길거리에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며 현실에 맞는 보상을 요구했고 불편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뚝거리며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시청, 북구청, 국회의원, 모두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계속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시공업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사정이야 어떠했든지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다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옹색한 변명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금정산 쌍계봉 산신이시여, 지금 이 기막힌 만덕 5지구 주민들의 절규를 듣고 계십니까? 지금, 만덕5지구 주민들의 한숨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지금, 만덕5지구 주민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고 계십니까?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기다렸고 싸웠습니다. 이제 한평생 고단한 삶을 버티어온 두 다리는 이미 힘이 풀렸습니다. 또 다시 도시의 변두리를 떠돌기에 우리는 너무 늙고 지쳤습니다. 그러나 이 슬프고 억울한 가슴에 횃불을 밝히고 오늘도 네거리에서 시위를 합니다. 겉으로는 개발 이익금을 모두 주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사탕발림을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들 배를 불리는 장사치로 전락한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당함은 결코 만덕5지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지신명이시여,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금정산 쌍계봉 산신님이시여! 만덕5지구 주민들은 나라의 법은 어떠한지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주 만물 돌아가는 이치는 정당하고 약한 자를 도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디 이 호소가 허공에서 맴돌게 하지 마시고 거두어 주십시오.
만덕5지구 주민들의 바람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현실에 맞는 보상을 해줄 수 없다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환경개선지구지정을 해제하여 여기 이대로 살게 해 주십시오. 제발 비가 새고 낡아도 좋으니 그냥 내 집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금정산 쌍계봉 그 열두 폭 치맛자락에 등을 비비며 살게 해 주십시오.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한 쌍계봉 아래, 햇살 따시고 공기 좋은 이 터에서 목숨 다 하는 날까지 살게 해 주십시오. 부디 오갈 데 없는 만덕5지구 주민들을 살펴보아 주십시오.
*2012년 4월10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