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들여다보니 2015년도에 회원이 다녀간 후에 너무 오래 비어 있어서 주러지를 올려봅니다
도깨비 도채비
얼마 전 도깨비에 관련된 내용으로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리얼리틱한 구성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이 과거를 잊어버리고 사랑을 하는 사람과 과거를 모르고 과거를 반복하는 내용의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남자 주인공들의 핸썸한 캐릭터가 대한민국의 뭇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비현실적 내용에 콧방귀를 끼면서도 점점 그 드라마에 빠져 끝 회까지 부지런한 시청자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도깨비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싶은 게 솔찍 한 내 심정이다. 먼 거리를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애인을 구하러 휙 가거나, 여러 명의 불량배를 여자 친구가 보는 앞에서 멋지게 제압하는, 참 통속적인 이야기의 구성도 처음에는 웃으며 보았지만 나중에는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되었다. 뻔 한 이야기지만 보다보니 빠져드는 걸보면 TV가 바보상자라는 말이 사실이것 같다. 그런데 도깨비의 말이 나왔으니 생각해보자 어릴 적 할머니의 품에서 듣던 도깨비는 어떤 형상이었나? 듣다가 잠이 들락 말락 하면 “왕” 하고 얼굴에 달려드는 듯한 모습에 화들짝 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그러나 도깨비는 무서운 것만이 아니다. 우선 만나면 떨떠름 하지만 꼭 마지막엔 금은 보화를 쏟아놓고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서우면서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존재였는데, 꼭 나타날 때는 대남 숲에서 튀어나온다던지, 통시에서 나온다던지, 헛간에서 나온다던지 하면서 약간 음산한 곳에서 나왔던 기억이 나에게 출현하는 도깨비였다. 힘도 엄청 쎄고 고집도 엄청 쎄고, 꿈속에서도 밤새 잠 못자게 나를 끌고 다니다가 아침녘이면 낭떨어지로 냅다 버리고 가버리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때론 부지런히 쫒아 가다보면 앞서가던 도깨비는 빗자루가 되어서 길가 옆으로 쓰러져 사라져 버리곤 한다. 남겨진 싸리 빗자루를 주어서 아무리 만져 봐도 도깨비는 온데 간데 없다. 그런데 도깨비란 명칭도 우리나라 정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듣기에 분명히 도채비로 들으면서 자랐던 것 같다.
우리의 도깨비는 재미있고 가끔은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게 횡재를 가져다주기도 하는 존재였는데 한번 두드리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쏟아져 나오는 신기한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다닌다. 뿔도 없다. 도깨비는 전통 바지저고리를 입었고 보통 사람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큰 정도였다. 사람 형태의 도깨비가 대부분이나 집안에 쓰는 빗자루 도깨비, 도깨비불과 같은 물건의 모습을 한 각가지 도깨비가 있고, 외다리, 외눈, 각시 등 다양한 모습도 있다. 총체적으로 맹태기를 가지고 다니면 과자와 왕사탕 같은 선물을 나눠주는 덩치 큰 삼촌 정도의 느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도깨비의 모습이 참 무섭게 그려지고 이야기 되고 있다. 지금의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들은 모두가 일본인들의 퍼뜨린 도깨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이것은 일본이 오니라는 괴물의 모습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에게 오니는 불길하고 싫은 존재였다. 일본인에게 '오니 같다'고하면 화를 낸다. 그 들은 자식의 모습이나 행동이 부모를 닮지 않으면 “오니의 자식”이라고 불렀는데, 자식들이 요괴와 같은 괴물이라는 뜻이겠으나 실제로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거나 부모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들은 ‘인간도 아니다’라는 뜻이 숨어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집안에 오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위한 여러 가지 주술적인 행동도 있다. 전통적으로 집에서 외출할 때는 원숭이를 뜻하는 ‘사루’라는 말을 외쳤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집안의 북동쪽인 축인(丑寅) 방향으로 오니가 들어오니, 그 반대 방향인 ‘신(申)’에 해당하는 동물인 원숭이는 오니에 대항하여 집을 지켜줄 능력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즉, ‘사루’라고 외치며 집을 떠나면 원숭이가 집을 지켜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본의 옛 장식품이나 종에는 원숭이를 형상화한 것이 많은데, 오니와 같은 악귀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원숭이 조각상을 집안에 곱게 모셔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니에 대한 설화는 주로 일본의 헤이안 시대 (8-12세기)의 기록에 많이 남아있는데, 당시 악명을 떨쳤던 산적들이나 흉악범을 오니로 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우락부락한 외모에 붉은 피부, 털이 많은 모습과 원시적인 복장으로 보아서, 북방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는 설도 있다. 과거 일본인들은 아이누들과 격렬하게 싸웠고, 일본 본토 쪽에서는 그들을 호전적이며 매우 '악마'같은 족속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오니를 사악하거나 고약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욕할 때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무사들의 용감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쓰였고, 과거 일본 전국시대의 유명한 장군들은 모두 오니라고 불리는 각자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 문헌이나 문학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어려워서 ‘귀신', 악마' 또는 ’호랑이'로 번역한다고 한다. 오니라는 단어가 숨기고 가린다는 뜻의 ‘온요미(?)’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오니가 보이지 않은 혼과 같은 존재이고, 역병이나 재앙을 일으키는 귀신이기 때문이다. 사실 ‘귀(鬼)’는 형체가 없는 영혼과 같은 의미였다. 아직도 일본의 부락에서는 매년 봄이 시작되는 때에 동네에 들어온 오니를 ?아내는 ‘세쑤분(節分)’이라는 축제 의식을 한다. 계절을 나눈다는 뜻의 세쑤분은 봄이 시작하는 전날 거행된다. 보통 봄축제(春祭, 하루마쓰리)의 일환으로 입춘인 매년 2월 3일에 열리는데, 과거에는 음력 정월 첫날의 전날 저녁에 마메마키(豆撒き)라는 의식과 함께 거행되었다. 마메마키는 전 해에 들어온 악귀들을 씻어내고, 새해에는 역병을 일으키는 악령에서 벗어나도록 볶은 콩을 뿌리는 행사이다. 세쑤분은 8세기경 중국에서 도입되어 시작되었으나, 마메마키는 그 이후에 추가되었다. 보통 그 해의 12지신 상에 해당되는 띠의 소년이나 집안의 가장인 남성이 거행하는 행사이다. 후쿠마메(福豆)라는 볶은 콩을 문밖이나 오니의 마스크를 한 사람에게 던지며, ‘귀신은 물러가고 복은 들어오너라!’라고 외치는 것이다. 콩은 귀신을 물리치고 나쁜 건강을 ?아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믿어졌고, 볶은 콩을 먹는 습관도 있다. 한사람의 복을 위하여 한 개씩을 먹거나, 나이 일 년에 한 개씩 먹기도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이러한 풍습을 행하고 있으며, 때로는 신사나 사찰에서 열리는 세쑤분 축제에 참석하여 콩을 뿌리는 의식에 참석한다. 그러나, 신사의 기념품 가게에는 오니의 모습을 한 토기나 금속 방울 종을 판매하고 있으니, 이제는 오니도 애완 귀신이 되어 박제화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일본에는 '오니의 마을'이라는 지역도 있는데, 오니가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도깨비를 일본의 오니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도깨비는 오니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모두 한자로 ‘鬼’라고 쓰거니와,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오니가 잘못 소개되어 그 결과로 이 같은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덩어리가 와르르륵, 은 나와라 뚝딱!하면 은덩어리가 와르르륵..’나와서 인간에게 던져주고 가버리는 어수룩한 도채비가 진정 우리 도깨비인 것이다. 지금도 가끔 도채비가 나오는 꿈을 꾸며 금덩어리가 내 발 앞에 우르르 쏟아지는 꿈을 꾸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