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5128]王維시-終南山
終南山 종남산- 王維(왕유)
太乙近天都(태을근천도)태을산은 천자의 도성과 가깝고,
連山到海隅(연산도해우)이어진 산들은 바다 끝까지 이어지는데.
白雲迴望合(백운회망합)흰 구름은 돌아 바라보면 합쳐져 있고,
靑靄入看無(청애입간무)푸른 안개는 들어가 보면 없어지네.
分野中峰變(분야중봉변)지역은 봉우리를 경계로 달라지고,
陰晴衆壑殊(음청중학수)흐리고 맑음은 계곡마다 다르다네.
欲投人處宿(욕투인처숙)사람들 사는 곳에서 묵고 싶어,
隔水問樵夫(격수문초부)개울 너머 나무꾼에게 물어보네.
[출처] 千家詩(천가시)사방득.왕상엮음
태을근천도太乙近天都하고
연산도해우連山到海隅라
백운회망합白雲廻望合이요
청애입간무靑靄入看無라
분야중봉변分野中峰變하고
음청중학수陰晴衆壑殊라
욕투인처숙欲投人處宿하여
격수문초부隔水問樵夫라
태을산은 하늘나라에 닿아있고
이어진 산은 바닷가에 접해있다.
흰 구름은 둘러보면 합해져 있고
푸른 안개는 보려들면 없어진다.
들녘을 나누는 것은 중봉 따라 변하고
어둡고 맑음은 뭇 골짜기 마다 다르다.
인가에 투숙하고자 하여
물 건너 나무꾼에게 물어본다.
終南山: 섬서성陜西省의 서안西安 남쪽에 있는 산으로 남산南山이라고도 한다. 중국 대륙 북서부 지역인 ‘신장新疆 위구르족 자치구’에서 뻗어 내린 진령秦嶺산맥이 관중분지關中盆地를 지나 이곳 남쪽 끝자락에서 끝났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진령산맥은 중국을 화북華北·화남華南으로 나누는 주요 산맥이다.
太乙: 종남산의 주봉峰이다.
天都: 태을산이 수도인 장안과 가깝다하여 이를 ‘왕도王都’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산이 높다는 의미로 보면 ‘하늘나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海: 종남산은 바다와 접해 있지 않아 과장된 말이라고 하나 ‘바다 해海’를 중국에서 호수湖水를 명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석은 ‘바닷가에 접해 있다’라고 했다.
廻望合: 구름을 바라볼 적마다 변화되고 있음을 표현했다.
分野: 주나라 때 태을산太乙山을 중심으로 국토를 28宿으로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달은 날마다 하늘에 나타나는 위치가 달라지다 28일쯤 지나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다. 그래서 달의 위치를 기준해서 별자리를 28개로 나누어 28숙이라 했고 주나라는 이를 본떠 국토를 28 지역으로 나누었다.
壑: 골짜기
樵夫: 나무꾼
왕유의 생애 중 은거 시기는 20여년이나 되지만 산수시를 왕성하게 창작한 기간은 기상淇上·숭산崇山 은거시기(728~735)와 종남산 은거시기741~742, 망천 은거시기750~756의 약 14년 동안이다. 송대의 장계張戒가 “왕유는 심정이 담박하고, 본래 불학佛學을 비우고 또 그림을 잘 그려서, 세상에 나와서는 기왕岐王 설왕薛王 등 여러 왕이나 귀족들과 놀고, 산림으로 돌아가서는 망천輞川의 경치를 실컷 즐겼으니, 그의 시는 부귀와 산림에 있어서 모두 그 흥취를 얻었다(歲寒堂詩話 권 上)라고 하여 세속생활과 산림생활 모두 흡족하게 지낸 것을 말하고 있다.
왕유는 “일생 동안 여러 차례 상심하는 일이 있었지만, 불교가 있어 어린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고백했듯이 그의 일생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불교로부터 위안을 얻었으며 40세 이후로는 더욱 열심히 참선수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안록산의 난을 겪은 후, 그의 세상에 대한 관심은 더욱 담박해졌고 불교에 철저하게 귀의해 생활했다. ‘구당서’ 본전에 따르면 죽기 전 3~4년 간 “경사京師에서 날마다 십 수 명 승려들을 공양하며 현담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서재 중에는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차 솥, 약 절구, 불경 책상, 새끼로 얽은 침상뿐이었다. 퇴조退朝한 후에 분향하고 홀로 앉아 참선과 독경을 일삼았다”라고 한다.
소식은 왕유가 은거와 참선을 통해 내면으로 침잠했던 세월에 대해 “왕유의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는 시가 있다”고 평가했다. 소식이 찬탄했던 것처럼 왕유는 산수시와 산수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출처: 법보신문>
여기서도 1련聯에서 멀리 보이는 원경遠景을 나타내면서 1구에서는 높음을, 2구에서는 먼 것을 표현했다. 2련에서는 자신이 서있는 곳의 정경情景인 풍경風景을, 3련에서는 가까이 바라보이는 근경近景을 표현하면서 4련에서 이곳에 머물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終南山(종남산)
왕유(王維)
태을산(太乙山)은 천도(天都)와 가까운데
연이은 산은 바다 끝에 닿아 있다
흰 구름은 돌아보니 합쳐 있고
푸른 안개는 들어가 보니 없어지네
별들의 구역이 중봉(中峰)에서 변하고
개이고 흐림이 골짝마다 다르다
사람 사는 곳에 투숙하고파
물 건너 나무꾼에게 물어본다
太乙近天都 (태을근천도)
連山接海隅 (연산접해우)
白雲回望合 (백운회망합)
靑靄入看無 (청애입간무)
分野中峰變 (분야중봉변)
陰晴衆壑殊 (음청중학수)
欲投人處宿 (욕투인처숙)
隔水問樵夫 (격수문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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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태을산은 수도인 장안 가까이 있는데, 산이 끝없이 연이어져 바다 끝에 닿아 있다. 산중에서 구름을 헤치고 걷다가 뒤돌아보니 구름이 합해져 운해(雲海)가 되고, 푸른 안개 속으로 들어가 보니 막상 안개는 보이지 않더라. 산이 너무도 높기에 별자리에 따라 나눈 구역이 중봉에서 경계를 바꾸고, 골짝에 따라 어느 곳은 흐려 있고 어느 곳은 개어 있다. 인가를 찾아 오늘밤을 묵으려고, 물 건너 나무꾼에게 소리쳐 물어본다.
[解題] 왕유의 산수시 중 대표작이다. 조전(趙殿)이 찬한 ≪王右丞集箋注(왕우승집전주)≫에는 제목이 ‘終南山(종남산)’으로 되어 있는데, 송촉본(宋蜀本) ≪王摩詰文集(왕마힐문집)≫과 ≪文苑英華(문원영화)≫에는 ‘終南山行(종남산행)’으로 되어 있고, ≪樂府詩集(악부시집)≫에는 뒤의 4구만을 취하여 ‘陸州歌第一(육주구가제일)’이라고 되어 있다.
왕유가 40세 이후 終南別業(종남별업)에서 은거와 출사를 반복하던 시기에 지은 작품으로, 종남산의 광대하고 웅장한 모습을 빼어나게 묘사한 명작이다. ‘欲投人處宿(욕투인처숙) 隔水問樵夫(격수문초부)’는 장엄한 산수 속에서 메아리치는 한 줄기 목소리를 묘사하여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대비를 표현한 명구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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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역주1> 终南山(종남산) : ‘太一山(태일산)’, ‘地肺山(지폐산)’이라고도 칭한다. 오늘날 서안시(西安市) 장안현(長安縣) 남단 지역으로, 동쪽 남전산(藍田山)으로부터 서쪽 진령산맥(秦岭山脈)의 주봉인 태백산(太白山)까지 걸쳐 있다.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성이 의지하고 있는 산으로, 웅대하고 수려한 산세로 인하여 예로부터 ‘선도(仙都)’라 칭해지기도 하였다.
역주2> 太乙(태을) : 太一(태일)이라고도 하며, 종남산의 주봉(主峰)으로 종남산을 태을산이라고도 칭한다. 太乙神(태을신) 또는 太一神(태일신)이 거처하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3> 天都(천도) : 天帝가 거처하는 천상의 궁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황제의 도읍지, 즉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지칭한다. ‘天宮’, 즉 천상의 궁전 또는 하늘로 해석하기도 한다.
역주4> 連山接海隅(연산접해우) : ‘山’이 ‘天’으로, ‘接’이 ‘到’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5> 分野(분야) : 하늘의 별자리인 28수에 따라 중국의 전역을 분할한 것을 지칭한다. 주나라 때 태을산太乙山을 중심으로 국토를 28宿으로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달은 날마다 하늘에 나타나는 위치가 달라지다 28일쯤 지나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다. 그래서 달의 위치를 기준해서 별자리를 28개로 나누어 28숙이라 했고 주나라는 이를 본떠 국토를 28 지역으로 나누었다.
역주6> 中峰(중봉) : 태을봉을 지칭한다.
**壑(학): 골짜기
**樵夫(초부): 나무꾼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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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시삼백수]종남산(終南山)-왕유(王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