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聽聞)과 청정(聽政)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의 얘기를 잘 듣는 경청(敬聽)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 소리가 왜 나왔는지,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판단하려면 우선 잘 들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듣지 않는다.
듣는 훈련도 되어 있지 않고, 잘 들을 소양도 갖추고 있지 않다. 물론 시끄러워도 잘 들을 수 없다. 너무 시끄러우면 아예 귀를 닫는다.
청문회(聽聞會)가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온통 시끄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치권을 외면하게 된다.
‘청문(聽聞)’의 각 글자가 ‘듣는다’는 뜻이지만 의미는 각각 다르다. 聽은 ‘耳(귀 이) +壬(아홉 번째 천간 ‘임’으로 어두운 북쪽을 뜻함) +㥁(덕:德의 옛 글자로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을 뜻함)‘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즉 위정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먼저 내세우지 않고 삼가 잘 듣는다는 뜻이다. 공자가 주역에서 말한 ‘정치를 한다’는 뜻의 청정(聽政)과 같은 의미이다.
聞은 門과 耳로 된 글자로 문 안팎에서 귀에 들리는 소리인 소문(所聞)을 뜻한다. 곧 민심 또는 여론에 해당한다. 따라서 聽聞은 정치를 하기 위해 민심과 여론을 청취(聽取) 한다는 뜻이다.
聽聞 두 글자에 모두 耳가 들어 있는데, 귀를 뜻하는 '주역'의 괘상(卦象)은 물(水)의 형상을 본뜬 ☵이다. 태극기에 있는 괘인데 괘명을 감(坎)괘라 한다.
물은 패인 곳으로 흐르고 빠지게 되므로 괘명인 감(坎)에는 ‘빠지다, 웅덩이’란 뜻이 있고 험난함을 상징한다. 또한 물괘(☵)의 형상은 깊숙한 구멍이 있는 귀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에는 조용히 잘 들어야 하는데 잘못 듣거나 자의적으로 듣게 되면 험난함에 빠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물괘(☵)가 아래위로 거듭 있는 괘가 중수감(重水坎
)괘이다. 공자는 이 괘에 대해 “군자가 항상 덕행으로써 가르치는 일을 거듭한다(君子以常德行習敎事)”고 하였다.
곧 위정자는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스스로를 낮추어 말을 내기 전에 먼저 여론을 잘 듣고 민심을 잘 살펴서 백성을 가르치고 교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덕치와 위민(爲民)정치가 사라진 요즘, 정치에서 본래의 聽政은 사라지고 聽聞의 장(場)은 설전(舌戰)의 장으로 바뀌었으니, 아무도 정치권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정치인에 대한 불신만 날로 깊어진다.
<출처 : 「왜 한자이고 유학경전인가」 2012년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