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成語 散策 41 水魚之交
성 길 모
후한後漢 말엽 장군 동탁董卓은 자기 마음대로 왕을 폐위, 즉위시킨 후 스스로 재상이 되어 갖은 포악을 다했다. 이에 군웅할거群雄割據시대가 도래하여 천하는 조조曹操의 위魏, 손권孫權의 吳, 유비劉備의 촉蜀으로 삼분되어 三國時代가 되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뒤쳐진 것이 劉備였다. 그의 휘하에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운趙雲 등의 용장은 여럿 있었지만 같이 일을 도모할만한 책략가가 없었다. 그래서 유비는 양양襄陽의 서쪽 융중산隆中山의 와룡강臥龍岡이라는 언덕에 초막을 짓고 살고 있는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孔明을 얻은 劉備는 그의 재간에 경도傾倒하여 그를 스승으로서 존경하고 침식을 같이 했다. 처음에 관우와 장비는 애숭이인 공명을 傾倒하는 유비의 태도를 시기하여 크게 비난을 했다. 그때 유비는 말했다. 「내게 공명이 있는 것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거나 같다. 다시는 더 말하지 말라.」
군신의 사이가 친밀한 것을 가리켜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비유가 생긴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전에 우리나라의 전아무개와 장거시기의 관계도 水魚之交라 할 수 있을까? 택도 없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