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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이사야 4:2~6
오늘 우리가 읽는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적 말씀입니다. 1장부터 3장에까지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유다 백성들의 죄악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며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시곤 했습니다. 자기 백성의 완악함과 패역함과 더러움을 인하여 하나님은 깊은 탄식과 큰 슬픔과 불타는 분노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종종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하시곤 했고 회개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초대의 말씀도 하시곤 했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그런나 하나님 말씀의 대세는 슬픔과 탄식과 분노의 말씀이셨고 그들의 죄에 대하여 장차 닥칠 참혹한 심판의 결과들에 대한 경고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임하면 그들이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의지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모든 자랑들은 다 제거될 것입니다. 그들의 나라 체계는 무너지고 그들이 부정하게 가난한 백성들의 물품들을 노략질한 것들은 다 빼앗겨질 것이요 장정들은 다 죽임을 당할 것이요 그들의 무사안일한 시온의 여인들의 사치와 방탕은 슬픔과 탄식으로 바뀌고 그들의 아름답게 장식한 모습들은 초라하고 부끄러운 행색으로 바뀌고 말 것입니다. 3장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심판의 경고들은 마치 전쟁을 미리 알리는 나팔소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의 나팔소리가 계속 울리지만, 그들은 꿈쩍이나 했을까요? 회개하며 기도하며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악업을 버리고 돌이켜 하나님의 긍휼을 청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겪게 되는 슬픔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시대의 악함과 그 결과로 임할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를 눈으로 보면서 두렵고 간절한 마음으로 돌이키라고 전해도 그 사역의 결과가 미미하다는 점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겔 33:30~33)
에스겔 선지자 때에도 나라가 이미 망해가고 있는 상황 중에서, 일차 포로, 이차 포로로 끌려가서 포로지에 선지자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도 선지자의 말을 간절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듣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오랫동안 섬겼던 유다 백성의 마음의 본색입니다. 어찌 유대인들만이 그러하겠습니까? 우리들도 그러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일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찢지 않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 자기의 삶을 바꾸려고 행하지 않는다면, 여호와의 때가 임하여 그 모든 경고대로 무서운 심판이 임하고 나서야 그 때서야 후회하고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아직 때가 이르기 전에 즐겨 순종합시다. 즐겨 우리 자신을 돌이켜 모든 죄를 버립시다. 예레미야애가 3:40,41 말씀처럼,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라는 말씀대로 자기를 조사하고 죄를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께 돌이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청하며 거룩하고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갑시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본문 말씀 이사야 4:2~6 말씀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 있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극심한 죄를 회개치 아니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하여 창기와 같은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망하고 여인들은 모든 치장들을 다 빼앗기고 장정들은 칼에 망하고 시온은 황폐하여 버린 바 된 상태가 되고 난 후의 일어날 일입니다. 이것이 4:2의 ‘그날에’라는 말씀의 시점입니다.
여기서 ‘그 날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긍휼의 때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극렬한 심판에 붙이심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고 이제 하나님 마음 속에 자기 백성에 대한 긍휼이 불타오를 때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이 미운 것이 아니라 그 자식이 범하는 죄가 미운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죄가 밉지 자기 백성이 미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죄에 대하여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신 후에는 이제 그 마음 속에 자기 백성에 대한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하여 진노하실 때조차 사실 미움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전해준 메시지가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0~13)
죄를 실컷 짓고 회개도 않고 먼 타향에 끌려간 유다 백성들이 밉기도 하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고생하는 유대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본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재앙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주려는 것이요 미래도 빼앗고 희망을 빼앗아버리려는 것이 아니요 다시 미래를 열어주고 희망을 불어넣어 그 희망을 이루어주고자 함이 본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유배지에서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천리 만리 떨어진 바벨론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고 하나님을 전심을 다해 찾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혹시라도 지금 죄로 인한 징계를 당하며 고난과 역경 중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낙심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가지고 보고 계시고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러할 때 도리어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그를 구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만나주시고 영적인 은혜를 충만히 경험하게 하실 것이요 전화위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 동안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되찾게 해주실 것이요 이제 그것들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하여 감사함으로 누릴 수 있는 은혜의 심령 상태 속에서 그것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진노의 심판이 지난 후에 고난 중에 연단받은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축복의 내용을 함께 살펴봅시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 때 주시는 축복은 풍성한 물질의 회복입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시 은혜를 주시는 그 때에는 전란으로 황폐해지고 가꾸는 자가 없어서 거칠어진 그 땅에 다시금 풍요로운 결실과 아름다운 소산의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여호와의 싹이 나서 아름답고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이 소산물을 내는데, 과일과 채소와 소와 양과 같은 가축들이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 곧 남은 자들을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 소산물들이 ‘영화롭고 아름답다’는 말은 매우 탁월하여 자랑스럽게 여길 만큼 좋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름다울 것이며’라는 단어 ‘티페아라’라는 단어는 3장 18절에 나오는 여인들의 ‘장식품’을 가리키는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전에 유다의 여인들은 자신의 외적 치장, 음란하고 사치스런 치장을 자랑했지만, 이제 심령의 변화를 받은 회복의 때에는 그러한 치장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소산물의 아름다움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피폐하게 변했던 땅이 이제 기름진 옥토로 변화되는 환경의 축복, 물질의 축복도 심령이 회복된 자, 하나님께 온 마음이 돌아온 자가 누리는 복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2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싹’을 메시야를 지칭하는 단어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싹’이라는 히브리어 ‘체마’라는 단어는 실제로 이사야 이후의 선지자들이 즐겨 메시야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예레미야 23:5~6 말씀에 이렇게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또 스가랴 3:8에서도 이렇게 나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가지’ 혹은 ‘싹’으로 번역된 이 부분은 분명 훗날 오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인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의 ‘싹’이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훗날 메시야 시대에 임할 회복의 때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광야에 꽃이 피고 사막에 강이 흐르고 새가 노래하고 앉은뱅이가 뛰고 벙어리가 노래하고 귀머거리가 듣고 문둥병자가 깨끗케 함을 받고 온 세상의 모든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는 메시야 시대가 올 때 모든 땅의 소산도 영화롭고 아름답게 맺혀질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임하면 영혼도 잘 되고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해지는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지만, 우리 선한 목자 예수님이 오시는 목적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영적 은혜의 싹이 활짝 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생활의 터전에서도 소산물들이 영화롭고 아름답고 탁월해지고 자랑스러워 신앙의 증거들을 세상 사람들조차 발견하고 놀라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회복의 은혜와 축복으로 주시는 것은 거룩해지는 은혜입니다.
3절에서 4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받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여기서 보면 돌아온 귀환자들에 대한 용어가 ‘남아 있는 자, 머물러 있는 자, 생존한 자’ 등으로 세 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강조된 ‘남은 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있지만 그들이 다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심판을 통과하여 남은 자만이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계보를 이어가는 자들이 됨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남은 자 사상을 로마서 9장에서 11장까지 이르는 구원사의 경륜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강조합니다.
로마서 9:27 말씀에,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또 로마서 11:5에서도 이르기를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해도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상은 신약 시대 예수님께서도 강조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남은 자는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신앙으로 승리한 자를 말합니다. 계시록에서는 ‘이긴 자’라는 표현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신앙인은 시험과 유혹의 광야를 통과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광야에서 죄로 인하여 쓰러지고 맙니다. 오직 은혜를 입은 자, 택하심을 입은 자 소수만이 끝까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달합니다. 그렇다고 그들 자신의 힘과 결심과 노력으로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로 남은 자가 됩니다. 구약 시대 아합 왕 때에 엘리야 선지자가 자기 혼자 남았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두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믿음을 시험 속에서 지켜낸 것이지, 내 혼자만이 결심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시험과 연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도우심을 청하면서 믿음의 지조를 지켜갑시다. 무릇 있는 자는 더 받아 누리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긴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가진 이 신앙의 은총이 귀한 줄 알고 세상 어떤 것과 바꾸지 말고 더욱 깨어 기도하며 날마다 이겨가는 믿음의 이긴자가 되어서 끝내 남은 자로 주님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남은 자들은 어떠한 은혜를 입습니까? 그들은 거룩하다 칭함을 받는 은총을 입습니다. 그 이유가 어떤 까닭이지요? 4절에 보면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께서 심판하시는 영과 소멸하시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기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성령께서 여기서 심판하시는 영과 소멸하시는 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소멸하시는 영’이란 불로서 태우는 영이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오순절 성령 강림하실 때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실 때 그곳에 불이 임하여 그 불에서 뱀의 혀처럼 갈라져 각 사람에게 임하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불의 성령은 불의 성질처럼 더러운 것들을 다 태워버립니다. 죄를 태워버립니다. 어둠과 더러운 영들을 다 소멸시키는 불로 내쫓아버립니다. 그리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이전의 모든 죄악의 습관들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깨끗해집니다. 거룩해지는 능력은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 되지 않고 결심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 죄의 습관은 끊어집니다. 심령이 정결해집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하나님 백성답게 살게 되며 주님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시대는 바로 이러한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미 성령이 우리 몸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이 성령을 감사하며 사모하며 의지하십시오. 그리할 때 성령의 소멸하게 하시는 은혜가 임하여 정결한 심령이 되고 하나님 앞에 깨끗한 그릇이 되어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4절에서 보면 이러한 대목이 나옵니다.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에서 ‘더러움’이라는 단어는 ‘초아’라는 히브리어입니다. 이 단어는 오물, 토한 것, 대변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28:8에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것이 없도다”
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입니다. 이는 토한 것이 널린 상을 생각하면 상상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 36:1에는 대변을 말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3장 후반절에 유다의 시온의 딸들이 사치스럽게 아름답게 자기를 꾸미며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치장하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런 모습들이 토한 것, 배설물처럼 냄새나고 역겨운 모습으로 여기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육신적인 아름다움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마음의 단장에 더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여 소멸하는 영에 의하여 심령이 정결해질 때 하나님께서 그를 보실 때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실 것입니다.
세 번째, 회복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의 은혜입니다.
5절과 6절 말씀을 읽읍시다.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환난과 연단을 통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께 붙어 있는 남은 자들, 참 신자들에게 제 2의 출애굽의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광야 40년 동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 기둥으로 함께하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을 지키시는 보호막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 모든 영광’은 예루살렘 성과 돌아온 귀환자들의 삶의 터전의 땅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모든 것을 덮개로 보호하여 악한 자들이 침략하거나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십니다. 또한 초막을 주셔서 낮의 더위 뿐 아니라 풍우를 피하는 피난처를 제공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정과 평안과 보호를 제공하시니 이 복된 은혜를 받아 누리는 남은 자, 참 신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이처럼 돌아온 귀환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풍성한 영육간의 축복을 주신다는 언약을 베풀어주십니다. 회개한 자들, 죄를 버리고 철저히 하나님만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약속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성한 영적 은혜와 생활의 축복을 감사하면서 이 복을 빼앗기지 맙시다. 이 모든 것들을 도적질당하지 않도록 합시다.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신은 이러한 축복을 도적질하려고 늘 호시탐탐 노립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노력을 막곤 합니다. 우리 모두는 여호와의 싹인 우리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그에게 긴밀하게 붙어 있읍시다. 그리할 때 도적질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를 향하여 풍성한 복과 은혜를 예비하신 주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