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몽(이수일과심순애)이야기와 가사/ 대동강과 부벽루 사진
大同江邊 浮壁樓에 散步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兩人이로다
握手論定 하는것도 오날뿐이요 徒步行進 散步함도 오늘뿐이다
수일이가 學校를 마칠때까지 어이하여 심순애야 못 참았느냐
남편의 不足함이 있는 然故냐 不然이면 金錢이 탐이 나더냐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야몬드가 그렇게도 탐이 나더냐
에이! 악마! 賣春婦! 만일에 來年 이 밤 來 明年 이 밤
만일에 저 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던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怨望하고 오늘같이 우는줄이나 알아라
郎君의 不足함은 없지요만은 당신을 外國留學 보내기 위해
叔父님의 말씀대로 順從하여서 김중배의 가정으로 시집을 가요
순애야 反病身된 이수일이도 이 세상에 당당한 義理男兒라
理想的인 나의 妻를 돈과 바꾸어 外國留學 하려하는 내가 아니다
- 어려서 들었던 무성영화 변사의 대사 한 토막 -
『때는 바야흐로 춘 삼월 ! 비둘기 쌍쌍이 날으는 대동강 가에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두 청춘 남녀가 있었으니, 그 들의 이름은 이수일과 심순애였던 것이었다.
대동강 물이 변해 모란봉이 되고 모란봉이 변해 대동강이 될지라도
우리사이 서로 변치 말자고 약속 했건만...., 네가 나를 배반하다니....,
"수일씨! 흐흐흑!" "놔라! 이 바지를 놓으란 말이다. 바지찢어질라...," "수일씨!"
"나는 너를 만나기 위에 어제 전당포에서 일자로 쭉 뻗은 단꼬 쓰봉을 빌려입고 왔단다."
"수일씨! 흐흐흑!"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야몬드 보석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란 말이냐?"
"김중배의 다이야몬드가 그렇게도 탐이 났더란 말이다" "에이! 더러운 년! 매춘부!"
"만일에 내년 이밤 아니 내명년 이밤저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던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원망하고,저 달이 흐려져 비가오거든 나의 눈물인줄 알아라.
순애야! 돌아온 섣달 그믐날 비가 오거든 이 오빠는 만경창파에 몸을 싣고 21세기의 청춘으로 돌아 가련다."
"순애야 이젠 기다리지 마라." 꽃바람속에 ..."필름돌아갑니다"』
조중환(趙重桓)의 번안소설 장한몽長恨夢은
매일신보에 1913년 5월부터 1915년 5월 25일부터 12월 26일까지 연재되었다 한다.
원작은 일본의 오자키 고요[尾崎紅葉]가 1897~99년 "요미우리신문"에 발표한 연재소설
『곤지키야샤>(金色夜叉 ; '돈 빛깔 야차')』는 자유민권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본이 러일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던 상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돈과 사랑’이라는
통속소설의 소재를 바탕으로 정치적 색채를 지워버고 일본대중들의 관심을 돌려놓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장한몽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수일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친구인 심택의 집에서 자라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심순애와 혼인을 약속한다. 그런 어느 정월 보름날, 심순애는 김소사의 집으로 윷놀이를 갔다가,
거기에서 대부호의 아들인 김중배를 만난다.
심순애에게 매혹된 김중배는 다이아몬드와 물질공세로 그녀를 유혹하였고,
심순애의 마음은 점점 이수일로부터 멀어져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수일은 달빛 어린 대동강가 부벽루에서 심순애를 달래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여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울분과 타락 끝에 고리대금업자 김정연의 書記가 된 이수일은 김정연의 죽음과 함께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는 대동강에 투신자살하려다가 수일의 친구 백낙관에게 구출된다.
결국, 두 사람은 백낙관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결합하여 새 출발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당시에 크게 유행하였던 신소설과 고소설을 압도하고
소설과 연극으로 신문학 최초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점은 특기할만하다.
이 작품은 신소설의 퇴조와 함께 이후의 통속적 애정소설의 등장을 재촉했으며,
연극에서도 이후 신파극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그 파급효과가 컸던 작품이다.
비련을 그린 이 작품은 물질적 가치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순수한 한국적 배경과 유형으로 개작되어 수많은 개화기의 독자를 얻은 통속 번안소설로
신문연재 애정소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작품이다.
이 소설을 쓴 조중환(趙重桓 호 일재(一齋).서울 출생)은
1906년부터 약 10년 동안 《쌍옥루(雙玉淚)》 《장한몽(長恨夢)》 등 일본작품을 번안(飜案)
개작(改作)하고,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하여 개화기에 많은 작품 활동을 하였다.
연극에도 조예가 깊어 윤백남(尹白南)과 함께 ‘문수성(文秀星)’이라는 극단을 창립했다.
그의 작품은 대개 일본 것을 번안한 것이지만 문장이 유창하고 뛰어나서 많은 독자를 가졌다한다.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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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과 심순애(장한몽) / 노래: 고복수 황금심
장한몽(이수일과심순애)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 악수논정 하는것도 오날뿐이요 도보행진 산보함도 오늘뿐이다
수일이가 학교를 마칠때까지 어이하여 심순애야 못 참았느냐 남편의 부족함이 있는 연고냐 불연이면 금전이 탐이 나더냐 *** 대 사 ***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야몬드가 그렀게도 탐이 나더냐 에이! 악마! 매춘부! 만일에 내년 이밤 내명년 이밤 만일에 저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던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원망하고 오늘같이 우는줄이나 알아라) 낭군의 부족함은 없지요 만은 당신을 외국유학 보내기 위해 숙부님의 말씀대로 순종 하여서 김중배의 가정으로 시집을 가요
순애야 반병신된 이수일이도 이세상에 당당한 의리 남아라 이상적인 나의 처를 돈과 바꾸어 외국유학 하려하는 내가 아니다
눈물에 젖은 식민지
조선 신파의 시대 대표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끊임없는 리메이크로 한국인의 감성 장악 1969년 신상옥이 이끄는 ‘신필름’에서 <장한몽>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한다. 감독은 신상옥, 주연은 신성일과 윤정희 그리고 남궁원이 맡았다. 이 영화는 유신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국 곳곳에서 상영된다. 뿐만 아니라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연극계의 최대 히트작 중의 하나가 극단 가교의 <이수일과 심순애>였다. 그 이름도 유명한 ‘이수일과 심순애’는 이 땅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지 70년이 다 된 시점에서도 의연히 그 매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도 이수일과 심순애의 ‘황금을 넘어선 숭고한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곤 한다. 한국인의 감성을 장악해버린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그렇다면 그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조선을 ‘접수’한 일본의 눈물 공세
1910년 8월29일 조선은 일본의 ‘공식적’ 식민지로 전락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접수’하기가 무섭게 모든 언론을
통폐합해 <매일신보>라는 총독부 어용기관지로 언로를 일원화화고,
판매부수를 확장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소설을 연재한다.
독자를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판매전략 중의 하나가 연재소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과 제국주의 일본의 관계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장한몽> <쌍옥루> <국의향> 등 연재소설의 대부분이 메이지시대 일본소설의
번안’이었다. 그리고 일본소설 번안 분야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약한
인물이 조중환(趙重桓)이었다.
조중환이 번안해 당시 조선의 독서계를 강타한 소설이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를 주인공으로 한 <장한몽>(長恨夢>이다. <장한몽>의 원작은
일본 메이지시대의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1867∼1903)의
‘황금 두억시니’라는 뜻의 <곤지키야사>(金色夜叉)다.
이 소설은 토쿠토미 로카의 <불여귀>와 함께 일본근대문학사에서 이른바
‘언문일치’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으로 꼽힌다.
그리고 자유민권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본이 러일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던 상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돈과 사랑’이라는 통속소설의 전형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정치적 색채를
지워버린 이 작품은 일본대중들의 관심을 돌려놓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1913년 단행본으로 출판된 <장한몽>.
이 작품을 번안한 <장한몽>은 1913년 5월13일부터 10월1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됐으며, 같은해 유일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돼 판을 거듭한다.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의 고아로 입신출세를 꿈꾸는 명문 중학교 학생 하자마 간이치, 은행가의 아들 도미야마 다다쓰구, 간이치를 키워준 은인의 딸 미야가 각각 이수일과 김중배 그리고 심순애로 그 이름을 바꾸고, 공간적 배경도 도쿄에서 평양으로 옮긴 <장한몽>은 그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원작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원작에서는 도미야마와 결혼한 미야가 간이치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자결하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장한몽>에서는 이수일과 심순애가 재결합함으로써 행복한 결말로 막을 내린다. 원작과의 거리는 번안자의 선택과 독자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 문화적 환경과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굴절은 번역과 번안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운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을 아니다.
'이수일과 심순애'
** 시놉시스 ** 아버지의 병환으로 생활이 궁핍해진 심순애는 장안의 재벌인 김중배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수일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에 이끌린 심순애를 증오하게 되고 심순애와 이수일의 사랑은 어긋나게 된다. 이수일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방탕한 생활이 시작되고 수일을 사모했던 고리대금업자인 차미옥의 도움으로 재기하게 된다. 사랑의 배반으로 점점 냉혹한 인간으로 변해 가는 이수일은 그의 절친했던 친구들도 점점 이수일을 멀리하게 된다. 한편, 심순애는 김중배의 가혹한 학대를 받고, 엄동설한에 어린 자식까지 빼앗긴 채 쫓겨 나가게 되어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 눈이 내리는 거리에서 심순애와 이수일은 상봉하게 되는데... 자료: 영상과음악에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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