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곡면소재지에서 적곡·백곡쪽으로 한참가면 왼편으로 들어 앉아 있는 동리다. 옛 문헌에는 예둔(禮屯)과 예동(禮洞)으로 돼 있고 우례동(憂禮洞)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둔동(無屯洞)으로 해서 예동과 무곡마을을 포함해서 불렀던 지명 같기도 하다. 어르신들 얘기로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임을 명심하고 이를 길이 받들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우례동, 즉 예의를 지키지 못할까를 늘 염려하라는 뜻에서 그런 지명을 지었다고 한다.
마을 뒤에 솔도산(率道山)이 있고 맹수산이니 선직골산 등 제법 높은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다. 웃땀이 큰 동네고 아랫땀은 서너집만 있는 솔찍한 골짝뜸이다. 동네 뒤로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용두산(龍頭山)이고 동북쪽이 선지골 또는 큰골이고 동남쪽이 작은 골로 자그마한 저수지가 있다.
그리고 지정 백야(백이라고 부름)로 넘어가는 우리재(우례재) 그리고 무덤실(무곡)로 통하는 재는 큰골재 또는 선지골재로 부른다. 동네 앞의 한길따라 백곡으로 가는 산고개는 망근당재라는데 이는 성균관 진사 김유수(金有秀)공이 임란을 당해 임금께서 의주로 파천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산고개에서 북향하여 숙배를 드렸다는 뜻에서 망군대 또는 망군당(望君堂)재로 부른다. 일찍이 달성서씨가 터잡았다고 하는데 이미 12대째라니 350년 이상이 되었다.
동구밖 둑 넘어 남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유서 깊은 함육정(涵育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육우당(六友堂) 서명윤(徐命潤)공과 삼우당(三友堂) 서명룡(徐命龍)공 형제분이 기거하면서 학문을 쌓았던 곳이라고 한다. 동네 들머리에는 달성 서기환(徐琪煥)공 공적비도 있고 그 위에 예강재(禮崗齋), 이례재(以禮齋), 소이재(素履齋) 등 서씨문중의 재실이 여러 채 있다.
지금은 서씨가 46가구로 대성이다. 흔히 서촌(徐村)이란 별호도 있다. 성주 이씨가 서너집이고 박씨, 임씨, 배씨가 한집씩이라 다해서 50세대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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