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겨레신문 2013.12.16일자
퍼온이의 토 달기
먼저 칼럼 요약부터. 서울대 교수의 수시전형 면접시험 면접관으로서의 경험담이다. 서울대 지원자들이니 당연히 전교 1,2등은 기본일 것이고 제출서류도 '거의 완벽'한 인재들을 인성 면에서 변별해보기 위해 던진 질문은 "공부와 담쌓고 지낸 반 급우들 입장에서 지난 3년을 회고해 보라"는 것.
세 부류의 답이 나왔다고 한다. 참고 공부할 껄 하는 후회성찰형, 공부가 안맞으니 기술이라도 배워야겠다는 낙관형, 잘한 것도 없지만 못한 것도 없다는 나름만족형. 그런데 기대했던 답, '성적으로 줄세우는 학교가 싫어, 공부만 요구하는 선생님이 미워' 식의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더란다.
그러면서 중3학력도 안되는 아이들이 고3 교실에서 10시간 이상 앉아서 사실상 고문받는 상황을 들여다보는 아이는 없었다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지원자 대부분이 성실하고, 절제할 줄 알고, 목표에 매진할 줄도 아는 훌륭한 인재이지만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도 못하는지라, 이 아이들이 커서 사회지도자가 되었을 때 평범한 사람들을 어찌 바라볼 것인가를 우려하며 남의 처지에서 바라볼 줄 아는 것이 절실하다고 토로한다.
제 나이의 학력이 안돼 수업시간에 집중할 리 없고 집중할 수도 없는 절반 이상의 아이들의 고통. 자기 자식 얘긴데 왜 자기하고는 상관없다는 듯이 내버려 두는지 모르겠다. 왜 출석일수 채우고 사고만 안쳐서 졸업장만 받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또 공부만 잘하면 최고라고 키우게 되면 그 아이가 사회에서 영향력있는 위치에 섰을 때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을 다들 알 터인데, 공부만 잘하는 게 최고가 아니라는 목소리를 왜 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고려 때 민화 무쇠먹는 '불가사리'는 무쇠의 양면성, 즉 농기구로서의 고마움과 무기로서의 위험함 중에서 위험함을 경고하는 얘기인데 인성부재의 인재 키우기는 불가사리 키우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대자보가 이토록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건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성찰적 현실인식이 공감을 불러 일으켜서가 아니겠는가? 공부만 잘하면 된다 해서 위험한 불가사리 키우지 말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둬서 평생 실패자로 살아가는 법만 배우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여기서 그룹 홈스쿨링을 하고있는 아이들 중 하나는 학교를 나온 이유가 '수업을 이해할 수 없으니 잠만 자게 돼서'라고 한다. 작금의 경쟁교육 정책은 영원히 바뀌지 않거나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나 바뀌게 될 것이다. 이 땅의 아이 부모님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아이는 안녕하냐고.
입시철이다. 수시모집 발표가 나고, 대박이 난 집도 있고, 이웃과 친척들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수험생뿐만 아니라 부모들까지 죄인이 된 집들도 많다. 대학입학시험이 여전히 일생을 좌우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난리도 아닌 셈이다. 이번 입시에서 면접시험 시험관으로서 경험 한 토막.
면접시험은 서류심사를 통해 1차 2~3배수로 선발된 학생들 중에 2차로 합격자(사실상 최종합격)를 선발하는 과정이었다. 수험생들은 면접을 위해 다양한 서류를 제출했다. 학창생활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겪은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 감명 깊게 혹은 재미있게 읽은 책, 사회봉사 경험 등등. 이름이나 가족관계 그리고 졸업한 학교 등은 알 수 없고 이들이 제출한 서류를 보고, 질문을 통해 학생을 평가해야만 했다. 거의 모든 서류들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갖춰져 있어서 차별화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너는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내내 공부를 참 잘했다. 자네를 포함해서 오늘 면접 보는 대부분 수험생들이 전교 1, 2등 하는 학생들 아니냐. 그런데 너희 친구들 중에서 50% 정도는 대학에 가기 어려울 정도로 공부와는 담쌓고 지낸 학생들이 많을 거다. 그런 학생들도 이제 졸업을 해서 교문을 나서야 한다. 그 학생들에게 지난 3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 학생들의 입장에서 지난 3년간의 학창시절을 회고해 봐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사회관계나 사회현상을 어떻게 성찰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세 가지 정도의 답변(말하자면 입장 바꿔서 하는 회고 혹은 성찰)이 나왔다. 가장 많은 답은 “후회하고 학교 정문을 나갈 거 같다, 그때 공부하기 싫어도 좀 참고 할걸, 조금만 더 인내심을 키웠더라면” 등등 ‘후회형 성찰.’ 둘째는 “나는 공부가 맞지 않는 거 같다, 그러니 미용·요리·댄스 등등 내가 배운 기술을 통해, 그걸로 열심히 하면 나름대로의 미래가 열리지 않을까”라는 식의 ‘낙관형 답변’. 셋째, “공부를 잘한 것도 아주 못한 것도 아니지만,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미래가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크게 후회는 없다”라는 식의 ‘나름 만족형 성찰’.
면접을 본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남들이 놀 때, 남들이 빈둥댈 때, 자신을 채찍질하고, 절제하면서 공부에 매진한 훌륭한 수험생들임에 틀림없었다. 앞으로도 자신을 삶을 잘 개척해 갈 것 같았고,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아쉬웠던 건,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능력이 너무도 모자랐다는 점이었다.
답변 중에 “모든 걸 공부와 성적 중심으로 줄 세우는 학교가 싫었다, 그런 잣대로 학생을 평가하는 선생님들이 정말 미웠다.” 뭐 이런 식으로 공부와 담쌓은 학생들이 가질 법한 느낌, 감정을 드러내는 답변을 하는 수험생은 없었다. 중3 영어 실력도 안 되는 학생이 10시간씩 고3 교실에 앉아서 사실상의 고문을 받고 있어야 하는 현실을 들여다본 학생은 없었다. “성적이 정말 처졌던 학생들은 그냥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교문을 나가는 건 아닐까, 아니면 선생님이 밉지는 않았을까”라고 기대하는 답을 유도해 줘도, “그들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나가지 않을까요, 제 친구들 중에 선생님을 미워하는 애들은 못 봤는데요”라는 응답이 되돌아왔다. 그네들에게 선생님은 언제나 친절하고 자신을 예뻐해주는 그런 선생님이었을 테니까. 그런 답이 나왔으면 최고점을 주려고 했는데, 한 명도 없었다.
성실한 사람, 자기 절제를 잘하는 사람, 목표를 설정하면 매진하는 힘을 가진 학생들은 참 많이 있었다. 모두 훌륭했다. 그러나 이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들 성공한 사람들은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다보는 것일까. 학교와 선생님이 정말 미울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 그렇지만 말할 수 없었던 친구들, 혹은 그래서 학교를 뛰쳐나간 학생들은 그들에게 어떤 사람들로 기억되는 것일까. 남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다보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 이런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첫댓글 남에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다보는 역시사지의 자세 저한텐 매우 부족한데 학교를 나왔으니 이곳에서 많이 높일것 입니다
그래~
그런데.... 학교를 나와 여기에 있다고 해서 타인에 대한 이해, 공감, 배려가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절대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절실하면 받아들여 키울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백년하청일 테니까.
그러하니... 혹시라도 감나무 아래 아~ 하고 하염없이 누워있지 말아야 한다.
감이 입 안에 떨어질 확률은 로또보다 결코 높지 않을테니까!
저는 많이 높인다고 했지 많이 높아질것 같다 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을 절실하게 받아들여 클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온갖 지적 능력, 하이 퀄리티 지식을 다 가졌다고 해도 思, 나에 대해, 남에 대해, 사회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면 밝지 못할텐데요. 그 모든 것보다도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인성인데요. 무엇을 해도 인성이 없다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부적절하게 쓰일지 모를텐데요... 교육받은 노동력을 필요로한 미국 공립학교부터 그것을 따라한 우리나라까지 거슬러 온 듯 합니다. 근데 저 개인도 저 질문에서 마지막 답인 '친구들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보니 좀 창피하네요.. 스스로 반성하고 남을 생각하려는 과정을 수없이 거쳐나가야 겠어요.
ㅋㅋ 그랴아~ 생각없음은 굉장히 위험하지. 아이히만이 단순히 성실해서(!) 절대악질이 됐다자너~
제가 과고 면접을 볼 때에 첫째날, 둘째날 다 수학, 과학, 인성 면접 세 가지를 봤는데요.
첫째날 수학과학 점수는 낮고 둘째날 수학과학은 중간수준이여서 떨어졌다네요... 그런데 인성은 점수가 아주 좋았다네요 ㅋㅋㅋㅋ 그래도 어느정도사회에서 잘 생활할 수 있겠쬬?ㅋ
논리가 매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 사이사이 연결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다만..^^;
암튼... 물론! 잘 할 수 있지이~^^
공부만 하는 사람들은 공부만 잘하지 공감 능력은 좀 떨어지는군요..
저도 공감 증력을 많이 키울 것입니다 ㅎ
지금 좀 높아지지 않았나요?ㅋ
응? 공부 못하는 사람은 공감능력 탁월함? ㅇ_ㅇ!!
으..응. 많이 높아졌지이~^^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도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뭐든지 잘한다고 믿었었거든요..
많이 높아져서 다행이지만 앞으로 더 많이 높일거예요 ㅋ
아~~!^^ 그랬군^^;;
이상하게도 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인성이 좀 떨어질까요?
그러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좀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네요.
이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공부를 싫어하고 못하는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자신의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생각을 하여 선생님을 미워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 아닐까요?
세가지의 답변 중 제 스스로 제가 들어가는 부분은 나름만족형인 것 같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제가 정한 부분까지만 하고 더 이상은 나아가지 않아요....
하지만 앞으로는 제가 하는 무엇이던 가에 +1이라는 각오를 가지고 살아야겠어요.
(나쁜 것은 빼고 ㅋ
응? 공부 못하는 사람은 공감능력 탁월함? ㅇ_ㅇ!! 공부 못하는 사람이라고 공감능력이 좋은 건 아니지.
우월감 아닌 열등감에 사로잡혀 숨죽이고 있다가, 어떤 장면(자기가 우월하다고 느끼는 분야)에서 타인밟기를 예리하게 표출하기도 쉽거든?
이해,공감,연민,동정은 꼭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 또한 아니지.
로드킬 당한 동물이나 그 가족 입장에 한번 서서 생각해봐야 할거야. 그래서 역지사지를 강조하는 거고....
아! 네... 로드킬이나 그런 것에 대한 재미는 잘못된 생각이네요.
그런 장면들을 보고 그 동물이나 그 동물의 가족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하는데...
저는 좀 제스스로만 재미있다는 감정을 말했네요...
아무래도 오늘 영화토론에서 말한 것 처럼 공감지수를 많이 올려야겠어요.ㅋㅋ
그래~^^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