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배와 사람들
정 규
늦은 밤 미시령 정상에 올라서면 속초시내 야경과 먼 바다에 불야성을 이루는 불빛을 보게 된다. 먼 바다 수평선을 따라 아름답게 수놓은 불빛의 정체가 궁금하였는데 알고 보니 오징어배가 불을 밝히고 한창 조업 중이라고 했다. 그때는 오징어배가 불을 켜고 조업을 하는지도 모르던 때라, 밤에 가끔 바다에 나가 보면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광경이 신비롭기만 했다. 지인이 결혼하고 처음 남편을 따라 미시령 고개를 넘을 때 멀리 보이는 불빛이 궁금하여 물어보니 일본 땅이라고 해서 깜빡 속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속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전날밤 동해바다에 오징어배가 불야성을 이루면 분명 그 다음날 새벽 항구는 활기가 넘치고, 산 오징어 가격이 많이 싸진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산 오징어가 죽은 오징어보다 맛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어떻게 하면 오랜 시간 산 채로 보관하느냐가 횟집으로서는 초미의 관심사다. 그래서 오징어를 오래도록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아직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날의 새벽 항구는 오징어를 산 채로 촌각을 다투어 싣고 가려는 서울, 경기를 비롯하여 외지에서 온 수족관 차량과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가끔 새벽 항구에 나가보면 경매를 진행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낙찰을 받아 수족관에 싣고 하는 모습이 꼭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 지방에서 태어나고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바닷가에서 일어나는 일상사가 신기하기만 했다. 파도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바닷가에 나가 낚시를 하고 금방 잡아 올린 살아있는 고기를 포를 떠서 그 자리에서 회로 먹는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운 좋은 날에는 바닷가에 밀려온 문어를 잡기도 하는데,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먹는 맛은 내륙에서는 맛볼 수 없는 기가 막힌 맛을 선사한다. 산 오징어도 바다에서 바로 잡아 올린 것과 잡은 지 몇 시간이 지나 새벽에 항구로 들어와 먹는 맛이 천양지차라고 한다. 금방 바다에서 잡아 올린 오징어는 과연 어떤 맛일까, 맛보려면 오징어배를 직접 타고 나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오징어배를 타기로 하고 오징어 채낚기 어선을 가지고 있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예약을 했다. 10명의 선원이 타는 배로 가끔 개인 사정으로 출어를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빈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주기로 했다. 며칠이 지난 후 연락이 왔다. 마침 두 사람이 개인 사정이 생겨서 빈자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멀미약을 먹고, 귀미테를 붙이고 단단히 준비한 후 승선하게 되었다. 거진항에서 오후 5시 정도에 배를 타고 남방 한계선 부근 먼 바다로 출항을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가다 보니 10월의 가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선장은 집어등을 켜기 시작했다. 오징어는 빛을 보고 달려드는 추광성(追光性) 어족이기에 수천 와트가 넘는 집어등을 켜서 불을 밝히고, 낚싯줄에 2,3십 개 달려있는 형광색의 유선형 루어로 유인하여 낚시 바늘에 걸리게 해서 잡는다. 선장으로부터 낚시 사용법을 배운 후 잡기를 시작했다. 낚싯줄 바늘에 끼어 올라오는 오징어를 바로 옆에 있는 바닷물이 담겨 있는 수조에 넣으면 된다. 이렇게 해서 잡은 오징어 중에서 반은 선주에게 넘기고, 나머지 반은 잡은 사람이 가져간다고 한다.
처음 잡은 서너 마리는 저녁 식사 반찬 대용으로 내놓아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고 한다. 오징어배에서의 저녁식사는 밥과, 김치, 우리들이 잡은 산 오징어뿐이다. 선원들과 수인사를 하고, 바다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백전노장의 경험담을 듣는 것도 나에게는 큰 즐거움일 텐데, 그들은 별로 말이 없고 한마디 하는 것도 단조롭다. 어둠 속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선원들의 얼굴을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왠지 스산한 바람이 지나가는 듯 한 느낌이다. 어떤 연유로 오징어배를 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피치 못할 사정과 애환이 있으리라.
횟집에서 나오는 산 오징어만을 먹어 본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목숨 걸고 거센 파도와 싸우는 이 분들의 노고가 감동으로 다가 온다. 선원 중에 한 분이 ‘지금 먹는 오징어는 대통령도 맛볼 수 없지’라고 말한다. 역시 그런 것 같다. 방금 바다에서 잡아 올린 오징어는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오징어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기가 막힌 맛이다.
얼마를 잡았을까 배가 닻을 내리고 정박한 상태에서 조업을 하다 보니 걱정했던 멀미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토하고, 장이 뒤 틀려 설사까지 망망대해 넘실거리는 시꺼먼 바다에 배설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다. 기억이 혼미한 가운데 오징어 잡는 일을 중지하고 선장의 배려로 선장실에 누워 안정을 취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새벽 거진항에 입항하고 있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보다는 마음 한 구석이 애려 오는 것은, 오징어배에서 만났던 선원들의 스산한 모습 때문이다. 힘들고 지쳐서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목숨을 담보로 칠흑같이 어두운 망망대해로 무작정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징어배를 타기 전에는 밤바다를 환하게 밝혔던 불빛이 단지 아름답고 멋진 낭만적인 풍경으로만 다가왔는데 이제는 목숨 걸고 거친 파도와 싸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초롱불 심지가 되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된 듯도 싶다.
1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