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암촌에는 최연손 생가(生家) 터가 전해오고 있었는데, 1808년(순조 8) 종인(宗人) 한 사람이 종중 몰래 팔아버려 타성인 손에 넘어간 것을 백여 년간 재판을 벌이는 등 되찾기 위해 노력한 끝에 1934년 타성인을 이용해 차명(借名) 매입하는 방법으로 되찾았다.
조상의 생가 터를 되찾았으므로 1935년 생가 터로 옮겨서 주암서원을 복원했는데『연촌유사속편』에 의하면 대지가 897평이나 되고 내강당(內講堂), 외강당(外講堂), 동고(東庫), 서고(西庫)를 갖춘 상당히 규모가 큰 서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외강당과 서고만 남아 있고 내강당과 동고는 없어져버렸는데 동고가 있었던 자리를 포함해 대지 동쪽 절반에 최성현(崔誠賢, 1944~)씨가 살고 있다.
물론 최성현씨 집터는 종중소유로 되어 있지만 최성현씨 할아버지 최규동(崔圭東, 1876~1938)이 생가 터를 되찾는 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포상 차원에서 거주를 허용한 것이다.
생가 터를 빼앗긴 기록은 주암서원 서고의 서궤(書櫃) 속에 있는 <종중가대송사문>(1)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생가 터를 되찾은 기록은 주암서원 마당에 서 있는 전주최씨종대기적비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배향된 조상의 생가 터를 되찾아 서원을 복원한 일은 의미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복원된 주암서원은 전주최씨 남원종회 종대로서 역할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사건 전말이 전주최씨종대기적비에 기록된 것이다.
영당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21호로 지정되었으나 영당에 봉안되어 있는 [이모본A]는 2022년 5월 20일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92호로 지정되었다.
*** 각주 ----------------
(1) 宗中家垈訟事文. 종중 집터 관련 고소장. 주암서원 철폐 이후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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