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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나비효과
(수 21:1~45)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여호수아서 21장 말씀 중심으로 <이중의 나비효과> 라는 제목의 말씀 증거합니다.
이중의 나비효과.
여러분 다 나비효과라고 하는 말은 아실 줄 압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의 시작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나비효과라는 얘기 염두에 두시면서 우리 말씀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우리가 읽은 대로 레위인들에게 열두 지파가 자기가 분배받은 땅에서부터 사십 팔개의 성읍을 선정해서 전국에 사십 팔개의 성을 레위인들에게 할당을 해줍니다.
그들의 가축을 기르고 또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레위인은 따로 농사를 짓고 할 수 있는 그런 땅을 전혀 분배받지 못합니다. 그냥 거주할 수 있는 성읍과 제사 때 사용하기 위하여 받게 되는 그런 양무리들이나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초장만 할당을 받게 됩니다.
전 생애를 전부 성전의 일을 위하여 준비되어서 따로 생산적인 산업이라는 게 없는 그런 기없이 없는 삶을 살게 돼요. 그래서 그 사십 팔개 성을 허락을 하지요.
요즘도 비슷합니다. 목사님들이 평생을 목회 일을 하시게 되면서 따로 당신의 직업들을 안 갖게 되시니까 사택서부터 신수비를 목사님들에게 교회가 지급을 하면서 목회를 하실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해주지 않습니까?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레위인들에게 그렇게 했다는 것이에요.
제가 밴쿠버에 있을 때 어느 믿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그런 초신자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근데 그 초신자가 하는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왜 교회가 목사님들한테 신수비를 드리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보통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일을 해서 월급을 준다 할 때 그 개념이 어떻습니까?
경제적인 활동에 플러스 요인이 되니까 월급을 주잖아요. 직원이 일하는 것이 경제적 재화의 가치를 생산해내는 그런 일이니까 월급을 주면서 일을 시킨다 이겁니다.
근데 목사님들이 하는 일은 하나도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해내는 게 아닌데 왜 목사님들에게 돈을 교회가 주는지 모르겠다.
초신자다운 이야기라고 봐요.
그러니까 그렇게 질문을 딱 하니까 내가 나서서 강력하게 내가 돈 받을만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참 곤란하고 아주 난감하더라고요.
그래 뭐 출근 사간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까, 퇴근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까? 뭐 퇴근이고 출근이고 없지요. 무슨 일만 있으면 밤 열두시에라도 뛰어가야 되는, 그런 어려운 사실은 활동을 하시면서 목사님들이 다 정말 어느 직장인 못지않게 애를 쓰시고 목회를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진짜 무슨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재화를 창출해내는 일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목사님들에게 그렇게 신수비를 드려야 되느냐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혼자 낄낄대고 웃었습니다.
여러분, 레위인에게 무엇 때문에 사십 팔개의 성읍을 줍니까? 이게 어떻게 얻은 땅인데.
광야를 사십년 동안 돌다가 그러다 와가지고 전쟁을 해가지고 이제 겨우 얻은 땅인데 그 땅 중에서 레위인들은 전쟁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 사람들에게 성읍을 사십 팔개나 전국적으로 레위인들이 흩어지게 하고 거기다 거주지로서 성읍을 주냐 말입니다.
이거 보통 중요한 게 아니죠.
이거 기억하세요. 여러분!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일이라는 것이에요. 온 지파가 다 자기의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안식을 허락하시는 가운데 제일 먼저 한 일이 레위인들에게 사십 팔개의 성읍을 골라서 살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왜 일이 경제 활동을 하고 자기의 농사를 짓지 않을 레위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합니까? 성전의 일을 종사한다는 게 의미가 뭡니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다 여건을 만들어 준다 이거 무슨 뜻이 있는 겁니까?
가나안 땅이 복지로, 복된 삶의 터전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물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비옥한 밭이 있고 논이 있기 때문도 아니고, 요단강이 있기 때문도 아니며 올리브나 포도나 꿀이 나는 소산지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가나안 땅이 선민들에게 하루하루를 아, 행복하구나 야, 기쁘구나. 자식들의 얼굴을 봐도 기쁨이 솟고 남편의 얼굴을 봐도 아내 얼굴을 봐도 부모님의 얼굴을 뵈도 이게 기쁨이 솟는 그러한 행복한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은 어깨에 짊어져야 되는 포도열매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엄청나게 큰 포도열매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 때문이라는 거예요. 복지로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사막에서 물이 없고, 밭이 없고, 논이 없고, 열매가 없어도 사십년을 하나님 때문에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열매가 있고 밭이 있는 곳이라 하지마는 그 가나안 땅이 복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근데 레위인들이 뭐 하는 사람들이냐?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의 원칙 이게 율법 아닙니까? 그런 것들을 교육하고 양육하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끝없이 주선하고,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 앞에로 다시 자기의 바른 자리로 돌아오도록 돕는 일을 평생 아무 자기의 경제적인 유익을 위한 활동도 없이 그것만 전념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적인 차원에서 나비 효과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는 일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냐 이 나비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경제활동을 하는데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제사를 지내는 일은 실질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나가서 사업을 하고 농사를 짓고 하려면 농사법을 배우고, 사업을 하려면 그 분야에 전문지식을 얻고 사람을 만나고 그래야지 하나님께 예배하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이에요. 근데 이게 나비효과를 갖는 거예요.
나비효과가 뭐죠? 여러분?
자, 아마존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합니다. 그러니까 나비 몸에 붙어 있던 꽃가루가 떨어집니다. 꽃가루가 떨어지는데 그 밑에 있던 원숭이에게 꽃가루가 떨어지니까 원숭이가 가렵습니다. 가려우니까 그 가려운 몸을 긁으려고 야자나무 밑에다 쿵쿵 부딪칩니다. 그러니까 야자나무 열매 하나가 뚝 떨어집니다. 야자나무 열매가 떨어져서 밑에 있던 돌맹이 하나를 툭 치니까 돌맹이가 굴러갑니다. 굴러가면서 여러 돌맹이들을 다 흐트러뜨리더니 심지어 큰 바위를 건드려버리고 그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발전하느냐? 산사태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분화구가 막혀버렸습니다. 분화구가 막혀버리니까 이 내부의 압력이 증폭되면서 그 압력에 의해서 화산이 폭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다보니까 기상변화가 일어나면서 아마존에서 나비가 움직였는데 결과적으로 텍사스에서 토네이도 돌개바람이 나타난 거예요.
이게 뭡니까? 이게 나비효과라는 거예요.
나비가 몸짓을 했을 뿐인데 그러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텍사스의 토네이도와 뉴욕의 태풍과 아마존의 나비는 아무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연쇄적인 반응을 통해서 결국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 미세한 차이가 처음에 나타났었는데 미세한 움직임에 의해서 엄청난 차이가 나타나는 것 이게 나비효과라는 것이에요.
이 이중의 나비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런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
사업을 한다고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십자가로 죽고 기도한다는 거 아무 연관성이 없습니다. 정말 원숭이 몸에 떨어진 꽃가루만큼이나 관계가 없는 거예요. 원숭이 몸의 크기에 비해서 꽃가루 하나가 얼마가 되겠습니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아무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오늘 보면 안식을 주신다고 그래요. 온 땅에 안식을 주셨다. 하나님을 만남을 통하여 마음에 안식과 평강을 얻는 것이 결국은 나가서 움직여가는 모든 우리의 활동이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고 반대로 하나님을 안 만났다는 게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사업을 하고 내가 일상적으로 생활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하는 일에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하나님 안 만난다고 자녀 못 기릅니까, 사업 못 합니까, 장사를 못합니까?
아무 관계도 없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태풍이 몰아치는 악한 결과를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이에요.
어제 어느 집사님과 함께 점심 때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근데 그 동안 신앙생활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근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수술을 받으시고 따로 거처를 정해서 계시다가 이제 병수발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집으로 오시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근데 우리나라뿐만이 아닐 거예요. 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라는 게 편치 않지 않습니까? 저희 집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친정어머니의 얘기를 할 때와 시어머니 얘기할 때는 벌써 마음에 입장이 다를 것 같아요. 시어머니는 예의도 갖춰야 되고 그러니까 부담도 되고 이런 입장에서 출발을 하고 친정어머니는 그냥 헬렐레 하는 그런 마음으로 얘기도 하고 입장이 다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근데 이 남자 집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집사람이 너무 달라졌다는 거에요. 아마 그 집사람한테는 얘기 안 했을 것 같아요.
자기 어머니죠. 시어머니와 같이 지내는데 그렇게 얼굴이 밝고 맑고 명랑하고, 그 어머니도이상하게 이전에 오시면 그저 반나절 지내면 불편해서 당신의 집으로 가시던 분이 그렇게 마음 편하게 계신다는 거예요. 웃고 계세요.
그러니까 집사님 마음에 너무너무 좋으신 거야.
한참 얘기가 진행되다가 또 어떤 말씀을 하시냐 하면 목사님의 말씀 중에 신앙을 생활화하기 위해 예를 드실 때 자녀의 얘기를 많이 하시고 어머니나 아빠의 입장에서 얘기를 많이 하신다. 근데 그 비중에 비해서 사업전선이나 직장에서 나가는 분들의 이야기는, 남자들이 사회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는 비교적 많이 이야기를 안 하시는 것 같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맞다. 내가 사회 경험도 많지 않고 늘 간접적으로 교인들한테 듣는 이야기만 많을 뿐이지 직접 사회 경험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고 근데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비효과에요. 나비효과라는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마는 나비효과가 있다는 것이에요.
뭐냐?
아내가 교회에 왔습니다. 아내에게 제일 중요한 일은 자식입니다. 자식에게서 불편해버리면 만사가 불편해지는 거예요.
근데 아내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서 자식을 하나님의 자식으로 돌려드리게 됩니다. 아내의 마음에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평강한 마음으로 자식을 건드리고 자식을 교육하고 자식답게 대하게 됩니다.
아이가 행복해지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나가도 행복하고 들어와도 행복하고, 엄마의 마음이자식을 만날 때 행복하고 헤어질 때 행복합니다.
집에 들어와 보니까 갑자기 변했습니다. 아내의 표정이 변하고 아이들의 표정이 변했습니다. 남편이 편안해집니다. 남편이 행복해집니다. 시어머니와 만나는데 시어머니와의 만남이 너무너무 편안해집니다. 평강이 임합니다.
집을 나갈 때 남편은 뒤돌아보며 웃음이 나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사업을 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아니 무슨 사업을 할 때, 직장에서 생활을 할 때 신앙적으로 이건 이렇게 하시고, 저건 저렇게 하세요 가르쳐줘야 맛이에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게 나비효과라는 겁니다.
가장 실질적인 게 뭐냐?
지금 여러분, 대한민국이 산업은요 한 10년 어간에 괄목한만하게 발전을 했습니다. 정말 수출 무역에서 11위. 정확하게 말하면 9위. 중개업 하는 싱가포르하고 벨기에를 빼면 9위. 전 세계에서 9위에요. 이렇게 산업이 발전했는데 가정은 지금 다 망가져가고 있어요. 열 명 중에 막 이혼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전 그렇게 보고 있는 거예요. 가정을 살려야 돼요.
가정을 살려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일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게 아내와 자녀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엄마와 아이들의 관계가 행복해지고 그리고 가정을 지키는 엄마의 마음에 평강이 임하지 않으면 남편들의 마음이 편할 수가 없지요.
강력하게 복음이 여자들, 아줌마들, 엄마들, 아내들에게 먼저 들어가서 집안에 버티고 있는 그 아내요 엄마의 마음 속에 하늘의 평강이 임해야 된다는 겁니다.
아무 관계도 없어요. 남편이 밖에서 하는 일, 자녀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일 아무 관계도 없어요. 엄마와 아내가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십자가 복음 이진법으로 매일 세상일에 대해 죽으면서 하늘의 평강을 유지한다는 것이 사업하고 돈벌고 장사하는 일에 자녀들이 공부하고 뭐하는 일에 직접적인 관계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자녀들이 엄마에게서 얻은 평강을 갖고 나가서 활동을 하고 공부할 때, 남편들이 아내의 마음에서 임하는 그런 평강의 기운을 쐬면서 안식하다가 나가서 사업을 할 때 토네이도가 태풍이 일어난다는 것이에요.
그러나 반대로 다윗의 예를 들어봅니다.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던 사람이 잠깐 하나님에게 묻는 일을 중단합니다. 그 사이에 목욕하던 밧세바가 눈에 확 들어와 버려요. 그리고 밧세바를 범하게 됩니다. 사무엘하 11장에 밧세바를 범하는 과정을 보면 그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에게 묻고 또 묻고 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얘기가 한 마디도 안 나와 버려요.
아무 관계도 없는 하나님 잠깐 잊어버렸습니다. 관계도 없으니까. 그런데 그만 잠깐 잊어버리고 밧세바를 범한 일이 마지막에 어디까지 발전하느냐?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왕궁의 신하들과 왕이 다 피신해서 전국이 동요하는 태풍권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게 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 잠깐 안 보던 사이에 저지른 범죄로 인해서 그것이 암논이 그 여동생을 범하게 되고 그 여동생의 동복 오빠인 압살롬이 왕자들을 다 몰살시키고 압살롬이 도망가서 외가에 있으면서 야심을 키우게 되고 돌아와서 아버지를 향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아버지가 피난가게 되고 온 전국이 동요하게 되고 결국은 그 압살롬이 죽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잠깐 하나님을 마음에서 놓았는데..
그러니까 여러분, 레위인에게 사십 팔개 성읍이 아깝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이 복지에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디서 끝납니까? 여러분.
열왕기하나 역대기하 마지막을 읽어보면 결국은 성전이 망면서 이스라엘이 망하는 거에요.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인 성전이 망하면서 이스라엘의 복지 전체가 패망해버리고 삶의 터전이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말아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여러분 교회에서 목사님들에게 신수비 드리는 거 아까워하시면 바보들입니다.
결국 태풍처럼 대단한 일 긍정적으로, 또 태풍처럼 안 좋은 일 부정적으로 이 모든 일들이 어디서 일어납니까?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하나님과의 만남 그 만남이 제대로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서 이중의 나비효과 - 긍정적인 태풍이 불든지, 부정적인 태풍이 불든지.
근데 그 하나님과의 만남을 주선해주고 중매쟁이처럼 늘 하나님과 성도들이 만나는 것만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이 지금의 목사님들이고 레위인이었다 이 얘기입니다.
그럼 목사가 하는 일이 뭐냐?
요즘은 목사님들도 좀 의식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목회를 잘 하려고 하시면 안 돼요. 목회는 교회라는 조직을 포함해버리고, 조직을 운영해야 되는 것으로 되어 버리고 결국 장로님들과 당회에서 하는 관심이 뭐냐? 교회의 매니지먼트가 되어 버려요. 이사회가 되어 버려요.
그거 안 되지요. 의식이 그렇게 바뀌면 안 됩니다.
어떡하든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질적으로 자기의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만나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거 이게 당회가 할 일이죠. 이게 목사님들이 할 일이라는 겁니다.
교회라는 조직을 운영해나가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이 한 분이신 하나님과 만나서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 것 이게 목사님들이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교회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충성하라, 봉사하라 이거 아니에요.
선교회도 제일 걱정이 일이 많아질까 봐 걱정이에요. 근데 뭐 자꾸 일이 많아져요. 마음에 걱정이 태산입니다. 일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중의 나비효과! 하나님을 만나는 거!
그러기 위해서 선교회가 만들어진 것이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주님의 십자가 이진법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거 - 세상에 대해서 제로 되고, 이 세상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제로 되고 내가 죽는 겁니다. 내가 죽어버려요.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내가 돈 벌어야 되고 직장생활을 해, 공부해야 되고, 결혼해야 되고 뭐 해야 될 게 많아요. 가족관계를 해나가고 시어머니를 모셔야 되고 시아버지를 모셔야 되고 이런 모든 것들이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거 아무 관계없는 거 같아도 그 모든 삶의 영역에서 긍정적인 하늘의 기운이 태풍이 되어서 몰아치는 은혜 가운데 거하는 놀라운 신비함이 여러분의 경험 속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중의 나비효과 기억하시고 만나면 좋은 태풍, 못 만나면 나쁜 태풍, 그래서 레위인들에게 사십 팔개의 성읍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0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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